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 권남희 옮김
예문사
2015년 10월 25일 출간
죽음과 삶, 빛과 어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작가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빛을 발한 소설!
사랑과 죽음의 안타까운 미스터리를 다룬《엔젤》은《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로 제36회 올 요미모노추리신인상을
수상하고《4teen》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이시다 이라의 미스터리 장편소설이다. 눈을 떴을 때, 이미 죽은 채 영혼으로 깨어난 투자회사의
젊은 오너 가케이 준이치. 영혼으로 탄생한 순간 처음 만난 것은 숲속에 자신을 매장하고 있는 의문의 남자들이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되어
불행한 유년과 사랑이 없던 청년기를 더듬어 가던 영혼의 기억은 정확히 죽기 전 2년에서 멈춰 버린다.
《엔젤》은 죽음의 미스터리를
작가만의 색채를 덧입혀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사후의 세계에서 영혼으로 존재하는 것들에게 각자의 사연을 만들어주고, 또 그들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독특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생을 반추하는 영혼의 시선을 독자들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만의 세계로
녹아드는 것이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작가의 상상도 독자들이 의구심을 품지 않도록 하는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전개는 이시다 이라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다.
준이치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어두운 성격으로 성장해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인물이다. 불현듯 깨달아버린 자신의
죽음을 미처 받아들이기도 전에 영혼으로 존재하게 된 남자. 사람의 따뜻한 정이라곤 전혀 느껴보지 못한 준이치가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고 범인에게
복수하려는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야기의 교차점에서 혼란은 극에 달하고
주인공에게 남은 것은 ‘죽은 삶’마저
위협하는 잔혹한 진실
이제 모든 것은 그의 선택에 달렸다!
첫 번째 탄생의 순간, 출생과 함께 어머니를 잃고,
악마라고 불리는 냉철한 기업사냥꾼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주인공. 냉철한 아버지는 성인이 된 준이치를 전혀 인정해 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새로
맞은 후처의 자식에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준이치는 10억 엔을 대가로 절연할 것을 요구당한다. 1인 투자회사를 운영하며 젊은 오너로 성공했지만
그의 삶에 온기라곤 전혀 없다. 집주인이 사라진 것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의 기척이 애초에 느껴지지 않는 집 안, 소식을 궁금해하는 친구도,
심지어 아버지도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이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는, 투명인간 같은 삶을 살아온 준이치였다.
두 번째 탄생의
순간 자신의 시체가 매장당하는 장면을 조우하며 세상에 눈을 뜬 준이치. 플래시백을 마치고도 다 알아내지 못한 자신의 죽음과 관련한 미스터리.
준이치는 결국 자신이 살해당한 이유와 2년간의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을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맨 처음으로 할 일은 그동안의 투자금의
흐름을 보는 것. 사무실로 돌아와 전원도 꺼지지 않은 채 돌아가는 컴퓨터를 열어 투자 기록을 확인하다 미심쩍은 투자처를 하나하나 찾아가 확인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다 발견한 영화 스튜디오에서 우연히 알게 된 아름다운 여성 후미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여러 곳에서 줄기차게 들려오는 경고는 준이치의 죽음에 대해 더 이상 알려 하지 말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준이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는 것일까. 자신의 생명을 앗아간 어두운 음모를 추적하는 가운데 사랑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힘껏 날개를 펴는 준이치. 하지만
그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오히려 후미오는 위험해진다. 준이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면서 사랑하는 후미오를 지킬 수 있을까?
사회에서 소외된 한 인간이 죽은 뒤에나마 마음껏 누리는 삶을 통해
생과 사의 비밀을 풀어주는 통쾌한 미스터리!
이 소설은 사후의 삶을 비로소 마음껏 누리는 준이치가 살아 있을 때에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진짜 친구, 즐거웠던 일들,
자신을 향한 사랑을 느끼고 점차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간 플래시백이 보여준
그의 삶은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준이치가 직접 찾아 헤맨 진실 저편에는 폭력적인 플래시백이 미처 말해주지 않은 온기 가득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준이치는 자신의 ‘죽음’의 비밀을 알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저렇게 살아왔는지,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그저 그런
투명인간처럼 살아왔는지를 스스로 알아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엔젤》에도 어김없이
일본의 가라앉는 경제를 상징하는 배경이 등장한다. 이 배경을 기반으로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부여되는
동시에 추리의 실마리가 독자에게 제공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영혼’이라는 신비적인 소재를 주인공으로 삼았으면서도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것 같은 오컬트적 추리가 아니라 투자금과 재무제표를 확인해 가며 과학적 추론의 전개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속성으로 전개돼 모든 것의 실마리가 다 공개된 뒤에도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호기심 많은 영혼의 흐름을 따라, 지저분하게 얽힌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은 경쾌하다. 다행히도 작가는 독자를 놀라게 하는 결말이 아니라 독자들이 바라는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아마도
사람이라면 이런 삶을 바라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이시다 이라의 마무리는 깔끔 그 자체다.《엔젤》을 읽으면서 외롭게
자신의 운명에 저항해 싸우고 있는 천사와 함께 복수를 마친 독자들은, 장을 덮는 순간 개운한 뒷맛이 남을 것이다.
-작품
해설 외
괴물의 논리가 아닌 악인의 논리. 작가는 그것을 대충 넘기지 않는다. 악인의 목숨이라고 해서 절대 하찮게 다루지
않는다. 그처럼 모든 살아 있는 것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또한 이시다 문학의 특징이 아닐까. 그런 온화하고 유연한 마음은 그래서 이렇게 마음을
위로해 주는 생사관(生死觀)도 낳는다.
정말로 그런 사후 생이 있다면 좋을 텐데 ……. 유령이라는 존재를 일절 믿지 않았는데, 이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내가 있었다. 먼저 이 세상에서 여행을 떠난 죽은 자들을 위해서, 언젠가 죽은 자가 될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는 내가 있었다. 경사스럽게도 사후 세계에 들어간 날에는 누군가를 위해서 1미터짜리 젓가락을 사용해 평온하게 [죽음
속의 ‘생’]을 살고 싶다고. ― 도요자키 유미, ‘작품 해설’ 중에서
아마존에서 ‘딱히 읽고 싶은 책은 없지만, 뭐라도 읽고
싶은데 뭘 읽어야 할지 모를 때, 이시다 이라의 책을 선택하면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하는 서평을 보았다. 절대 공감. 독자의 취향이 다르니 빅
재미를 주지 않을 수는 있어도, 어느 소설을 읽든 기본 이상의 읽는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그만큼 스토리텔링이 훌륭한 작가이기 때문인 듯.
그래서 이시다 이라의 소설은 만날 때마다 반갑다. ― 권남희,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