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5 – 7. 17 선화랑(T. 02-734-5839, 인사동)
여성 조각가의 공감과 연대 45년
I, WOMAN
글, 기획 : 김경아 (독립 큐레이터)
강은엽 KS_1W4A6478
“여성이기 때문에 남다른 고민과 어려움이 운명처럼 맴돌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자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성이기 때문에 뭉쳐보자는 힘도 컸다고 봅니다. 또 여성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관심도 많다고 봅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저희는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서는 안된다고 무진 애를 써왔습니다.”
- 김정숙, <제2회 한국여류조각가회전> 도록 인사말, 1975
김정숙(1대회장)-비상 청동 1989
여성 그리고 조각가. 둘의 성공적인 조합은 우리나라를 넘어 전세계적으로도 그 예가 그리 많지 않다. 지금도 그런데 하물며 1970년대엔 오죽했으랴. “여성이기 때문에” “무진 애를 써온” 우리나라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정숙, 윤영자를 비롯해 김윤신, 유영준, 윤미자, 이양자, 진송자, 최효주 등이 주축이 되어 1974년 창립한 한국여류조각가회. 남성이 대부분인 조각계에서 여성 조각가들이 겪는 차별적인 대우와, 자신의 활동에 스스로 한계를 짓는 여성 조각가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문제의식을 갖고, 여성 조각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철저한 작가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만든 미술단체다. 창립전은 “사실상 화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조각가가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에 불과”1) 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1946년부터), 홍익대(1949년부터), 이화여대(1960년부터) 등에서 조각을 전공한 33명 작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었다.
배형경 존재.물음(2016김세중미술관,플라스틱.각65x50x180cm)
한국여류조각가회가 올해로 45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매년 쉬지 않고 정기전을 개최하고, 이따금 미술관과 화랑 초대전뿐만 아니라 해외전도 열었다. 현재 회원 수는 300명을 넘고, 정기전에 출품하는 작가 수도 100명에 달한다. 그 양적 성장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여성 조각가들의 질적 성장은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C아트뮤지엄(2018. 5. 28~6. 27)과 선화랑(2018. 7. 5~7. 17)에서 열리는 한국여류조각가회 45주년 기획전 <I, WOMAN>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시각화한 것이다. 우선, 역대 회장들과 창립 회원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여류조각가회의 역사를 선적으로 되짚어 본다(허스토리 Herstory). 그리고 현재 회원들의 작품을 몇 개의 고원으로 설치함으로써 한 단계 높은 곳에서 우리나라 여성 조각가들이 스스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한다(고원 Plateau).
윤영자(2대회장)-LOVE 대리석 2010
‘허스토리(Herstory)’는 여성 조각가를 중심으로 다시 쓰는 한국 현대 조각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고인이 된 1대(1974~82) 김정숙, 2대(1982~88) 윤영자 회장의 자서전이나 작품집을 보면 한국여류조각가회 활동에 특별한 사명감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해외여행 자율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에, 더군다나 운송 문제로 해외에서 개최하기 어려운 조각전을 파리(1982), 도쿄(1983), 로마(1985) 등지에서 차례로 연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사명감 없이는 힘들었으리라 짐작된다. 1983년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이경성 관장은 파리 퐁피두센터 보조관장이 한국 현대 조각이 매우 발달했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고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며, 이는 한국여류조각가회의 파리 전시가 원인을 제공했으리라 보았다.2)
3대(1988~92) 강은엽, 4대(1992~96) 임송자, 5대(1996~2000) 고경숙 회장을 거쳐 6대(2000~02) 회장이 된 김효숙은 한국여류조각가회의 활동을 창작과 전시를 넘어 우리 사회에 사랑을 전하는 활동으로 확장시켰다. 2000년에는 장애아동 보육시설과 출소자와 재소자의 자활을 돕는 단체 등에 350만 원의 성금을 기부했다. 2001년에는 <사랑전>(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2001. 5. 3~5. 14)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공동작품을 만들고, 연말에는 외국인 노동자 쉼터 건립을 위한 <사랑 나눔전>(선화랑, 2001. 11. 27~11. 29)을 개최해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0대(2010~12) 이종애 회장 또한 2011년 미혼모를 돕기 위한 전시를 통해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에 1천500만 원을 후원했다.
11대(2012~14) 신은숙 회장은 그동안의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해 350페이지에 달하는 <한국여류조각가회 40년사>를 펴냈다. 문서와 슬라이드 필름을 디지털화하고, 디도스 공격으로 훼손된 웹사이트의 자료들을 복원하면서 한국여류조각가회 40년을 집대성하고, 한국 현대 조각사의 중요한 한 축을 세웠다.
현재 회원들의 작품을 조망하는 ‘고원(Plateau)’은,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의 책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에서 모티프를 얻은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의 2001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 <인류의 고원(Plateau of Humankind)>에서 영감받았다. 제만에 의하면 고원은 기본적으로 고지이고, 무언가 설 수 있는 근원지이며, 올라갈 수 있는 중간 단계의 계단과 같은 것을 뜻한다. 고원과 고원 사이를 노매딕하게 거닐다가 한 고원에 올라가 인간이 스스로를 성찰한다는 제만의 전시 개념처럼 한국여류조각가회 작가들이 고원에 놓인 자신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그 위치를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고원에는 김경민, 김리현, 배형경, 서광옥, 심부섭, 안재홍, 오제훈, 이정진, 이진희, 이혜선, 정혜경, 최은경, 한기늠, 허란숙, 황지선 등 70명이 참여한다.
‘허스토리’와 ‘고원’으로 한국여류조각가회의 45년을 돌아보고 현주소를 성찰하는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창립 때부터 깊은 자각이 이루어졌던 “여성이기 때문에”에 초점을 맞춰 <I, WOMAN>으로 정했다. 미투 운동이 미국 영화계를 넘어 전세계 다양한 분야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고, 우리나라도 미투 운동이 공감과 연대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남녀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최근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은 주제다. 그러므로 45년 전인 1974년 “여성이기 때문에” 서로의 삶에 ‘공감’하고 스스로 ‘연대’하는 조직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선구적인 미술사적, 여성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아트뉴스(Art News)>에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라는 글을 발표한 것이 1971년임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정혜경
공감과 연대는 작품 설치 방식에도 적용된다. 기존 미술단체전처럼 각 작품을 독립적으로 설치하기보다는 몇 개의 고원에서 서로 어우러져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 내게 했다. 그리고 선화랑 전시에서는 기업과 컬렉터를 대상으로 일부 작품 판매도 계획하고 있는데, 수익금은 미혼모 등 소외 여성 지원 단체를 후원하는 데 쓴다. 여성 조각가들 내부의 공감과 연대에서 출발한 한국여류조각가회가 사회의 그늘에 있는 여성들을 보듬는 사회적 공감과 연대로 성장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앞서 밝혔듯 한국여류조각가회는 2011년 미혼모들을 후원했고, 2016~17년에는 ‘막달레나’를 후원한 바 있다.
<I, WOMAN>이 열리는 양평 C아트뮤지엄과 인사동 선화랑은 한국여류조각가회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이다. C아트뮤지엄은 정관모, 김혜원 부부 조각가가 설립한 미술관으로 김혜원은 한국여류조각가회 2회전부터 출품한 초기 멤버이다. 선화랑은 화랑 최초로 1982년에 한국여류조각가회 35인의 작품초대전을 열고, 2001년에는 <사랑 나눔전>을 개최한 곳으로 이번 전시도 함께하게 되었다. 20년에 한 번씩은 인연이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