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을 못 깨치면 무덤을 파고 죽어라.”
무학이 어머니와 생이별한 곳은 삼국시대부터 피안도(彼岸島)로 불리며
당대 운수납자(雲水衲子)들이 무릉도원 선경으로 여기던 섬이었다.
무학은 이 섬 끄트머리에 있는 자그마한 무인도에 토굴을 파고 홀로 앉아 생사를
뛰어넘는 일념정진에 들어갔으며 백 일째 되던 날 삼경(三更)이 지날 무렵
유난히도 희고 밝은 달이 돌연 무서워졌다.
천지간이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 교교(皎皎)한 달밤에 불현듯 벌레가 기어 나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달이 바닷속으로 뚝 떨어졌다.
질풍노도 같은 한 생각이 스치면서 마음의 빗장이 열렸다.
'일수사견(一水四見)이로다.
똑같은 물이거늘 천인(天人)은 보석으로 장식된 연못으로 보고
축생(畜生)은 단지 먹는 물로 보며 아귀(餓鬼)는 피로보게 되고
물고기는 자신의 주처(住處)로 여김이 아니겠는가.
어찌 광대무변한 우주에 나 혼자뿐이랴.
오고 감이 없으니 가고 옴이 있을소냐.
무학은 활연대오했다.
신안(神眼)이 열려 땅속의 지기가 훤히 드러나 보이고 중생들의 음성을 듣거나
표정만 살피고도 미래를 꿰뚫었다.
이후 사람들은 피안도란 섬 이름을 무학이 ‘달을 보고 깨쳤다’해 간월도(看月島)라
고쳐 부르고 무학은 그 자리에 암자를 짓고 간월암(看月庵·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16-11)이라 했다.
무학은 이미 땅 기운이 쇠한 개경의 고려가 멸하고 한양 땅에 새 왕조가
개국될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무학은 태조 이성계가 고려 장군이던 때 만나 왕이 될 것을 예언한 바 있었고,
조선왕조 개국 후 왕사로 책봉돼서는 한양이 새 도읍지로 타당함을
풍수 지상(地相)으로 설득해 천도를 성사시켰다.
무학은 존경받는 국가 원로로서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임금의 자문에 응했으며,
오리무중의 권력투쟁 속에서도 오른 판단과 소신으로 국초의 조선이
대과 없이 활착 하도록 힘을 보탰다.
팔도를 다니며 명당 혈처를 잡아 줘 가난한 이들을 발복시키고
유능한 인재가 출세토록 적선했다.
말년에는 천보산 회암사(경기도 양주시 회천읍 회암동 산 8-1)와
간월암을 오가며 입멸을 준비했으며,
어느 해 섣달 초하루 손수 딴 간월도 굴을 소금에 절여 저녁 공양을
하고 있는데 남루한 걸승이 찾아와 물었다.
“그 굴은 살았는가, 죽었는가?” 무학이 노승을 보며 맞받았다.
“세 치나 긴 손톱을 자르는 게 살생인가 몸단장인가?”
“그렇다면 지금껏 무학이 걸을 때 그대의 발밑에서 밟혀 죽은 미물은 무엇들인가?”
무학은 깜짝 놀랐다. 고개 들어 노승을 찾으니 천수만 앞바다에 초승달만
외로이 떠 있었으니 “아하, 내가 갈 때가 됐구나!”
무학은 얼른 공양 수저를 내려놓고 간월암을 떠났다.
하루 두 번씩 바다가 육지로 변하는 섬이 마침 썰물 때여서 금세 나올 수 있었고
무학은 그 길로 금강산 금강암에 가 입적했다.
세수 79세로 법랍 62세였다
첫댓글 무학 대사 덕에 간월도가 되었군요~ 감사합니다~
네..간월도 한번 갔다와야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