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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 문명의 근본을 깨닫는 것은 팔괘의 이치에 있다.
나무 한그루의 생명 운동을 알면 자연의 춤사위, 팔괘가 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나무 전체를 보면 뿌리와 줄기가 있다. 뿌리와 줄기가 음양 짝이 된다. 땅 밑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뿌리’가 ‘손(巽)괘’이고 뿌리에서 쭉 뻗어 올라오는 ‘줄기’는 ‘☳ 진(震)괘’다.
‘진震’은 봄기운이다. 양 기운으로 쭉 뻗쳐 올라온다. 진震의 성질이 그렇다. ☳ 진괘를 보면 두 효는 음이고 제일 아래에 양효가 있다.
음이 꽉 누르고 있어 반발을 하며 뻗는 양의 힘이 가장 강한 것이다. 그게 목(木)기운이다. 그걸 뇌성벽력으로도 얘기하고, 제우스 신화에서는 번개로도 얘기했다. 사람으로는 ☳진괘를 장남, 손괘를 장녀로 비유한다.
그 다음에 이파리가 있고 꽃이 핀다. 줄기에서 뻗어 나온 꽃과 열매가 음양 짝이 된다. ‘꽃’은 ‘☱태(兌)괘’, 꽃이 피고 나면 맺는 ‘열매’가 ‘☶ 간(艮)괘’다. 간艮은 열매다.
형상으로 말하면 자연계의 산(山)도 간艮이다. 간艮은 음 기운이 딱 멎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 아래에 음효가 두 개 있고, 위에 간상련(艮上連)으로 양 기운이 음에 묶여 있다.
가장 정적이면서 무언가 거대한 생명의 약동이 느껴지는 것이 산이다. 그리고 ☱ 태(兌)가 꽃인데, 간태(艮兌)가 합덕하여 간艮은 막내아들(小男), 태兌는 막내딸(小女)이다.
뿌리에서 줄기가 뻗어 올라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 나아가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생성의 전 과정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음양의 두 요소가 있다. 즉, 나무의 모든 변화를 이끄는 근원, 나무를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근본이 있다. 바로 ‘물’과 ‘불’이다.
불은 태양에서 온다. 그 태양 불이 ‘이(☲離)괘’다. 그 다음에 땅속에 있는 물 기운은 ‘감(☵坎)괘’다. 이 물과 불이 생명의 중추 작용을 한다. 사람으로는 중남(中男),중녀(中女), 차남 차녀다. ‘감(坎)’은 물인데, 하늘에서는 달(月)이다. 그리고 불[離]은 태양(日)이 근원이다. 감리일월(坎離日月)
나무의 뿌리와 줄기, 꽃과 열매는 일월(日月)의 물과 불 기운을 받아 생성된다. 물과 불을 받아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해서 여섯 괘다. 이 여섯 괘를 사람으로 말하면 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 있는 3남 3녀다. 이 모든 생명은 하늘과 땅에서 태어나 하늘과 땅의 변화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지를 뜻하는 ‘건곤(乾坤)괘’가 있다.
뿌리와 줄기 ‘진손(震巽)’, 꽃과 열매 ‘간태(艮兌)’, 그리고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물과 불 ‘감리(坎離)’, 천체로 말하면 일월(日月), 이 여섯은 건곤(乾坤), 천지부모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부 팔괘다. 이처럼 나무 한그루에서 팔괘의 이치를 쉽게 배울 수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장기반도 끝에는 영일만을 이루면서 돌출해 있는 호미곶이 있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선생은『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이곳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묘사하였다. 그래서 호랑이의 꼬리라는 뜻의 호미곶(虎尾串)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해가뜨는 곳 울산 간절곶(艮絶串)
해돋이 명소로 알려져 있는 곳은 호미곶(虎尾串)과 함께 동해안 최고의 일출 여행지로 꼽히는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에 ‘간절곶(艮絶串)’이 있다. 그런데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 바로 간절곶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간절곳 명칭의 유래는 어부들이 먼 바다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긴 간짓대(대나무로 된 긴 장대)처럼 보여 간절끝(艮絶)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절곶의 한자를 그저 간절하다 할때의 간절인줄 안다. 그런데 실제 간절하다 할때의 한자는 간절(懇切)이지 간절곶의 간절(艮絶)이 아니다.
간절곶을 알려주는 교통 표지판에는 한자가 정확하게 나와 있다. 그런데 간절곶의 실제 유래는 더 심오하다.
그러면 간절곶艮絶串의 실제뜻은 무엇일까?
간절곶의 간(艮)은 간방(艮方)을 뜻한다.『주역』「계사전」을 보면 간(艮)은 東北之卦也니 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이니 故로 曰成言乎艮이라, 간艮은 동북방을 가리키는 괘이니, 만물의 끝과 시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고로 성인의 말씀이 간방(艮方)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이 바로 동북東北 간방(艮方)이다.
간절곶(艮絶串)이란, 간艮이 끊어지는 곳, 여기가 간방艮方의 끝이라는 뜻이다. 옛날 선인들이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이다. 간(艮)은 日과 氐(근본 저)의 합성어로 일출지근(日出之根, 해가 뜨는 근원 자리)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 민족의 정서라고 하는 한(恨)이라는 글자를 보면 간방(艮)의 마음(心)이라는 뜻이다. 간(艮)이라는 글자의 형상을 아기가 자궁에서 자라는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지난 해 여문 열매가 봄이 되어 새싹을 내는 것과 같다. 간괘(艮卦)는 이렇게 마침과 시작, 열매, 새싹을 상징한다.
삼국사기에는 계룡산을 토함산, 지리산, 태백산과 함께 오악 중의 하나로 꼽으면서 계룡산은 하늘을 향하는 용의 모양이고
'산태극', '수태극', '회룡고조' 등의 하늘의 이치를 가진 신비의 땅으로 언젠가는 이곳이 수도가 되어 천하 36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역사가이자 문학가로 홍만종(洪萬宗,1643~1725)이 1678년에 지은 ‘순오지(旬五志)’에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 아래 새 수도 건설을 시작했을 때의 전설을 수록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계룡산을 회룡고조형국(回龍顧祖形局)으로 상봉인 천황봉이 형제봉·중두봉(中頭峯)·종봉(終峯)을 이루어 이것을 제자봉(帝字峯)이라 한다. 즉 황제가 앉을 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새 도읍지로 결론을 내리고 궁궐 축조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계룡산은 전읍(尊邑)이 들어설 곳이라며 당장 계룡산을 떠나라고 엄포한다.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李肯翊,1736~ 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실려 있다. 1393년 음력 3월부터 계룡산 신도안에 천도(遷都) 사업이 한창이던 1393년 말, 문신 하륜(河崙)의 주장에 의해 결국 계룡산 천도 계획은 백지화되고 말았다.
서애(西涯)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
鷄龍石白 草浦舟行 大小中華偕矣 漢陽李氏三百年之地, 在於天數 若有小遺則四百年 以後至七甲子以後申年可知也
계룡산에 도읍이 들어서는 시기는 계룡산의 돌이 하얗게 되고, 무넘이고개로 물이 넘어가 초포(草浦, 현 노성현 하류)에 배가 드나들 때 알 수 있다고 했는데, 1990년 금강 하구뚝 제방공사가 완공되자 강물이 불어 초포(草浦)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계룡산의 바위 또한 과거에는 검고 짙었던 바위가 대기오염으로 인한 산성비로 옅은 백화현상을 보이고 있다.
『기말록(其末錄)』에서는
國都連山 黎民得所 鷄龍石白 艸浦行舟 平沙三十里 南門復開 草浦西津 舟客萬里 沙岸南洞 國步千載
연산(連山)을 나라에 도읍으로 정하면 일반 백성들이 살 곳을 얻으리라. 계룡산의 돌이 흰빛이 되고, 초포(草浦)에 배가 다니고 모래벌 30리에 남문(南門)이 다시 열리고 초포 서쪽 나루는 배 탄 손님이 만리 정도 되고, 모래 언덕 남쪽 골은 나라의 운명이 천년의 세월이로다.
임진왜란의 중심에서 조정공론을 이끌었던 영의정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형인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은 일찍이 계룡사부설(鷄龍四府說)을 주장했는데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 서유군부(西有軍府),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 중유궁내부(中有 宮內府)로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 서쪽에는 군사령부인 계룡대, 남쪽에는 계룡시가 들어서서 그의 예고가 적중했다.
앞으로 중앙에는 새 세상의 황궁이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탄허(呑虛) 스님은 앞으로 다가올 후천세계에서는 계룡산을 주축으로 하여 새세상의 운세가 돌아가게 된다고 하였다.
풍수지리학의 원리로 신도안은 3백리 역룡진처(逆龍盡處)의 회룡고조맥(回龍顧祖脈)아래 산·수태극(山·水太極)에 자리한 명당 중의 으뜸은 제자봉(帝字峰) 아래에 있는 자미원국(紫微垣局)으로 전 세계를 다스릴 황제 정궁(正宮)으로 알려진 터다.
"정감록(鄭鑑錄)에는 조선왕조 다음에, 정도령(正道令)이 계룡산에 도읍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하며,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지가 된다고 쓰여 있다.
“정감록의 핵심이 되는 정도령을 “격암유록에는 "先天秘訣 篤信마소 鄭僉只는 虛僉只라" 선천비결에 나오는 정도령은, 정씨(鄭氏) 성(姓)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씨(鄭氏) 성(姓)을 쫓지 말라는 것이다.
신라말기 도선국사는 그의 저서 『도선비기(道詵秘記)』에서 개성은 5백년 도읍지이고, 한양은 4백년 도읍지이며, 계룡산의 신도안은 8백년의 도읍지라고 하였다. ≪도선비기道詵祕記≫는 도선과 일행선사(一行禪師)가 우리 나라 산천의 길흉에 대해 나눈 문답으로 되어 있으며, 조선 말기의 혼란 끝에 조선이 망하고 결국 계룡산에 도읍이 들어서게 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류운룡(柳雲龍)의 계룡사부설(鷄龍四府說)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 서유군부(西有軍府),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 중유궁내부(中有 宮內府)로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 서쪽에는 군사령부인 계룡대, 남쪽에는 계룡시가 들어섰다.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
서유군부(西有軍府), 서쪽에는 군사령부인 계룡대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 남쪽에는 계룡시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에 꽂으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꾼이 콩밭(太田)에서 낮잠을 자며 때를 넘보고 있느니라.” 하시고
“내가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太田)에 꽂았느니라.” 하시니라.
작은 서울이 큰 서울 되리니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새 세상이 오면 서울이 바뀌게 되느니라. 큰 서울이 작은 서울 되고, 작은 서울이 큰 서울이 되리니 서울은 서운해지느니라.
허미수(許眉叟)는 하루 만에 강선루(降仙樓)를 지었다 하나 나는 하루 만에 36만 칸 옥경대(玉京臺)를 짓느니라.
금강산 구룡폭포의 금(金)이 서해바다에 와 묻혔나니 장차 36만 칸 옥경대의 상량이 되리라.” (道典 5:136)
인개벽을 당하리라
불(火)개벽은 일본에서 날 것이요, 물(水)개벽은 서양에서 날 것이니라.
인천에서 병이 나면 전 세계가 인(人)개벽을 당하리니 세상을 병으로 쓸어 버리리라.
피난은 콩밭에서
피란은 콩밭(太田) 두둑에서 하느니라.
태전(太田)이 문턱이니라.(道典 7:43)
상제님께서 금산사를 집처럼 자주 가시는데 상제님께서 가시면 금산사 중들이 “미륵존불, 미륵존불.” 하고 불공을 드리니라.
4월에 하루는 금산사로 가시는 길에 계룡봉(鷄龍峯) 옆을 지나시며 말씀하시기를
“태전(太田)은 현룡재전(見龍在田)이요 여기는 비룡재천(飛龍在天)이니라.” 하시니라.(道典 3:84)
계룡봉(鷄龍峯): 모악산 계룡 마을 에 있는 계룡산의 봉우리. 딱지봉, 닭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룡재전(見龍在田): 『주역』‘건괘(乾卦)’ 두 번째 효의 효사(爻辭). 원문은 ‘見龍在田 利見大人(드러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 이다. 앞으로 인종씨를 추리는 대개벽기를 맞아 생사판단을 하는 인사(人事)의 절대자가 출세하는 이치를 예고한 글귀다.
비룡재천(飛龍在天): ‘건괘’의 다섯 번째 효의 효사. 원문은 ‘飛龍在天 利見大人(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 이다. 여기서 비룡(飛龍)은 상제님이며 당신의 조화권능으로 앞세상의 이정표를 질정하신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곳이 제왕지지니라
상제님께서 얼마를 더 가시다가 문득 한 자리에 멈추어 서시더니 오른발로 땅을 힘껏 세 번을 구르시며 큰 소리로 외치시기를 “이곳이 제왕지지(帝王之地)니라! 여기서 왕이 나온다! 장차 여기에서 전무지후무지법(前無知後無知法)이 나오리라.
태전을 집을 삼고 인신합덕을 하리니 태전이 새 서울이 된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오로봉전이십일(五老峰前二十一)이 아니라 오로봉전태전이니라.” 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萬國活計南朝鮮이요 淸風明月金山寺라
만국활계남조선 청풍명월금산사
文明開化三千國이요 道術運通九萬里라
문명개화삼천국 도술운통구만리
만국을 살려낼 활방은 오직 남쪽 조선에 있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의 금산사로다.
가을의 새 문명은 삼천 나라로 열려 꽃피고
도술 문명의 대운은 우주 저 끝까지 통하리라.(道典 5:306)
중유궁내부(中有 宮內府) 앞으로 중앙에는 새 세상의 황궁이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 「정북창(鄭北窓)」 선생(1506~1549)은 조선 중종, 명종 때의 학자, 충청도 온양 사람으로『궁을가(弓乙歌)』는 북창 선생이 미래사의 전개과정을 가사형식에 담아 후세에 전한 것이다.
“조선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난다. 사명당(四明堂)이 갱생하니 승평시대(昇平時代) 불원이라 창생도탄 없어진다. 포덕포화(布德布化)하는 때라 … 대성지화(大聖之化) 돌아오니 궁을(弓乙)노래 불러 보자.
≪정북창비기 鄭北窓祕記≫는 조선 말기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찾아야 된다는 내용과 남북이 분열되어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한다는 것, 그리고 계룡산에 도읍이 들어서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운기귀책 運奇龜策≫은 조선시대 말엽부터 계룡산으로 도읍이 확정될 때까지 일어날 중요 사건들을 연도별로 예시한 기록이다.
≪동세기 東世記≫는 이성계의 28대 후에 조선이 망한다는 것과 일본의 침략이 있다는 것, 남북 분단으로 민족의 비극이 생기며 통일의 대업을 이루어 계룡산에 도읍할 때까지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연대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
≪삼한산림비기 三韓山林祕記≫는 대한민국 산천의 생김새와 산맥의 분포 등을 설명하고, 산천의 정기와 성정(星精)이 서로 조화되어 도읍지가 정해지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조선 500년의 수도가 되나 북악과 남악의 겁기(劫氣)로 전란과 재난이 끊일 사이가 없게 됨을 밝히고, 계룡산의 빼어난 지세로 계룡산 800년 도읍이 보장된 곳이라고 하였다.
지구촌의 앞날을 예고한 분들은 신라시대 원효대사, 의상대사, 고운 최치원 선생등의 기록이 있고, 신라말 고려 초의 왕사인 도선국사가 남긴 기록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 북창 정렴, 격암 남사고, 토정 이지함, 서산대사, 퇴계 이황, 율곡 이이, 겸암 류운룡, 서계 이득윤, 고산 윤선도, 반계 류형원, 강산 이서구 선생... 등, "열거한 분들은, 당대에 정신적 지도자로서, 고승이거나 대학자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의 풍수지리
세상만사가 다 순(順)해야 되는데 지리만은 역(逆)해야 된다. 서울의 청계천 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역(逆)하여 흐르다 중랑천에서 합쳐져 한강 본류로 빠져 나간다.
북악산의 오른쪽에 친 인왕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사직터널에서 부터 산줄기가 내려와 서대문, 서소문이 생기고 남대문까지 와서 그 줄기가 남산을 치켜올렸다.
그래서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쪽 물은 청계천으로 빠지고 반대쪽 인왕산줄기 서쪽 물은 용산쪽으로 빠져나간다. 인왕산 줄기 안쪽 물과, 북악산과 남산 골탱이의 서울 장안의 안쪽 물은 전부 청계천으로 모여들어 거꾸로 치올라가 중랑천으로 빠져나간다.
청계천 물이 흐르는 방향은 한강 물줄기가 흐르는 방향과 정반대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김포와 강화도 쪽으로 흐르지만, 청계천 물은 묘하게도 서에서 동으로 역(逆)하며 거꾸로 흐른다. 그러니까 서울에 도읍터 하나 만들기 위해 청계천 물이 그렇게 역(逆)을 했다는 말이다
북한강과 남한강 물이 양수리에서 합해져 서쪽으로 빠지는데,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 남산 안쪽 물만 거꾸로 치올라간다. 지리는 이렇게 역(逆)을 해야 터가 생기는 것이다. 집터도, 묘자리도 다 그렇다. 그렇게 되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
이렇게 역(逆)을 하지 않으면 절대 자리가 안 생기는 것이다.
북한산, 인왕산, 남산으로 둘러싸인 4대문 안쪽 물은 모두 청계천에 모여들어 불과 몇km를 역(逆)하면서 흐르다 중랑천으로 빠져 나간다. 청계천이 역수(逆水)하는 거리가 얼마 안되지만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래, 오늘날까지 600년이 넘게 도읍터의 생기를 발하고 있다. 청계천이 역(逆)하면서 흐르는 거리는 몇 키로 될 뿐이다. 서대문 남산 경복궁, 그게 얼마 안 된다. 그렇게 좁아터진 데다. 그래도 그 기운 가지고 조선왕조 500년을 끌고왔다.
그리고 노량진에서 제일한강교를 넘다보면 가운데 중지도라고 있다. 이런게 왜 생겼느냐 하면 한강물이 빠지는데, 중간에 중지도가 있어서 서울의 땅 기운이 빠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밤섬이 있다.
홍수가 밀려오면 잘잘한 밤섬같은 것은 그냥 쓸려가 버리고 말 것 같은데, 여러 천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또 그런가하면 그 밑에 여의도가 있다.
또 조금 더 내려가면 난지도가 있고, 강화도에 가면 ‘손돌목’이라는 곳이 있어서 강이 기역자로 구부러져 있다. 그것이 다 설기(洩氣)되는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왜 손돌목이라고 이름을 붙쳤나?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당시 천도(遷都)를 할 시에 도읍지를 계룡산 신도안으로 하느냐, 한양으로 하느냐, 공론이 분분했다.
신도안에 가보면 그때 나라의 사령탑을 짓는다고 깎아 놓은 주춧돌이 지금도 남아 있다.
터 닦던 데를 파 보면 볏짚 한 켜 깔고 다시 황토를 한 켜 깔고, 그렇게 정토(淨土)를 해 놓았다.
이성계가 거기를 내던지고 서울로 천도를 하고 나서 그 터에다 절을 지었는데 그 절 이름이 정토사(淨土寺)다. 그런데 높은 벼슬아치들이 거기를 버리고 한양으로 갈 때, 강경에서 배를 타고서 갔다.
배가 김포 손돌목을 접어들어 가는데, 거기가 기역자로 구부러져 버렸다. 서해안은 하루에도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간만의 차가 있어서 배가 썰물을 따라서 쏜살같이 앞으로 올라가는데, 배에 탄 높은 벼슬아치들이 보니까 배가 지나갈 틈이 없다. 그냥 가다가는 절벽에 탁 부딪혀서 배도 깨지고 몰사하게 생겼다.
그래서“저놈 죽여라. 저놈이 우리를 다 죽이려고 한다”며 뱃사공을 죽이라고 했다.
그 뱃사공이 장가도 못 간 떠꺼머리 총각이었다. 그 뱃사공은 바가지를 물에다 띄워 주면서“이 바가지 가는 대로만 따라 올라가면 됩니다” 하고서 죽었다. 그런데 거기서는 배를 돌이킬 수도 없다.
너무 좁아서 배 하나 간신히 지나가면 그만이다. 하는 수 없이 뱃사공이 말한대로 들물에 떠밀려서 올라가 보니, 기역자라고나 할까 니은자라고나 할까 그렇게 각이 졌다. 그때 죽은 사공이 밀양 손(孫)가다. 장가도 못 간 손도령이 죽은 곳이라 해서 손돌목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또 그 사공이 죽은 날이 음력 시월 스무날인데, 조선 5백 년 동안 이날만 되면 보통 추운 게 아니었다.
그것을‘손돌이 추위‘라고 한다. 그래서 손돌이 추위가 오기 전에 김장도 해야 되고, 이엉을 엮어서 지붕 해 이는 것도 그 안에 다 해야 했다. 손돌이는 손도령이라는 말이다. 장가도 못 들고서 너무 억울하게 죽어서, 그 원한 때문에 그렇게 날이 춥다는 것이다. 물이 빠지는 곳을 학술용어로 파(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파(破)는 손돌목처럼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서는 물 빠지는 파(破)가 중국 대륙과 대만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이다. 그게 땅 속으로 이어져 있는데, 높은데는 필리핀과 같은 섬나라도 있고 깊은 데는 물속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구슬을 꿴 것 같다고 유구열도(琉玖列島)라고도 했고,
노끈 모양으로 연결이 되어져 있다고 해서 충승도(沖繩島)라고도 했다. 금문도(金門島)니, 조종도(祖宗島)가 있는 곳, 아주 협소狹小한 데다.
왜破 파는 그렇게 협소하게 되어져 있느냐 하면, 그 안에 있는 광활한 생기(生氣)가 빠져나가 버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알아듣기 쉽게 남자의 양물, 자지 구멍은 오줌을 눌 때나 조금 벌어지고 늘 붙어 있다. 또 분문(糞門)이라고, 똥 분 자, 문이라는 문 자, 똥 나오는 구멍 문이 있다. 그것도 항상 닫혀 있다.
또 여자한테는 구슬 옥 자를 붙여서 옥문(玉門)이라고 한다. 그 안에는 아기를 잉태해서 기르는 궁전, 자궁(子宮)이 있다. 이 자궁도 필요에 의해서만 벌어지고 항상 딱 붙어 있다. 거기는 샐 설(泄) 자 기운 기(氣) 자, 설기(泄氣)가 되면 안 된다. 생물이라면 100%가 다 그렇게 되어져 있다. 파(破)를 설명하느라고 하는 말이다.
다시 좀 더 설명을 하면, 강원도 금강산의 중심이 비로봉이다. 거기서부터 비롯한 물이 한강으로 다 흘러내려 온다. 충청북도 속리산 남쪽 물은 금강으로 내려오고 속리산 서북쪽 물은 남한강으로 내려간다. 양수리에서 북한강 물과 합류를 하기 때문에 양수리(兩水里)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만유의 생명체란 알기 쉽게 말하면 다 군신좌사(君臣佐使)로 조직되어 있다.
꽃으로 말하면 꽃 이파리가 열 개고, 스무 개고 있지만 그게 다 꽃 속, 꽃 중심에 있는 화심(花心)을 위해서 붙어 있는 것이다.
‘탐화봉접(貪花蜂蝶)이라고, 꽃을 탐하는 벌과 나비를 보면 꽃 속 가운데 있는 화심(花心)에만 가서 앉아서 기다란 침을 꽂고서 꿀을 빨아먹는다. 그 중심, 핵核, 그게 화심이다.
지구가 한 송이 꽃이라면 우리나라가 바로 꽃 속 화심이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처럼 24절후가 똑바른 데가 없다. 춘하추동 사시가 똑바르고, 기후도 삼한사온으로 고르고, 물맛도 지구상에서 가장 좋다.
지구상에 이렇게 생긴데가 없다. 풀도 우리나라 땅에서 자란 것이 약효가 가장 좋다. 우선 인삼 하나를 예로 들어봐도, 우리나라 인삼 한 뿌리면 중국 인삼 다섯 뿌리의 약성에 해당한다. 중국 인삼 다섯근을 먹어도 우리나라 인삼 한 근 턱도 안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람도 또한 그렇다. 민족성이 비뚤어졌든 어떻든 두뇌가 가장 영특하다. 우리나라가 바로 지구의 혈자리, 지구의 핵이다.
공자는 주역周易 계사전에서 괘상을 풀이하면서 간(艮)은 동북지괘야(東北之卦也)니 만물지소성종이소성시야(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일새 고(故)로 왈성언호간(曰成言乎艮)이라‘고 했다.
‘간(艮)은 동북방을 가리키는 괘이니, 만물의 끝과 시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고로 성인의 말씀이 간방(艮方)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즉 간방에서 열매를 맺고 간방에서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주역周易의 방위로 볼 때, 간방(艮方)이란 동북방 곧 우리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곧 우리나라에서 인류 시원문명의 싹이 트고, 또 우리나라에서 문명의 결실을 이룬다는 것이다.
본래 지리학은 한(漢)나라 때 청오(靑烏)라고 하는 분이 처음 제창했다. 그 후 여러 사람을 거쳐서 오늘날까지 전해졌으나 다만 국지적(局地的)으로만 얘기한 것이다.
과거에는 ‘산지조종(山之祖宗)은 곤륜산(崑崙山)이요, 수지조종(水之祖宗)은 황하수(黃河水)라’고 했었다. 지구의 축(軸)이 곤륜산(崑崙山)이라는 말이다. 알기 쉽게 이 지구의 뿌리가 곤륜산이라는 말이다. 수레바퀴가 둥글어 갈 때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구에서 수레바퀴의 축에 해당하는 곳이 히말라야에 있는 곤륜산이라는 것이다. 지구상의 산줄기가 전부 곤륜산에서 비롯되어 다 뻗어 내려갔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봐도 동,서양의 산이 곤륜산을 모태로 해서 갈려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산맥이 구부러지고 틀어진 것이 그냥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다.
지리를 모르면, 산천(山川)이 제멋대로 구부러지고 틀어지고 길쭉하고 모가 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리(地理)를 알고 보면 글자 쓰는 것과 같다. 하늘 천(天)자를 쓸 때, 일정한 법칙에 따라 글자를 쓰듯, 지리도 그렇게 규칙적으로 되어 있다. 산(山)의 줄기 하나 내려간 것도 조금도 어긋남 없이 글자 쓰듯이 나타난다.
들판이 생기려고 해도 들판이 형성되어 나온 주산(主山) 마디가 있다. 한 마디가 10 미터 되는 것도 있고, 100 미터가 되는 것도 있다. 마디가 있으면 반드시 들판이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용절(龍絶)이라고 하는데 용절을 재어 보면, 어디쯤에서 들판이 생긴다는 그런 법칙이 나온다.
곤륜산에서 뻗은 여러 산줄기 중 하나가 우리나라로 뻗어 들어와 백두산을 일으켰는데, 그 중간에 큰 들판이 있다. 그것을 만주 요동 칠백 리라고 한다. 기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 보면, 워낙 들판이 넓어 하루종일 가도 갈대와 하늘이 맞닿아 있다. 지리는 워낙 호호탕탕하고 틀이 커서 오히려 천문(天文)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라서 옛날 사람들이 ‘난지자(難知者)는 지리(地理)라’ 알기 어려운 것이 지리라고 했다. 지리는 그냥 아무렇게나 생긴 것이 아니다.
대전(大田)의 형국
서울과 비교할 때 대전의 형국은 진안, 무주에서부터 추풍령, 속리산 물이 전부 거꾸로 치오른다.
우리 나라 대세가 전부 위에서 아래로,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가는데, 이쪽 물은 거꾸로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오른다. 추풍령, 무주, 진안, 장수가 다 남쪽이다.
금강이 공주에 고마나루까지 물이 거꾸로 올라가서, 거기서 부터는 부여쪽으로 구부러져서 장항 군산쪽으로 순(順)하게 내려간다. 지구에서 자리가 이렇게 된 곳이 없다. 서울의 터는 대전에 비하면, 손바닥만 한 것이다.
대전이 서울터의 몇 백배에 해당한다. 속리산쪽에서 부터 장수, 진안, 무주로 해서 공주까기, 우리 나라 중심부 절반을 역(逆)을 한 곳이다. 지리학상으로 볼 때 지구의 혈이 바로 남북한을 통털어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 중에서도 오직 대전이 자리한 중부지방 이곳만이 지구의 혈이다. 본래 천지가 형성 될때 혈자리가 정해진 곳이다.
우리나라 주변의 지리를 보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길게 감싸주고 있는 형상인데 그 형상을 내청룡(內靑龍)이라고 한다. 쉽게 얘기하면 일본이 혈穴인 우리나라의 담장이고 성곽인 셈이다.
일본의 구주 같은 데는 부산 태종대에서 날씨 좋은 때 보면 어렴풋이 보일 정도로 가깝게 있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은 외청룡(外靑龍)이고, 중국 대륙에서부터 싱가포르까지가 내백호(內白虎)다.
중국을 보면 아주 첩첩이 에워싼 만첩백호(萬疊白虎)다. 그것이 다 내백호다. 아프리카 대륙은 외백호(外白虎)다.
청룡은 비상飛上하고 즉 청룡은 나는 것 같이 보이고, 백호는 순복順服하고, 순하게 엎드려 있는 것 같아야 지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호주 뉴기니아 앞쪽은 우리나라의 안산(案山)이다.
기운이 빠지는 곳, 즉 물이 빠지는 파(破)는 대만해협이다. 언뜻 보면 구주에서 부터 대만까지가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연륙되어 있다. 다만 높은 데는 물로 드러나고 얕은 곳은 몇 백 미터씩 물밑에 잠겨 있을 뿐, 사실은 대만까지가 전부 다 붙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점점이 이어진 섬을 유구열도(琉玖列島)라고 한다.
만주에서 부터 요하, 난하, 황하, 양자강 물이 전부 황해로 쏟아져 나와 대만해협을 통해 빠져나간다. 그런데 그 기운이 설기(洩氣)되는 것이 아쉬운데, 대만해협에 금문도(金門島)와 조종도(祖宗島) 라는 섬이 있어서 물 빠지는 입구를 아주 협소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동해와 서해는 내 명당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지구의 기운을 우리나라에 다 몰아놓은 것이다.
알고보면 구부러지고 틀어진 지구의 산천이 전부 혈穴자리를 옹호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오대양 육대주가 전부 지구의 혈자리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곤륜산에서 부터 지맥이 뻗어 나와 우리나라 요동 칠 백 리 만주 땅에 결인(結咽)을 하고(결인이란 지리학상의 술어로 맺을 결(結)자, 목구멍 인(咽)자다), 백두산을 일으켜 들어왔는데, 백두산에서부터 금강산으로 해서 뻗은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사람으로 말하면 24척추와 같다.
우리나라의 산줄기가 백두산에서 비롯되는 산줄기 체계와 바다로 빠져나가는 강줄기 체계를 보게되면. 특이하게도 오직 금강錦江 줄기만이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거의 절반을 역(逆)하면서 흐른다. 이렇게 크게 역(逆)을 하여 생기를 모으는 지세는 전세계를 통틀어 오직 태전(大田)을 에워싸고 있는 금강 수계 뿐이다.
사람에게도 앞뒤가 있듯, 산에도 앞뒤가 있다. 곤륜산 중에서 우리나라 쪽은 산 앞이고 곤륜산의 뒤, 구라파 쪽은 산 뒤다. 산 뒤는 덤으로 있는 것이어서 뒤쪽은 따질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