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하다가 여기 왔나, 뭘 하던 중이었지?
뭘 하려고 했지?
길을 잃고 엉뚱한 곳을 한 참 헤매면서도 자신이 그러고 있음을 잊기도 한다.
대화 상대가 화제를 벗어나 한 참 골목을 헤매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내가 무슨 얘기를 하던 중이었지요?”
라고 물어주면 다행, 그러지도 않고 내내 이 골목 저 골목 끌고 다니며 헤맨다면?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 말을 끊거나 일어서는 비례를 하거나,
아니면 그가 처음 가던 큰 길을 우연히 다시 찾아내기를 빌 수 밖에.
노인증상, 나아가 치매와 별반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은 기실 Stupid 폰이다.
이런 상황이 내 자신의 생활에 종일 벌어지고 있다.
대화 상대는 그 빌어먹을 유튜브, 온라인 뉴스, 소셜 미디어(카카오톡 같은).
처음 가던 큰 길로 목적지에 닿는 대로 얼른 일 보고 제 발로 돌아서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유튜브 동영상은 그런 나를 영영 붙잡아 둘 심산인지
다음 동영상, 또 다음 동영상… Never ending story.
창조적인 시간이 내 인생에 얼마나 있었을까 만은 요즈음의 내 생활은 참 고칠 것 투성이다.
한가해진 나이에 더불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상대? 암만!
터치만 하면,
“최고급 핸드백 10% 할인(온라인 쇼핑 몰)”,
“형수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웹툰)”,
“검색퀴즈 풀고 포인트 받자(보험사)”,
……
등으로 이어지니 예상 100세 인생 수명 덤을 대부분 이 약아빠진 상대에게 갖다 바친다.
개인신상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으면 가입조차 되지 않는 각종 온라인 서비스.
개인이 "갑"이 되는 유일한 길은 가입하지 않는 것뿐이다.
가입하는 순간 온갖 시답잖은 서비스 이용을 권유 당하기 시작한다.
이용 안 하면 되지…?
이용 안 하겠다는 의사표시(터치 또는 클릭) 한 번에 5초 잡고…
하루 몇 번 의사표시 권유 당하시나….?
남은 아까운 인생,
가려먹고, 참아가며 열심히 걷고, 비싼 헬쓰로 애써 몇 년 늘려 놓은 수명.
저런 서비스에 갖다 바친 시간을 뺀 실효수명은 단축, 단축에 또 단축!
실효수명이라?
그런 말이 있기나 하나?
나이에서 수면, 식사 등등의 시간을 제하고 남은 한 평생 시간을
뭐라 하는지 모르겠으나 스마트폰에 갖다바치는 시간은
수면 시간 다음으로 길 것 같다.
정작가와 함께 내가 챙기고 있는 이수회의 매월 참석자는 평균 15명 내외.
전임 회장께서 개설한 이수회 단체 카톡방에 올라있는 인원은 39명.
내 전화 연락처에 오른 우리 상대동기들은 51명.
이수회 카톡방 인원과 내 전화 연락처 인원을 조합하면 60명.
내 연락처 기준으로도 이수회 카톡방 수효는 11명이 모자란다.
카톡방에 초대된 적이 없거나, 초대 받고도 수락·입장한 적이 없거나, 나갔거나…
김홍재 동기가 고덕동 일자산(일자로 뻗고 완만하여 걷기가 좋단다)과 인근의 멍멍이 보신탕집을
10월 이수회 코스로 추천, 안내를 하시겠단다.
작년 말에 한성환사장으로부터 같은 코스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
일본으로 어제 국제전화를 걸었다.
- 이수회 카톡방에 초대해 줄까?
= 일본통신사 전화로도 되나?
- 해 보지 뭐?
= 되면 초대해 줘.
정작가께서는 그런 사정을 이미 알고 계시는지
이수회와 산악회 모임을 재래식 통신사SMS(단문 메시지)로만 통지 하신다.
또 우리 카페하고.
카톡은 본인이 일부러 하지 않으시는 듯.
그렇게 벌어들인 시간을 선용해서 엊그제는 내게 시 한 편 보냈다, SMS로.
분당에서 왕십리까지 이동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퇴고 삼매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왕십리 역.
이만한 서재도 흔치 않을 듯 합니다.
(사진은 이 글을 위해 내가 고른 것이다.)
< 이니스프리 / 서울 버전
>
앞산 자락이 단풍에 물들어가면
나 떠나가리라. 남쪽 바다로.
작은 섬에 욋가지 엮어
진흙 바른 오두막을 짓고.
아홉이랑 콩밭에 꿀벌 통 하나.
윙윙 대는 섬 속에서.
맛보리라. 나의 작은 평안을.
희부연 아침 안개,
귀뚜라미 우는 헛간으로
반짝이는 별들이 쏟아지고
보라색 환한 바다는
물새 소리 가득한 해변으로 달려 오리라.
나 떠나가리라. 남쪽 바다로.
도시의 번쩍임이 낮설어질 때
회색 포도 위가 쓸쓸해질 때면
언제나 들려오네. 밤이나 낮이나
마음 깊숙이 철썩이는 그 파도소리.
나의 감상 평:
“이니스프리라는 제목단어와 아홉이랑을 다른 말로 바꾸어 보시지요. 좋은 시가 될 것 같네요.”
(정작가께서 원 시의 운율과 스탠자는 의식하지 않고 썼겠지만, 소리 내어 읽어보면 더 좋다.
가을이 지나가면 나도 남쪽으로 가고 싶어질 텐데 시를 쓰느라 뻥을 친 게 아니라면
남쪽 바다로 가자고 정작가에게 시비를 걸어 봐? 에어비앤비 셋집을 두어 달 얻어 보자고…)
정작가처럼 카톡 등에 시간 빼앗기지 않고 백세인생을 실효 150세로 늘리시려는 분들을
이수회 카톡방에 초대하면 폐가 되겠지...?
온라인 서비스, 그 중에서도 스마트폰 서비스는 참 편리하다.
깊은 산골 산사 해우소에서 큰 일 보면서도 이용할 수 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노년에게는 기특한 상대이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를 해칠 때도 많다.
백가쟁명이 아니라, 두 세개로 패거리를 통일해 나뉘어 남의 생각을 비난하거나 나무라고,
자기 생각이나 공감하는 바는 잠시도 묵혀두지 못하고,
덜렁 올려버리거나 전달해 버리고는,
남더러,
- 그걸 읽어…, 말어…?
- 댓글을 달고 맞장구를 쳐, 말아?
- 빤히 잘 아는 친구들끼리 반박, 서먹해질 수 없으니, 조용히 보기만 해?
하는 고민에 빠뜨린다.
아~, 머리 아픈 소시얼 미디어.
이수회 카톡방에 누구를 더 초대할까,
하고 어제 데이터를 정리하다가,
내 초대가 누가 되지 않을지,
단톡방 참가자 누구나 자기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데…,
하고 망설이다가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 아침 일단 한성환 동기는 초대해 놓고.
저의 게시물에 넌덜머리를 내시는 동기들께서도 계실테고…
유튜브 끊고, 카톡 끊고, 조용하게 정작가처럼 내면에 충실해 봐?
내게도 그럴 내면이 있던가…, 없다고 해서 시작도 못혀?
이수회장 임기가 언제까지인가?
끊는 것은 그날이 올 때까지 일단 보류!
– 사족 –
우리 66상대 카페는 2002년 정월 개설이래
금년 16년째를 맞는 회원수 73명에 달하는 아주 성공적인, 자랑스러운 카페이다.
신진철 회장의 공이 절대적이다.
우리 동기들 인생의 시간을 축 내겠다고 덤비는 그악스러운 소셜미디어와는 차원이 다른
일종의 Passive 고품격 카페이다.
카톡에는 발길도 않으시는 훌륭한 여러 동기들(김낙호작가, 정작가, 김웅한, 이광현…김용년회장님…)께서도 카페에는 충실하시다.
내가 올린 글 중에 남에게 보이고 싶은 것은
남의 개인 카톡에 링크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동기 교육과 한 친구가 그렇다.
내 게시글(“음악코너”와 “읽을 거리” 게시판은 비회원도 볼 수 있다)의
조회수가 우리 카페 회원수를 훨씬 넘어가는 때는
그 좋은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들 덕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대부분 여성?
이 글을 내가 우리 이수회 카톡방에 링크하는 이유는 글 쓴 동기 때문이다.
이수회 카톡방에 초대를 더 하기 위한 사전 작업.
내 수명 중 이 글 쓰느라 아침 9시부터 바친 무려 4시간도 있고...
- 끝 -
첫댓글 행복한 (?)고민! 기기 다룸이 서툰 사람보다 몇 배는 더 행복한지 아슈.
남쪽바다를 동경하는 것은 나랑 같네, 이 번 연휴에 완도 소안도 노화도 보길도 한바퀴 돌고 올려구.
섬에 셋집 얻을량이면 나도 낑가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