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복음 창세 전 십자가 디자인 복음과 원시복음 중
어느 복음을 믿나요 라고 시각의 차이를 #질문을한다면!?
#두이론 알메이니안주의 인간 책임론과 칼빈주의 예정론이 어떻게 구분 되는지 알아봅니다!!
AMI교회 (missions)
15시간 전
2026년 7월 17일 황용현 칼럼
기독교인의 최우선 과제가 있습니다. 이는 창조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목적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창조자이신 삼위 하나님(히. Elohim, 창1:1)이 누구이시며, 이분들이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목적(사43:7,21; 고전10:31; 골1:16)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깨닫고 순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자녀들/크리스천들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이것을 교육시키시기 위해, 삼위 하나님이 창세전에 '창조목적 학교'('이 세상 7천년')를 디자인하셨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자 사역'(히. gawal, 헬. apolutroseos, 영. redemption, 사41:14; 롬3:24)을 디자인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창세전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건을 디자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개종(주후35, 행9:1-19)한 후, 고린도전서(주후55, 고전2:7, 4:1)를 집필할 때까지 20년간, 이 예수님의 창세전 디자인을 몰랐습니다. 이 기간 그는 '원시복음'(헬. proto evangelion, 영. first gospel, 첫 복음, 창3:15, 아담 타락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하셨다. 알미니안주의, 인간 책임, 인간 자유의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fact)을 그가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그 가르침을 그의 첫 저서 갈라디아서(주후49)와 이어서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주후51)에 기록했습니다. 이 두(2) 저서들에는 '하나님의 신비 복음'('창세전 십자가 디자인 복음')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이 신비를 계시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아직 이 '신비'를 받을 '분량'(헬. metron, 영. measure, 롬12:3-8)과 '그릇'(헬. skeuos, 영. vessel, 딤후2:20-21)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것을 받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이 기간 그를 훈련시키시며, 이 '신비'를 받을 '분량'과 '그릇'을 예비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두(2) 10년으로 나누어 훈련시키셨습니다. 첫 10년(주후35-45, 개종후 아라비아 3년과 고향 다소 7년, 소외/외로움/겸손 훈련)과, 두번째 10년(주후45-55, 안디옥 교회 전도사, 1차/2차/3차 선교여행, 교회개척/제자훈련/두란노 신학교 사역/선교사 파송/집필사역) 입니다. 이렇게 20년을 선교현장에서 훈련시키신 후,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하나님의 신비 복음'('창세전 십자가 디자인 복음')을 주셨습니다. 어느정도 '분량'과 '그릇'이 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것을 자신의 이성과 논리로는 충분히 소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것을 '신비'(헬. musterion, 영. mystery)라 했던 것입니다(고전2:7, 4:1). 물론 이것이 우리에게도 '신비'입니다.
문제는 '창세전'이라는 데 있습니다. '창세전'이란 언제입니까? 이것을 성경에서 최소한 네(4)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1) '세상에 기초가 놓이기 이전'(엡1:4; 벧전1:20), (2) '세상전'/'만세전'(고전2:7), (3) '영세전'(롬16:25), (4) '이 세상이 있기 전'(요17:5; 딛1:2; 딤후1:9) 등입니다. 이때는 우주도 없었고, 지구도 없었고, 천사도 없었고, 루시퍼 타락도 없었고, 사탄도 없었고, 아담 창조도 없었고, 아담 타락도 없었던 때입니다. 어떤 피조물도 창조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삼위 하나님만 존재하셨을 때입니다(요17:5). 그런데 이 때에 삼위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건'을 미리 디자인 하셨다니,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과 논리로는 소화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이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단지 은혜로 선별된 소수의 '제자급들'('신붓감들')만 이를 수용할 것이라 하셨습니다(마13:11-17). 이는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서로 '분량'(헬. metron, 영. measure, 롬12:3-8)과 '그릇'(헬. skeuos, 영. vessel, 딤후2:20-21)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천국이 '계층 사회'이기 때문입니다(마5:19, 18:1, 23:11; 고전15:41; 계21:24). 그런데 문제는, 이 '신비'를 인정하며 수용하는 크리스천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fact)입니다. 은혜가 주어지지 않아서 입니다(마13:11-17).
특히 이것이 '알미니안주의 사상'('인간 책임', '인간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사상)을 가진 크리스천들에게는 무척 부담이 되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 '창세전 십자가 디자인 복음'('하나님의 신비 복음', 고전2:7, 4:1; 롬16:25-26, 칼빈주의, 예정론, 하나님 주권, 은혜)을 수용하기를 꺼려합니다. 어떤 분은 흥분하며 화를 냅니다. 그러면 인간은 '로보트'인가? 라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반격합니다.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이 '신비'를 수용 안 합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같은 크리스천인데(예수님의 보혈로), 왜 이렇게 마음문을 닫고, 이 '신비'를 수용하지 않나요? 그리고 화까지 내면서 흥분하나요? 인격적으로 보면, 아주 좋은 분이며, 교회 봉사도 잘하며, 기도와 헌금도 많이 하며, 전도와 선교에도 적극 참여하는 분인데 말입니다. 이런 분인데, 왜 이분의 시각이 '원시복음'(창3:15; 롬5:12-21)에만 고정되어 있고, '창세전 십자가 디자인 복음'('하나님의 신비 복음', 고전2:7, 4:1)에는 눈과 귀가 닫혀 있나요?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에 대한 대답이 성경 어디에 있나요? 라고 물으면 우리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요? 그 대답이 바로 마태복음 13:11-17에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렇게 눈과 귀가 닫힌 분이 전세계 기독교인 중 대략 70-80%가 됩니다. 제가 지난 30여년간, 40여개의 나라들을 섬기면서 발견한 사실(fact)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신비 복음'을 믿는 분들은 대략 20-30%뿐입니다. 소수입니다. 저와 AMI는 이 소수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이 있습니다. AMI는 이 '두(2) 복음'('창세전 십자가 디자인 복음'과 '원시 복음') 중, 어느 복음을 믿나요? 라고 질문하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그 대답이 이러합니다. "AMI는 이 두(2) 복음 모두를 믿습니다. 이 두(2) 복음이 교회 안에 공존함을 믿습니다." 같은 기독교 공동체 안에 두(2)부류의 크리스천들이 있다는 사실(fact)을 믿습니다. 상기 (1) '원시 복음'만 믿는 분들(두더지/병아리/참새 시각자들)과 (2) '두(2) 복음이 교회 안에 공존함'을 믿는 분들(새끼 독수리/성인 독수리 시각자들, 저 세상/이 세상/저 세상을 보는 분들, 이세상 7천년이 창조목적 학교임을 보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2)번째 구룹에 속한 자들은 소수입니다. 대중성이 없습니다. 외로운 구룹입니다.
바울이 이 외로운 구룹이었습니다. 그가 이 '두(2) 복음'이 '교회 안에 공존'함을 믿고 가르쳤던 분입니다. 이 사실(fact)이 그의 저서인 로마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개척했던 로마 교회 안에 '두(2) 구룹'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대다수의 교인들이 '원시복음'만을 믿었다는 사실(fact)도 보여 주었습니다(롬5:12-21). 한편 그가 로마로 파송한 그의 제자들(30여명, 두란노 신학교 졸업생들)은 달랐습니다. 이들이야 말로, 은혜로 이 '창세전 십자가 디자인 복음'을 수용할 '분량'과 '그릇'이 예비된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들에게 이 '창세전 십자가 디자인 복음'('하나님의 신비 복음')을 가르쳤습니다(주후57, 롬16:25-26). 놀랍게도 이들이 수용했습니다.
이로써 이들이 '독수리 시각자'로 서서히 조금씩 눈뜨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드디어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저 세상/이 세상 7천년/저 세상)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7대 신학주제들'과 '5대 신비들'에 배고파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이들이 '수직 계명'과 '수평 계명'과 '지상 사명'에 순종하는 마음도 더욱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입니다(롬1:7; 계22:21). 또한 이들이 교회 안에 상기의 두(2) 구룹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들이 '시각의 변화'('독수리 시각'으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이렇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아하, 이 세상 7천년이 창조목적 학교이구나!"입니다. "자신들이 본래 천국 시민이지만(빌3:20; 엡2:19), 이 세상에 잠깐 나그네/학생(히11:13; 벧전2:11)으로 내려와서, 예수님의 대사(ambassador, 고후5:20) 사역을 하다가, 때가 되면(전3:1-8), 본향(히11:16)으로 귀환하는 존재이구나" 입니다. 엄청난 시각의 변화입니다.
이렇게 이들이 이런 '독수리 시각'을 가지니, '수직 계명'과 '수평 계명'과 '지상 사명'을 순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동기 부여를 받습니다. '7대 신학 주제들'과 '5대 신비들'에 배고파 합니다. 영적 양식과 영적 에너지를 부여 받습니다. 'Ashre 복' 받는 자(마5:3-12)로 은혜 베푸심 받습니다. '반석 위에 집 짓는 지혜자'(마7:24)로 은혜 베푸심 받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추수꾼'으로 은혜 베푸심 받습니다(요14:16,26, 15:26; 행1:5,8).
이런 '지혜자'와 '추수꾼'은, 상기 '수직 계명'과 '수평 계명'과 '지상 사명'을 순서대로 하도록 이끄심 받습니다. 창조목적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입니다. 만약에 순서를 바꾸면 큰일난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목적에 위배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의 뜻과 비전과 영광을 위해 잘못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식자/위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6:1-18).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7: 26). 한편 우리가 '독수리 시각자'가 되면, 우리가 이런 '창조목적' 위반 행위를 안 하게 인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수리 시각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상기 세(3) 가지를 순서대로 하지 않음으로 해서, 창조목적에 위배하며 모래 위에 집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독수리 시각자'로 만들어 주는, 영의 양식(영적 에너지)을 매일 매일 먹어야 합니다. 이 양식이 바로 '7대 신학 주제들'과 '5대 신비들'입니다. ABA의 커리큘럼입니다. 우리가 요즈음, 이 '5대 신비들' 중 첫째 신비인 '하나님의 신비'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황 용 현 목사
http://youtube.com/post/UgkxsZ4ywTcT_VivQC6M8U2KKJJxLVPwCoAP?si=5eawhzqrL0vLBoT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