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초 (伐草)
홍 재 석
일 년 열두 달 24절기 중에서 입추 말복이 지나면 처서(處暑)의 절기가 있다. 요즈음 같이 짜증스러운 무더위가 물러간다는 절기다. 온 여름 내내 무성하게 자라던 풀들도 성장을 멈추고 시원한 바람이 부어오는 시기다.
이때 우리들은 대대로 이어온 벌초(伐草)를 지혜롭게 해왔다. 처서가 지나고 추석 전까지 조상님들의 무덤에 억세게 자란 풀을 말끔히 깎아 드리는 것이다.
벌초는 우리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면서 나의 뿌리인 조상님에 대한 고마운 보은의 정과 은덕을 기리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아닌가.
지난날의 추억도 떠올리며 살아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심을 일깨우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손 된 도리를 다하는 행사 이였다.
이 같은 아름다운 풍습도 변천하는 사회와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현대인의 사고방식으로 점차 쇠퇴되고 있지 않는가. 이 현실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심정은 어디인지 모르게 서운한 감이 들고 아쉬움과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께서는 벌초를 할 때는 꼭 저를 대리고 가셨다.
매년 반복해서 조상님의 산소에 대하여 몇 대조이시며, 신분과 관직, 심지여 묘 자리의 형국까지 소상히 알러 주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장손으로서 책임감을 심어주신 깊은 뜻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숙연한 마음이 들고 할아버지의 옛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지금의 나는 손자들과 이와 같은 대화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세월의 탓으로만 돌리기가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이다.
벌초를 매년 하지 아니하거나 자주 성묘를 가지 아니하면 실존하거나 남의 무덤을 벌초하는 사례가 종종 있지 않는가. 어느 산이고 가다보면 그 옛날 영웅호걸들의 임자 없이 방치한 무덤이 얼마나 많이 보이는가.
이와 같은 모습은 후손이 아주 없거나 무관심으로 실존한 무덤이기에 남겨진 슬픈 사연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속담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네 인생도 몇 수십 년 후에는 저 같은 처량한 모습이 아니 된다고 그 누가 장담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허무감을 느낀다.
무연분묘에 관한 아름다운 사실의 이야기가 있다. 상주 - 청주 간 고속도로공사 때다. 문의 남이 척산 간에 산재한 많은 무연분묘의 처리문제다.
17대로 500여 년 동안 살아온 집촌으로서 나의 종친이신 척산 문중은 그 분묘 중에는 실존된 친척의 조상도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사돈의 8촌도 있을 것이므로 종중에서는 그 분묘들을 모시겠다고 했다. 고속도로 측에서도 승낙이 되여 한곳에 큰 분묘를 만들고 위령 비를 세우고 세 일제를 올리고 있다. 매년 종중에서 벌초도 하고 이장비의 잔액을 저축하여 향후 대대손손 관리토록 한 처사는 귀감이 되는 일이다.
30여년 전만해도 교통의 불편과 예취기가 보급되지 못한 시기는 낫으로 벌초를 하였기에 몹시 힘겨웠다. 벌초를 하다가 낫에 손가락을 베이는 일은 다반사 이였다. 참나무 잎에 잘못 스치면 풀쐐기에 쏘여 따갑고 가려워서 심난하기도 했다.
고향에서 함께 사시던 일가친척들은 모두 객지로 가시고 종손인 나 혼자만이 고향땅과 산소를 지키고 보살피는 형편이 되었다. 모두 19기나 되는 산소 관리는 나의 친조상만 할 수 없고 종손으로서의 의무감과 자손 된 도리로 여기고 말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드렸다. 20여 년간이나 공휴일과 휴가도 벌초하는데 소모한 때가 아득하고 서운하지만 그래도 그 때가 그리워진다.
벌초를 하다가 힘겨우면 짙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면서 높은 하늘을 처다 본다. 파란 쪽빛 하늘에는 하얗게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을 보면 감회가 새롭고 희망도 피어 보지만 처량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아내가 함께 와서 갈퀴질을 해놓은 말끔한 산소를 바라보면 보람과 자긍심으로 기쁜 마음과 힘이 생겼다. 한번은 집 근처의 산소에서 벌초를 하다가 벌집을 건드려 아내가 벌에 쏘였다. 금방 눈이 침침하고 코에서 단내가 난단다. 벌침을 뽑고 응급처치를 한 후 양봉 때문에 사다놓은 “항히스타민정”을 한 알 먹고 진정이 되었다. 이약은 별 독 해소 약으로 상비약이므로 여름철 몇 알 사다가 비치해도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이 늘 벌초를 하다가 한번은 공무상 시간이 없어 이웃 친지에게 부탁하여 벌초 대행을 시키고 수고비를 보통 인부임의 3배를 드렸지만 아깝지 않았다. 그 후 부터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매년 10여 년간 그분이 벌초를 해주었기에 늘 고맙게 여기고 지냈다. 요즈음은 시골 단위농협에서 벌초대행을 해주고 수고비를 받고 있지 않는가.
예취기가 보급되고 대소간 집안의 조카들도 장성하여 지금은 하루 날을 정하고 모여 공동 작업으로 벌초를 하고 있다. 푸짐한 음식도 마련하여 함께 먹고 우애도 다지며 즐거운 벌초를 하니 마음이 흐뭇하다. 벌초는 늘 조심을 해야 하고 예취기도 얼굴에 망이 부착된 안전장구를 가추고 차건 차건이 해야만 풀도 잘 깎고 기계도 무리가 없다. 나는 지금도 종종 어머님의 산소의 벌초를 할 때면 옛 어머니 생각에 잠기고 아쉬운 마음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느낀다. 이제 황혼의 길을 홀로 걷는 나의 모습을 뒤 돌아 보기도 한다.
600년이 넘도록 일부로 벌초를 하지 않는 왕릉이 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建元陵)은 왕명에 의해서 봉분의 풀이 갈대로 되어있다. 갈대는 가을에 깎으면 말라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보아도 풀이 수북한 모습은 맹호출림형국 이라지만 위용이 없고 서글퍼 보인다.
벌초를 아니 한다고 죽은 조상이 야단을 치는 것도 아니지만 천륜의 도리로 벌초를 하는 것이 아닌가.
단순한 풀을 깎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나의 뿌리를 가꾸는 기쁨과 효의마음 가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미풍양속을 되살리며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벌초를 한다면 천상의 조상님들도 한결 편안하게 계시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첫댓글 " 벌초를 아니 한다고 죽은 조상이 야단을 치는 것도 아니지만 천륜의 도리로 벌초를 하는 것이 아닌가.
단순한 풀을 깎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나의 뿌리를 가꾸는 기쁘고 효의마음 가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
조상님에 대한 자손들의 도리를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19기나 되는 산소를 20년간 선생님 혼자서 관리 하시다니요...대단 하십니다.선생님. 젊은 날 공휴일과 휴가를 조상님 벌초 하는걸로 다 쓰셨다니...요즘세상에서는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정말 특이할정도로 귀한일을 하셨습니다 선생님. 무더운 여름을 건강 하게 잘 나시기를 기원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단순한 풀을 깎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나의 뿌리를 가꾸는 기쁘고 효의마음 가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지난날의 추억도 떠올리며 살아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심을 일깨우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손 된 도리를 다하는 행사 이였다." 귀감이 되는 귀한글 잘 읽고 갑니다. 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고 건필하소서.
제가 글을 읽고 있는지 영상을 보고 있는지 순간 착각을 했습니다.
가을의 문 앞에선 자연의 아름다움과 선조들에 대하여 예와 정성을
다 하시는 모습에서 큰 배움을 얻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홍재석 선생님 대단 하십니다. 감동적인 글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바래봅니다. 많이 배우고 가며 감사드립니다.
나는 지금도 종종 어머님의 산소의 벌초를 할 때면 옛 어머니 생각에 잠기고 아쉬운 마음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느낀다. 이제 황혼의 길을 홀로 걷는 나의 모습을 뒤 돌아 보기도 한다. 감동적인 글 잘읽었습니다. 무더위 건강에 유념하시고 건필하십시요.
여러 선생님들의 글을 감사합니다 무더운 여름에 건승하시고 가을 학기에 만납시다.
벌초에 대한 생각과 여러가지 참고가 될 좋은 의견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전에는 교통도 불편하고 하여 고향 친지들께 부탁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조상님들 벌초하러 가는 날은 곧 형제, 가족들 소풍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벌초할 때가 되었네요. 조상님들을 섬기시는 선생님 효손이십니다. 귀감이 되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선조의 묘를 돌보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