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300년된 '아피아(Appia) 가도' ◑
아피아가도는 제국 로마의 상징이다.
로마에서 브룬디시움(오늘날의 브린디시)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통해 그리스로, 그리스를 통해 동부 지중해 전역으로 뻗어나갈수 있기 때문이다.
제정 초기에 베드로가 네로황제의 기독교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다 예수와 만난것이 이 길 위에서였다. 로마를 향하는 예수에게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Domine, Quo Vadis)라 물었고,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가느리라"
라는 답을 들었다.
깨달음을 얻은 베드로는 로마로 되돌아갔고, 기독교인들과 함께 죽었다.
공화정 말기에 대규모 노예봉기였던 스파르타쿠스 전쟁에서 무력으로 노예를 진압한 크라수스 장군은 6000여명에 달하는 노예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이 아피아가도에 세웠다. 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경고였다.
공화정말기에 카이사르가 그리스로 도망가는 폼페이우스를 추적한 길도 이 길이었다
로마 원로원 '아피우스 클라디우스
(Appius Claudius)'가 재무관 시절 입안하고 건설했다. 기원전 313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니 무려 2331년 동안 존재해온 길이다.
가도의 표면에는 여전히 접합면이 딱 들어맞는 마름돌이 깔려있고, 주변에는 소나무와 사리프러스가 무성하다. 로마시대의 유적들도 즐비하게 들어서있다.
길은 로마와 카푸아(Capua)를 잇기위해 만들어졌다. 지금은 소도시로 전락했지만, 당대의 카푸아는 나폴리만큼 중요했다.
기원던 509년 브루투스의 혁명으로 공화국이 된 로마는 느리지만 착실하게 성장했다. 이때 카푸아까지 세략을 확장했고, 카푸아를 발판삼아~~ 베네벤툼~타렌툼을 거쳐 브룬디시움으로 이어졌다.
가도의 종점에 로마는 거대한 칼럼2개를 세웠다.
오늘날 하나는 남았고, 하나는 사라졌다.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 외로이 우뚝솟은 칼럼! 예나 지금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