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김지영
아직 겨울을 다 떨쳐내지 못한 시린 바람 맞으며 냉이를 캔다. 한겨울, 그 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얼굴을 내민 냉이는 뿌리째 캐기가 쉽지 않다.
1928년생인 우리 엄마.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94세가 되었다. 80대 후반부터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시더니 조금씩 조금씩 기억을 잃어간다. 먹는 것도 잊으셨는지 끼니마다 한 숟가락 정도의 밥과 반찬을 드실 뿐이다. 건장했던 몸은 살이 빠져 뼈와 살가죽이 따로 놀고 그렇게 좋아하시던 화투놀이도 그냥 그림 맞추기 수준이다. 가끔 정신이 맑아지면 손녀딸들 이름도 척척 맞추지만 대부분 모른다고 하신다. 그나마 지팡이를 짚고 살살 걸으시던 것도 코로나19로 인하여 바깥운동이 불가능해져 휠체어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이 유일하게 바람을 쐬러 나가시는 일이다.
엄마를 뵈러 가면 늘 아버지가 계시는 현충원에 함께 갔는데 언제부터인가 가기 싫다 하신다. 왜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엄마를 빨리 데려가지 않아 밉다 하신다. 올해는 막내인 내가 환갑이다. 작년부터 엄마는 막내딸 환갑 선물 못해주고 갈까봐 걱정을 많이 하시더니 올 설에 환갑 선물이라며 봉투를 하나 주셨다. 정신이 더 없어지기 전에 챙겨야 한다며…, 내가 웃으며 이제 막내 환갑까지 다 챙겼으니 마음 편히 가시라고 말씀드리니 엄마도 빙긋 웃으신다.
봄이면 들판에 나가 냉이 한바구니 캐서 나물도 해주시고 냉이 된장국도 끓여주셨는데 우리 엄마, 이제는 냉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런 풀을 왜 먹냐 하신다. 한겨울 같은 모진 세월 다 이기고 이제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시는 엄마를 생각하며 94년 동안 깊게 뿌리박은 냉이를 조심스레 캔다. 뿌리에서 나는 냉이 내음이 엄마 같다.
엄마! 모진 세월은 다 나에게 향으로 남겨주고 냉이꽃 피는 따뜻한 봄에 아버지가 오시면 함께 손잡고 성한 두 발로 정정하게 걸어 나들이 가세요. 그리고 해마다 냉이가 되어 저에게 오세요.
찬바람 속에서 냉이를 캐는데 눈물인지 콧물인지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 나를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