절절한 러브레터의 주인공 최정희와 이상
한국문학사의 천재로 평가받는 1930년대의 소설가 겸 시인 이상이 쓴 연애편지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 연서는 당시 소설가 최정희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23일 서울대 권영민 명예교수(국어국문학)가 공개한 이상의 친필 연서는 최정희 씨의 둘째 딸인 소설가 김채원 씨가 고인의 유고 편지 300여 편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편지 말미의 서명, 필체 등으로 이상의 연서임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연서에는 실연의 아픔과 함께 최정희에게 바치는 연심이 애틋하게 적혀있다. 현대식 한글로 번안된 편지 내용은 이하와 같다.
< 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한 것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 번이 내 시골에 있던 때 입니다.
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나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히 알았었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 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웃을 편지입니다.
"정희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웠었다. 내 이제 너와 더불어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어리석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길 거울 같기를 빌지도 모른다.
정희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희야. 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 내일이래도 좋다.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찾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디 내게로 와다오.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적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다구니도 좋다.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희야 너를 위해 네가 다시 오기 위해 저 야공(夜空)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히 살아가련다......"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었으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있을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럼 약아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었든지 내가 글을 쓰겠다면 무척 좋아하든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럼 속삭이던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언짢게 하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다고 해서 쓰기로 한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만나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히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날 오후 다섯시에 후루사토(故鄕)라는 집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李箱.
편지를 받은 최정희는 당시 23세의 젊은 이혼녀로, 빼어난 외모와 지성을 갖춘 신문기자로 청년 문인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이상뿐만이 아니라 시인 백석에게도 구애를 받은 바 있는데, 백석이 눈 오는 밤에 홀로 소주를 마시다 최정희가 너무 보고 싶어서 산고개를 넘어가 최정희 얼굴만 보고 다시 돌아와 남은 소주를 마셨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최정희는 결국 이상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고, '국경의 밤'의 시인인 김동환과 결혼해 자매 소설가 김지원, 김채원을 낳았다. 그리고 이상은 이 연애편지를 보내고 2년 후, 스물여덟의 나이로 요절한다. 오묘하게도, 세월의 아이러니는 최정희의 두 딸인 김지원, 채원 모두 이상문학상을 받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