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1박2일 안보 견학
►견학일자 :
2026. 09. 28~29. (월.화)
►출발 일시 장소 :
2026. 9. 28. (월) 09:00
(5호선)개화산역 1번출구앞
►숙소 :
강화수련원 (1박)
►견학코스
◌9월28일 (월)
▻개화산역→강화대교→
강화 6.25참전용사기념공원→
연미정→고려천도공원→
강화제적봉 평화전망대→
(점심 식사후)조양방직→
용흥궁→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대명항(포구)→강화수련원
◌9월29일 (화)
▻수련원 퇴실→광성보→
김포평화누리길→
김포최고집(점심식사)→
개화산역 (해산)
►날씨 :
전형적인 맑은 가을 날씨
(낮 최고기온 25도)
►참가자 : 警友 5부부
이희복님 부부
이상일님 부부
나문균님 부부
장상기님 부부
최폴리 부부 등 10명
▷차량 봉사
장상기님. 최폴리 2대
►참가비
부부당 8만원
►스케치
한달 前 강화도 1박 2일
안보견학 추진 및 스케줄
확정하고 공지했습니다
이날 09:00
개화산역에 모인 5부부 10명..
언제나 그렇듯 한분 한분...
바라만 봐도 정말루 멋지고
좋은 사람들이다~~
승용차 2대에 나눠타고 달리는
한강변 가을은 천고마비 계절
이라 했던가???
높고 높은 파란. 하늘 확 트인
조망. 눈이 시릴만큼 청명하다~~
차 안에는 까르르르~~ 깔깔.....
멋진 사람들 입에서 쉼 없이
터져 나오는 잼난 얘기들~~~
오랜 세월
함께 여행하면서 한방에서
지지고 볶고 함께 숙식하면서
여행 한 탓에 속 마음까지
다 알고 있는 우리들~~~
우리가 남이가????
하모 하모 그라지.....
달리는 차 안이 마냥 즐겁다~~~
커피 향 그윽하고...
맛난 먹거리 풍부하고 이동카페
분위기가 언제나 처럼 직인다~~
예정된 스케줄대로 안보 현장
견학하고 모두의 의견을 모아
만족한 식사. 대명항에서 떠온
횟거리 안주 삼아 밤새 껏
하하호호~~~~
더 이상 뭘 바라리오~~~~
두 다리에 힘 있을 때 까지
좋은 사람들과 열심히 함께
트레킹 하고 여행하면서
깊은 情 나누는 기쁨과 즐거움
행복한 시간... 人生 후반전
사는 맛을 느끼게 하고
삶의 질 향상에 절대적이다~~~
생각합니다~~~
10명 모두 大 만족한
강화도 1박2일 안보 견학~~
내 나라가 튼튼하고 굳건해야
우리들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고 봅니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내 나라 나의 조국
강건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다~~
대명제(大命題)를 가슴에 새긴
안보 견학이였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마음 함께하여
감사합니다~~~
►다음 스케줄은
2026. 10. 29. 06:00
화곡역 3번출구에서 출발하는
소요산 단풍 트레킹 입니다~~~
(추후 공지 예정)
2026. 09. 29. (화) 저녁
최폴리.....
●강화 6.25참전용사기념공원
6·25전쟁에 참전하여
조국과 민족 및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친
참전유공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이를 후세대에 귀감으로
삼고자 강화도 출신
참전 전우들의 뜻을 모아
6·25참전유공자회 강화군
지회에서 2004년 3월 2일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 연미정
▻1244년 고려 고종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510년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하며,
현재도 연미정과 주변땅이
후손인 창원황씨문중의 소유로
되어있다. 후손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인조가 청나라와 굴욕적인
형제관계의 강화조약을 맺었던
곳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대부분 파손된 것을 1744년
유수(留守) 김시혁이 중건하였고,
1891년 조동면이 중수하였으며,
1931년 유군성의 특지로 보수
하는 등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6.25전쟁 때도 파손되어
전후에 중수하였고,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서남쪽 모서리의 기둥은
6.25전쟁 때 포탄에 맞아
세 동강 난 것을 붙여 다시
세운 것이다.
이 정자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연미정 앞에
배가 머물던 곳 이였고,
성곽과 성문을 복원한 것으로
보아 앞쪽으로 나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강화로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
이였음을 짐작케 하는 곳이다.
이곳은 과거에 민간인통제구역
이어서 일반인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 2008년 민간인통제
구역에서 해제되어 현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 강화고려천도공원
강화군 송해면 1만 2천㎡에
민통선 안보 관광코스 조성사업의
하나로 2019년에 개장한 역사
테마공원입니다.
강화천도는 고려-몽골 전쟁 때
항전하기 위해 고려 고종이
1232년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다
이후 38년간 고려의 임시수도였던
강화도의 역사를 천도문을
시작으로 고종사적비까지 강화
해안가를 따라 돌아볼 수 있다.
천도문을 지나 천도문 광장에
들어서면, 고려 시대 대몽
항쟁을 위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외 팔만대장경과 상정고금예문
등에 대한 자료와 강화도에
흩어져 있는 역사문화 유적지들을
소개하고 있다.
정자 및 전통연못, 폭포 등이 있어
여유롭게 산책과 휴식하기에도
좋다.
●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
강화 평화 전망대는 해병대
검문소를 통과 민통선 안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북녘땅이 가장 가까운
거리(2km)에 있는 전망대로서
다른지역 전망대와 달리 날씨
좋을때는 북한주민들이 농시짓는
모습 주택. 학교. 마을회관 및
선전용 위장마을 등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강 건너 바로 앞 드넓은 북녘
땅은 북한에서 생산하는 쌀
30% 이상을 수확하는 곡창지대
연백평야가 펼쳐져 있다
● 강화 조양방직
조양방직은 1937년 홍재용,
홍재묵 형제가 설립한 방직공장
이다. 설립 당시 125,000원
(현시가 60억 원 내외)의
자본금으로 시작하였으며
700여 평의 2층 건물과
50여대의 직조기를 갖추고
인견과 마직물 염색을 주로
하였다. 그러나 설립 이후
착공에 이르기 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공장 가동 후 1년여가 되는
1939년에 큰 화재가 나서
소실되고 피해액은 40만원
(200억 원 내외)에 달했다고
한다.
설립 초기 사장은 형인 홍재묵이
맡고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동생
홍재용이 부사장을 맡아 운영
하였다. 하지만 1942년 미쓰비시
산업에서 일하던 이세현에게
공장을 매각하였으며, 이세현은
아들 이현일과 함께 조양방직을
운영하다가 한국 전쟁을 거쳐
1958년에 폐업한다.
이후 방치되다시피 하다가
2013년 문화방송 주말 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촬영지로 사용
되면서 널리 알려졌고,
2010년대 중반부터 미술관 카페가
들어서게 된다. 지금은 많은
인파가 찾아온다.
● 용흥궁
별명 '강화도령'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훗날 철종이 될
이원범은 전계대원군 이광의
3남으로 1831년(순조 31년)
한성부 경행방(慶幸坊)
향교동(鄕校洞)에서 태어나
한동안 그곳에서 자랐다.
이원범은 어린 시절에는
그의 형들과 함께 조선 왕실의
몇 안 되는 남자 왕족으로
그럭저럭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이후 아버지가 10살 때
사망한 것 말고는
큰 어려움 없이 지냈지만,
14살 때인 1844년(헌종 10년)에
민진용(閔晉鏞)이 큰형 이명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가
발각되면서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이명은 사형당하고 이원범은
연좌제로 작은형 이욱과 같이
교동도로 유배갔으며, 얼마 못가
강화도로 옮겨졌다.
그렇게 형과 함께 19살이
될 때까지 5년간 농사를 짓고
나무를 베던 원범에게는
일약 인생 역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1849년(헌종 15년) 헌종이
후사없이 2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급사했다.
당시 영조의 후손으로서
정통성을 가진 왕족은 이광의
아들들 밖에 없었다.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순원왕후 김씨는 이광의 아들인
이원범을 다음 국왕으로
지명했다.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한
행렬이 왔을 때, 이원범은
자신의 할아버지나 큰형이
역모에 몰려 죽은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신을 잡으러 왔다고 착각하고
산 속으로 도망쳐버렸다.
같이 도망갔던 이원범의 형
이욱은 그 과정에서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이후
영의정 정원용의 설득과
주민들의 협조로 결국
가마에 올라 궁으로 가서
임금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리고 철종이 왕이 된 뒤
강화도에 있던 그의 집은
왕의 잠저로서
'용이 흥하게 되었다' 하여
'용흥궁'이라는 이름으로
격상되었다.
철종이 즉위한 뒤 원래
초가집이었던 용흥궁을
강화유수가 큰 기와집을 지어
확장했다. 1903년(광무 7년)
이복 형 영평군 이경응의
양자이자 누동궁의 종손
청안군 이재순이 중건했다.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받았다.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1981년 7월 15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1월 4일
사적으로 번경되었다.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코프(Corfe, C. J.)에 의하여
1900년(광무 4)에 건립되었다.
대한성공회의 역사는
1889년 코프가 초대 한국 주교로
영국에서 서품을 받음으로써
시작되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한 사람의 신자도
없었고, 한국인에게 처음 세례를
베푼 것은 주교 축성이 있은 지
7년 뒤인 1896년 6월 13일
강화에서였다.
대한성공회에서는
이러한 인연으로 강화에 제일 먼저
성당을 건립한 것인데,
대한성공회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게 되었고,
현존하는 한옥 교회건물로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서유럽의 바실리카(Basilica)양식과
동양의 불교사찰양식을
과감하게 조합시켜 건립하였다.
교회의 내부공간은
바실리카양식을 따랐고,
외관 및 외부공간은 불교사찰의
형태를 따랐다. 목재는 압록강에서
운반하여 사용하였으며,
경복궁 공사에 참여했던
대궐 목수가 건축을 맡았다.
경사지의 대지를 축성하여
입구 계단, 외삼문ㆍ내삼문ㆍ
성당ㆍ사제관을 동남향 종축으로
배치한 외부공간의 구성이
불교사찰의 구릉지가람(丘陵地伽藍)과
비슷하며, 성당 앞마당에는
큰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외삼문 솟을대문은 팔작지붕으로
담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동쪽 칸에는 초대 사제(司祭)의
묘비가 서 있다. 내삼문은
평대문에 역시 팔작지붕이고,
서쪽 칸은 종각으로 쓰이고 있으며,
성당은 정면 4칸, 측면 10칸의
바실리카식 평면구성이다.
성당 내외부에는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건축이면서도
교회기능에 충실한 내부공간을
연출함으로써, 초기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 의지가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성당건물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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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2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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