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힘’을 다시 새기며
홍석주
•회복된 정체성
최근 역사왜곡 드라마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320억을 투자해 제작한 조선구마사는 역사왜곡이라는 오점을 남기며 퇴출되었다. 출연배우, 작가의 사과와 광고, 협찬, 촬영협찬 지자체도 자진 취소가 이어졌고, 해당 방송사는 방송권 구매 계약 해지 등 사과하고 방송을 폐지했다. 청와대 청원, 방송통신심위위원회 민원,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비판과 댓글 등 방송 중지 청원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주도한 20~30대 밀레니엄 세대와 디지털 세대인 MZ세대들은 “연출상의 실수를 넘어 중국의 역사왜곡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에 악용될 요소를 찾아 행동에 나섰고”(스카이데일리 ), 나아가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입법과 규제 사항도 요구했다. 공분한 국민들도 이틀 만에 20만 명 이상이 의사를 표출하며 우리 문화정체성을 회복시켰다. 높아진 역사인식과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젊은 세대들이 제대로 교육 받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럴 능력과 소양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동생의 귀띔에 공감하며 미래의 희망에 안도했다. 자본의 풍요 속에서 성장한 미래를 이끌 세대들이 상업자본의 위력 앞에서 훼손되는 정신의 가치를 건져 올린 것이니 더 의미가 깊다.
등장인물들은 우리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매우 존경받는 실존인물들이며, 이들이 살던 시대 배경은 불과 600여 년 전의 역사다.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은 아시아권 1위에 올라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기록 자료가 풍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여기에 조선왕조실록도 포함되어 있다. 기획 초기 단계부터 역사적 고증이 동반되어야 하는 교훈뿐 아니라, 팩션 사극이라 해도, 우리 역사와 문화를 소홀히 여기는 의식과 자세는 반성해야 한다. 역사는 과거에서 오늘을 비추고 내일을 대비하는 실존 자료이며, 문화정체성이 묻어있는 정신자산이다.
•상업자본속 문화
더욱이 미디어의 파급력이 큰 만큼 거대 자본과 마주한 ‘문화의 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무력에 저항한 ‘말’과 ‘글’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이 고사는 “기원전 7세기경 아시리아 설화”에서 유래되어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다. 우리에겐 근현대 시기 글로 저항한 시인, 묵객들이 있었다. 일제의 강제 침탈과 민족말살에 저항했고, 산업화시대 군부정권의 부조리를 문으로써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켰다. 조상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정신’이며, 이 힘은 오천년 동안 유전자처럼 생성되어 온 문화정체성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기 위해 가장 먼저 왜곡하고 파괴시킨 것은 역사와 문화다. 말과 글, 창씨개명 등을 강제하여 침략전쟁에 동원시키기 위해 우리의 정신과 존재감을 지웠다. 중국의 역사왜곡도 지속되고 있다. 공산권 붕괴 이후 중화민족주의를 지향하며 2002년부터 5년 동안 진행한 동북공정프로젝트는 우리 고대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고, 고구려, 부여, 발해, 고조선 등의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 고대 역사의 흔적 지우기를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백두산, 조선족 등 우리 역사 등과 맞물려 있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불거진 한복, 김치, 갓 등 우리 전통문화까지 중국 것으로 왜곡하며 우리 문화를 침범하고 있다.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시장은 매우 크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중국 투자 뉴스가 빈번하다. 지난해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경제적 종속관계임을 재확인하면서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이 미미했음을 인지했다. 역사적 억압에 묻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타문화 우월주의 등이 소리 없이 스민 것이다. 현재 거대 상업자본과 맞닥뜨린 우리 문화가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문화가 기간산업이 된 21세기 문화콘텐츠는 국가 경쟁력을 창출하는 자산이다. 백범 김구는 “오직 한가지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임을 간곡하게 당부하지 않았던가. 1990년 이래 신한류시대를 열며 우리 문화콘텐츠는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등을 수상했으며,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세계음원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예술성을 인정받으며 세계인들이 공감하고 즐기는 문화로 전파되어 우리의 문화가치를 높이고 있다. 기술발전과 더불어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이 성장하면서 유투브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세계인들은 실시간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며 교류한다.
•문화의 힘
문화적 우위를 점하는 시장에서 콘텐츠는 매우 중요한 상품이다. 사람들은 질 좋은 콘텐츠를 찾을 것이고, 대중에게 공감을 얻었을 때 생명력이 있을 것이다. 우리 문화 속에 내재된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글과 그림, 고전과 인물, 사료, 유적지 등등 윤동주의 일생과 시가 영화와 뮤지컬로 탄생했듯이, 평창동계올림픽에 등장한 고구려 벽화 인면조가 시각화되었듯이, 단원의 그림 속 나비가 소품이 되고, 겸재의 진경산수화가 품은 우리 풍경과 정서를 연출할 수 있다.
1980년 발굴을 시작한 춘천 중도 선사유적지 발굴과 복원 요청이 지속되고 있다. 신석기 유물과 청동기와 철기시대 집단취락지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방호시설 환호와 100여 기가 넘는 고인돌 등 세계최대 규모라고 한다. 레고랜드에 이어 차이나타운 건설 등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개발에 우리 고대사를 밝힐 유적지가 상업자본 앞에서 축소, 사장될 위기에 놓였다. 자본을 우선시하며 문화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문화의식 부재가 낳은 현주소다. 이를 철회하는 청원에 63만여 명이 동의하고 있다. 일본 사가현 요시노가리 선사유적지는 발굴과 보존 끝에 복원하여, 세계인이 찾는 관광자원이 되었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며, 자국의 문화정체성까지 높여 자긍심이 높다고 한다. 정작 우리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역사를 귀히 여기지 않고, 이 소프트파워를 놓치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문화의 가치를 찾기 위해 철학적 성찰과 반성적 사고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한다. 그래야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