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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
작성자: 홍보팀장님 작성일시: 2022-02-26 15:28:50 조회: 1,168회 댓글: 0건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
대승계법은 크게 열 가지의 무거운 계가 있고, 마흔 여덟 가지의 가벼운 계가 있습니다. 10중대계 48경계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범망경입니다. 대승 범망경은 출가자나 재가자나 꼭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계가 없이 어떻게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으며 어떻게 지혜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계라는 것은 도를 깨치는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에도 계가 있습니다. 자연과 자연에도 계가 존재하고 인간과 인간, 가족 간에도 계가 존재합니다. 계의 도리를 어기면 안 됩니다. 계를 지킴으로 평화롭게 가정이 화합되고 뜻한 바를 이루게 해주는 거룩한 법입니다.
기초 입문교리를 배우고 마음이 청정해지면 오계를 받습니다. 그 다음에 공부를 더 하고 보살계를 받습니다. 그 보살계가 범망경 보살계입니다.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계를 수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 한다면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에게 가피를 입고 감응 받고자 하고, 내 몸을 지켜주시는 신장님이 도량에 강령하시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계를 지켜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첫 번째 계로 불살생(不殺生)을 말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불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니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생명의 본질은 부처님이나, 인간이나, 개나 소 돼지나, 지렁이나 한 티끌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각자 생명들이 본질은 같은데 구분되는 행위 즉, 지렁이는 지렁이의 행위가 있고, 인간은 인간의 행위가 있을 뿐이지 그 본질은 같은 거예요. 계율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불성(佛性)을 개발하려고 하지 마세요. ‘모든 생명의 본질은 똑같다.’ 부처님은 그것을 설하신 거예요. 반드시 불살생계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지역과 환경과 조건에 따라 불살생계에도 변화가 옵니다. 물고기를 잡는 어부나 푸줏간에 있는 분들이 어떻게 죽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불교에서도 그건 열어놨습니다.
어부나 푸줏간 주인이라 한다면 그분들은 생계를 유지하는 목적이 다르잖아요. 취미나 오락으로 장난삼아 죽인다면 그건 계를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이 달라져 지범개차(持犯開遮) 자비심으로 바라보게 되면 계도 열고 닫음이 생깁니다.
산에 올라가다가 꽃을 꺾어서 자기 거실에 가져다 놓으려고 하는 것도 계를 어기는 것입니다. 지나는 사람들이 그 꽃을 보면서 사색하고 냄새를 맡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할 수 기회를 자기 혼자만 보겠다고 꽃을 꺾어 가면 그건 계법을 어기는 거예요.
당나라 최고의 문장가라 칭하는 백낙천은 늘 나무 위에서 좌선을 하며 화두를 드는 도림선사의 이야기를 듣게되고, 도력을 확인하고 싶어 찾아갑니다.
백낙천이 도림선사에게 “왜 위태로운 곳에 앉아 있습니까?” 하니
“당신이 더 위태로운 곳에 있지 않소. 땅 위에 있어도 번뇌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그대가 더 위험합니다”라고 답합니다. 이 말을 들은 백낙천은 감탄하여 불교 대의를 말씀해 주십사 청하니
“모든 악은 짓지 말고 선한행위를 해라. 그러면 마음이 깨끗해질 것이다. 이것이 역대 부처님께서 설하신 불법이다.” 라고 도림선사는 설합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세 살 먹은 아이도 알아듣지만, 팔십 먹은 노인도 실천하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이 가르침이 일곱 부처님께서 계법을 지켜 부처가 되셨다는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입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
라 합니다.
계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어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계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계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지혜가 없고, 지혜가 없음은 마치 장난으로 던진 돌에 맞아죽는 개구리 같은 것입니다.
말도 마찬가지예요. 어청정계(語淸淨戒)라 하여 깨끗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도 장난으로 하면 상처받지요. 계정혜(戒定慧) 삼학이 완성 되면 장난으로 말 못합니다. 어청정계를 소지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자비심이나 지혜가 있는 분들이 지범개차를 방편삼아 범하고 열고 닫음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지혜도 없으면서 지범개차라를 방편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쓰면 이 또한 계를 어기는 것입니다. 정혜쌍수(定慧雙修)가 반야바라밀이 됐을 때 그때 지범개차를 쓰는 것입니다.
더러우면 걸레고 깨끗하면 수건이라는 말도 있지요. 더럽고 깨끗한 건 현상법으로 상황 따라 발생하는 것이지 본래 수건이다, 걸레다 하는 이름도 없는 것입니다.
스님들과 함께 차를 마시다가 찻물 떨어져 다건(茶巾)으로 닦았는데 그걸 왜 찻잔을 닦는 다건으로 닦느냐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 닦고 나서 빨면 도로 깨끗해지는 것이 다건인데 말이지요.
내 마음은 내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안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사물을 깨치는 순간 그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때에 내가 누군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계를 지키게 되고, 도(道)라는 것이 이렇게 쉬운 것임을 아는 순간 인생이 180도 바뀝니다. 그게 보살의 삶입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에게는 삶과 죽음도 사라집니다.
부처님한테 와서 무언가를 해달라고 하고, 병이 낫게 해달라 하는 것들은 열심히 정진 하면 인연 따라 오는 것입니다.
매주 일요일 주지스님의 범망경 강의가 있으니 나오셔서 공부를 많이 하세요. 자기도 모르는 새에 마음에 불이 밝혀집니다. 미운이나 사랑하는 이나 거기에 집착하거나 매달려 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