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리더십
안식중인 선교사의 주일은 평범하다. 전에는 열심히 이교회 저교회 찾아 다녔었다. 하지만 초청하지 않은 선교사의 방문을 반기는 교회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로는 일체의 방문을 금하게 된다.
오늘 아침 성령께서 내 마음에 두가지 리더십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신다. 기도는 사라지지않는다의 저자인 화양감리교회 최상훈목사의 1부예배 설교를 듣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사실 최목사의 이론은 전혀 새로울게 없다. 그의 체험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매우 새롭게 들려진다는 사실이다. 이미 70~80년대의 성령운동을 체험한 세대에서는 매우 평범한 체험이고 평범한 간증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희귀한 세대이다. 최목사는 주변의 동문들로 부터 주목을 받는다고 간증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열매 때문이다. 8년전 그가 처음 부임할 때에 비해 몇배로 교회가 성장을 했기 때문에 주변의 동문들이 주목을 하는 것이고, 교회부흥의 비결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유기성목사 퇴임식에서 축사하신 분은 처음 부임시 출석교인이 500명이었다고 하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1만여명의 교회로 성장했다고 치하하였다. 엄청난 부흥이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흥의 동력은 바로 목회자의 리더십이다.
조용기목사가 엄청난 성장을 일군 원동력은 스피치와 더불어 신유의 능력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신유의 능력이 차지하는 범위는 10%미만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방송을 통해 글로벌로 퍼져나갔고 와국에 나갈 때 외국목사들의 첫번째 질문이 조용기목사를 아느냐일 정도였다. 놀라운 리더십이다.
내가 유기성목사의 리더십에 주목하는데는 가장 성경적인 리더십이라고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선동하지 않는다. 선동은 포퓰리즘이다. 정치인들의 전유물이다. 주님은 결코 포퓰리즘의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평범하고 안정된 교회의 목사직을 사임하고, 내일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교회의 담임으로 부임한 유기성목사의 지도력은 "온전히 주님만 바라봄"의 가장 성경적인 리더십이고 목회학이었다. 그래서 그의 지도력은 귀중하고 후세에 길이 전달할만 하다.
하지만, 목사의 아들로 자라나 가난을 극복하며 기도의 훈련으로 다져진 최상훈목사의 리더십은 본인의 간증처럼 대학시절 시위주도를 할만큼 선동적인 본능이 숨겨진 리더십이다. 천만 다행인 것은 그가 오로지 주님만 바라봤다는 점이다.
대학 초기의 시위주도 경력때문에 군목시험 면접에서 불합격된 경험은 그를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할지를 안내했을 것이다. 최상훈의 리더십은 오직기도를 주창하면서도 그의 내면에 숨겨진 포퓰리즘적인 청중을 선동하는 힘이 있음을 숨길 수 없다.
만일 단순히 교회부흥만을 염두에 두고 "최상훈식 기도운동"에 매달리게 된다면 그는 멀지않아 실망하게 될 것이다. 최상훈목사는 굳이 기도운동이 아니어도, 마치 조용기목사가 자신의 설교를 5분이상 듣는자를 자기편 만드는 설득력과 같은 힘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선동과 성령의 역사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선동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후회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에는 결코 후회가 없다. 유기성목사의 지도력을 주목하는 이유는 평범하면서도 온유한 표현을 통해 전달되는 성령의 감화력이 그를 뒷받침한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예수동행과 기도는 두개의 기둥이고, 사람을 걸을수 있게 해주는 두다리의 역할과 같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개의 다리로 걷게 해주셨다. 예수동행과 기도는 성도를 걷게해주는 두개의 다리이다.
선동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이단사이비가 득세하고,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날로 추종자들을 결집시키는 이유는 선동에 능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분석한다면, 선동은 인본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