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보살을 상대한 법문
제1절
보살의 힘과 모든법이 깨끗함
1 어느 때에 문수사리보살은 사위성에서 걸식을 마치고 성밖으로 나와, 바리때를 땅에 놓고 마왕魔王 파순에게 말했다.
"너는 정인淨인이 되어 이 바리때를 들고 앞에 가자."
그때 파순은 그 바리때를 아무리 들려 해도 들지 못하고, 부끄러워서 문수보살께 말했다.
"내가 지금 땅에 있는 이 바리때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너는 큰 위신력을 성취하였는데, 어째서 땅에 놓인 이 조그마한 바리때를 들지 못하는가?"
그때 파순은 신력을 다해 보았지마는 바리때는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은 처음 보는 일이라 문수보살께 말했다.
"내 신력은 능히 이사타 산이라도 손에 들고 공중에 던질 수가 있는데, 지금 이 조그마한 바리때는 털끝만큼도 들 수 없습니다."
"큰 중생, 큰 사람이 큰 힘으로 가지는 바리때라, 너 파순으로서는 들지 못할 것이다."
라고 대답하고, 문수보살은 한 손가락으로 바리때를 집어 파순의 손에 놓아 주면서,
"파순아, 너는 정인이 되어 이 바리때를 들고 앞에 가자."
그때에, 파순은 힘을 다해 바리때를 들고 앞에 서서 갔다.
그때에, 자재천자自在天子는 만이천 천자에게 둘러싸여 문수사리께 와서 그 발에 예하고, 파순에게 말했다.
"너는 하인이 아닌데, 어째서 바리때를 들고 남의 앞에 서서 가는가?"
"나는 지금 이 힘 있는 사람과 다툴 수가 없다."
"파순아, 너도 큰 위신력을 성취하지 않았느냐?"
그때 파순은 문수보살의 법력에 눌리어 자연한 가운데 자기 입으로 이렇게 말했다.
"천자여, 우치한 힘은 마군의 힘이요, 혜명慧明한 힘은 보살의 힘이다. 교만한 힘은 마군의 힘이요, 대지혜의 힘은 보살의 힘이다. 모든 사견邪見의 힘은 마군의 힘이요, 공空ㆍ무상無常ㆍ무작無作의 힘은 보살의 힘이다. 모든 전도顚倒의 힘은 마군의 힘이요, 바로 진제眞諸의 힘은 보살의 힘이다. 아我와 아소我所의 힘은 마군의 힘이요, 대자비의 힘은 보살의 힘이다. 탐ㆍ진ㆍ치의 힘은 마군의 힘이요, 삼 해탈의 힘은 보살의 힘이다. 생사의 힘은 마군의 힘이요, 생도 없고 멸도 없고 모든 행行도 없는 무생인無生忍의 힘은 보살 힘이다."
2 어느 때에, 법의法意보살은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가령 여래께서 음ㆍ노ㆍ치를 설하신다면, 그것은 적막寂莫한 법이겠는가, 아니면 담박淡泊 청정한 법이겠는가?"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인자의 뜻에는 어떠한가? 음ㆍ노ㆍ치는 어디 있으며, 그것은 어디서 일어나는 것인가?"
법의, "염念이 망상을 일으키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문수, "상념想念은 어디로부터 일어나는가?"
법의, "습기習氣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문수, "습기는 어디로부터 일어나는가?"
법의, "아소我所와 비아소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문수, "아소와 비아소非我所는 어디로부터 일어나는가?"
법의, "몸을 탐하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문수, "몸을 탐하는 것은 다시 어디로부터 일어나는가?"
법의, "우리와 나에 머물기 때문이다."
문수, "나와 우리는 어디로부터 일어나는가?"
법의, "나와 우리는 주住하는 것도 볼 수 없고, 또한 주하는 곳도 없으며, 그렇다고 주처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시十방으로 두루 다니며 나와 우리를 구해도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다."
문수, "그렇다. 인자여, 시방에 나아가 법의 처소를 찾아도 얻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그 법의 문은 있지 아니한가?"
법의, "문門 없는 문이 있느니라."
문수, "그러므로 나는, 모든 법의 문은 적막이며, 설한 일체 법은 담박 문이어서 언제나 고요하고 청정하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