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어깨에 힘을 빼고 새우깡 한 봉지
정익진 ▷ 1997년 시와사상 등단. 시집: 구멍의 크기(천년의 시작)
새우의 맛 / 이근화
머리도 꼬리도 다 같이 벗겨지며
새우는 어렵게 완성된다
분홍새우지만 보리새우였고
새우는 얼룩말 같고
스프링 같다
여기저기 튀는 것을 먹고 싶지는 않다
빈 깡통을 뻥 차고
골목길을 재빨리 빠져나오고 싶지만
어려운 식사 자리에서는
불편한 전화 통화를 할 때에는
새우의 맛을 떠올리는 것이 좋다
명절이고
생일이고
기념일이어서
새우를 까고
하루종일 손가락 냄새를 맡는다
새우와의 이별은 가능한 것인가
다 같은 새우의 맛은 아닌데
다 같이 냄새도 피울 수가 없는데
새우는 조용히 죽었다
기쁜 입술처럼 휘었지만
그건 몹시 난해한 곡선이다
<현대시학, 2008년 4월호>
자, 일요일이예요, 오후죠. TV를 켭니다. 이번엔 소파에 놓인 쿠션을 집어들어요. 어제 당신의 아내과 함께 마트에 가서 당신이 고른 빨간 털실이 보풀보풀한 그 쿠션이죠. 물론 당신 아내는 그 쿠션이 마음에 들리 없지만 당신은 싸워 이겼지요. 자 이제... 아, 새우깡이 빠졌군요. 김치 냉장고 위에 놓아둔, 새우깡 한 봉지 가지러 가야죠. 다시 일어나기가 좀 귀찮죠. TV에는 야구경기가 한창이네요. 자 이제, 새우깡 봉지를 뜯어요. 그런데 새우깡이 새우처럼 생기지 않았죠. 단지 새우냄새 비슷한 냄새가 날뿐이죠. 손가락으로 적당한 개수를 헤아려 집어들고 입으로 가져가세요. 바삭바삭! 그리고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세한 새우깡 파편이 묻은 당신의 손가락을 방정맞게 부벼대는 것이죠. 만약에 손가락에 끈적함을 느끼신다면, 혹은 그 끈적함을 견딜 수 없다면 할 수 없죠. 소파에서 일어나 손 씻으러 가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요. 손가락을 빨아먹어도 상관은 없겠지요.
이와 같이 최근 발표된 이근화의 시들은 두텁지 않다. 섣불리 깊이가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얄팍하다고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 같고, 하지만 색다른 맛이 느껴지는 것은 틀림없다. 그것이 새우의 맛이든, 삼겹살의 맛이든 간에. 그러니까 삶에 대한 육중한 무게와 깊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요일 오후 소파 위에 버젓이 누워 늘어져있는 있는 애완견처럼 권태롭고 나른하다. 우리는 그것은 나른함의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2008 상반기호 두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