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상공 30초
원제 : Thirty Seconds Over Tokyo
1944년 미국영화
감독 : 머빈 르로이
원작 : 테드 W 로슨
각본 : 달톤 트럼보
출연 : 반 존슨, 로버트 워커, 로버트 미첨
필리스 댁스터, 스펜서 트레이시, 팀 머독
존 R 라일리, 존 드포, 스티븐 맥널리
알란 네이피어
아카데미 2개부문 수상(촬영, 특수효과)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습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미군 사망자만 2,500명에 달했고, 190대의 비행기가 파괴되었다고 하죠. 이로 인하여 본격적인 태평양 전쟁이 확대되었고 미국은 그로부터 131일 뒤인 1942년 4월 18일 미국 항공모함 호네트호로 운반된 B25 폭격기가 일본 본토의 심장부인 도쿄를 공습했습니다. 미국의 둘리틀 장군이 이끄는 미육군 항공대의 정예요원들이 직접 일본을 공격한 것입니다.
이 진주만 공습과 태평양 전쟁 관련한 많은 영화들이 나왔는데 오늘 소개할 '동경상공 30초'는 1944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애수'' 마음의 행로' '작은 아씨들' '쿼바디스'의 명장 머빈 르로이가 연출했고, 불과 그 도쿄공습 2년 반뒤에 등장한 영화이고 당시 아직 2차 대전이 완전히 끝나기 전의 상황이었습니다. 굉장히 빠르게 등장한 작품이지요. 더구나 영화라는 것이 한두달만에 뚜다닥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기획, 시나리오, 캐스팅, 촬영, 편집 등 후반작업, 마케팅 및 개봉관 지정 등의 절차를 거쳐서 공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옛날 영화제작기간이 요즘보다 짧았다고 해도 일본 공습 직후에 바로 기획되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이 대단하지요.
'1917' '미드웨이' '진주만' 등 그 시대가 훨씬 지나서 만든 영화들과 달리 거의 동시대에 만들어진, 당시 기준으로 매우 따끈따근한 영화 '동경상공 30초'는 어떻게 다를까요?
툴리틀 역의 스펜서 트레이시
미국에서 국민배우 급이지만 여기선
거의 특별출연이다.
테드와 아내
2차 대전중, 혹은 직후에 만들어진 60년대까지의 전쟁영화들이 대체로 선악구조와 승리의 영광에 대한 낭만주의적 경향이 있었듯이 이 영화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어떤 전쟁상황에 대한 사실주의적 기록을 기대하면 안되지요.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다분히 '드라마적'입니다. '진주만'과 마찬가지로 전투에 대한 집중도 보다는 곁다리 이야기가 훨씬 더 많으니까요.
둘리틀 중령(스펜서 트레이시)이 직접 모집하고 선발한 육군 항공대 출신 정예 인원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임무를 위해서 언제 어디로 배치되는지 조차 모른 채 선발됩니다. 단지 그들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무척 위험하다는 것만 알고. 그리고 그 선발대에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 상황은 극비에 부쳐집니다. 아내나 가족에게조차 말하면 안되는.(이 영화속 내용으로는 비밀을 누설시킨 순간 FBI가 출동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목적지조차 모른 채 고된 훈련을 받습니다. 짧은 거리의 활주로에서 선을 넘기 전에 비행기를 띄우는 훈련을 받지요. 훈련을 마친 후에나 그들은 일본 공습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전투기를 실은 항공모함 호네트호의 짧은 활주로를 활용해 바다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뜰 수 있도록 훈련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 정예부대는 둘리틀 중령을 선두로 하여 일본 도쿄 및 주요 도시에 폭탄을 투하하는 보복공격을 합니다. 공격후 바로 중국으로 가서 착륙하여 중국 군인의 도움으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고, 중국은 일본이 점령한 상태이기 때문에 상당한 위험한 작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비행기는 알아서 적당한 곳에 불시착해서 중국인들의 도움으로 살아났지만 놀랍게도 80명중 69명이나 생환할수 있었습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고 많은 인원이 무사히 돌아온 것입니다.
지금 관점으로 볼 때 다소 아쉬운 것은 이 위험한 작전에 대한 과정이 상세히 나오는 것 보다는 인간드라마로 영화가 흐르기 때문에 '역사나 군사적 관점'에서 크게 도움이 되는 영화는 아닙니다. 물론 낭만주의적 고전 할리우드 영화로서의 재미는 있습니다. 달톤 트럼보가 시나리오를 썼는데 실제 그 작전에 참전했던 테드 로슨의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그 작전에 투입되었던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테드 역의 반 존슨과 아내인 엘렌 역의 필리스 덱스터
반 존슨이 연기한 테드 로슨은 실제 도쿄공습작전의
참전병이었고, 그의 체험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다.
태평양 전쟁의 영웅다운 간지가 나는 스펜서 트레이시
임신한 아내를 두고 위험한 임무수행을 떠나는 테드
영화의 주인공은 둘리틀을 연기한 스펜서 트레이시가 아니라 테드 로슨을 연기한 반 존슨입니다. 완전한 반 존슨 관점의 스토리고 둘리틀은 거의 특별출연입니다. 반 존슨이 연기한 테드 로슨의 참전기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테드 로슨의 부대를 면회온 그의 아내 엘렌(필리스 댁스터)은 임신사실을 알리고 테드는 매우 기뻐하지만 임신한 아내를 앞두고 위험한 임무를 위해서 떠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결혼 6개월동안 함께 지낸건 며칠 정도. 하지만 오히려 테드를 안심시키는 엘렌, 테드는 아내와 작별하고 용감하게 임무를 수행하는데 1호기로 출항하는 둘리틀에 이어서 6번째 비행기를 맡습니다.
'진주만'하고 다른 점은 '진주만'에서는 영화 전체중 짧은 부분이지만 이 작전의 험난함을 압축해서 보여준데 비해서 '동경상공 30초'는 굉장히 분위기가 여유롭습니다 훈련과정을 다루는 내용에서 군인들끼리의 친근함과 낭만도 많이 보여주고 테드와 엘렌의 로맨스에 대한 비중도 매우 높고, 특히 도쿄 공습이 공개되었을때 비장한 분위기 보다는 마치 소풍가듯이 즐기는 분위기처럼 보여집니다. '진주만'에서는 무기를 줄이기 위해서 이것저럿 떼어내고 버리고 하는 것이 보여졌지만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개인 소지품을 이것저것 챙겨싣는 모습이 나오지요. 그리고 대당 5명(조종사, 항법사, 기관총사수 등)이 탄다는 상세함을 보여주었고.
도쿄 공습장면은 짧게 처리되지만 제법 그럴싸합니다. 저공비행을 하기 때문에 바다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장면이 보여지고 도시위를 비행하는 장면도 그럴듯 합니다. 모든 시점을 조종사의 시선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화면이 마치 비행기 위해서 바닥을 보는 느낌입니다. 아마 당시 극장에서 본 관객들은 꽤 아찔한 느낌이었을 겁니다.(1940년대라는 걸 감안해야죠.) 화면에서 보여진 도시가 실제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테드의 비행기가 도착했을때 벌써 공습에 불타오르는 지역이 보이는데 그건 촬영당시 오클랜드 연료오일 화재가 마침 발생하여 촬영팀이 부랴부랴 그쪽으로 가서 찍었다고 합니다.(즉 실제 화재가 나는 장면을 찍어서 공습으로 인한 연기처럼 보여주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비행기가 뜨는 장면 등에서 실제 기록필름을 넣기도 했고, 배우들이 입은 군복도 당시 전시였기 때문에 실제 군복을 입었다고 합니다. 아카데미 촬영상과 특수효과상을 받았지요.
미육군 항공대이 최정예 요원들
로버트 미첨의 앳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로버트 미첨(왼쪽)과 반 존슨
둘 다 20대 시절에 출연한 이력의 초기 작품이다.
도쿄 공습장면이 생각보다 짧은 건 아쉬움이지만(오로지 테드의 비행기에서의 모습만 보여주니까요) 테드가 공습을 끝내고 중국 해안에 불시착해서 겨우 살아나는 이후의 과정이 제법 깁니다. 실제로 그 공습에 참여한 모든 B25 폭격기가 불시착으로 파손되었고, 그럼에도 69명이 일본군이 즐비한 중국해안가에서 각자 도생으로 생존했다는 것이 놀랍지요.
영화의 후반부는 중국인들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생존해서 미국으로 귀환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테드는 심한 부상을 당하는데 그야말로 테드 로슨의 생생한 삶과 체험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된 셈입니다. 로버트 미첨 등 다른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테드를 연기한 반 존슨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완전 원톱 주인공입니다. 부상병이 되어 휠체어를 타고 앉아있는 테드에게 준장으로 진급한 둘리틀이 '자네 같은 경험많은 인재를 호락호락 내보내 줄리가 없네, 제대할 생각일랑 꿈도꾸지 말게'라고 마치 위로하듯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테드는 오래 군에 남았고, 소령까지 진급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둘리틀은 고위직까지 오르며 무려 97세까지 장수하였는데 생환자 69명중 더 오래산 사람도 1명 있다고 합니다. 테드 로슨도 다리부상을 당했지만 74세까지 살았습니다.
둘리틀을 주인공으로 한 B25 도쿄 공습작전 위주로 영화가 흘러갔으면 좀 더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테지만 테드라는 인물 중심의 낭만적인 휴먼드라마인 것이 영화적 재미는 있었어도 다소 아쉬움은 있습니다. 즉 1942년의 그 작전에 참여한 한 군인의 체험기라고 보면 됩니다. 다소 심심한 외모의 배우 반 존슨의 영화중 '내가 마지막 본 파리' '케인호의 반란'과 함께 대표작에 속하지요. 특히 이 영화는 완전한 원톱 주인공입니다.
대체 이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폭력기에서
보는 관점으로 표현한 일본 도쿄의 모습은
실제로는 어디일까?
부상병이 된 테드
미국 국민배우 스펜서 트레이시가 강직한 둘리틀을 연기하며,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잘 어울렸고, 졸린듯한 표정이 특징인 로버트 미첨은 그다지 존재감없이 등장합니다. 오히려 테드의 아내 엘렌역의 필리스 댁스터의 비중이 큰데 무대배우였고, 이 영화가 데뷔작입니다. 이후에도 꾸준히 영화출연은 했지만 그리 인기있는 배우로 성장하진 못했습니다. 낭만과 로맨스, 우정, 그리고 용맹스런 공습수행, 필사의 생존, 감격적인 귀환까지를 다룬 낭만적 전쟁영화인데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격려가 될만한 응원영화로 만든 느낌입니다.
ps1 : 중국 소년들이 부상당한 미군들을 위해서 미국국가를 합창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중국인들을 매우 호의적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침략자인 일본국을 공격해준 것에 매우 감사해하는 모습이 보여지고. 역사는 진짜 알 수 없습니다. 2차대전에 연합군의 편이었던 중국이 지금 자본주의 미국과 달리 공산주의로 갈라져서 냉전시대에 미국과 적대적이었고, 이 영화 발표후 불과 몇년뒤에 벌어진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싸우게 되었으니. 그 한국전쟁에서 일본은 미국의 병참기지로 톡톡히 역할을 하고. 정말 아이러니한 역사네요. 어제의 적은 동지가 되고,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되니.
ps2 : 반 존슨이 불시착 이후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은 모습으로 나오는데 그 상처는 실제 상처라고 합니다. 1년전에 출연한 다른 영화에서 생긴 상처인데 일부러 감추지 않고 불시착에서 생긴 상처처럼 드러내고 나온 것입니다. 초중반부는 분장으로 가렸지만.
ps3 : 영화속에서 공습을 위해서 일본에 진입했는데 일본 항공기가 그걸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게 실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합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공습에 대비해서 훈련중이었고, 그래서 그게 실제 미 폭격기라 생각못하고 혼동을 일으켰다고 하네요. 결과적으로 성공한 공습이었지만 얼마나 위험하고 실패확률도 높았는지 알 수 있지요. 아무튼 그 공습작전의 성공으로 중령이던 둘리틀은 단숨에 준장까지 고속진급을 했습니다.
ps4 : 이 영화가 태평양 전쟁을 소재로 한 가장 빠른 영화는 아닙니다. 1943년에 캐리 그랜트 주연의 '데스티네이션 도쿄'라는 영화가 있었으니.
ps5 : 우리나라에 개봉되지는 않았고 1982년 공중파 TV에서 방영만 했습니다. 40-60년대에 우리나라 개봉되는 많은 외국영화들이 주로 일본에서 히트하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일본 공습이 소재인 영화가 쉽게 개봉될리가 없었겠죠. '데스티네이션 도쿄'도 개봉이 안되었지요.
ps6 : 엄청난 장신배우 두 명이 출연하는데 쇼티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존 R 라일리 라는 배우가 196cm 로 프로필상 나와있는데 비교적 큰 키의 로버트 미첨을 작은 키로 만들어 버립니다. 영화속 대사로 그가 중국에 상륙했을때 이렇게 큰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중국인들이 매우 놀랐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정작 테드가 그 이야기를 듣게 된 장소에 더 큰 키의 서양선교사가 있었습니다. 파커 라는 이름의 선교사로 등장한 알란 네이피어 라는 배우는 프로필상 198cm 입니다. '유령의 집'이란 영화에서 꽤 키가 큰 배우인 레이 밀런드를 평범한 키로 만들어 버렸지요. 이 두 장신배우는 그리 유명한 인물들은 아닌데 알란 네이피어는 여러 영화에 비중이 좀 떨어지는 조연, 단역으로 많이 등장합니다. 비중이 작아도 워낙 장신이라 늘 눈에 띄었지요.
[출처] 동경상공 30초(Thirty Seconds Over Tokyo, 44년) 둘리틀 도쿄 공습작전 소재|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