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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三國志)제88편 ※
소패왕 손책의 활약상 (下)
어느덧 시간이 흘러 영문앞에 세워 놓은 막대기의 서쪽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더니 마침내 하나의 점으로 점점 좁아든다.
바로 정오가 된 것이었다.
바로 그때, 저 멀리 들판에서 태사자가 일천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바삐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손책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었고, 부하 장수들도 태사자의 깊은 신의와 손책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모두 놀랐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비롯하여 손책의 사람됨은 점점 인근에 널리퍼져 영명을 듣고 모여드는 군사가 날마다 꼬리를 이었고,
손책 또한 점령지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푸는 까닭에 손책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강대해졌다.
그리하여 그의 위업은 단시일 내에 완성된 듯이 보였으며 사실상 그는 선친의 영토였던 강동을 완전히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됐다! 이제는 곡아(曲阿)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모셔오자!"
손책은 신임하는 부하 장수를 보내어 노모를 강동의 본성인 선성(宣城)
으로 모셔왔다.
"어머님! 그동안 고생이 얼마나 많으셨습니까? 이제는 안심하시고 여기서 편히 지내세요."
부군(夫君)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부쩍 늙어버린 어머니는 장성한 아들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지으며,
"너의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겠느냐!"
하고 말했다.
며칠 후, 손책은 동생 손권(孫權)을 보고,
"나는 남쪽의 오군(吳郡)에 원정을 다녀올 것이니 네가 대장 주태(大將 周泰)와 함께 선성을 지키면서 어머니를 잘 모시고 있어라."하고 말한 뒤에 오군 원정길에 나섰다.
이때 강동 남족 오군에서는 엄백호(嚴白虎)라는 자가 동오의 덕왕(東吳 德王)을 자칭하며,
오성과 가흥이라는 곳에 성을 쌓고 강동을 노리고 있었기에 손책은 후환을 두지 않으려고 이를 정벌하러 떠나는 길이었다.
손책은 가는 곳마다 백성들에게 선정을 펴면서 오군(吳郡)에 진군하였다.
동오의 덕왕으로 자칭하는 엄백호는 손책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자 아우 엄여(嚴與)를 시켜 풍교(楓橋)
에서 맞아 싸우게 하였다.
손책은 엄여를 대단치 않은 장수로 여기고 몸소 선봉에 나서서 싸우려 하였다.
그러자 모사 장굉(謨士 張紘)이 말한다.
"장군은 삼군의 목숨이요 대들보올시다.
장군께서 경솔히 나아가 적과 싸울 것이 아니오니 이제부터는 합당한 장수를 내보내시고 장군께서는 자중
하십시오."
듣고 보니 옳은 말이었다.
그리하여 손책은 한당(韓當)으로 하여금 나가 싸우게 하였다.
한당은 정면에서 공격하고 진무와 장흠은 풍교 뒤로 돌아가 협공하게 하니 엄여는 당해내지 못하고 군사를 돌려 오성(烏城)으로 급히 달아난다.
그리곤 성문을 굳게 닫아 걸고, 다시는 싸우려 하지 않았다.
손책은 장수들과 함께 오성을 에워싸고 사흘 동안이나 싸움을 걸어보았지만 적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 적장 하나가 성루(城樓)위에서 한 손으론 대들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 성아래 손책을 가리키면서 무엇인가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것을 본 태사자는 즉석에서 그자에게 활을 쏘아갈겼다.
그러자 시윗소리가 날카롭게 나더니만 그 화살은 욕설을 하고 있던 장수의 손을 꿰둟고 대들보에 깊숙히 박혀 버리는 것이었다.
손책을 비롯해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가 경탄의 소리를 질렀다.
"아! 어쩌면 이렇게나!"
성중에 칩거해 있던 엄백호는 그 말을 듣자 간담이 서늘해왔다.
그리하여 그는 동생 엄여를 불러 묻는다.
"애야! 암만해도 우리가 손책군과 싸워서 승산이 없어 보이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저 역시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질없이 싸울 것이 아니라, 차라리 화평을 제의하는 것이 어떨까?"
"화평이라뇨? 항복을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항복이 아니라 강화(講和)를 하잖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명분만 세워 주고 실리(實利)는 우리가 거두자는 말이지.
손책은 나이가 젊어서 싸움은 잘하지만 계교는 부족하거든... 그러니 강화를 맺어 위기를 벗어나고 후일을 도모하자는 말이지."
"그렇다면 화평을 제의해 보시죠."
이리하여 엄여는 손책의 진중을 찾아가게 되었다.
손책은 엄여를 장중으로 불러들여 간단한 주연을 베풀며 물었다.
"그대의 형은 어떤 생각으로 당신을 나에게 보냈는가?"
"형님 말씀으론 우리가 계속해 싸우는 것은 인명을 부질없이 희생시키는 것이니, 차제에 강화를 맺어 강동 땅을 공평하게 나누자는 말씀입니다."
손책은 그 말을 듣고 화를 발칵 내며,
"뭐? 강동 땅을 공평하게 나누자고?
아직도 그놈이 자기가 처한 형편을 몰라도 유만부동이지, 저와 내가 동격(同格)인 줄로 착각하고 있구나!"하고 소리치자, 엄여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그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자 손책이 허리에 찬 검을 뽑아 엄여의 목을 한칼에 베어 버렸다.
그리고 엄여의 수행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걸 주워 가지고 돌아가라. 그리고 돌아가거든 너희들 괴수에게 전해라, 강화는 없다! 항복이 없다면 오로지 정벌만이 있을 뿐이다!"
엄백호는 돌아온 수행원에게서 보고를 받고 몸을 떨었다.
그리하여 그날 밤으로 오성을 버리고 회개(會稽)로 도망을 쳤으나, 이를 간파한 손책이 태사자와 황개를 보내 도망치는 엄백호를 철저히 쳐부수었다.
그리하여 한때는 <동오의 덕왕>으로 불리던 세도가 엄백호는 가까스로 목숨만 부지한 채로 회계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던 것이다.
엄백호가 도망친 회계의 태수는 왕랑(王朗)이란 사람으로 엄백호와는 절친한 친구의 관계였다.
엄백호의 사정을 알게 된 왕랑은 엄백호를 도와 손책을 쳐부술 생각을 하였다.
그러자 모사 우번(虞蕃)이 말한다.
"손책은 인의(仁義)로 군사를 쓰고 백성을 다스리며 엄백호는 포악한 성질로 군사를 쓰고 백성을 다스리는데,
장군은 어찌하여 포악한 무리를 도와 인의의 군사를 치려 하십니까?
차리리 엄백호를 결박지워서 손책에게 보내는 것이 장래를 위해 이로울까 합니다."
"이놈아! 말 같지 않은 소리 작작 하거라! 엄백호는 나의 옛 친구요 손책은 우리에게 쳐들어 오는데, 내 어찌 젖비린내 나는 손책에게 머리를 굽힐 수가 있느냐! 너같이 어리석은 놈은 당장 내 눈앞에서 없어지거라!"
우번은 한숨을 쉬며 왕랑 앞에서 물러나왔다.
그리하여 그날로 작은 봇짐을 하나 등에 짊어지고 표현히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왕랑은 그날로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손책을 치러 나왔다.
그리하여 손책의 진지 앞까지 와서 큰소리로 외쳤다.
"이놈! 젖비린내 나는 손책이란 놈, 빨리 나오너라!"
손책이 말을 마주 달려나오며 대답한다.
"손책은 여기 있다. 네가 바로 절강(浙江)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당, 왕랑이더냐?"
손책이 이렇게 소리치며 달려나가려고 하자, 뒤에서 태사자가 나는 듯이 달려 나가며,
"장군! 돼지를 베기에는 왕검(王劒)이 너무도 아깝소이다 ㅎ!
내가 나가 싸우렵니다!"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렇게 달려나간 태사자가 왕랑과 한바탕 어울려 싸우는데 적장 주흔(周昕)이 칼을 높이 치켜들고 달려나와 싸움을 돕는다.
그러자 이편에서는 황개가 달려나갔고 뒤이어 주유와 정보도 뒤를 따랐다.
그러자 왕랑은 싸움이 불리해질 것을 깨닫고 급히 말을 돌려 도망을 치며 군사까지 되돌려 성안으로 황급히 돌아온 뒤에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손책이 군사를 나누어 사방에서 공격할 형세를 취하니 위급함을 여긴 왕랑이 다시 성밖으로 달려나가 싸울 태세를 하였다.
그러자 엄백호가 왕랑의 손을 잡고 말린다.
"지금 나가 싸우면 불리하니 성을 굳게 지키기만 합시다.
저들은 멀리서 온 관계로 얼마 못 가서 군량이 떨어질 것이오.
그러면 우리가 쉽게 승기를 잡을 수가 있을 것이오."
왕랑은 그 말을 옳게 여겨 회계성을 굳게 지키고 싸우려하지 않았다.
엄백호의 예상대로 손책은 나날이 군량이 줄어들어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부족한 군량을 주변의 백성들에게 빼앗아 민심을 잃게 할 수도 없어서,
" 부족한 군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겠소?"하고 장수들에게 물었더니 함께 따라왔던 숙부 손정(孫靜)이 말한다.
"여기서 수십 리 밖에 사독(渣瀆)이란 곳이 있는데, 그곳에는 왕랑의 군량고(軍糧庫)가 있네.
그러니 그곳을 먼저 점령하면 적은 나와 싸우지 않아도 이길수가 있네
※ 삼국지(三國志)제89편 ※
황제로의 등극
한편, 손책에게 정보, 황개, 한당, 조무와 함께 삼천 군사와 오백필의 군마를 주어 보낸 원술은 전국옥새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런 원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책사 도저는 두 눈을 찌푸리며 할 말을 잃고 근심에 잠긴다.
그런 가운데 조정의 대신 하나가 옥새에 정신을 팔고 있는 원술에게,
"주공, 경하드리옵니다!
옥새를 얻으신 것은 필시 하늘의 뜻이옵니다.
이렇게 하늘이 주공께 옥새를 내렸으니 주공께서는 천명을 받들고 제위에 오르시어 대업을 이루십시오." 하고 고한다.
그러자 나머지 대신 모두는 한 목소리로, "대업을 이루십시오!"
하고 복창을 한다.
그러자 하늘을 우러러 긴 한숨을
내 쉰 책사 도저가,
"하 ~ !... 주공, 대업을 이루는 것은 손책이 될 지 모릅니다.
그는 절대 돌아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향후 주공의 적이 될 게 분명합니다."하고 단언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탐스러운 눈길로 옥새를
계속해 보고 있던 원술이 힐끗 도저를 한번 쳐다보고 나서,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도저는 한탄어린 어조로
말을 한다.
"손책은 돌덩이 하나를 버리고 정보, 황개, 한당, 조무와 더불어 삼천 군사에 군마 오백 필을 얻었습니다.
더구나 그들 장수는 그의 부친인 손견의 맹장들 입니다.
손책의 의도를 주공께서 설마 눈치채지 못 하신 것은 아니겠죠?"
그러자 원술이,
"손책이 옥새를 포기하면서까지 날 등지고 갔는데 내가 어찌 그 의도를 모르겠소?
허나, 뜻이 있으되 실력이 없질 않소? 현실적으로 그가 가진 몇 천의 군사로는 대업은 꿈도 꾸지 못 할 일이 아니겠소?"
그러자 도저는 두 손을 마주 잡아
흔들면서, "소신은 주공의 말씀이 부디 맞기만 을 바랄 뿐 이옵니다." 하고 실망스러운 어조로 대답하였다.
사백 년을 이어져 내려 오는 전국옥새를 손에 넣은 흥분이 가라 앉은 며칠후, 원술은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옥새를 바라 보며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때 책사 도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용히 다가와 원술에게 읍하고 그 자리에 망연히 서 있었다.
그런 도저의 거동을 지켜보던 원술이 도저가 하려는 말의 뜻을 먼저 알아차리고 도저에게 사정조의 어조로 입을 연다.
"선생, 나를 보시오. 이제 내 나이 육십을 넘어 얼굴에는 주름살만 있을 뿐, 좋은 시절은 가고 죽을 일만 남았소.
그러니 지금 대업을 이루지 못하면 앞으로 내 숙원을 언제 이루게 되겠소?
내가 즉위하면 선생을 국사(國師)로 추대해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만들어 드리면 선생은 역사에 남을 것이오.
그러니 내게 대한 설득일랑은 이제 그만 두시오."
그러자 도저는 양손을 흔들어 보이며,
"아닙니다. 주공, 용서하십시오.
제 천성이 완고해 죽음으로 간언할지언정 영화를 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공! 지금 황제가 되어서는 안 되십니다!"
"왜 안 된다는거요? 과거 고조 황제 유방도 사상 지역의 정장에 불과했고 수중엔 칼 한자루에 추종자도 수 십명 뿐이었는데도 천하를 얻지 않았소?
이제 한(漢)실은 사백 년을 이어오면서 그 기세가 다했고, 지금은 사해가 들끓어 효용들이 난무하니 강자가 왕이 되고, 강자 중에 강자가 황제가 되는 것 아니오?
우리가 있는 회남은 풍부한 양식이 있고 정예 병력이 사십 만에 장수가 천 명이오.
그러니 누가 나에게 대적하며 누가 나와 패권을 다투겠소?"
"주공께서는 잠시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제 생각으로는 현 천하에서는 오직 주공외에 두 사람이 주공과 패권을 다투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구, 누구 말이오?"
"기주의 원소와 허창의 조조입니다.
원소는 과거 십팔로 제후들의 맹주로서 지금은 기주, 청주, 병주를 점령하고 북방의 유주까지 노리고 있사옵니다.
현재 군사가 오십만에 달하며 휘하의 문신과 무신들도 모두 영웅 호걸들 입니다.
더구나 주공의 당형이자 명망도 주공보다 높습니다.
조조는 난세가 낳은 간웅으로 문무를 겸비한 보기드문 인재입니다.
비록 지금은 주공에 못 미치는 세력을 가지고 있으나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는 자리에서 천하의 병권을 쥐고 위세를 천하에 떨치고 있으니 그 위력이 나날이 더해만 가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있는 한 주공께서는 황제가 되시면 안 되십니다."
"흥! 원소는 본디 원씨 집안의 첩의 소생이니 천한 정도로만 따진다면 내 종 노릇이나 해야 마땅할 것이어늘 나보다 두 살이나 많다는 이유로 내가 형 대접을 해 준 것인데,
감히 나와 비교가 되겠소? 그리고 조조란 자는 본디 황간의 후예가 아니오?
조조가 천민의 자손으로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파렴치한 광대이거늘 뭐가 걱정이란 말이오?
나중에 내가 제위에 오르면,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자가 바로 그놈이오.
내가 놈을 일벌백계로서 위엄을 보여 줄 거요!"하고 원술은 단언하 듯이 말했다.
바로 그때, 문무 백관들이 줄을 지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일동은 엎드려 고한다.
"신들이 주공을 뵈옵니다."
원술은 자리에 삐딱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자세로 앉은 채 묻는다.
"무슨 일이오?"
그러자 대표로 나선 백관이,
"신과 삼백 다섯 명의 문무 백관들이 주공께 연판장을 올립니다.
주공께서 천명을 이어받아 제위에 오르시고 새나라를 개국하십시오!"하고 아뢰며 연판장을 두 손으로 치켜 올렸다.
이런 모양을 눈 앞에서 목격한 도저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원술은 좋으면서도 사양한다.
"그런 큰일은 숙고해야 하지 않겠소?"하고 짐짓 한 발 빼는 소리를 한다.
그러자 연판장을 들고 꿇어 앉은 백관이,
"주공! 만일 하늘의 뜻을 거역하신다면 신은 주공 앞에서 목숨을 끊어버릴 것입니다!"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자 동석해 있던 백관들이 일제히,
"천명을 받으십시오 주공!"하고 일제히 아뢰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원술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한다,
"아, 알겠소. 경들의 뜻이 그렇다면 할 수없이 천명에 따르고 민심에 순응할 수밖에, 제위에 오르겠소!"하고 단언했다.
그러자 백관들은 일제히,
"주공 만세 ! 황제 폐하 만만세!"를 외쳐대었다.
며칠 후, 십팔로 제후중에 원술이 가장 먼저 황제를 칭하며 제위에 올랐다.
이런 소식은 그의 당형인 기주의 원소에게도 전해졌다.
원소는 그 소식을 듣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화를 내었다.
"원술이 자기 분수도 모르고 수춘에 개국을 하다니 이런 돼먹지 못 한 일이 있나?
게다가 나보고 자기 신하임을 밝히라고 하는군!"
그러자 장수 하나가 말한다.
"주공, 뻔뻔스러운 자로군요. 본때를 보여야 합니다.
영토의 넓이로 보나 군사의 수로 보나 명망으로 보나 휘하의 장수들로 보나 우리의 세력이 원술보다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든 것을 무시하고 본인이 황제가 되다니,
따지고 보면 주공께서 황제가 되셔야 할 일이지 감히 원술이 황제가 되다니.. 이건 완전히 원술이 주공을 무시한 것 아닙니까? 당장 원술을 쳐부숴야 합니다!"
그러자 다른 장수들도,
"옳은 말이오!"
"그것보다는 주공께서 제위에 오르셔야 합니다!"
하면서 각기 울분을 토로함과 동시에 향후 대책에 대하여 중구난방으로 한 마디식 떠든다.
그러자 지금까지 잠자코 이들의 말을 듣던 모사 허유가 앞으로 나서며,
"주공,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천하가 혼란한 시기에 각 제후들은 셋 중에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첫째, 한 실 부흥. 둘째, 한 실 찬탈. 그리고 셋째는 한 실 부흥의 명목아래 찬탈을 하는 겁니다.
원술은 명리에 급급해 공공연히 한실을 버리고 자립했으니 이는 어리석은 결정이며 필시 큰 화가 닥칠 겁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생각하시며 멀리 내다 보셔야 합니다.
지금은 먼저 내실을 기하고 변화를 관망하다가 기회를 노리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 입니다."
허유의 말을 경청한 원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곽도가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여러 장군들이 개국 공신이 되어 역사에 남으려 하는 것은 저도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천자가 여전히 건재하고 각지 제후들이 여기저기 난립하고 있어 천하가 혼란하니, 주공께서 개국하실 날은 멀지 않았습니다.
※ 삼국지(三國志)제90편 ※
조조의 출병
다음날, 궁중 악사들의 출정가(出征歌)가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군사들이 좌우로 도열한 중앙으로 조조가 거만하게 뒷짐을 지고 천자의 집무실인 장락궁(長樂宮) 앞으로 천천히 입장하였다.
천자 유협은 면류관(冕旒冠)에 정장을 차려 입고 장락궁 중앙계단 중간에 긴장한 표정으로 서서 출정식에 입장하는 조조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윽고 천자의 앞에 조조가 발걸음을 뭠춰섰다.
그리고 좌우의 팔을 들어 출정가 연주를 멈추게 한 뒤에 단상의 천자에게 예를 표하였다.
천자는 절월도(節鉞刀)를 들어 조조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조 장군, 그대를 호국대장(護國大將)으로 임명하니 절월과 황명을 받들어 천자의 검을 쥐고 천자의 가마에 올라 대한(大漢)의 병권을 호령하시오!"
그러자 조조는 단상에 올라 천자로 부터 절월도를 두 손으로 정중히 받아 들고 뒤로 돌아서서 만장한 장졸(將卒)들을 향해 절월도를 뽑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도열해 있던 병사들이 한 목소리로 천지가 떠나갈 듯이 소리친다.
"조 장군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이윽고 조조는 호위 병사를 앞세우고 천자의 수레를 타고 남양 원정길에 올랐다.
진군하는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대북과 진고는 귀를 찢을 듯이 큰소리로 울리며 천지를 진동하였고, 진군하는 병사들의 걸음을 재촉하였다.
이렇게 황제 유협을 비롯해 만조 백관과 백성들의 환송을 받으며 원정의 길에 오른 조조는 광야로 나오면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투수레로 갈아탔다.
그런 연후에 한참을 행군하며 수레에 탄 조조가 아무런 말도 없이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본 순욱이 조조의 곁으로 말을 달려와,
"주공, 뭘 염려하십니까?"하고 물으면서 이어서,
"원술의 세력이 커서 이번 원정에서 패할까 봐 걱정되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조는,
"내 걱정은 원술이 아니라 여포요. 혹시나 우리가 원술과 싸우는 틈에 여포가 후방을 기습할 까봐 염려가 되는군."
그러자 순욱이 단언 하듯이 말한다.
"못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조조가 순욱을 힐끗 쳐다 보며,
"이유가 뭐요? 내가 여포라면 그러겠소."하고 반문하였다.
그러자 순욱이,
"여포는 주공이 아닙니다. 그가 천하 무적이라 하나 지략에 있어서는 주공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허나, 진궁이 있지않소?"
"진궁이 있기 때문에 원술을 돕지 못 하게 할 겁니다.
그건 반역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화를 자초하지는 않을 겁니다.
더구나 예전에 여포가 연주를 기습할 때에 주공께 대패한 경험이 있어서 실수를 되풀이 하려고는 하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나 우리는 지금 성이 비어있질 않소?"
"지나친 염려이십니다. 여포는 연주가 비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여포의 머리로는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설사 진궁이 안다고 해도 무모하게 연주를 공격하지는 못 할 겁니다.
지금 여포는 오히려 혹시 주공께서 원술을 제압하러 출병했다가 그틈에 군사를 돌려 서주로 공격해 올 까 걱정을 할 것 입니다."
"맞아! 내가 좀 의심이 많지... 성공을 해도 의심, 실패를 해도 의심,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속에 걱정이 하나 있는데, 당신이 해결해 주겠소?"
조조는 느닺없이 순욱에게 부탁한다.
그러자 순욱이,
"말씀해 보십시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이번 원술 정벌은 필히 승리해야만 하오. 혹시라도 패하면 천하 제후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모두가 조조가 토벌하러 갔다가 토벌됐다고 비웃을 테니 그럼 우리는 역적이 되버리고 놈들은 굶주린 이리떼 처럼 달려들어 사정없이 물어뜯고 영토를 나눠갖는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되겠지..."
"물론 그렇겠지요."
"당신이 볼 때에 어떻게 해야 원술을 이길 것 같소?"
"병력을 총 동원해 원술이 수도로 정한 수춘성(壽春城)을 집중 공략하는 게 상책입니다."
"음, 그건 나만의 공략 방법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제 생각엔 그게 원술을 이겨낼 유일한 방법이고 더 좋은 공략은 없다고 봅니다."
"음.... 고맙소!"
이런 말을 주고 받으며 조조가 탄 전투마차가 들판을 지나고 있을 때, 무엇인가 사두 마차를 끌고 있는 말 앞에 <푸드득> 거리며 날아들었다.
그것은 한 마리의 메추리이었는데 알을 품고 있다가 많은 군사 행렬이 일시에 몰아치자 급히 날아 오르려다가 사두 마차 앞으로 느닺없이 떨어진 것이었다.
이 때문에 조조의 전투 마차를 끌던 네 마리의 말들이 일시에 놀라며 대열에서 이탈하며 마구 날뛰기 시작하였다.
"워! 워!"
마부와 조조는 놀라 날뛰는 말들을 진정시키려 하였으나 말들은 아랑곳 하지 아니하고 사정없이 이리저리로 내달리는 것이었다.
"주공을 보호하라!"
순욱과 장수들이 기겁하며 소리치고 달려들었지만 말들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말들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
조조가 원술을 치려고 출정할 때에는 한창 보리 이삭이 피어나는 계절이었다.
그리하여 조조는 출정 전에 농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보리밭을 피해서 행군 할 것>을 명령한 바 있었다.
그런데 날뛰던 말들을 진정시키고 나서 쳐다 보니, 조조가 탄 수례가 멈춘 곳은 보리밭 한 가운데요. 이미 넓은 보리밭을 마차가 휘젖고 다니면서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조조가 진정된 마차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말들이 사정없이 짖밟아 버린 보리밭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종군 주부(從軍 主簿)를 불러라!"
그러자 종군 주부가 부리나케 조조 옆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읍하며 대답한다.
"주공!"
조조가 종군 주부를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연다.
"출정하기 전에 하명 한 것이 있는데, 기억하나?"
"옛, 기억합니다!"
"말해봐라."
"주공께서 이렇게 하명하셨습니다.
<이번 역적 토벌은 백성들을 위한 것이다. 지금은 보리가 자랄 시기이니 보리밭을 지날 때에는 밟아서는 안 된다. 위반자는 참(斬)한다 > 하셨습니다."
"지금 내 마차가 보리밭을 밟았으니, 어찌해야 하나?"
조조가 냉철한 어조로 종군 주부에게 물었다. 그러자 종군 주부는 매우 난처해 하며,
"아, 예. 소관은 주공의 죄를 물을 수가 없습니다."하고 쩔쩔매며 허리를 굽힌다.
그러자 조조는 단호한 어조로,
"자신이 정한 군령을 자신이 어기면 누가 복종하겠나? 검을 가져와라!"하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순욱이 눈꼬리가 쳐진 채 침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장검을 가지고 조조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조조는 이번에는 종군 주부에게 말한다.
"명이다! 지금 당장 그 검으로 내 목을 쳐라!"
"음, 음 !... 주공, 소관은 못 합니다!"
종군 주부는 조조 앞에 털썩 주저 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절대, 못 합니다!"
이런 광경은 순욱을 비롯한 조조의 휘하 장수와 병사들 모두가 긴장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
순욱은 장검을 든채 조조의 앞으로 한 발 더 다가서며 차분한 어조로 말한다.
"주공, 춘추(春秋)에도 <법이 존귀한 분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자결은 안 됩니다."
"아무리 춘추에 그런 말이 있더라도 법이 존,귀를 가린다면 도대체 법이 무슨 소용이오!"
그러자 순욱은 더욱 침착한 어조로 말한다.
"옳은 말씀이지만 생각해 보셨습니까? 황명을 받든 토벌 길에 이리 쉽게 죽으시면 누가 군사를 인솔 할 것이며 누가 백성을 위해 역적을 멸하겠습니까?"
"으 흠,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소. 역적 토벌의 대임을 맡았으니 그렇다면 내 잠시 목숨만은 살려두도록 하겠소."
그러자 지금까지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 보던 휘하의 장졸 모두가 조조를 향하여 무릎을 꿇으면서 일시에 복창한다.
"알겠습니다!"
조조가 머리를 묶어 씌운 관을 벗겨내며 말한다.
"오늘은 목 대신 상투를 자르고 훗 날 공을 세워 속죄하겠다."
그 말을 듣자 순욱은 지체없이 지금까지 들고 있던 장도(長刀)를 조조에게 내밀었다.
조조는 날카로운 장도를 뽑아 들고 자신의 상투를 지체없이 잘라 내던졌고 휘하의 장졸들은 이런 광경을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 보았다.
조조가 일갈한다.
"조조의 수급을 전군에 전달해라!"
"알겠습니다!"
명을 받은 병사가 긴 행렬의 군사들 틈을 누비고 다니며 명령을 전달한다.
"주공께서 보리밭을 망쳤기때문에 스스로 상투 잘라 버렸다.
※ 삼국지(三國志)제91편 ※
실패한 정략 결혼
한편 제위에 오른 원술은 막상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보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하의 제후들에게 자신이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지지를 받으려 하였는데 그 누구도 자신의 뜻에 따라 축하를 한다든지 천자로 옹립해 주겠다는 제후가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술은 고민 끝에 만조 백관들을 불러 모은 뒤에 입을 열었다.
"각지 제후들에게 내가 황제가 되었다고 조서를 보냈건만 한 사람도 대꾸가 없으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그러자 한 백관이 아뢴다.
"그것은 아마도 조서를 받아본 제후들이 폐하의 처사를 못 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되옵니
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원술은,
"아니, 세상에, 이런 혼란한 시기에 황제가 못 된 놈이 바보지, 어째서 내가 그들의 축하는 고사하고 괄시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폐하, 아무런 대꾸도 없는 것을 보니, 필시 저들은 연합하여 우리에게 쳐들어 올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한 백관이 이렇게 말하자, 원술의 얼굴이 금방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면 좋겠소?"
그러자 국사 도저(國師 陶貯)가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폐하, 이럴 때 일수록 우리를 도와줄 우군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오니 가까운 여포를 우리쪽에 기울게 하는 계책을 쓰면 어떻겠습니까?"
도저의 말을 듣고 원술의 얼굴이 금방 환해진다.
"계책? 그것이 무엇이오?"
"여포는 정실 부인 엄씨(正室 婦人 嚴氏)와의 사이에 묘령의 딸이 하나 있사온데,
여포는 무남독녀인 그 딸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한다고 합니다.
만약 그 처녀를 폐하께서 자부(子婦)로 삼으신다면 그때부터는 천하의 맹장인 여포와 사돈간이 되므로 폐하의 더할 나위 없는 힘이 되어 줄 것이옵니다."
"음, 그것 참 좋은 생각이로군!"
원술은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다.
그리고 곧 청혼의 편지를 써서 한윤을 중매로 삼아 많은 예물과 함께 여포에게로 보냈다.
원래 여포에게는 이처 일첩(二妻 一妾)이 있었으니, 첫째 부인은 엄씨(嚴氏)이고,
둘째 부인은 조씨(曺氏)였다. 그리고 첩의 이름은 초선(貂蟬)이었으니 여포가 장안에 있을 때, 왕윤(王允)의 수양딸인 초선을 무척 사랑했으나 동탁에게 빼앗긴 일이 있었다.
그 후에 초선은 자결을 했지만 여포는 그녀의 대한 연민을 잊지 못하고 새로 취한 처첩의 이름을 <초선>이라 고쳐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포는 원술의 청혼 편지를 받아 보고 내심 크게 기뻐하며 본 마누라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혼인을 어떻게 생각하오 .?"
"저는 매우 흡족하게 생각합니다.
원술 장군께서 이미 제위에 오르시었으니 우리 아이가 그분의 외아들과 혼인을 한다면 머지않아 황후(皇后)가 될 게 아니옵니까?"
"음 .... 당신도 뱃속이 어지간하구려, 하하하! 나도 괜찮다고 생각하오!"
여포는 마침내 혼인을 허락해 버렸다.
그리곤 당장 결혼 준비를 서둘렀다. 가지가지 비단 옷을 만들고 사방에서 금은 보화를 모아 예물을 준비하고 시녀들을 시켜 자신의 딸을 눈부시게 단장시켰다.
그리고 한윤의 요구에 따라 신부를 수레에 태운 뒤 호위군사를 딸려서 남양의 원술에게로 출발 시켰다.
신부를 태운 수레가 서주 성문을 막 빠져 나왔을 때, 그 앞에는 출타했다가 돌아오는 진궁이 말을 타고 기다리고 있었다.
수레가 다가오자 진궁이 한윤을 보고 호령한다.
"멈추시오!"
"공대 선생! 길은 왜 막으시오?"
한윤이 말을 멈추고 의아한 듯이 물었다.
그러자 진궁이, "수레안에 상 장군 따님이 계신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윤이 당연하다는 어조로,
"그렇소! 허나, 이 분은 이미 원씨 황제의 태자비이시오."하고 말했다.
그러자 진궁은,
"황당하군! 그런 대사를 당신은 어째서 이렇게 대충 처리하는가?"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한윤은 고개를 뻣뻣이 세운 채로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오?"
그러자 진궁의 경우를 밝힌 소리가 터져나왔다.
"혼례를 할 때에는 관례라는 게 있소. 이른바 천자는 일년, 제후와 대부는 반년, 고관은 석달, 범인은 한달인데, 원씨 황제는 혼담을 꺼내자마자 신부를 데려 가다니, 말이 되는가?"
진궁의 추궁은 예리한 칼날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어서 말을 한다.
"우리 상 장군님의 따님이 서민보다 못하다는 것인가?"
그러자 한윤의 대꾸가 이어진다.
"폐하께서는 지금 어지러운 세상이니 혼사가 결정된 이상 예기치 못한 변고에 대비해서 속히 처리하라 하셨소."
그러자 진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아니오! 원공은 이미 제위에 올랐고 지금은 태자비를 맞이하는 것이니 당연히 백성들의 본보기가 되어서 천자의 예법에 따라야 하오.
황제께 고하시오. 앞으로 일년 뒤에 모시러 오라고."
이렇게 말한 진궁은 수레를 호위하는 병사에게 소리친다.
"명을 받들라! 당장 수레를 성 안으로 돌려라!"
그러자 호위 장수가 마상에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
그리고 자신의 말머리를 돌리며 병사들에게 명한다.
"수레를 돌려라!"
"옛!"
성안으로 들어온 뒤, 여포와 마주한 진궁은 앉아있는 여포의 앞을 왔다갔다 하며 불만스러운 말을 쏟아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런 큰 실수를 범하다니 하마트면 원술과 사돈이 될 뻔 하지않았소?"
그러자 여포 역시 진궁에게 불만스러운 말로 대꾸하였다.
"원술이 황제가 되었다고 하고 내 딸은 태자비가 된다는데 어때서요? 우리 입장에서는 원술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는 것인데 이렇게 된다면 누가 우리 서주를 넘보겠소이까?"
"원술이 역적질을 했으니 그자와 거리를 두어야 하는 거지요. 설마하니 역적의 사돈이 되서 함께 매장되고 싶은거요?
아시오? 조조가 역적 토벌 공문을 공포하고 천하 제후들에게 원술을 제거하라고 명했소.
게다가 본인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출정했으니 열흘 안에 천지가 진동할 전쟁이 벌어지게 될 거요 ! 이럴때 혼약을 맺는 것은 장군을 화살받이로 쓰겠다는 말인데 모르시겠소?"
여포는 진궁의 책망을 받자 순간 머슥해지며 말한다.
"그럼 어쩜니까? 원술한테 이미 승낙했는데..."
"원술에게는 이미 승낙했다 해도 사자에게 분명히 말했소.
천자의 예법에 따라 일년 후에 신부를 데려가라고 말이오.
원술이 황제자리에 올라 얼마나 버티나 봅시다.
그때까지 버티면 태자비가 될 테고 버티지 못한다면 우린 큰 화를 면하게 되는 것이오."
여포는 진궁의 말을 듣고서,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좋군요. 좋습니다! 내가 생각이 짧았습니다!"하고 진궁에게 미안한 어조로 말을 하였다.
그러자 목소리가 누그러진 진궁이,
"봉선! 앞으로 무슨 일이든 필히 나와 상의한 뒤에 결정하시오. 아시겠소?"
여포는 눈을 꿈쩍이며 겸언쩍은 어조로 대답한다.
"아, 알겠소. 선생에게 상의한 뒤에 결정하지요."
두 사람이 이런 논쟁을 벌이고 있는 바로 그때, 수하 병사 하나가,
"보고합니다!"하고 소리치며 뛰어든다.
"상장군! 천자의 조서가 왔습니다!"
"모셔라!"
진궁이 대답하였고, 두 사람은 꿇어 앉아 천자의 사신을 맞아 들였다.
천자의 사신이 조서를 읽어 내린다.
"원술은 황제를 배반한 천하의 역적이다.
짐은 조조를 호국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천하 군권을 수여해 원술 토벌을 명하였다.
이에 여포를 서주목에 봉하니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여 원술을 멸하라. 이상!"
여포와 진궁은 조사를 가져온 사신에게 엎드려 큰절을 하며,
"폐하의 조서를 받들겠습니다!"하고 큰소리로 외치었다.
사신이 물러가자 여포는 조서를 펼쳐 본 뒤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진궁에게 조서를 건넨다.
"선생, 조정에서 결국 나를 서주목에 봉했군요."
그러자 진궁이,
"조정이 아니라 조조요."하고 여포를 올려다 보며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조조가 장군을 서주목에 봉한 것은 원술이 장군에게 사돈을 맺자는 것 처럼 장군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오."
"그랬었군요. 그러면 조서를 받들고 출병해야 합니까?"
"조서는 받드시오.
그러나 출병은
안 되오. 조조와 원술의 싸움을 지켜보기나 합시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 삼국지(三國志)제92편 ※
유비의 원술 토벌군 합류
조조의 대군이 예주(豫州) 접경에
진을 치고, 원술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영문(營門)밖에는
유비,관우, 장비 등의 삼형제가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조조에게 자신들이 원술 토벌대를 이끌고 왔음을 알리고 하명(下命)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소식은 즉각 조조에게 보고 되었고. 조조는 침통한 얼굴로 이 문제 처리에 대해,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때, 참모(參謀) 순욱이 들어온다.
"주공, 찾으셨습니까 ?"
순욱은 양손을 모아 허리를 굽히며,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는 조조에게 예를 표하였다.
그러자 말없이 양손을 오므려 들고 앉아 있던 조조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순욱 ? ... 지금 이곳이 바로, 역적 토벌 가담군의 집결장소 아니오 ?"
"그렇습니다."
"닷새가 됬는데, 조서를 받든 제후들이 한 놈도 안 왔소."
"네, 예상했던 일 아닙니까 ?"
애초에, 각지 제후들의 토벌군 가담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실제의 상황으로 닥치자 침통한 조조였다.
그러자 순욱은 주공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애초부터 기대조차 되지 않았다는 당연한 대답을 담담하게 한 것이었다.
"그렇치, 허나, 전혀 생각지도 못 한 것은, 단 한 사람, 제후도 뭣도 아닌 놈이, 고작 수천 군사를 이끌고 도우러 왔다는거요."
"누굽니까 ?"
"유비 !"
"하 ~..제가 잊을뻔 했군요. 유비는 한실(漢室)의 후예이고, 한실 부흥을 꾀하는 자이니, 역적의 황위 찬탈을 못 참겠지요."
"솔직히 말해, 유비가 오리라곤 생각치 못했소. 어찌해야 할 지, 참, 난감하오.
해서, 당신한테 물어보고 싶은데, 놈을 이용해야 하겠소, 아니면 죽여버려야 하겠소 ?"
그러자 순욱이 잠시 말을 멈춘다. 그리고 바로,
"죽이십시오."
하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조조의 반문이 즉각 나왔다.
"왜지 ?"
"유비는 영웅의 포부를 지닌 자이니, 지금이라도 죽여 후환을 없애십시오."
순욱은 조조의 결심을 유도하는 듯이 똑바로 쳐다 보면서, 고개를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순욱과 눈도 한번 마주치지 않고, 독백하듯이 묻고, 대답하던 조조가 순욱을 한번, 힐끗 쳐다 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
"음 ! 알았소. 나가서 곽가(郭嘉)를 들라 하시오."
하고 자신의 결심이 흔들리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자 순욱은,
"예."
하고 대답하며 물러갔다.
이렇게 조조가 원술 토벌대로 참여한 유비를 받아 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민과 숙의를 하고 있는 터에,
영문(營門)밖에선 기다리다 지친 장비가 투덜 거리며 한 소리를 해댔다.
"형님 ! 우리가 역적 원술을 토벌한다고 오백 리를 달려왔는데, 조조 저자식이 뭐가 대단하다고, 저놈이 우리를 이렇게 계속 밖에다 세워 두는 겁니까 ? 이제 그만 갑시다 !"
그러자 유비가,
"셋째, 그만하게. 조조는 호국 대장의 몸으로 출정한 데다가 우리는 한때, 적이었으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네."
그러자 관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비의 말에 긍정을 표시했다.
어쨌거나, 유비 삼형제는 조조의 결정이 있기 까지는 영문밖에 계속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순욱의 전달을 받고, 곽가가 조조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 후,
"부르셨습니까. 주공 ?"
하고 허리를 펴며 말했다.
그러자 조조는 아직도 자리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는 자세로,
"방금 순욱이 유비를 죽여 후환을 없애자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
하고 물었다. 그러자 곽가는,
"신이 볼 때는 아닙니다.
역적을 토벌하기 위해 온 것이니, 신의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유비는 의리가 있는 데 다가, 자원해서 군사를 이끌고 도와주러 왔으니, 주공께서 죽이신다면 아마, 그 이후 부터 천하의 현자와 선비들이 발을 끊고, 주공을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을 죽여 민심을 잃는 것은 신이 볼 때, 절대 주공께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조조는 답답한 어조로 말한다.
"알겠네, 나가보게. 정욱을 불러주게."
"알겠습니다."
곽가는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혀 절을 한 뒤에 물러간다.
"소신, 주공을 뵈옵니다."
인사와 함께 정욱이 들어왔다.
조조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리에 앉은 채, 정욱과 눈도 마주치지 아니하고,
"정욱... 방금 곽가는 나한테 유비를 죽이지 말라하고, 순욱은 죽이라는데, 당신 생각은 어떻소 ?"
하고 물었다. 그러자 정욱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즉각 대답한다.
"유비는 당대의 영웅이면서 주공의 후환이기도 합니다.
신이 볼 때는 일단 이용하시고, 이용가치가 없으면 그때 죽여서 후환을 없애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두 사람과의 면담에서 전혀 표정 변화가 없었던 조조가 입가에 웃음을 띠며,
"후후훗, 좋소 ! 알았소. 가보시오."
하며 무언가 결심이 선 듯한 대답을 한다.
"예"
정읍이 읍하고 물러간다.
잠시후, 조조의 군막 밖에선 순욱이 물러나오는 곽가를 보며 묻는다.
"주공께는 뭐라 하셨나 ?"
그러자 곽가가 순욱에게 되물었다.
"주공께서는 뭘 물으셨지요 ?"
하고 곽가가 딴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
그러자 순욱이,
"먼저 말해보게."
하고 역질문을 폈다.
그러자 두 사람 사이로 다가온 정욱이 대화에 끼어들며 물었다.
"두 분께서는 주공의 물음에 뭐라 답하셨습니까 ?"
그러자 빙그레 웃음을 머금은 순욱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한다.
"난 유비를 죽이라 했소."
그러자 곽가는, "그렇습니까 ?
저는 유비를 이용하라 했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다녀온 정욱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저는 유비를 먼저 이용하고, 이용가치가 다 하면 죽이라고 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순욱이 결론을 내리 듯 말한다.
"주공께선 의심이 많아서 그런 것이오.
우리가 이미 세가지 선택권을 드렸으니, 어찌할 지는 주공의 결단에 달려 있겠지요."
그러자 나머지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후, 조조의 군영 밖에서는 조조가 친히 유비를 영접하러 나왔다.
조조를 발견한 유비가 황급히 말에서 내리자, 관우와 장비도 따라서 말에서 내렸다.
이윽고 유비의 앞으로 다가온 조조가, 두 손을 맞잡고 예를 표하며 웃는 얼굴로,
"현덕 아우, 내가 아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도 두 손을 맞잡고 예를 표하며 대답한다.
"조 공께 인사 올립니다."
하며 깊숙히 허리숙여 인사하였다.
그러자 맞절로 대한 조조가,
"원술이 반역을 도모해, 천자께서 천하의 제후들에게 토벌을 명했지만, 다들 앉아서 구경만 하고, 누구 하나 나서는 이 없는데,
오직 유현덕 그대만 달려와 주었으니, 역시 한 황실의 후예요, 대한의 충신답소 !" 하고 말했다.
그러자 유비는 다시 한번 머리숙이며,
"군사는 비록 적지만 조공의 선봉에 서서, 원술을 멸하는 데 힘을 보탤까 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듣고 조조가 유비의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좋소 ! 우리가 승리하면 내가 천자께 상주하여, 자네를 예주목에 봉하지 ! 하하하... 가세 !"
조조는 유비의 한 손을 붙잡고 앞장서서, 군영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 뒤를 관우와 장비가 말을 끌고 뒤따랐다.
한편, 원술의 수춘성(壽春城)에서는 조조가 쳐들어 왔다는 소식에 만조 백관들이 모여든 가운데, 백관 하나가 황급히 달려와, 원술 앞에 무릎을 꿇으며 아뢴다.
"폐하 ! 상 장군 기령과 교우가 관우와 장비에게 잇달아 패했습니다 ! 지금 조조의 대군이 이미 수춘성을 포위해, 남문은 물론, 서문의 장수들도 혈투를 벌이면서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옵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었다.
그러자 백관들이 서로 수근거린다.
"이런, 이걸 어쩌나 ?..."
"정말 큰일이군 !..."
그러자 패전 소식으로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원술이 황망한 어조로 말한다.
"어서, 어서, 장훈과 양봉은 호부군을 이끌고 적의 포위망을 뚫고, 회남으로 달려가 각 진지의 장군들을 속히 수춘으로 불러 우리를 구원하라 하시오 !" 하고 서둘러 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