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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계(4편) 와 도마복음 제24장/지혜 편》
음..
제 경우는 상담을 많이 받는 편인데요.
그리고 대부분은 마음의 괴로움과 고통 때문에 상담을 청해오는 경우가 많답니다.
처음 저에게 이런 상담을 청해오면 제가 제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있는요?
그것은 바로 상대가 수행자인지 아니면 일반 상담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상담을 한답니다.
그 이유는 일반 사람들은 그냥 위로 위주로 해주면서 일상생활을 상담해 주면 되지만
그러나 수행자들에게는 위로보다는 수행 쪽으로 상담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인데요.
왜냐하면 수행자들에게는 그 괴로움과 고통이 곧 소멸해야 할 화두이고 수행 대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말은 곧 괴로움이나 고통 등이 없으면 수행 대상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가 혜가처럼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하면 먼저 큰 복을 만났다고 축하를 해주는 편이랍니다.
왜냐하면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은 그것이 곧 수행 대상이 생겼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사바세계를 수행하기 좋은 곳으로 여긴답니다.
왜냐하면 정당히 행복도 있고 있고 적당한 시련도 있고 있고 또 적당한 괴로움과 고통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에게 있어서는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이 생기면 절대로 피해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답니다.
손오공처럼 당당하게 소멸을 시키셔야 한답니다.
그리고 수행자들에게는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이 크면 클수록 더 큰 축복이라고 여기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확철대오를 할 철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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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이나 수도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본성(불성/성령)을 깨닫고 증득(영접)을 해서 마음의 괴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랍니다.
그리고 지혜라는 것은 본성(불성/성령)을 깨닫고 증득(영접)을 하게 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성(불성/성령)이라는 놈은 지혜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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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우리 모두는
누구든지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도 없고 빠져나오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성인이 나와서 괴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제시하신 분들이 바로 부처님과 예수님이고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두 성인들이 방법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어리석고 우매해서 신줏단지 모시듯 신으로만 모실 줄 알았지 가르쳐 주는 방법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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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괴로움과 고통에도 두 종류가 있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그런 괴로움과 고통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 그런 괴로움과 고통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그 어떠한 괴로움이나 고통이라도 알려준 대로만 하면 그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본성(불성/성령)을 깨닫고 증득하는 방법인 것이고요.
부처님은 여기에 대해서 다른 방법은 없다고 말씀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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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본성(불성/성령)을 깨닫고 증득하거나 영접하지 못하면 절대로 그 어떠한 괴로움이나 고통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생(來生)에 또 내생(來生)까지도 영원히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기회가 왔을 때 뭐라도 하셔야 한다는 것이고요.
♡ㅡ♡
《법상계(제4편) 과 도마복음 제24장》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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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법상계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qAwZwYm3haE?si=TjOYQKJim4XxKzaM
(본문 내용)
«1» 불교
★의상조사법성계 (義湘祖師法性偈)★
<지난 내용>
(01편)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02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03편)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오늘 내용>
(04편)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
«2» 기독교
제목 : 도마복음 제24장
(아래 하단 숫자 : 14:45/ 54:36)
https://m.youtube.com/watch?v=8fLKlrmCvGI&pp=iggCQAE%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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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따르는 자들이 가로되, “당신이 계신 곳을 우리에게 보여주소서. 우리가 그곳을 찾아야 하겠나이다."
2. 예수께서 저희에게 가라사대, “귀가 있는 자들이여! 누구든지 들어라.
3. 빛의 사람 속에는 반드시 빛이 있나니, 그 빛은 온 세상을 비추나니라.
그것이 빛나지 아니하면 그것은 곧 어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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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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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장마철에 집안 단속 잘 하시고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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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오늘 의상대사의 말씀은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이라는 내용인데요.^^
이 내용은 결론부터 말하면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해서 경험해 보지 않고는(證智). .
말이나 글로 배워서(所知)는. .
도저히 이것을 알 수가 없는 그런 것이 이쪽 세계(非餘境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이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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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여기서 말하는 증지(證智)는 실제로 깨달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고
소지(所知)는 글이나 말을 듣고 머리로만 알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바리새인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여경(非餘境)이란 깨달음의 세계는 오직 스스로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그런 영역이며, 말이나 글로써 타인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고 : 중국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박스 안에 있는 [百度一下]라는 글자를 터치하세요.^^
★증지(證智) 뜻
https://mr.baidu.com/r/1ZFnfdA3Uqc?f=cp&rs=709798206&ruk=zNqEvNeX3cpVFJFo6Owrxw&u=2c393d19412c59ef
(해석 : 인식된 지혜'는 대승불교 용어로, 보살이 첫 번째 보살 단계(환희의 땅)에서 중도를 직접 깨달음으로써 얻는, 더럽혀지지 않고 바른 지혜를 가리킨다. 이 지혜는 근본적으로 번뇌와 인식적 장애를 모두 소멸시킨다. (백과사전 8)
핵심 정의: 보살이 깨달음을 얻어 현실의 참된 본질과 현상의 무아성을 직접 인식함으로써 얻는 순수한 지혜는 세속적인 지혜가 아니라 "세상을 초월한 최고의 지혜"에 속한다.
주요 특징: 번뇌가 없고(번뇌와 고통에서 자유롭고), 직접 인식하며(추론 없이 직접 확인하고 추론하며), 장애를 제거하는(무지와 두 가지 장애를 극복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전적 근거: 『반야바라밀경』(八君王宗未宗)에서는 "지혜를 얻는 것은 공짜이며 아무런 방해도 없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랑카바타라경』(浮宗未)에서는 지혜를 최고의 경지로 열거하고 있다.
설명: 흔히 '증명 + 지혜'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과는 달리, 이 용어는 종교적 깨달음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지칭하며, 일방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소지(所知) 뜻
https://mr.baidu.com/r/1ZFnUEag39C?f=cp&rs=242852050&ruk=zNqEvNeX3cpVFJFo6Owrxw&u=d85a32a37d626403
(해석 : 知道”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알려진 것” 또는 “이미 습득한 지식”입니다. 고전 중국어에서는 “아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도 자주 사용됩니다. 구체적인 용법은 문맥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아는 한, 이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는 "저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잘 모릅니다." 와 같이 사용합니다.
아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그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또는 "그녀는 명절마다 아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곤 했다"와 같이 사용합니다.
문자 "소"가 포함된 구조는 전형적인 "소+동사" 구조로, 명사구를 형성하며 일반적으로 문장에서 주어나 목적어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좌전』에는 "군주는 안다"라는 구절이 있고, 『의례』에는 "아는 사람에게는 모자를 건네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두 구절 모두 사물이나 지인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알려진 것'은 지혜가 아는 대상이며, '지혜'의 반대 개념이다.
불교에서 "지식"은 지식의 대상을 의미하며, 이는 "지혜"의 반대 개념으로, 인식되는 상태 또는 물질을 가리킵니다.
철학에서 '알 수 있는 것'이라는 용어는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칭할 수 있으며, 가장 보편적이고 완전한 범주입니다)
★비여경(非餘境) 뜻
https://mr.baidu.com/r/1ZFoNQEY0rm?f=cp&rs=3572056752&ruk=zNqEvNeX3cpVFJFo6Owrxw&u=3fb00e73ca0c7aee
(해석 : 비여경은 이 깨달음의 세계가 오직 스스로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며, 말이나 글로써 타인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선언합니다. ~ 문학 비평에서 "여운의 영역"은 "여운의 매력"이나 "여운의 풍미"와 유사하게, 작품의 예술적 구상이 넓고 의미로 가득 찬 상태를 가리키며, 작품의 생태적 구성 속에서 제약 없는 감성적인 영역을 강조합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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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오늘 내용은 그동안 제가 많이 했던 내용인데요.^^
그리고 오늘 내용은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에서. .
지(智)라는 한자와 지(知)라는 한자를 잘 구분하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이 두 글자들이 뜻은 둘 다 [지혜]를 뜻하는 글자이기는 하지만 정 반대되는 뜻을 가지고 있는 글자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는 본성(불성/성령)에서 나오는 지혜이고 또 하나는 머리에서 나오는 지혜랍니다.
그리고 지금 의상대사 말씀은 [지혜]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오늘 이야기에서는
지혜(智慧)라는 한문과 지혜(知慧)라는 한문의 앞 글자를 잘 보셔야 한답니다.
이 둘은 정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智) 자와 지(知) 자를 잘 구분해서 보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같은 입소리 문화는 자꾸 입에 붙는 대로만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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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지혜와 지식은 전혀 다른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경험을 통해 얻는 본성(불성/성령)의 영역이라면 (이것을 지혜(智慧)라 함)
지식은 스승에게 또는 책등이나 요즘은 유튜브 등을 통해 머리로 배우고 익혀서 아는 머리의 영역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이것을 지혜(知慧)라 함)
그리고 지혜(智慧)는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억지로 지혜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아주 묘하게 본성(불성/성령)으로부터 그때그때 스스로 일어나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랍니다.
마치 연꽃이 피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 하는 거랍니다.
아주 신기하고 묘하게 흙탕물 속에서도 연꽃이 피듯이 스스로 지혜가 일어난다는 뜻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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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지혜(智慧)는 본성(불성/성령)의 영역이고 지혜(知慧)나 지식(知識)은 머리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머리의 기능은 마치 컴퓨터 하드처럼 사물을 기억하고 기억한 것을 기억해 내고 분석하고 추리하는 기능은 있지만. .
알아차리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능은 순전히 본성(불성/성령)의 몫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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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내용은 지혜(知慧)나 지식(知識)의 영역으로는 도저히 지혜(智慧)의 영역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지금 의상 대사가 말하는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머리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본성(불성/성령)의 세계를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는 마음의 영역이고 또 하나는 머리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책으로만 거룩하게 떠들고 아는체하고 있는 바리새인를 야단치셨던 거랍니다.
불교 식으로 말하면 [증상만]이라는 것이고요.
머리의 지식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경험들을 기억하고 기억한 것을 기억해 내서 쓰는 것이라면 [=지식(知識)]
본성(불성/성령)은 이미 수십수백 억겁 동안 다생겁(多生劫)을 거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깨닫고 증득을 해서 쓰는 것을 이르는 말이랍니다.[=지혜(智慧)]
이것이 오늘 의상대사가 말하는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라는 것이고요.
그런데 머리가 아닌 본성(불성/성령)에서 나오는 지혜(智慧)는 성문사과(聲聞四果)에 따라 무궁무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를 두고 "전지전능하다"라고 하는 거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지전능한 지혜(智慧)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동안 각자가 수십수백 억겁 동안 다생겁(多生劫)을 거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이 얼마나 무궁무진하겠어요?
문제는 이런 것들을 꺼내서 쓰려면 깨닫고 증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얼마만큼 깨닫고 증득을 하느냐에 따라서 차등이 있다는 것이고요.
이러한 차등들을 "성문사과다"라 하는 것이고 "1지 보살이다" "10지 보살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깨닫고 증득을 하지 못하면 이러한 지혜를 꺼내서 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상대사도 지금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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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표현하면 비증지(非證智) 하면 소지(所知)라는 것이고,
소지(所知) 상태에서는 비여경(非餘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깨닫고 체험을 하지 못하고 글이나 말로만 듣고 알고 있으면 이것을 알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지금 의상대사가 말하고 있는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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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제 경우를 예로 들고 오늘 내용은 간단히 끝을 내겠습니다.^^
제 경우만 해도 단 1도 불교 공부를 안 했는데도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전생부터 이런 일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언어가 다르고 지금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지금 언어를 익혀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제 경우는 지금도 꾸준히 불교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나 성경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을 만나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저는 지식이 많이 부족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상대의 지식을 들으려고 노력을 한답니다.
왜냐하면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들은 저보고 이런 말을 할 때마다 그 이상 더 어떻게 공부를 많이 하느냐고 하지만 사실은 저는 지금도 많이 부족하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계속해서 저는 부처님이나 예수님 가르침들까지 새로운 것들을 제 마음과 비교를 해가면서 배우고 익혀서 제 것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남들을 가르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머리로 익힌 것을 저는 듣고 배워서 제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머리로 익히고 있는 동안 저는 제 마음과 비교를 해가면서 제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방금 의상대가 말하는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이라는 글자도 금방 이해를 했던 거랍니다.
지혜(智慧)는 본성(불성/성령)의 영역이기 때문에 깨닫고 증득을 하지 못하면 알 수가 없지만
지혜(知慧)나 지식(知識)은 머리의 영역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학교 공부처럼 보고 듣고 배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불교 근처에도 안 가본 경우이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도 지식(知識)을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제 경우는 불교 공부든 성경 공부든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지금도 불경이나 성경 책을 많이 보고 배운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찾아서 듣고 정보들을 습득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남들이 힘들게 평생 학교를 다니면서 머리로 배운 것들을 저는 공짜로 쉽게 듣고 따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마음과 비교를 해가면서 지금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보충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등을 계속해서 점검을 해 가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요.(진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제 경우는 불경이든 성경이든 보면 금방 파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제 경우는 제 마음(본성/불성/성령)을 이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랍니다.(이것이 깨달음)
그런데 여기서 제가 부족한 것은 제 경우는 단 한 번도 경전 공부를 머리로 해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제아무리 깨닫고 증득을 했다 하더라도 그 말이나 글자의 뜻을 모르면 거기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아무리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라 하더라도 영어나 한국어로 말한다면 이분들도 알아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분들은 영어나 한국어를 배운 적이 없는데요?
그러나 중간에서 영어나 한국어를 정당히 라도 해석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식도 필요하다는 것이고요.
이것이 지혜(智慧)와 지혜(知慧)와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들이 머리로 익힌 지식들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문제는 지식을 먼저 익히고 지혜(智慧)를 구하려고 하면 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상대사도 지금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이라 하셨던 거랍니다.
왜냐하면 제 이야기를 해서 뭐 합니다만 제 경우처럼 먼저 깨닫고 불경이든 성경이든 보고 배워야 진정으로 내 것이 되는 것이지 책이나 말을 통해 머리로만 자득 지식들을 늘려봐야 모두가 알음알이 들이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머리에 기억한 기능들은 모두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그러나 마음(본성/불성/성령)으로 깨닫고 증득이든 영접이든 한 상태에서 하는 공부들은 아무리 이 몸이 죽고 또 죽더라도 다생겁(多生劫)을 거쳐서 쌓이고 또 쌓여서 진정한 지혜(智慧)들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장된 것들을 깨닫고 꺼내서 쓰는 것이고요.
누구든지 다 이런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해보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오늘 의상대사도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하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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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해도 그렇답니다.
제 경우만 보더라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불교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그런 경우에 속하지만..
증지(證智)가 된 경우이기 때문에 여경(餘境/깨달음의 지혜)이 가능한 것이랍니다.
소지(所知)인 상태에서는 비여경(非餘境)이라는 것이고요.
쉽게 말해 머리로 익힌 것으로는 본성(불성/성령)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하루속히 먼저 깨달으셔야 한답니다.
불교든 기독교든 이것은 모두가 가능하답니다.(진실)
솔직히 말하면 제 경우는 평생을 노는 것만 좋아했지 공부 자체를 매우 싫어했던 경우랍니다.
더군다나 이런 공부는 믿지도 않았을뿐더러 거들떠보지도 않았었고요.
정말이랍니다.
지금은 국민학교 때 친구들도 이 글을 보고 있고 당시에 교회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나 전도사 형님도 이 글을 보고 있지만 정말이지 저라는 사람은 교회에 다녔던 이유도 같이 먹고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다녔던 것이지..
만약에 불교처럼 엄숙하고 어려운 이야기들만 하고 맨날 비빔밥에 여름에도 뜨거운 중국 차만 교회에서 주었다면..
저는 단 하루도 못 견디고 단군 신화에 나오는 호랑이처럼 토굴에서 뛰쳐나왔을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 성격인데요.(진실)
그러니 불교 쪽 어른들도 교회처럼 시스템을 바꿔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생들 마음은 일단은 입이 즐거워야 귀도 즐거운 법이고 귀가 즐거워야 눈도 즐거워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불교를 보십시오?
입이 즐겁기를 합니까? 아니면 귀가 즐겁기를 합니까? 아니면 눈이 즐겁기를 합니까?
모든 시스템들이 노인들에게만 맞춰져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누가 절에 가겠습니까?
맨날 비빔밥에 여름에도 뜨거운 중국차에 버럭버럭 소리만 지르는 절에 누가 오겠느냐 이겁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 경우는 지금과 같은 불교 쪽이 아닌 제 스스로 법화경이나 반야심경과 같은 순수한 경전들을 해석해 가면서 이 길을 찾아들어갔던 것이 저에게는 신의 한 수였다고 저는 보고 있는데요.
이럴 수 있었던 것도 제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자꾸 해서 뭐 합니다만 제 경우는 수십수백 억겁 동안 다생겁(多生劫)을 거쳐서 이쪽으로 배우고 익힌 것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인데요.
여러분들이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머리로 익힌 것들은 죽으면 끝이지만 마음으로 익힌 것들은 죽더라도 다음 내생(來生)에 계속해서 쌓인다는 것인데요.(진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랍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들도 이쪽으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는 것은 전생에 다들 이쪽으로 한 가닥씩 했다는 증거랍니다.
다만 시절 운을 아직 못 만나서 그런 것이지요.(진실)
여러분들 그것 아세요?
깨달은 사람들은 다음 생에도 또 금방 깨달을 것 같지요?
아니랍니다.
저만해도 몇십 겁을 거쳐서 간신히 이 법을 다시 만나서 지금 다시 깨닫고 이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랍니다.(진실)
그래서 저도 물들어 왔을 때 노를 저으려고 만사를 제쳐놓고 여기에 매달리는 것이고요.
제 경우는 지금 돈을 많이 벌거나 하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이번에 죽으면 또 언제 이법을 만나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부처님이나 예수님 앞으로 더 나아갈 수가 있을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여러분들도 매달려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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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얼마 안 되는 어린아이들이 피아노나 외국어나 수학을 어른들 보다 더 잘하는 아이들도 전생부터 해오던 지혜(智慧)랍니다.
현생에서 배워서 아는 지혜(知慧)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직 뇌도 덜 발달된 아이들이 머리를 굴려서 이런 것을 하겠어요?
그러나 이런 아이들도 14세쯤이 되면 본성(불성/성령)이 닫혀서 일반 사람들과 같아지는 것이고요.
분명한 것은 여러분들도 깨닫고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하루속히 깨달아서 소지비여경(所知非餘境) 하지 마시고,
증지여경(證智餘境)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제가 안내할 것이니 저를 믿고 진지하게 따라 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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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불교 이야기는 이쯤하고 기독교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도마복음 제24장 내용은?
[1. 그의 따르는 자들이 가로되, “당신이 계신 곳을 우리에게 보여주소서. 우리가 그곳을 찾아야 하겠나이다."
2. 예수께서 저희에게 가라사대, “귀가 있는 자들이여! 누구든지 들어라.
3. 빛의 사람 속에는 반드시 빛이 있나니, 그 빛은 온 세상을 비추나니라.
그것이 빛나지 아니하면 그것은 곧 어둠이니라."]
라는 내용인데요.
불교 쪽에서 오래 공부하신 분들은 이 내용도 금방 이해가 가실 줄을 아는데요.
불교에서는 예수님이 지금 말하는 [빛]을 지혜광명(智慧光明) 또는 지혜광불(智慧光佛)이라고도 한답니다.
쉽게 말해 성령을 깨닫고 영접을 하게 되면 그 자체가 [빛]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깨닫고 영접을 하지 못하면 그 자체가 어둠이라는 것이고요.
그리고 오늘 예수님 말씀은 완전히 부처님 말씀과 같은 내용이랍니다.
불교에서는 오늘 예수님 말씀을 다양하게 표현을 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캄캄한 밤길에 청사초롱을 들고 길을 가는 비유나
한 스님이 제자에게 호롱 불을 켜보라고 하고 입으로 "후~!" 불어서 꺼트리는 비유나
맹인이 맹인들을 길 안내하고 있다는 비유나
얼마 전에 경허스님이 말씀하신 명암색공(明暗色空)이라고 하신 말씀이나
모두가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신 [밝음과 어둠] [흑과 백]을 비유로..
깨달음과 그렇지 못한 것을 비유한 내용이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지금?
["빛의 사람 속에는 반드시 빛이 있나니, 그 빛은 온 세상을 비추나니라.
그것이 빛나지 아니하면 그것은 곧 어둠이니라."]
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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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내용을 보고 다시 한번 예수님에게 진심으로 감탄에 또 감탄을 했는데요.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찬양에 또 찬양을 하면서 "아멘..!" 했답니다.
왜냐하면?
사람 속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안에는 반듯이 성령(불성)의 빛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빛나지 아니하면 그것은 곧 어둠이니라는 뜻은?
우리 안에 있는 성령(불성)을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곧 어둠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십이연기법(十二支緣起法)으로 옮기면 첫 번째에 해당하는 무명(無明)이라는 것이고요.
(보충 설명)
여기에서 말하는 [빛]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광명]이나 [지혜광불]이나 무명의 반대인 [밝을 : 명/明] 같은 뜻이 무슨 뜻이냐 하면요?
위에서 의상대사가 말씀하신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한데요.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어둠 속에서도 밝은 빛과 같이 지혜가 마음(성령/불성/본성)에서 스스로 일어난다는 뜻이랍니다.
왜 살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많이 생기잖아요?
어둠과 같은 괴롭고 힘든 일들도 많이 생기고요.
이럴 때마다 깨닫고 증득을 한 사람들에게는 밝은 빛과 같이 스스로 마음으로부터 지혜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머리의 지식으로만 살아가잖아요?
그러나 성령(불성)을 깨닫고 영접한 사람들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일어남으로 살아가게 되면 절대로 괴로움이나 고통 속으로 빠져들지를 안는다는 것인데요.
그 이유는 성령(불성)이라는 놈은 괴로움이나 고통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 몸을 그런 쪽으로 몰고 가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불성)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지금 일어남이?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본성(불성/마음)에서 일어난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이고요.
일반 사람들은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다 보니까 몸(머리)으로만 살아가는 거랍니다.
이것을 구분할 줄 아는 깨달은 사람들은 몸(생각)이 아닌 본성(불성)으로 살아가는 것이고요.
제 경우도 엄청 시험을 많이 해봤는데요.
무슨 일이 생기면 일부러 시험 삼아 머리로도 해보고 마음으로도 해보고요.
그런데 성령(불성)의 마음은 단 한 번도 실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만약에 세상이 혼탁하거나 괴로움과 고통 속에 빠져있잖아요?
그러면 부처님처럼 열반(자살)에나 들어야겠다는 경우도 많답니다.
왜냐하면 몸(오온)이 괴롭거나 고통 속에 휩싸여 있으면 아무리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라 하더라도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방법이 없기 때문에 몸을 벗으려고 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을 때 마태복음 27장 46절에서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라고 하셨던 것이고요.
왜냐하면 성령(불성)을 깨닫고 영접(증득) 한 사람 입장에서는 이 몸이 있는 이상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아무리 깨닫고 증득한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송곳으로 옆구리를 찔러대면 "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예수님 같은 경우는 마태복음 27장 38절~46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수많은 모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모자라 창으로 옆구리를 피가 철철 흐르도록 찔러 대니 당연히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과 함께 처하게 되니까 그럴 수 박에요?
여기서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은?
이 몸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늘 내 주(主/자신) 안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고 하셨던 것이고요.
쉽게 말해 의식을 밖이 아니라 늘 내 안으로 돌리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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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장마철에 집 관리도 잘 하시고 건강관리도 잘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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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긴 글 잘 읽었습니다.
님께서는 불성과 성령이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이 같다는 삼위일체 교리를 말합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느님은 스스로를 창조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질투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하느님이 창조주라면 사탄도 창조했겠군요?
왜 사탄을 창조했나요? 사사건건 자기를 훼방하는 존재인데요?
그래놓고 사탄을 숭배한다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버립니다.
구약성경 전체가 피바다입니다.
하느님의 설계라구요? 왜 창조해놓고 죽입니까?
전지전능하다면 사탄을 왜 그대로 둡니까?
불성은 하느님에게도 있고, 사탄에게도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들에게도 동일하게 있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눈이 겨자씨를 보면 마음도 겨자씨가 되고, 우주를 보면 마음도 우주처럼 됩니다. 이런 작용들의 근본이 바로 불성입니다. 거룩한 영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음. .
제가 먼저 님에게 궁금한 것은 님께서는 불교든 기독교든 책이나 말을 듣고 이 공부를 하시는 분인지?
아니면 수행을 통해서 공부를 하시는 분인지 궁금하군요?^^
어느 쪽이든 질문을 주셨으니 간단히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아셔야 할 것은 불경이든 성경이든 2000년 전에 언어로 전해진 책이랍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대부분 상형문자가 많이 남아 있던 시기랍니다.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은 문맹률도 거의 다였답니다.
우리도 문맹률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 불과 2~30년도 안된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에 가면 산신령이 있고, 변소에 가면 달걀귀신이 있다고 하면 믿던 그런 시대가 우리도 바로 얼마 전 일인데 2000년 전 사람들에게 이런 것을 전하려니 어떻겠습니까?
지금 사람도 잘 못 알아듣는 이런 내용들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전하려니 어떻겠느냐 이 말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설명을 하듯 극락이니, 천국이니, 악마니, 마구니니, 사탄이니 하는 비유로 설명을 해줘야 그나마 알아듣지 않겠어요?
그런 내용들을 아직도 지금 님께서는 믿고 계시면 어떡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님께서 보내주신 내용들을 한번 보십시오?
창조주니? 사탄이니? 숭배니? 겨자 씨니? 영혼이니?
하는 내용들이 모두 그 당시에 어린아이들에게 설명하듯 했던 내용들을 아직도 그렇게 알아듣고 있으시면 어쩌자는 것입니다?
(龍華)이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것으로 보아선 불교 쪽 분인 것은 맞는데 혹 출가자라면 지금이라도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창조주니? 사탄이니? 숭배니? 겨자 씨니? 영혼이니? 하는 것에 의식이 가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고귀한 출가자라 할 수가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마시고 선방으로 들어가셔야 한답니다.
괜히 지금처럼 쓸데없는 알음알이 들만 잔뜩 들고 있지 마시고요.
그리고 혹 재가자 시라면 선방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필요하시면 단 몇 달이라도 먹고 자면서 오산이나 문경 쪽으로 수행을 전문으로 하시는 훈륭한 스님을 소개해드릴 수도 있고요.
필요하시면 저도 옆에서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저의 이런 답변에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 꼭 선방으로 들어가시면 다시 문자를 주십시오.
왜냐하면 이것은 그렇게 책으로 알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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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전형적인 대응이군요.
그럼 묻겠습니다.
영혼이 최초에 작동할 때 어떻게 작동합니까?
네 알겠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이번 주 월요일 선문염송 편에서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답도 못하시는 분이 무슨...
좀 기다리세요.^^
아주 자세하게 님이 현재 처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드릴 것이니..^^
아 그리고 이 시간에 문자를 주는 것으로 보아 스님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는다면 솔직히 법명을 밝혀보시지요?
그래야 그 수준에 맞게 서로 대화가..?
뭘 기다리겠습니까? 님의 밑천은 다 드러났는데.
그리고 님같은 분들은 대면해 토론하자고 하면 절대 안하죠.
그저 숨어서 키보드만 두드릴 뿐...
그래그래 알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님이 말하는 영혼을 알고 싶다면 어제든..^^
아무튼 이번 주를 기대해 보십시오.^^🙏🏻
Al에게 열심히 물어 보세요.
참... 고생하십니다.
사는게 뭔지...
그럼 지금 답해 보십시요.
대반열반경에서 부처님께서 예언하신 것이 하니도 틀리지 않습니다.
마지막 댓글이니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나모 바아바뎨 사르바 불타 송아다야 타타아다야 아르하뎨 샴막삼못다야"
어허..
그곳에는 마지막은 없느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