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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근무후 4반세기만의 제주 방문이라, 어릴 때 명절을 기다리던 기분이었다. 처서를 한 주일 앞두고 출발한 제주 올레길은, 바람많은 제주여름의 끝자락이라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했건만 실은 무더위와의 싸움이었다.
작년 1월 자매길인 후쿠오카 ,사가,구마모토 등 일본 규슈 올레길을 자율여행으로 다 녀온 뒤 1년반만이다.
큰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돌로 쌓은 좁고 긴 골목을 뜻하는 올레와, 길을 합쳐 올레길이라하며, 제주 올레길은 한라산을 축으로 동쪽의 성산.우도에서 출발, 서귀포를 거쳐 전체 해안(253km)을 걷다가 돌담길을 지나 오름을 오르기도하며, 큰 엉등 잘 꾸며진 경승지와 절벽길 또는 폭포를 만나며 한 바퀴 도는 26개 코스, 총 425km를 걷는 장거리 도보여행길이다.
반갑수다예.
첫째날(2020년8월18일) : 제1코스 시흥초-광치기해변(15.1km) 중 10km
제주공항에서 버스(101번)로 한시간 여를 달린 후, 환승(201번)한 다음 시흥초등학교 건너편에서 제주올레 1코스는 시작된다. 첫 스탬프 날인 후 말미오름 표지를 지나, 검은 돌담을 두른 밭을 만나며 가볍게 걷다가,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 긴 능선이 이어지는 말미오름정상(표고126)에서는 성산일출봉, 우도와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말미오름을 내려와 파란색 농장문을 통해 완만한 언덕에 잔디가 가득 덮인 아름다운 달오름에 도착한다. 오름이란 한라산의 산록에서부터 해안까지 개개의 분화를 갖고있는 368개의 기생화산(소형화산체)를 일컫는다. 방목하는 말들과 소들로 인해 “소똥,말똥이 잘도 하우다”(굉장히 많네요). 한라산과 성산포 들판도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염전을 만들 갯벌이 귀하기 때문에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었다는 제주시의 마지막 마을인 종다리의 “순희밥상”에서 고등어조림등으로 차려진 늦은 점심과, 충분한 휴식 끝에 또 다시 트레킹은 시작된다. 제주해안선을 한 바퀴도는 일주도로 교차로를 건너 종다리 옛소금 밭을 지나 본격적인 해안도로 도보의 시작이다. 성산 갑문다리를 지나 좌측의 성산항으로 가야할 길을 성산 일출봉 앞까지 직진하는 바람에 우도행 마지막 배를 타고 숙소에 도착 후, 시원한 회국수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둘째날: 1-1코스 섬속의 솜 우도올레 11.1km, 남은 1코스: 6km, 2코스: 16km 총 33km를 걷다
오늘 예정된 코스를 걷기 위해 새벽 6시 조금 지나 출발한다. 소가 드러누워 있는 모양이라는 우도는 제주올레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하우목동항에서 출발, 해안도로와 청진항을 지나 돌담위로 나즈막히 지붕을 덮고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길을 거쳐, 하고수동 해수욕장에 이른다. 부산명문출신 여사장이 운영하는 해물라면으로 해장을 한후, 파평윤씨 공원과 섬안쪽으로 이어지는 포장된 길과 흙길을 번갈아 걸어 출발점으로 되돌아와 성산항으로 이동한다.
제주도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오름으로, 그 모습이 거대한 성과 같다고 해서 성산, 일출을 볼 수 있어 일출봉이라 부르는 성산일출봉(179m)을 옆에 두고 그냥 지나가는 아쉬움은 컸지만, 또 다른 일출명소인 광치기 해변까지 가는길은 모래사장옆으로 산책로가 나란이 어어진다. 약 5km의 긴해안 모래밭 끝 광치기 해변에 들어서는 입구에 앞바르 터진목(앞바다 트인골목)을 거쳐간다. 이곳은 4.3항쟁 당시 성산읍 일대의 주민들이 집단학살을 당했던 가슴 아픈 역사가 서린 곳으로,기념비석 앞에서는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제2코스: 고.양.부 삼신의 혼인 이야기가 전해 지는길
광치기 해변에서 일주도로를 건너 2코스가 시작된다. 바다와 바다 사이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길이다. 물이 잔잔할 때면 성산일출봉의 그림자가 비춘다하여 찾아오는 오조리포구와,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오조리 양어장일대와, 내수면 둑방길 오른편의 바닷가 오름인 식산봉으로 오르는 길은, 목재계단으로 산책로가 잘 닦여있어 숲길을 즐기기에 좋다. 식산봉을 내려와 다시 둑방길과 물가를 걸어 동마트 전후의 마을길을 걷고나면 대수산봉이 나타난다. 호젓한 중산간길이 계속 이어진다. 대수산봉 정상에서 보면 1코스 시작점인 시흥리로부터 종점인 광치기 해변까지 제주동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길고 긴 중산길 밭길이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많아서 평탄하지만 쉽게 피곤해진다. 식수가 바닥나 4~5곳의 민가를 기웃거렸지만 인적이 드물다. 흔히들 제주에는 돌허고,보롬허고,비바리가 많아 마씀(돌하고 바람하고 처녀가 많습니다.)하지만 거지,대문,도둑 등 3무에다가 물도 바람도 없는 그야말로 5무로 부르면서 아스팔트길에 주저앉아 호흡을 가다듬을 수 밖에 없는 힘든 상황이었다. 혼인지에 얽힌 역사를 살펴본 다음, 한참을 걸은 후에야 나타난 카페에서 맥주와 음료로 목을 축인 다음, 은평포구의 숙소에 도착하여 본고장 흑돼지(500g, 48천원)로 저녁해결 후 잠자리에 든다. 땡볕속에 하루 33km를 걸은 평생 가장 힘든 강행군이었다.
폭삭 속앗수다예(참 수고하셨네요)
셋째날: 3코스 온평-표선올레 B코스 14.6km, 4코스 남원 신정리숙소까지 13km 총 28km
온평포구에서 시작해 온평숲길로 이어진다. 제주 특유의 검은 바위 해안을 바라보며,포구를 걷기 시작해 호젓한 산속에 있는 카페에서 아이스 바닐라라떼로 입호강도 하면서 도착한 신풍신천바다목장은, 3코스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이다.
망망한 바다의 물빛과 너른 목장의 풀빛이 어우려져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광대함과 신비로움을 느끼게한다. 곧이어 A코스로 약간 되돌아가 2001년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미술관인 김영갑 갤러리를 보려고 했으나 아쉽지만 시간상 포기하기로 의견을 모은 후, 검은 바위사이로 푸른 생명력이 가득한 바당(바다)올레를 지나 “배고픈 다리”에 다다른다. 바다로 연결되는 강의 꼬리에 있는 기둥없이 낸 다리다. 배고픈 다리를 경계로 하여 지금까지 검은바위 해변을 쭉 걸어왔다면 지금부터는 하얀 모래가 빛나는 그야말로 표선 백사장이다. 놀멍 쉬멍 걸엄수다.표선해수욕장 인근 자리돔 물회로 3코스를 마무리한다.
제4코스: 제주 해녀의 삶을 돌아보는 해녀 올레를 품은길 19km
4코스는 해안올레 절반, 오름과 중산간 올레로 절반을 걸으며 제주의 다양함을 맘껏 느낄 수 있는 코스다. 백사장을 벗어나면 너른 검은 돌밭과 풀밭이 이어진다. 당케포구를 지나 해안도로가 시작되는데, 바위와 돌 모양이 복잡하고, 바다 풍경에서 눈을떼기 힘들다. 자전거 타는 인구가 자꾸 늘어나 자전거도로를 걸을 때엔 주의를 요한다.
표선해녀의 집, 해병대 길, 7.5km에 이르는 토산 산책로를 지나 해안도로쪽으로 방향을 잡아 신정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다. 오늘도 28km의 더위속 행군이었다. 앞만 보고 걷다보니 후미와 호흡을 맞추라는 따끔한 충고를 받기도 하고, 발가락. 발바닥 물집과, 발목 통증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숙소 도착후 카톡을 보는데, 식구들도 제주올레길을 걷고 있다는 엉뚱한 소식에 반갑기도해 합류여부를 고민했어나, 유튜브로 제주 올레길을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반바지로 걷다보면 자각증세도 없이 아랫도리에 화상을 입는다는 친구조언도 있었는데, 양쪽 다리는 벌써 따끔거리는 정도에 이르렀다.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누워 잠을 자려는데, 바로옆 거실에서는 11시 반이 지나도록 노래 등으로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어 “투숙객 배려차원에서 12시까지는 파티를 끝내자”고 부탁했더니 잘 따라 주었다. 귀경후 아들 얘기로는 생면부지 청춘남녀들의 음주파티로 직접 만남을 주선하고, 또 이를 즐기는 문화가 유행이라고 한다.
넷째날 4코스: 7km,
5코스: 남원-쇠소깍 13.4km 강인한 제주의 동백나무 군락지
6코스: 쇠소깍-섶섬 5km 총 26Km
신정교차로에서 일주도로와 해변길을 걸어 가던 중, 곰탕과 상황버섯주로 원기를 회복한 후 인근 약국에서 비상약품을 추가로 구입하였다. 남은 4코스를 완주하고, 남원포구에서 5코스가 시작된다 남원 마을회관을 지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산책로로 뽑히는 큰엉(바닷가나 절벽등에 뚫린 동굴, 바위그늘) 경승지 산책로가 나온다. 2km에 걸친 산책로는 기암절벽이 성벽처럼 둘러서 있는 곳 위에 낸 길이다. 중간 즈음의 큰엉과,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속이 훤히 보일정도로 맑다. 양쪽 숲속사이로 끝부분에 보이는 한반도 지형은 신비할 따름이다.
곧 이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마을 울타리와 감귤밭 방풍림이 모두 키큰 동백나무로 이루어져있다. 17살에 이 마을에 시집온 할머니가 개간한 위미 동백숲군락지는 정말 장관이었다. 이어지는 해안로를 따라 바닷가와 마을길, 숲길과 바윗길을 번갈아 가며 도착한 공천표쉼터에서는, 모램찜질로도 좋기로 알려진 용천수에 발을 담가 피로를 푼후, 한참을 걸은 후 효돈촌의 쇠소깍다리를 건너 5코스 종점에 도착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면서 절경을 만들어내는 관광명소 쇠소깍과, 카약을 타는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한 후 6코스로 향한다.
6코스: 서귀포의 중심을 지나는 해안-도심올레 11km
해변 산책로를 걷기 시작하여 바다를 내려다보며 구불구불 걷는 길이다. 보목포구와 섶섬이 바라보이는 팬션에 짐을 풀고 제주 3대별미의 하나인 곰국 (빙떡,말고기)등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섯째날: 6코스 남은 8km와 천지연 폭포
6코스의 바닷길은 지루할 틈이 없이 계속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바다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국궁장과 서귀포 칼호텔 바닷길을 지나 높이 5m의 아담한 소정방폭포를 만난다. 소정방폭포를 지나 서쪽 절벽길을 계단으로 오르면 소라고등 모양의 성처럼 생신 독특한 건물인 “소라의 성”이 나타난다. 성바로 옆 야자나무와 열대식물들로 단장한 정원에서 스탬프 날인과 기념사진을 찍은후 정방폭포로 향하는 산책로도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랑받는 길이다.
함께 간 덕종친구는 어제밤 잠을 설쳐서 잠도 보충할 겸 저녁 비행기로 내려오는 식구들을 만나기 위해 헤어지고, 정방폭포 구경하기전 전복뚝배기로 호식을 한 후 진시황의 불로초 사연이 얽혀있는 서복전시관을 구경한 후 정방폭포로 향한다. 곧이어 나타난 정방폭포는 폭포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아시아에서 유일한 해안폭포로, 높이 20m, 폭 8m, 수심 5m의 못이 바다로 이어진다.
폭포 양쪽에는 보기드문 수성암괴가 섞인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멋진 광경을 구경한 후 나오면서 해녀할머니 3총사가 파는 멍게와 소주1000원 어치로 목을 축인 후, 이중섭 화가가 잠깐 머문 초가집과 이중섭거리를 구경한 후,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을 거쳐 제주올레 사무국이 있는 6코스 종점 제주 올레 여행자센터에 도착한다. 전날 제주에 확진자가 발생했다 치드라도 어려운 시국에 멀리서 왜 오셨나는 이중섭거리 해설사의 불친절이 꽤나 맘에 걸렸다.코스마다 패스포트에 3개의 스템트를 찍은 후 이곳에서 완주증을 받는다.
원래 18km의 7코스까지가 목표였으나 몸상태와 5일간의 누적된 피로도를 고려하여 다음으로 미루고, 인근 천지연 폭포를 구경하는 쪽으로 일정을 변경하였다. 높이22m,너비12m,수심20m로 계곡주변 난대림이 사철내내 푸르고, 기암절벽이 만들어낸 풍광 또한 대단했으며,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고 한다.
구제주로 이동 중 반가운 비가 내렸다. 공항 근처 숙소에 짐을 풀고, 그 옛날 자주 갔던 서부두의 물항식당 갈치구이로 옛맛을 찾아보려 했으나 집도,맛도,정도 많이 변해있었다. 다행히 마지막 숙소에서는 남녀비율이 맞지 않아 파티가 없는 바람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다음날 일찍 귀경한 5박6일의 일정이었다
첫날부터 발바닥, 발가락에 물집이 생겨 다소 불안한 출발이었으나, 기장시절의 솔깃한 얘기등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 덕종친구와, 총무역할까지 하면서도 부담없이 일정을 이끌어 준 희국친구의 지구력과 배려등 정말 대단하고도 고마웠다. 그리고 건강한 상태로 마무리 할 수 있어 행복했다. 덕분에 자리돔 물회,흙돼지,전북뚝배기,곰국 등 제주도의 맛집을 순례하는 즐거움과, 둘다 절주하는 바람에 혼자 막걸리를 거의 독차지하는 행운도 누렸다.
51박 하면서 둘레길,낚시,골프,한라산 등정등을 즐기는 중년들, 직장을 잠깐 그만두고 “한달 제주살기”로 일주도로를 달리는 바이크족 등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낭만이 아닌가 싶다.
리허설이 없는 우리네 인생처럼 처음가는 올레길도 리허설이 없긴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는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새롭고,힘이 났다. 가던 길을 멈출수는 없겠지요. 다만 여름은 가급적 피하고 싶고, 숙소는 3밀환경인 게스트하우스보다는 팬션이나 민박으로, 일정도 4박5일 정도가 좋겠다는 중론을 모았던 것도 큰 수확이다.
벌써 다가오는 가을, 겨울방학이 기다려 지네요.
올레길 담에 보게양.(다음에 봅시다)
1. 제1코스 출발점에서
2. 바다를 뒤로하고 잠깐 휴식
3.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4. 2코스 마지막, 일단 쉬고 보자.
5. 1코스 4.3 유적지, 숙연한 마음으로
6. 아이스크림(大)으로 더위도 식히면서
7. 5코스 큰엉에서의 한반도 지형
8. 정자에서 포즈도 취해보고
9. 쇠소깍에서 카약을 즐기는 청춘남녀
10. 정방폭포
11. 천지연 폭포
12. 소라의 성을 배경으로 (제주올레 사무국이 있던 자리)
13. 서부두의 물항식당 변한 모습
14. 해변가의 한상차림
첫댓글 지난주 제주올레 걷던 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네요 실감나는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뜨거운 열기에 고생도 했지만 태용 덕종 두 친구 덕분에 멋진 추억이 되었습니다
박식한 지식과 넘쳐 흐르는 기억력으로 제주올레길 기행문(?) 올리느라 수고했오.
폭염경보 속에 바람 한점 없고, 그늘도 없는 땡볕올레 걷느라 정말 다들 고생했오.
좋은 추억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나머지 올레길은 여름은 피합시다~~^^
식성도 비스무리하면서도 까다롭지 않으면서,맛있게 다 비우고 모든게 고마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