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영어에, 라스트 스트로(last straw,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 부담) 라고 하는 말이 있다.
속담에도 “It is the last straw that breaks the camel's back”,
이는 즉, ‘한도를 넘으면 지푸라기 하나를 더 얹어도 낙타의 등골이 부러진다’라고 있다.
last straw를 직역하면 ‘마지막 지푸라기’가 된다.
낙타에 더 이상 실을 수 없을 때까지 짐을 싣는다.
그 위에 지푸라기 하나를 얹는다.
낙타는 쓰러진다. 그 하나의 지푸라기가 ‘마지막 지푸라기’다.
그 단 하나의 지푸라기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지푸라기는, 낙타가 쓰러진 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낙타는, 그 마지막 지푸라기를 싣는 것에 의해 쓰러졌다. 그렇지만, 낙타 등에 짐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았으면, 단 하나의 지푸라기를 얹어도, 낙타는 태연할 것이다.
낙타가 쓰러진 ‘원인’은, 그때까지 낙타 등에 쌓여 있는 짐과, 그 하나의 지푸라기가 된다. 그 하나의 지푸라기도 원인이지만, 그것만이 원인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마지막 지푸라기만을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유행성감염은 influenza virus에 의하여 일어난다. 우리들은 virus가 감염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접촉하지 않는 생활방식을 하거나, 혹 virus에 접촉되어 체내에 들어와도, 건강한 사람은 감염되지 않는다. 감염이 되는 사람은 체력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마지막 지푸라기’다. 곧 ‘인因’일 뿐이다.
불교에서는, ‘원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因緣’이라고 한 말을 사용한다. ‘因’은 직접원인, ‘緣’은 간접조건이다.
유행성감염의 경우는, influenza virus가 ‘因’이고, 바이러스에 접촉하는 생활과, 또는 접촉되어도 체력이 약해져 있다고 하는 것이 ‘緣’이다.
그리고 因과 緣이 화합하여 감염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지푸라기의 경우는, ‘因’이라고 하는 것은 없이, 낙타 등에 실린 짐의 중량이 ‘緣’이 되어 낙타가 쓰러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불교에 있어서는, 因보다도 緣을 중시한다. 그것은 因만 가지고 사물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곧 因과 수많은 전체의 緣을 종합하여 사물을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장사가 안 되어 드디어 접게 되었다. 그때 우리들은 생각한다.
‘그 주인에게 분명히 뭔가의 원인이 있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因’만을 본 것이 된다.
그 주인의 생각과 영업방식 등은, 마지막 지푸라기이지만, 그 전에 손님이라고 하는 ‘연’과, 시절인연이라고 하는 ‘緣’등, 보이지 않는 ‘수많은 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 전체의 緣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