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의 ‘뽐내고 싶은 한국인’ 중에서
나는 서양문명과 한국 문명을 비교하는 인자(因子)로서
서양 문명은 틀[形]에다 인간을 구겨 맞추는 형식주의적인 데 비해
한국 문명은 인간에다 틀을 맞추는 인본주의라는 것을 곧잘 들어왔다.
이를테면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푸스테스의 침대’라는 것이 있다.
대도(大盜) 프로크루스테스는 사람을 잡아오면 자신의 침대에다 뉘어보고
너무 길면 다리를 잘라버리고 너무 짧으면 다리를 늘려 침대 길이에 맞추곤 했다.
이 신화가 뿌리가 되어
인간을 사물에 맞게 규격화하는 행위를 프로크루수테스의 침대라 하고
서양 문명의 기틀 가운데 하나로 정착해 내린 것이다.
이를테면 서양의 옷은 일단 맞춰 놓으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몸이 커지기도 하고 또 앓고 나면 줄어들기도 한다.
또 언니나 오빠가 입다가 아우가 입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체를 담는 용기처럼
규격에서 한 치 이상 더 커도 한 치 이상 더 작아도 입을 수 없는 것이 양복이요, 양장이다.
이에 비해 한복은 속저고리끈과 겉저고리끈만 조절하면
웬만한 체격은 폭이 늘건 줄건 아랑곳없이 입을 수 있다.
치마도 치마말만 조이고 늘리며 치맛자락을 깊이 감치고 덜 감침에 따라
웬만한 체격에 고루 품이 맞는다.
바지통이 작아서 못 입는 바지는 없다.
곧 서양 옷은 옷에 몸을 맞추는데 한국 옷은 몸에 옷을 맞출 수 있게 돼 있고 인본주의의 옷이다.
휴대용기인 서양의 가방과 한국의 보자기도 그렇다.
가방은 일정 용량을 못 채우면 빈 공간이 남는다.
속은 그렇게 비어 있으면서 겉으로는 꽉 찬 것처럼 사기를 치고 있다.
필요할 때 용량 이상으로 더 수용하는 아량이 있다면
그만한 사기쯤 보아 넘길 수도 있는데
그 용량 이상은 조금도 더 담기를 거부하는 주제에 말이다.
핸드백에 여성 잡지 하나 담을 수 없고
서류 가방에 수박 하나 담을 수 없다.
담을 수 있는 소수의 제한된 품목밖에 담지 못하는 것이 가방이다.
그런데 보자기는 크고 작고에 아랑곳없고 품목에 아랑곳없이
그 넓이에 따라 제한 없이 감싼다.
옛날 어머니들은 시집살이가 고달프면
엽전 하나 꺼내 그것이 닳도록 손아귀에 굴림으로써 고통을 참는 습속이 있었다.
그 굴림돈을 인고전(忍苦錢)이라 했다.
굴리고 나면 작은 보자기에 싸 농 속 깊이 숨겨 두곤 했다.
그렇게 작은 보자기로부터
과부 업어올 때 온몸을 싸오는 과부보 같은 대형 보자기에 이르기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그렇게 폭넓은 기능을 다하고서 접어 버리면
공간을 절약하여 무(無)로 환원하는 겸손함마저도 지닌 보자기다.
가방처럼 담긴 부피보다 커 보이려는 허세도 없고
또 너무 크다고 담기를 거부하는 편벽도 없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모나거나 둥굴거나 매끄럽거나 거칠거나 밉거나 예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싸버리는 보자기다.
이렇게 포용해서 할 일 다하고 나서도
가방처럼 바보같이 멍하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지를 않다.
허리를 동여매면 허리띠가 되고 머리에 둘러쓰면 스카프가 되며 목에 두르면 네커치프가 된다.
눈물을 닦으면 손수건이 되고 떠나가는 사람에게 들어서 흔들면 정이 나부낀다.
남녀가 깔고서 나란히 앉으면 데이트 방석이 되고 아이를 업으면 포대기가 되고
부엌일 할 때 앞에 두르면 앞치마가 된다.
데모할 때 이마에 두르면 결의가 돋보이고
장대에 달면 깃발이 돼 나부낀다.
그렁저렁 살다가 죽으면 얼굴에 덮고 저승길 떠나는 보자기는 한국의 인생의 알파요 오메가다.
곧 보자기에는 철학이 있다.
옛날 어머니들은 시집갈 때 크고 작은 열두 가지 보자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법도였다면
반드시 그 응분의 쓸모보다
어머니의 가슴처럼 폭넓은 보자기의 철학을 터득하고 살라는 교훈이었을지도 모른다.
첫댓글 시집갈 때 열두 보자기를 만들어가는 풍속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버선 한 죽, 바늘 한 쌈지, 열두 보자기,..... 씨앗도 가져갔다지?
나름대로의 전통 과 풍습을 이해하면서...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