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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준비' 삼성화재 DNA를 이식하다
임도헌(43) 감독의 고향은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이다. 부근에 삼성 라이온스 훈련장이 있다. 하양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는 삼성 라이온스 원년 어린이 회원이 됐다. “당시 5000원만 내면 모자도 주고 점퍼도 줬다. 대부분 학생들이 그 옷을 입고 등교했다. 만일 야구부가 있었으면 야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뒷바라지에 힘이 들었을테지만…” 만일 그가 야구를 선택했다면 20세기 삼성 라이온스의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배구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임도헌 감독의 첫 아들은 아버지의 운동능력을 이어받아 야구를 선택했다. 전도유망한 투수다. 둘째 아들은 배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소년 임도헌은 운동을 좋아했다. 키는 작아도 달리기와 높이뛰기를 잘했다. “400m 계주 때는 마지막 주자로 뛰었다. 시도대항 운동대회에 나가면 운동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성인 때 100m 최고 기록은 11.6초. 조깅화를 신고 뛴 기록을 보고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해보라는 권유도 많았다.
●운동을 좋아하던 시골 소년, 배구를 처음 접하다
임도헌이 경산 하양 초등학교 배구부 창단멤버가 된 것은 시대상황과 관련이 있다. 5공화국을 출범시킨 정부는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을 국가의 대사로 여겼다. 스포츠 장려정책을 썼다. 모든 학교에 한 종목씩 운동부를 만들라고 장려했다. “4학년 때 학교에 배구부가 생겼다. 체육 선생님이 배구부를 만들자 친구들과 함께 배구를 시작했다. 동기가 진창욱이다. 친구들이 배구를 잘 했다. 5학 때 전국 상위권에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하양초등학교는 전주 소년체전에 대표로 출전했다. 우승을 장담했다. 시골에서 버스를 대절해 150명이 응원까지 갔다. 하지만 1차전에서 청구 초등학교에게 졌다. 사연이 있었다. 당시 상대팀은 유급생 선수가 있었다. 몇몇 학교는 심한 경우 2~3년간 선수들을 유급시켰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대결이었다.
제아무리 기량이 좋아도 초등학생이 체력과 체격이 좋은 중학생을 이기기 힘들었다.
●키가 작아 더 이상 배구선수로 활동하지 못했던 중학시절
초등학교를 졸업 뒤 경산 무학중학교에 진학했다. 체육중학교 진학을 원했지만 누구도 눈여겨봐주지 않았다. 동기 가운데 진창욱이 유일하게 선택받았다. 세터로 키가 160cm를 넘었다. 레프트의 임도헌은 155cm였다. 운동을 포기하고 공부를 선택했다. 아버지(임봉호 씨)도 공부를 권유했다. “공부를 하면 1만 명 가운데 100등을 해도 먹고 사는데 운동을 하면 1만 명 가운데 1등을 하지 못하면 힘들다”고 했다.
무학중학교는 유도를 장려했다. 결국 유도부에 끌려 들어갔다. “아버지께서 힘이 장사셨다. 악수를 하면 상대의 손을 꽉 잡는데 그 힘이 보통이 아니셨다. 유도 선생님이 우연히 아버지와 악수를 했는데 그날부터 나를 찾아다녔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의 권유와 선배들의 강요에 유도를 했다. 그 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른 운동을 해본 것이 나중에 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선수는 아니어도 배구는 가까이 했다. 같이 배구를 포기한 친구들과 틈틈이 배구를 했다. “당시 체육선생님이 김지백 선생님이셨는데 배구선수를 하셨다. 체육시간마다 배구를 시키고 기본기를 잘 가르쳐주셨다.” 그렇게 지내던 3년 동안 기적이 일어났다. 키가 무려 33cm나 자란 것이다. 다시 배구선수를 하라는 하늘의 계시였다.
●갑자기 자란 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배구선수가 되다
키가 커지고 배구도 잘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경북체육고등학교의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입학 무렵 188cm, 84~85kg의 체구가 됐다. 집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집안의 장남이자 장손이 다시 운동을 해서 성공할 가능성을 놓고 아버지는 걱정하셨다. “지금 운동해서 대학에 못가면 건달 밖에 더 되냐면서 반대했다. 나는 죽어도 운동을 하겠다고 버텼다. 아버지가 책가방을 불에 싸질러 버리면서까지 반대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며칠간 버틴 끝에 이불 보따리 하나,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만 입고 경북체고에 진학했다.
![]() 갑자기 커진 키로 배구를 다시 할 수 있게된 임도헌 감독, 배구는 그의 운명이었을까?(경복체고 시절 임도헌 감독_출처 : 연합뉴스) |
다시 시작한 선수생활은 어려움이 많았다. “유니폼도 없었다. 9월 전국체전에서 선수로 뛰면 유니폼을 주겠다고 했다. 새벽운동을 하면 나만 운동복이 없어 더 추웠다. 추위를 느끼지 않으려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뛰었다. 그때 참 열심히 운동했다. 운동이 밥보다 더 좋았던 때”라고 기억했다.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일에 좋아서 미치는 사람이다. 노력하는 둔재보다 타고난 천재보다 무서운 이유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만 행운의 여신도 찾아온다. 그래서 운도 실력이다. 1학년 때 주전이 됐다. 3학년 선배가 다치는 바람에 경기에 출전했다. 그 때를 계기로 기회가 자주 왔다. 고2 때 청소년대표로 뽑혔다. “대표선수 12명에 들 실력은 아니었다. 24명을 뽑아 12명을 추렸는데 열심히 하다보니 마지막에 대표선수가 됐다”고 했다.
당시 청소년 대표팀 멤버가 하종화 윤종일 등이었다. 대표선수지만 경기에 나갈 기회는 많지 않았다. “국제대회에 가면 내가 밥 당번을 했다. 열심히 설거지도 하면서 대회를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행운은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만 온다
고3 때 청소년대표의 에이스가 됐다. 세계대회를 앞둔 청소년대표팀의 코치가 바로 신치용 삼성화재 단장님이었다. 한전 코치로 있으면서 청소년대표팀 코치를 했다.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은 여기서 시작됐다. 국가대표팀에도 뽑혔다. 월드컵을 앞둔 팀이었다. 당시 대표팀은 장윤창 이경석 정의탁 한장석 등이 주전이었다. “장윤창 선배는 12살 차이가 났다. 그 때 나보고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신치용은 임도헌의 인생에 여러 차례 변곡점을 만들었다. 신치용의 조언 덕분에 대학도 달라졌다. 원래 임도헌은 서울시립대에 가기로 내정됐다. 성균관대 김남성 감독은 진창욱을 탐냈다. 신치용은 선배 김남성 감독님에게 ”얘를 뽑으라“고 임도헌을 추천해준 덕분에 성균관대로 진로가 변경됐다. 스카우트비로 1000만원을 받았다. 당시 다른 선수에 비하면 적은 액수였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완고하셨던 아버지는 자식이 대학에 가는데 돈을 받으면 팔려가는 것 같다고 한사코 거부하셨다. 결국 김남성 감독님에 선수에게 보약이나 먹이라고 놓고 가셨다”고 했다.
![]() 임도헌 감독은 대학 선수 시절, 대학무대를 평정하였다(성균관대 시절 임도헌 감독_출처 : 연합뉴스) |
임도헌이 진학한 뒤 성균관대는 대학최강의 전력이었다. 임도헌 박종찬 윤상용 고 김병선 진창욱 김철수 등으로 대학무대를 평정했다, 이후 신진식 김상우 방지섭 장병철 등이 가세해 8년간 대학무대를 휩쓸었다.
●벤치멤버도 국가대표였던 전설의 팀 현대자동차서비스
1993년 임도헌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서비스의 선수가 됐다. 현대자동차서비스는 1983년 창단됐다. 고려증권의 대항마로 1999년 현대자동차배구단을 거쳐 2001년부터 현대캐피탈 소속이 됐다. 과감한 스카우트로 좋은 선수를 싹쓸이 했다. 하종화 윤종일 강성형 등 한양대 시절 대학팀으로는 처음으로 1991년 실업배구리그에서 우승했던 멤버를 모두 영입했고 임도헌까지 가세하면서 더욱 강력한 라인업을 갖췄다. 벤치멤버도 국가대표였던 현대자동차서비스는 실업배구리그에서 5번의 우승을 했다. 1986~1988년까지 3연속 우승, 1994~1995년에 2연속 우승을 했다. 임도헌은 그 2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1996년은 고려증권에 밀렸고 1997년부터는 새로 창단한 삼성화재에 밀렸다. 현역시절 투지 넘치는 공격과 탄력으로 인기를 누렸던 그는 임꺽정이란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임도헌의 열정과 많은 선수들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2번의 우승은 아쉬운 결과였다. 왜 좋은 선수가 모여 있는 팀이 기대만큼 많은 우승을 하지 못했을까. 임도헌 감독에게 묻자 “팀에 너무 좋은 멤버가 많아도 안 된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는데 벤치멤버까지 모두 배구를 잘하는 사람이 많아 그 것이 문제가 됐다”고 했다. 희생의 중요성은 지도자 임도헌이 잊지 않는 귀한 교훈이었다.
![]() 최고의 멤버가 모였던 현대, 2번의 우승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출처 : 연합뉴스) |
10년간 선수생활을 한 뒤 은퇴했다. 어느 선수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은퇴다. 사실 1년만 더 선수생활을 하고 싶었다. 당시 4살이던 아들에게 아빠가 선수로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03시즌을 앞두고 현대캐피탈은 세대교체를 꿈꿨다. 임도헌은 흐름에 따랐다. 자신이 버티면 후배가 희생되어야 하는 사실에 스스로 옷을 벗었다. 2002년 현대캐피탈의 등번호 14번 임도헌은 유니폼을 벗고 정글보다 거친 세상으로 나왔다.
●자기중심적이던 임도헌에게 은퇴는 새로운 인생을 알게 해주다
선수생활 때는 내 것만 열심히 했다.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팀은 나보다 우리 또는 남을 먼저 생각해주기를 바랬다. 무릎수술도 받은 터라 미련 없이 은퇴한 뒤 성균관대 동문 선배 엄한주 교수를 찾아갔다. 선수출신으로 캐나다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자리에 오른 배구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존재였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임도헌의 말에 엄한주 교수는 “니 돌았냐? 그 힘든 것을 왜 하려고 하냐. 미친 짓”이라고 말렸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픈 임도헌은 “공부가 아니면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엄 교수가 후배를 위해 다리를 놓아줬다. 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 연수과정을 소개했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하면서 유학을 결정했다. “동기들이 영어공부를 미리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야 스펀지처럼 머릿속에 영어가 쏙쏙 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믿었다”고 했다. 가족을 두고 혼자 밴쿠버로 갔다. 마중 나온 감독은 하필 임도헌이 도착했을 무렵 팀을 떠났다. “감독이 차를 태워주면서 ‘I am retired’라고 하는데 그 말이 뭔지 몰랐다. ‘왜 자꾸 타이어 얘기만 하지?’라고 생각했다”면서 당시를 기억했다. 우여곡절 끝에 연수를 시작했다. 배구팀의 자원봉사 지도자가 됐다. 굳은 마음을 먹고 시작한 고생이라 후회는 없었다. 열심히 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선수 때 들었던 물이 차츰 빠졌다. 배구캠프에서 열심히 선수들을 지도하고 실력을 보여준 덕분에 액수는 적었지만 월급도 나왔다.
●선수의 물을 빼준 캐나다 연수. 행복은 사소한 것에서 온다는 것도 배우다
1년간의 연수에서 많은 것을 경험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교훈을 많이 배웠다. 코트 안에서는 선수생활 때는 경험해볼 수 없는 진정한 교육이었다. 그동안 받기만 하고 베풀 줄 몰랐던 선수생활의 물이 빠졌다. 내가 최고라는 생각도 함께 사라졌다. 인생을 배웠다. 영어 한 두 마디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 임도헌 감독은 선수 은퇴 후 유학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배웠다 |
학생들과 지내면서 열정도 배웠다. 프로젝트를 맡아 함께 연구하면서 밤잠을 줄여가며 열정적으로 과제를 완성하는 그들을 보면서 새로운 열정을 느꼈다.
●3년의 준비 끝에 찾아온 삼성화재의 제의-사상 첫 타 팀 출신의 지도자가 되다
캐나다에서 지도자의 기본을 배운 임도헌은 귀국했다. 청소년대표팀과 성인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지도자생활을 꿈꿀 때 신치용 감독의 연락이 왔다. “같이 한 번 해보자”고 했다. 2006년 5월이었다.
삼성화재는 현대캐피탈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한 뒤였다. 많은 훈련과 철저한 생활관리, 깐깐한 신치용 감독 때문에 어지간한 선수는 벌벌 떤다는 삼성화재에서의 코치생활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배구계 최초로 순혈주의를 깬 주인공이었다. 임도헌 이전까지 어떤 팀에서도 자기 팀 출신이 아닌 사람을 지도자로 쓰지 않았다.
![]() 현대 선수였던 그가 삼성화재 코치로 간 것은 국내 배구계의 매우 큰 이슈였다 |
그만큼 순혈주의가 강했던 배구계에서 신치용 감독의 선택과 임도헌 코치의 결합은 관심거리였다. 임도헌은 열심히 했다. 선수들보다 30분 일찍 코트에 나왔다. 코트에 선수들이 흘린 땀이 있으면 먼저 걸레를 들고 닦았다. 선수들이 그 모습에 놀랐다. 내가 먼저 부지런히 하지 않고 선수들을 위해 뭔가 해주지 않으면 선수들이 따르지 않는다고 믿었다. 가르치는 데는 정성이 최고라는 것도 이미 캐나다에서 배웠다.
물론 코치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도중에 그만둘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삼성은 3년은 있어봐야 된다는 말이 있는데 3년을 넘기자 모든 것이 편해졌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 혼자 긴장해 스스로를 다그치고 만족하지 못했던 때를 넘기고 나니까 편해졌다. 모르는 사람들은 ‘신 감독 밑에서 고생이 많다’고 했지만 사실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입 다물고 3년, 귀 막고 3년, 정성으로 4년을 보좌한 끝에 기회가 오다
신치용 감독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팀의 기본정신, 원칙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편한 사람이었다. 10년간 지켜보면서 배운 것도 많았다. 결단의 중요성과 성실함이 최선이라는 교훈을 배웠다. “아무리 술을 많이 먹은 다음날이라도 항상 제 자리에 있어야 하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심사숙고하지만 결단은 냉철하면서도 빠르게 했다. 특히 선수를 내보내야 할 때 칼 같은 결단을 내렸다. 대부분 그 결정은 옳았다. 감독이 판단을 잘 해서 경기 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10~20%에도 미치지 않고 결국은 훈련 때 준비한 것으로 경기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감독님과 오래 지내면서 차츰 중요한 일이 있으면 불렀다. 먼저 ‘술 한 잔 하자’고 하면 팀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술 한 잔 얘기가 나오면 그때부터 긴장됐다.”
![]() 순탄치 않았던 삼성화재 코치 시절, 10년의 기다림 끝에 감독직에 오르게 되었다 |
진심은 전염된다. 보답도 온다. 어느 순간부터 신치용 감독은 임도헌을 후계자로 점찍었다. “20년만 채우면 물러날 것이다. 다음 감독은 임도헌”이라고 했다. 기자도 몇 년 전부터 들었던 말이다. 지난 시즌 뒤 신치용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성질 고약한 내 밑에서 10년을 고생했다.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것이 도리다. 가능하다면 울타리가 되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사람과 함께 했지만 임도헌은 코치로 내 곁에 있었다. 코치로 있었던 것과 선수로 있었던 것은 다르다. 선수는 선수의 입장에서 선수의 것만 본다. 임도헌은 감독이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판단을 해야 하고 그 부담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지켜봤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감독을 더 잘 해낼 것이다”고 했다.
신치용 감독은 후계자로 삼성출신을 선호하는 주변의 시선과 조언에 꾸준히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사전 정지작업이 끝난 뒤 신치용 감독이 임도헌 코치를 따로 불렀다.
●20년 대권 이양의 순간-기쁨보다는 긴장 두려움이 찾아왔다
2015년 4월17일이었다. “월요일에 양복을 입고 와라. 사장님께 인사하러 간다”고 신 감독은 평소처럼 말했다. 20일 오전 약속장소에서 임도헌을 만난 신치용은 “이제 감독이 됐다. 오늘 인사하러 가는 것이다”고 했다.
배구인으로서 기다려왔던 순간이지만 임도헌은 그 순간 “덤덤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도자를 하면서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했던 막연한 꿈이 현실로 이뤄졌지만 기쁨을 느낄 순간은 잠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책임감이 찾아왔다. 16번의 우승을 차지한 명문팀 삼성화재의 감독이 주는 무게를 실감했다. 20년간 정상에서 버텨온 팀을 떠맡는 두려움과 코치에서 감독으로 달라진 그를 선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팀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질 것이지 등의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가 감독이 되고나서 더욱 원칙과 팀의 전통, 강한 훈련을 강조했던 이유였다.
●삼성화재출신 4명의 감독과 대결하는 현대출신의 삼성화재 감독
새로운 시즌 V리그 남자부는 유난히 기대가 크다. 그동안 남자배구를 이끌어오던 신치용 김호철과 강만수 문용관 등이 물러나면서 확 젊어졌다.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이 졸지에 최연장자가 됐다. 남자감독 평균연령이 43.1세다.
지난 시즌 챔피언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이 세대교체의 문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삼성화재 출신들이 현대캐피탈 우리카드의 새 감독으로 결정됐다. 사람들은 신영철 감독을 포함한 4명의 삼성화재 출신 감독 가운데서도 유난히 김세진 김상우 최태웅 등 3명과 현대출신 임도헌 감독이 지휘하는 삼성화재와의 대결에 관심이 크다.
이들은 현역시절 네트를 사이에 두고 혹은 같은 팀에서 오랫동안 함께 뛴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친근한 이들은 시즌을 앞두고 연습경기도 많이 했다.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은 상대의 훈련장을 방문해 연습경기도 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젊은 감독들은 많은 연습경기를 통해 자기 팀의 문제를 찾아내 보완하는 것이 상대에 전력노출이 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이번 시즌 유난히 연습경기가 많아진 이유다.
![]() 현대출신인 임도헌 감독은 이번 시즌 삼성화재 출신 감독 4명과 대결해야한다 |
감독들은 코트에서는 경쟁자지만 V리그의 발전을 함께하는 동반자라는 생각도 한다. 물론 언제까지 평화가 이어질지는 모른다. 신치용 단장은 최근 제자들과 저녁을 하면서 “처음 갑옷을 입은 사람이 갑옷을 벗은 사람의 속을 알 수 있겠냐”고 했다. 지금은 친하고 지내고 동반자 관계가 이어지지만 승패가 결정되는 상황이 온다면 지금껏 가져온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임도헌 감독도 그 말에 동의한다. 지금은 평화의 시대지만 매일 코트에서 전쟁을 해서 이기거나 져야 하는 감독의 숙명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신치용이 만든 전통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감독
시즌개막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삼성화재의 연습경기 성적은 대단했다. 거의 지지 않았다. 철저한 준비를 해온 팀다웠다. 임 감독은 체력훈련에 많은 공을 들였다. “시즌 초반에 먼저 치고나가서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1라운드 중반부터 2~3일 걸러 경기하는 일정이 5차례다. 여기를 잘 넘기기 위해서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감독은 산악훈련 횟수도 늘렸다. 감독교체의 어수선한 시기에 혹시 생길지 모르는 선수들의 느슨한 생각을 경계해 일부러 더 강하게 훈련시켰다. 삼성화재만의 철저한 생활관리 배구는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새벽에 기상하자마자 체중을 재고 밤에는 모두 휴대전화를 반납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서로를 위한 약속이라고 믿는다.
신치용 단장은 7월 청주 KOVO컵 뒤 짧은 훈수를 했다. “남에게 보여주는 배구보다는 내실을 다져라. 너무 바빠 보인다”는 2가지였다. 그 훈수에는 삼성화재와 임도헌 감독이 추구하는 배구의 방향이 들어 있다. 임도헌 감독은 “명품가방은 자주 디자인을 바꾸지 않는다”는 말로 이번 시즌 팀이 가야할 목표를 설정했다.
다른 젊은 감독들이 다양한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할 때 삼성화재와 임도헌은 쌓아온 전통을 바탕으로 삼성화재 구성원의 능력에 맞는 배구를 하겠다고 했다.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과 하이브리드의 중요성
삼성화재는 시즌 준비과정에서 스트레칭을 통해 유연성을 높이고 골반강화에 노력했다. “골반이 튼튼해야 리시브가 안정된다. 지난 시즌 리시브 성공률이 50%를 넘는 경기는 지지 않았다. 이번 시즌 목표는 60%다. 세터 유광우가 안정된 토스를 하니까 리시브에서 어느 정도만 올려주면 충분히 우리가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다른 팀이 스피드를 선택할 때 삼성화재는 유광우의 안정되고 정확한 연결을 바탕으로 하는 높이와 확률의 배구를 선택했다. 탄탄한 수비와 연결을 바탕으로 하는 삼성화재의 조직력 배구는 감독이 달라졌지만 변함이 없다.
최근 류윤식이 연습경기에서 놀라운 블로킹 능력으로 상대팀 에이스의 공격을 막아내는 등 몸 상태가 좋다. 리시브에서의 안정감만 더해지면 더 강한 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시즌 보여줄 배구를 묻자 독일축구와 사무라이 얘기를 꺼냈다. “사무라이는 최단의 거리에서 단 번에 상대의 심장을 찌르는 것이 최고의 기술로 친다. 독일축구는 화려한 기교를 생략하고 목표지점까지 최단으로 내달려서 골을 노린다. 그런 배구를 원한다”고 했다.
![]() 삼성화재의 새 사령탑 임도헌 감독, 지난 시즌 구겨진 삼성왕조의 자존심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심플한 배구 단순한 배구다. “배구는 3번의 기회 안에 선수들이 잘 받고 잘 연결해서 공격해야 한다.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고 수비해야 할 때 수비하고 선수들이 각자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가며 움직이는 배구가 단순하면서도 멋있다. 선수들에게 수비 때 물러서지 않고 공격적으로 수비하는 자세를 보여주라고 했다. 프로선수라면 보통 사람이 못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감동을 준다”고 했다.
심플하지만 감동을 주는 것은 세상에 많지 않다. 조선 청자가 오래 사랑을 받는 것은 단순하지만 그 속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서다. 요즘 융합이 화두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융합과 하이브리드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비록 삼성화재의 푸른색 피는 타고나지 못했지만 10년간의 준비를 통해 삼성화재의 DNA를 이식한 임도헌의 하이브리드 배구가 이제 V리그에 등장한다.
[영상] 삼성화재의 새로운 사령탑, 임도헌 감독을 만나다
에필로그 | '성실함의 대명사'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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