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설의 내용
12연기는 연기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중생의 괴로운 현실상現實相인 모든 고뇌를 떠나기 위해 그 발생과 소멸을 추구하여 12단계를 거쳐 그 결론을 얻은 것으로 무명無明에서 노사老死까지이다.
불교에서는 제법의 실상(諸法의 實相:모든 것의 참다운 모습)에 대한 알음을 지혜(智慧, Prajn-a-. 般若)라고 부른다. 특히 존재의 법칙성(三法印, 因果의 도리, 相依相關性等)에 대한 깨달음을 ‘명(明, vidya)’이라는 말로 부른다.
이 명과 반대되는 개념을 ‘무명(無明, avidya-)’이라고 부르는데, 무명이 사람에게 있게 되면 이것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게 되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게 되고, 식을 연하여 촉觸이 있게 되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게 되고,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게 되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게 되고,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게 되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게 되고, 생을 연하여 노老·사死·우憂·비悲·고苦·뇌惱가 있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하나의 괴로운 온蘊의 집(集:發生)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잡아함경 권15>
결국 명明이 없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괴로움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죽음이 있게 되는 형성 과정을 열 두 단계로 자세하게 분석하여 보여주는 것이 12연기설인 것이다. 12지支 그 각각의 뜻은 다음과 같다.
① 무명(無明, A-viduya)
명明이 아닌 것(非明) 또는 명이 없는 것(無明)의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실재實在 아닌 것 또는 실재성이 없는 것을 자기의 실체實體로 착각한 망상妄想이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존재의 일시적 형체를 참된 나라고 집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이며 맹목적 생존욕과 생식욕을 지닌 본능적인 생명력으로 ‘생의 의지’로 표현된다.
② 행(行, Sam.ska-ra)
무명이 있으면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행이 있게 된다는 것인데, 행은 ‘결합하는Sam 작용Ka-ra’이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무명에 의하여 집착된 대상을 실재화實在化하려는 작용이라 하겠다. 맹목적 생의 의지인 무명은 그 무엇을 욕구하여 만족시키고자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이다. 이를 형성작용形成作用이라 번역하는 경우도 있으며 서구에서는 보통‘impulse’로 번역한다.
③ 식(識, Vijna-na)
행에 의해 개체가 형성되면 그곳에 식識이 발생한다고 한다. 식은 식별識別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개체가 형성되자 그 곳에 분별하는 인식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④ 명색(名色, na-ma-ru-pa)
식을 조건으로 하여 명색이 일어나는데, 색色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키고 명名은 비물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명색의 발생은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결합된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⑤ 육입(六入, Sad.-a-yatana)
육처六處라고도 하며 명색을 연하여 육입이 일어나는데, 육입은 인간 실존의 근저를 이루는 여섯개의 감각기관(眼, 耳, 鼻, 舌, 身, 意-六根)을 말한다.
⑥ 촉(觸, Samspars′a)
육입을 연하여 촉이 있게 되는데, 촉은 ‘접촉한다, 충돌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여섯 개의 감각기관(六根)이 그 대상(六境:色, 聲, 香, 味, 觸, 法)과 접촉하는 것과, 육근六根과 육식(六識:눈, 귀, 코, 혀, 몸, 의지에 발생한 식)이 화합和合하는 것이라 하겠다. 즉 촉은 단순한 접촉이나 자극이 아니라 인식성립認識成立의 원초적 형태이며, 인식론적 경험의 현실을 나타낸 것이다.
⑦ 수(受, Vedana-)
촉을 연하여 수가 발생한다. 수는 감수작용感受作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괴로움(苦), 즐거움(樂),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不苦不樂) 중간 느낌(捨受)의 3가지 종류가 있다. 이를 고·락·사 삼수三受라고 한다. 접촉에 따른 필연적인 느낌이라 하겠다.
⑧ 애(愛, Tr.s.n.a-)
수를 연하여 애가 발생한다. 애욕愛慾·갈애渴愛를 뜻한다. 위의 세 가지 느낌 중에서 즐거움의 대상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욕심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애愛를 번뇌 중의 가장 심한 것으로 보고, 수도에 있어서도 커다란 장애가 된다고 한다. 무명은 지혜를 가로막는 장애(所知障)요, 애愛는 마음을 더럽게 하는(染着) 장애(煩惱障)의 대표적인 것이다.
⑨ 취(取, Upa-da-n.a)
애를 연하여 일어나는 취를 취득하여 병합倂合하는 작용이다. 애愛에 의하여 추구된 대상을 완전히 자기 소유화하는 일이라 볼 수 있다.
⑩ 유(有, Bhava)
취를 연하여 유가 발생한다. ‘유’라는 말은 ‘있다(be)’와 ‘된다(become)’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말인데, 생사하는 존재 그 자체가 형성된 것이라 하겠다. 유에는 삼유三有가 있는데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가 그것이다. 삼계는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곳이다.
⑪ 생(生, Ja-ti)
유에 연하여 생이 발생하는데, 생은 문자 그대로 태어난다는 뜻으로 유有가 그렇게 생사하는 존재 자체의 형성을 뜻한다면 그것에 연하여 생이 있게 될 것은 당연하다.
⑫ 노사(老死, Jara-marana)
생이 있으므로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가 있게 된다. 생의 현실은 마침내 늙어 죽음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12연기의 설명에서 볼 때, 생사의 근본적인 극복은 무명을 멸해 없앰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또한 무명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연기하게 되는 과정을 유전문流轉門이라 부르고, 무명의 멸滅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멸하게 되는 과정을 환멸문還滅門이라 부른다.
이 12연기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인간의 죽음을 비롯한 모든 고통이 바로 진리에 대한 자신의 무지에서 연기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