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말자
♤ 날짜 : 2024년 2월 26일(월)
정도전 집터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 43 (수송동 146-2)
종로구청 민원실 입구 왼쪽 화단
표석 글 : 조선 개국공신(開國功臣)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이 살던집 터. 후일 사복시(司僕寺)·제용감(濟用監)이 이 자리에 들어섰고 일제 때에는 수송국민학교(壽松國民學校)가 세워졌었다.
(종로구 통합청사 공사로 표석을 찾을 수 없어 다음daum에서 갈무한 사진으로 대체)
태조 이성계를 도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성리학적 사상에 입각한 조선 건국 작업을 이끈 공신 중 한명으로 조선에서 그의 직위는 종1품 판삼사사에 머물렀으나 그를 신임한 이성계의 지지하에 권력을 지닌 총신이었다
그는 조선의 이념적 바탕을 마련하고 모든 체제를 정비하여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져놓았으며, 한양 시내의 전각과 거리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공신과 왕자들이 사적으로 보유한 사병을 혁파하려다가 갈등한다
그 뒤 요동 정벌을 계획하여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 갈등하던 중, 이방원이 정변을 일으킨 뒤 1398년 8월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의 군사들에게 피살되었다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정도전이 택한 집터는 종로구청 일대의 드넓은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4년밖에 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과 동시에 역적이 되어 그의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인문지리서인 ‘한경지략’ 기록에 따르면 ‘정도전의 집이 수진방(수송동)에 있었는데 지금 중학이 자리 잡은 서당 터는 정도전가의 서당 자리요, 지금 제용감 터는 정도전가의 안채 자리요, 사복시는 정도전가의 마궐 자리인데 모두 풍수설에 맞춰 지은 것’으로 묘사돼 있다
그만큼 넓은 집터를 하사 받아 누렸던 것이다
사망 후
♤ 안 채
조선시대 : 제용감
사사 관리서 (사찰및 승려관리 1904 폐지)
대한제국기 : 황성신문 3번째 사옥 1904.4~8ㆍ농상공학교 1904.8~1906 [공업전습소(서울공고)ㆍ수원농림학교(서우농대), 선린 상업학교로 분리]
1970 ~80 합동통신
1980 신축 현 서울지방 국세청
♤ 서 당
조선시대 : 중학 (중부학당1492 ~ 1894ㆍ폐지 )
(동십자각에서 청계천을 흐르던 중학천에서 생긴 지명)
일제시대 : 1922 경성수송공립학교 붉은벽돌로 건립 화재로 전소(1938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
1950 수송국민학교로 교명 변경( 한국전쟁중 미군병원)
1977 폐교
종로구청 : 1977~ 수송국민학교 건물 사용후 철거
2024 신청사 준공예정
서울시와 종로구는 서울소방재난본부, 종합방재센터, 종로소방서 등 소방합동청사와 종로구청, 종로구의회, 종로구보건소 등 종로구 행정복합청사를 2027년 말까지 완공 할 예정이다
♤ 마굿간
조선시대 : 사복시 (司僕寺ㆍ이방원 즉위 후,왕실 전용 마구간)1392~ 1865 (고종2)
일제시대 : 일본 군마대(軍馬隊)
서울시 경찰 기마대(1946년 종로구 수송 동에서 창설~1972년 성수동으로 이전
현이마( 利馬)빌딩ㆍ1983년~
♤ 정도전 사망지
한성부 송현방 남 은 사저 인근
(구 한국일보 사옥터, 케이트윈타워)
이방원의 '1차 왕자의 난' 때, 송현에서 정도전 측이 습격당한 송현지역은 남은의 첩이 살던곳으로 밤9시에서 10시경 이방원이 이끈 10여명에 의해 송현방 인근에서 피살되었다
육조거리에 이방원의 군대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남은,심효생 등도 함께 피살되었다(현 케이트윈타워)
♤ 도로 이름으로 남은 삼봉로(三峰路)
현재 종로구청이 있는 곳에서 정도전이 살았기 때문에, 정도전의 호인 삼봉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