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 감로암(甘露庵)
송광사 본 절 바로 뒤에 위치한 감로암은 송광사 제6세 국사인 원감국사(1226 ~ 1293)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국사의 비가 절 앞에 있다. 제8세 자각국사 도영, 제16세 고봉국사 법장스님도 이 곳에 머물렀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절에 20년이 지난 뒤 부산에서 온 진일심화(陳一心華) 보살이 수행처로 삼아 정진했다. 진일심화 보살의 가족인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이 시멘트 블록으로 암자를 지어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1987년 일심화보살이 떠난 뒤 송광사 스님들이 다시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보조국사 지눌의 전통을 따라 참선 수행 정진하던 송광사의 기도처로 삼았으며 지금은 조계총림의 염불원이다.
순천 송광사 광원암(廣遠庵)
광원암은 백제 무녕왕 14년(서기 514년)에 가규(可規)스님이 초창(初創)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신라 혜공왕(765~780)때 창건한 큰절 송광사보다 250년 정도 먼저 세워진 셈이다. 송광사 제2세 국사이신 진각국사(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께서 이곳에 주석(駐錫)하시며 1226년에 종문(宗門)의 최고 저서인 섬문염송집(禪門염頌集) 30권을 펴내어 광원유포(廣遠流布)하였다 하여 그 뒤부터 광원암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그 뒤로는 1309년에 혜초(惠超)스님이 중창하였고, 1576년에 영윤(靈允)스님의 중건, 1710년에 정열(淨悅) 시습(時習) 기향(起香)스님의 적취루(積翠樓) 창건 및 1713년 중수, 1712년 치순(致淳) 지익(智益)스님의 중수 및 회관(會觀) 망혜(望惠)스님의 단청(丹靑), 1771년에 출징(出澄) 치초(致初)스님의 공루(空樓) 중건, 1890년에 취암경은(翠巖景恩) 용선(龍船)스님의 중수, 1917년 용선· 원명(元明)스님의 남익실(南翼室) 중수, 1936년 향운(香雲) 월고(月皐) 스님이 체실(體室) 조실(祖室) 왕각(王閣)을 중수하였다 한다. 1948년의 여순 반란사건과 1950년의 6.25동란의 수난을 겪으면서 큰절 송광사가 대화재로 소실되어 1958년 5월 3일에 큰절 불사를 위해서 광원암을 훼철(毁撤)하였고, 그 뒤 30여년간 덤불 속에 묻혀 빈터만 남아 있었다. 그 뒤 1992년(임신;壬申)에 현봉(玄鋒)스님의 원력으로 복원 중창하여 본채와 원조당(圓照堂) 그리고 해우소를 갖추었다.
광원암(廣遠庵)은 西庵으로도 부른다. 광원암은 송광사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창건했다는 보조암(普照庵)을 기준으로 방위를 정했기 때문에 서암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순천 송광사 [감로암(甘露庵)&광원암(廣遠庵)]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