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응시하는 세 가지 방법
최동문 ▷ gave666@hanmail.net 1967경주출생. 1996년 <현대시> 등단. 시집 <즐거운 거지>, <아름다운 사람>.
조용한 상처 / 문숙
모가지가 뭉텅 잘려나간 적송이
몸을 비틀며 높게 자라고 있다
저런 아픔을 어찌 속으로만 삼킬 수 있었나
통증이 올 때마다 혼자 몸을 비틀며
상처도 햇빛도 발라보고
제 진액을 짜 덧발라도 보았겠지
눈물도 멀리서 보면 반짝임이듯
밤이면 빛으로 울고 있는 별들과 함께
속울음을 우느라 껍질이 터져 있다
깊은 울음을 만져보는 손길 위로
새떼가 지나가고 빗방울이 지기 시작한다
적송이 치받고 있는 저 허공도
새들의 무수한 날개짓에 살이 찢겨
피를 비로 내린다
보이지 않고 소리 없는 것들이라고
어찌 울음이 없겠나
허공이 흘리는 피를 다만 비로 읽어낼 뿐
* <시작> 2008년 봄호 / 문숙 : 2000년 <자유문학> 등단.
적송을 시인이라 본다. 시인은 어차피 수직 상승, 그러니까 가장 위에 있는 ‘어떤 것’을 추구하는 존재다. 그러나 시인이 한 개인이고 보면 위의 시에서 중심 소재가 되는 적송처럼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적송이 잘린 모가지를 가지고 섰다. 몸은 온전하지 않다. 천성으로 생겨난 <비틀>린 모습이다. 오욕칠정이 아니라 해도 이미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그 상처를 상처로만 버려두지 않는 것이 적송의 속성이다. 피 흘리는 적송은 상처를 치유하는 여러 가지 요법으로 자신의 상승하려는 성질을 견인한다. 이것이 시인의 마음이기도 하며 적송의 상처 대처법이기도 하다. 모든 보이지 않고 소리 없는 것들에 대한 시인의 애정은 <피>를 <비>로 읽어낸다. 순환하는 자연법칙이 상처 치유의 핵심이다.
나팔꽃 / 박윤일
꽃이 웃는 걸 보았다 하셨습니까
당신이 살고 있는 옥탑방
몰려드는 더위에 방문을 열면
아랫동네 오순도순 부러운 불빛들이 켜지고
뙤약볕에 지친 연보라꽃 화분
시든 줄기에 몸을 기대고 있는
당신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지요
꽃인 듯 사람인 듯 뒤척이는 그림자
저문 하늘이 지워버리고
한 짐 짊어진 당신 무게에 무수한 별들까지
꽃은 부러지지 않았지요
목젖까지 벌어져 웃는 걸 보았다 하신 그 날
나도 이 지경이 되어 당신 몰래 기대어 보았지요
당신이 울지 않는 이유,
이 지상 꼭대기에서 홀로 견뎌온 비밀
나의 무게 위에 축축하게 젖은 당신 무게까지
가느다란 꽃대는 쓰러지지 않았지요
* <현대시> 2008년 4월호 / 박윤일 : 2004년 <시작> 등단
시는 ‘사물에 관한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특히 생명이 있는 사물은 그 유한성 때문에 항상 고통스러운 현재를 살아가야하는 숙명을 안는다. 나팔꽃도 예외는 아니다. 짐을 짊어지고 하늘 아래 사는 <꽃은 부러지지 않>는다. 중력이 주는 그 무게조차도 의연하게 받아낸다. 사람이 꽃이고 꽃이 사람이라면 사람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 살고 꽃은 꽃의 의미를 위해 산다. 모두가 살아가는 생명이다.
사람은 울지 않기 위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꽃은 축축한 무게를 견디기 위해 산다. 특히 나팔꽃은 그 이름이 주는 상징처럼 새벽을 깨우는 초병의 역할을 하며 사람을 신 새벽에 반긴다. 꽃이 부러지지 않듯 그 꽃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쓰러지지 않는다.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미학적 메시지다.
나자렛 / 이동호
심한 우울증을 앓던 친구가 수면제 오십 알을
한꺼번에 입속에 털어 넣었다
회사 화장실 변기통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한참동안 울었다
내 손에서 자꾸 알약들이 떨어졌다
여전히 변함없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개 내민 해를 바라보며
나는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햇살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꿈속까지 축 늘어진 친구를 구급차가 서둘러 싣고 갔다
구급차는 잠든 도시를 질주했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에도
이 도시는 깨어날 줄 몰랐다
집집마다 수면제 같은 머리들이 박혀 있었다
친구는 사흘 후에야 깊은 잠 속에서 되돌아 나왔다
나는 그를 베드로처럼 맞이했다
그가 휑한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양쪽 눈 속 두 개의 까만 못자국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 <시와 사상> 2008년 봄호 / 이동호 : 200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우리 주위에 사는 인연을 우리는 끊을 수 없이 맺고 있다. 특히 도시 속을 횡단하는 거대한 누 떼처럼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는다. 이 시는 목적지를 버린 한 친구에 대한 생존기 속에서 찾아낸 도시 성자에 관한 시다. 그 이유는 불분명하나 친구는 분명 불행한 삶을 죽음과 바꾸고자 수면제를 오십 알이나 먹었을 것이다.
우리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영혼의 탈각을 강요하는 현실과 만난다. 도시는 매정하며 음험하며 괴수의 탈을 쓰고 적으로 다가온다. 시인은 친구의 자살미수에서 그 두 눈을 바라보는데 그 속에는 <까만 못자국>이 있다. 고통을 고통으로 직시하는 시선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
(두레문학 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