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기질과 성향의 변화는 가능한가?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히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찬송가 438장(내 영혼이 은총 입어)
사람의 기분이나 애정이나 상황적 대처 방식은 수시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타고날 때부터나 자라면서 어느 한쪽으로 기질이 정해져서 바꿔지지 않는 고정된 태도가 생기는데 그것을 성향이나 기질이라고 표현합니다. 성향이나 기질은 그 사람에게 내재된 깊은 기초와 같습니다.
그러한 기질과 성향을 예로 들면, 사람이 냉정한 성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하여 일체 관심이 없고 자기만의 기분, 자기만의 이익에만 집중하는 성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온화한 성향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따뜻합니다. 배려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다른 사람의 이익과 관심에 대하여 배려할 줄 압니다.
어떤 경우에는 매우 잔인하고 공격적인 성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동물이나 곤충 등에 대하여 조금도 불쌍한 마음 없이 잔인하게 학대하거나 때리고 나아가 사람에게 대하여서도 매우 폭력적인 성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윗 시대 군대 장관인 요압 장군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평화시에 자기의 이익과 사적인 감정 때문에 무방비의 사람을 두 사람이나 칼로 찔러 죽이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솔로몬 왕 즉위 초에 칼로 죽임을 당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온화합니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해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서 약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공격하는 데 익숙합니다. 험담하고 비난하고 적으로 만듭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호의적인 성향을 가집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찾아냅니다. 그래서 호감을 가지고 칭찬하며 친절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너그럽고 돕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대단하게 여기는 교만함이 있습니다. 남을 깔보고 자기를 대단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고집스럽고 남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자기 말을 합니다. 세계의 중심이 자기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자신을 작게 여깁니다. 부족함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훨씬 나은 점이 있음을 알고 배우고자 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경청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항상 부정적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의 열 정탐꾼이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상황을 바라볼 때 안 되는 쪽, 실패하는 쪽, 망하는 쪽으로 바라봅니다. 어떤 사람은 긍정적입니다. 매우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좋은 점을 찾습니다. 더 좋아지는 면이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하면서 희망을 갖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소망을 마음에 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급한 성향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합니다. 견디지 못하고 빨리 해치워야 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신중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상황을 분별하고 때와 방법을 잘 살펴서 일을 차분하게 처리합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가 쉽게 타오릅니다. 대표적인 예는 예수님의 제자 중 보아너게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야고보와 요한 사도입니다. 순식간에 불이 활활 타오르듯이 무섭게 분노가 타오르고 절제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분노감이 천천히 타오릅니다. 속이 상하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마음의 분노를 다스립니다. 때로 기질상 분노를 전혀 안하고 분노가 전혀 없는 천성적인 분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우울의 기질이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음이 늘 어둡고 외롭고 슬프고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항상 자기 연민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늘 밝습니다. 늘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마음이 넉넉합니다. 부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나눠주는 마음의 힘을 갖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늘 낭비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계획성 없이 돈을 사용합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하고 돈이 없으면 쫄쫄 굶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너무 인색하고 극도로 절약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그렇게 돈을 모으는 것 자체를 행복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돈을 쓸 줄을 모릅니다. 모으는 것에만 집착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돈으로만 평가합니다. 사람의 성품, 사람의 재능, 사람의 지혜 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돈이 많으면 대단한 사람이요 돈이 부족한 사람은 안중에 없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돈을 끌어모으는 것은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 돈보다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재물을 가지고 사람들을 돕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질과 성향들이 타고나는 것도 있고 자라나면서 환경의 영향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나쁜 소리를 잘 못합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하여 안 좋은 평가를 내리면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장래 일을 계획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하루 하루 살아갑니다. 임기웅변으로 살아가면서 조금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이외에도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기질과 성향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성향과 기질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생긴 것일 수 있고, 자라나면서 어떤 계기나 환경에 의하여 후천적으로 굳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성향과 기질은 쉽게 바꿔지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 자신에게서 이러한 여러 다양한 성향과 기질이 복합적으로 내재화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다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균형 있고 덕스럽고 아름답게 변화되어야 할 좋지 않은 기질과 성향, 불완전한 기질과 성향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의 성향을 생각할 때 이런 성향은 정말 버리고 싶고, 이런 성향은 좋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천부적인 성향과 기질의 DNA는 사실 다 불완전한 것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첫 조상 아담 이래의 타락의 본성에 다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내면의 기초 부분인 ‘마음 깊은 곳’이 변화를 성령의 새롭게 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23,24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3:10 말씀에서도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의 천부적인 굳어진 기질과 성향 등까지도 새롭게 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온전히 바뀌어지기까지 우리는 매일 새롭게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날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립시다. 우리의 심령의 깊은 곳까지도 내어드려서 성령께서 우리를 만져주시기를 청합시다.
완전한 줄 알았으나 깊은 부패가 자기 마음 속에 있음을 자각한 다윗이 깨어진 심령으로 회개하면서 간구한 기도의 내용이 시편 51:10,11 말씀에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시편 139:23,24 말씀에서도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한평생 다윗처럼 우리도 불완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사람이 되었어도 우리의 기질, 성향은 깊은 곳에서 변화되지 않는 굳어진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을 매일 우리 성령님께 온전히 내어드려서 주님의 형상대로 빚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점점 우리 내면의 오래되고 딱딱하게 굳어진 기질과 성향들도 조금씩 조금씩 온전해지는 역사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이자 의심 많은 기질의 사람 사도 도마도 나중에 달라졌으며, 불 같은 분노의 사람 요한 사도도 사랑의 사도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족한 기질과 성향이 분명히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음을 굳게 믿고 기도하며 기다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