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 저는
그동안 치열하게 수행한 적이 없어서 공부에 대한 질문은 감히 못 드리고요. 가끔
생각이 드는 게 지금 내 공부는 어디쯤 왔을까, 지금
단계에서 뭘 해야 될까 하는
겁니다. 어떤
정체기 같기도 해서. 그걸
스스로 아는 자가진단법이 있는지요?
[스님] 그런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려서 정리가 돼야지. 그래야
새로운 삶이 이뤄지지. 멋진 삶이. 그 생각이
정리가 안되면 안되거든.
[대중] 제 공부가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알고 싶은데...
[스님] 무슨
공부를 어떻게 했는데요?
[대중] 집 근처
사찰에서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참선은 조금 했고요. 지금
코로나 때문에 안가다 보니까 집에서는 잘 안되고.
[스님] 생활하는
데서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잘 돼요?
[대중] 대체적으로요.
[스님] 그럼 모든
곳에서 보는 눈도 정확하게 바로 보고 바로 알아들을 수 있고?
[대중] 그런
편이에요.
[스님] 그런데
아까 조주스님
말한 건 못 알아듣던데?
[대중] 그래서
항상 저에 대한 궁금증 같은 게…
[스님] 대지혜는
일체 모든 곳에서 걸림없이 바로 보고 바로 알아차리고 바로 판단하는 것이고,
대자비심은
나보다는 상대방을 항상 배려하고 편안하게 잘 해주고 나에 대한 건 생각 안하고 모든 사람이 편할 수 있다면 내가 고통도 받아주겠다고 하는 것이
자비심이다. 그런
마음을 쓰고 있어요?
[대중] 가끔…
[스님] 가끔? 가끔만
나면 그건 곤란한데. 항상
백두산 천지의 맑은 물이 솟아나듯이,
모든 옆에 있는 사람에게 편안한 마음, 즐거운
마음을 항상 줄 때 그게 행복한 거고, 자기도
행복한 거예요.
그런 마음을 밖으로 쓰는게 잘 안되기
때문에 부딪히면 나도 마음에 부담이 가고 괴롭고,
어떤 일에 부닥치면 정확하게 바로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나와야 되는데 잘 안되면 여러 가지로 불안하고 괴롭지요. 그런 문제가 완전히 해소가 돼야지 대자비심과
대지혜를
밖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에요. 그러자면
보살님 마음에 중생의 때 묻은 의식이 벗어져야 돼요. 그러자면
화두 일념이 얼마만큼 지속이 잘 되느냐 이게 관건입니다. 화두를
해요?
[대중] 저는 수식관을
합니다. 숨
들이쉬고 내쉬는 숫자 세는 것을 합니다.
[스님] 수식관은
내 마음에 번뇌망상을
잠재우기 위해서 하는 거에요. 그것도
집중해서 계속 주시하다 보면 점점 마음의 번뇌망상이
뽑히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요. 그건
안정을 되찾는 거지 깨달음은
아니에요. 깨닫는 건
근본적인 알아차림인데, 간화선에서 부처를
물었는데 마른 똥막대기라
그랬을 때 그걸 바로 알아차린다는 겁니다.
[대중] 어떤
경계가 왔을 때, 제자리로
돌아가는 속도가 조금 빨라지는 것은 있어요.
[스님] 마음이
고요히 쉬어 지고 안정이 되면 시끄러울 때 보다는 모든 걸 접해서 판단하는 게 좀 빠르지요. 그래도
내가 뭔가를 확실히 깨달아야 모든 게 해결이 되는 거에요. 그
수식관은
계속 안 하면 괴롭고 불안하고 번뇌망상이
일어나고 그래요. 그렇지요? 그런데
한번 깨달으면 일부러 공부를 하려고 안해도 영원히 편안하고 영원한
지혜와 자비심을
쓸 수 있어요. 화두는
깨닫는 거고, 화두하고
관법하고는
달라요.
그러나, 관법은 처음에 기초를 놓는 거니까 수식관을
해서 안정이 되거든 화두를 받아서 참선을 해야 돼요. 꼭
그렇게 하세요.
(계룡산 학림사 대원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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