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행역시(倒行逆施). 교수신문이 선정, 발표한 올해의 한자성어지요.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는 뜻이지요. 사마천이 쓴 ‘사기’에 실린 오자서(伍子胥)의 얘기지요. 초(楚)나라 출신 오자서는 부형(父兄)이 평왕에게 살해되자, 망명해 오(吳)왕 합려의 신하가 되지요. 우여곡절 끝에 조국을 함락시키고 종묘까지 불태웠지만,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를 죽인 평왕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 였지요. 오자서는 죽은 평왕에게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하는’ 굴묘편시(掘墓鞭屍) 형을 내리지요. 평왕의 무덤은 파헤쳐졌고, 시신은 300번 채찍질 당했지요. 잔혹한 복수를 질책하는 편지를 보낸 친구 신포서에게 오자서는 이런 말을 전했지요.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어서(吾日暮道遠)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지만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吾故倒行而逆施之)” 도행역시의 유래인데, 시대에 맞추려면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요. 주최 측은 ‘박근혜정부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후퇴시키는 정책과 인사를 반복하는 것을 우려하는 뜻’이라고 풀이했지요.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도 해마다 이맘때면 올해의 한자를 선정, 발표하지요. 내 나라와 다른 점은 교수 대신 국민이, 고차원적인 해석이 필요한 사자성어 대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문 한 글자를 선정하는 것이지 요. 중국과 일본 국민들이 올해 각각 선택한 한자는 ‘나아길 진(進)’과 ‘바퀴 륜(輪)’이지요. ‘진’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모아 세계 중심에 서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희망과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하네요. ‘륜’은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일본인들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고요. ▶지난해를 볼까요. 교수들은 ‘거세개탁’(擧世皆濁)’, 중국인은 ‘몽(夢)’, 일본인은 ‘금(金)’자를 각각 골랐지요. 내 나라 교수들 눈에는 ‘온 세상이 모두 탁해’(거세개탁) 보였던 2012년, 중국인들은 ‘꿈 꾸고’(몽), 일본인들은 ‘증세 걱정’(금)한 셈이지요. 같은 한자 문화권이고, 3국 모두 새로운 리더가 등장했으며, 구한 말에 비견될 정도로 불확실성이 커진 동(同)시대를 살고 있는데도 왜 해마다 이런 상반된 평가가 되풀이 되는 것일까요? ▶지식인들이 세밑에 그해를 반성해보자는 취지에서 고난도의 사자성어 몇 가지만 골라서 이런저런 살을 붙여 발표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지요. 하지만 묵은 해를 보내는 이맘때 꼭 한 번씩 초를 쳐야 희망찬 새해가 밝는 것일까요? 정치 실력이 내 나라보다 월등해서, 관료의 부패 정도가 덜 심해서, 중국·일본인들이 긍정적인 단어를 선택하는 것일까요? 우리도 이 참에 국민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식을 도입해보는 게 어떨까요? 내년 이맘때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올해의 한자를 소재로 이 코너를 채울 수 있게. |
첫댓글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잘 보고갑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