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결(起承轉結) 은 문장이나 스토리를 4 가지로 나눌 때의 구성이며,
글을 짓는 격식(格式)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기(起)는 글이 시작(始作)되는 부분을 말합니다.
승(承)은 '기(起)' 를 이어받아서 전개하는 부분
전(轉)은 '승(承)' 의 내용을 부연하거나 전환하는 부분
결(結)은 글 전체(全體)를 맺는 것 입니다.
[ 소쩍새와 감자 ]
<기(起): 글을 시작함>
모내기를 끝내 놓고 한달 열흘후 쯤에,
커가는 모의 활황을 좋게 하기 위한 논바닥 애벌매기를 한다.
햇빛을 받아 번들번들 눈부신 논바닥에 기역자로 엎드려
논매기를 하노라면, 그야말로 오뉴월 뙤약볕을 받은 등짝은
여러개의 탱자나무 가시를 모아 한꺼번에 찌르는 듯
사정없이 따갑고, 이제는 제법 자라 기운이 세어진
모 이삭들이 얼굴과 팔을 휘적휘적 스치면 더러 피가 나기도 한다.
땀은 비오듯 하고 허리는 부러지는 것 같아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지경에 이른다.
<복선(複線)1: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 앞으로 발생할 사건에
대하여 그에 관련된 일을 미리 넌지시 비쳐 보이는 일>
거기다가 엊그제 장가든 아랫 마을 사는 왈패 친구 녀석이
빈 지게를 지고 소를 몰고 논매는 옆을 지나가면서, "
이랴, 이 놈의 소, 엇길로 가면 지금 저 무논에 있는
장가도 못간 어설픈 못난이 대신 논매기를 시킬테다.
이랴, 이랴, 말 잘들어. 이놈의 소..."
하며 눈과 입을 찡긋거리며 약을 올리면서 지나가면
이젠 참을성도 한계에 이른다.
"야! 너 거기 좀 섰거라 -"
소리치며 호미를 팽개치고 논둑길을 뛰어 잡으러 가면,
놀려먹던 친구 녀석은 걸음아 날 살려라 소 잔등을
후려치며 마구 달아난다.
기어코 잡아서 족칠 만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얼마쯤 따라가던 떠끄머리 총각은 풀섶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내 쉰다.
<승(承): 기(起)' 를 이어 받아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부분)> 및
<복선(複線)2-1: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 앞으로 발생할 사건에
대하여 그에 관련된 일을 미리 넌지시 비쳐 보이는 일>
하긴 못나기도 참 못났다. 남들 다 가는 장가를
스무살이 넘도록 못 가고 있으니...
다른 건 다 그만두고라도 이렇게 힘든 일을 하다보면
금방 시장기가 도는데, 때 맞추어 흰 앞치마 두르고
쌩긋 쌩긋 웃으며 먹을 것 이고 오는 아내가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이그 이 지지리도 못나 빠진 놈.
미처 장가도 못간 녀석이 앞질러 별별 김칫국물을
다 들이키고 있구만... 딱하기도 하지.
혼자 한탄하며 자신의 머리를 두 주먹으로
쾅쾅 찧어보다가 별 수 없이 거머리 들끓는
무논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다시 기역자로
엎드려 논 바닥을 주물럭 거리기 시작했다.
<전(轉)1: '승(承)'의 내용을 부연하거나 전환하는 부분>
그렇게 초여름 해가 이윽고 서산을 넘어가고 건듯건듯
시원한 바람이 불면, 아무리 일 잘하는 장정도 하룻만에는
하기 힘들다는 닷마지기 논매기가 남들보다 두배나
부지런하고 재빠른 총각의 손으로 거짓말같이
거진 다 마무리가 된다. 일이 끝나면 조그맣고
맑은 빛깔로 흐르는 도랑물에 손과 발을 대충 씻고
논 머리에 세워둔 빈지게를 지고 논 뒤에 있는
산에 올라 쇠꼴 한짐을 쓱싹쓱싹 단숨에 한다.
다시 꼴을 지고 김 맨 논을 휘 둘러보면 모들이
살았다는 듯 파르르 웃는다.
그러면, 언제 이 너른 논을 혼자 다 맸을꼬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해지고, 휘파람도 절로 난다.
날은 거뭇거리고 있다. 쇠꼴 짐을 진 노총각의
걸음새는 힘차면서도 바쁘다. 병을 앓고 있는
노모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음이다.
급한 걸음에 돌부리가 가끔 짚세기 사이
삐죽 나온 발가락에 걷어 채인다.
저물어 가고 있건만 낯 익은 산골 길은 산뜻하고 정답다.
어둑해지는 하늘과 비례해서 점점 선명하게 하얘져 오는
찔레꽃 숲에 중꿩이 다 되어 가는 꿩병아리들의
종종 걸음이 분주하다.
그 찔레 덩굴 너머 하루걸이 비탈진 밭에 감자꽃이
수줍지만 기운좋게 감자줏빛으로 수수하다.
하지 무렵에 캘 수 있는 감자는 지금쯤 아마도
씨알이 굵어져 가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가을, 감자를 캔 후에 양식할 것과 이듬해
씨 할것으로 구분하여 씨감자는 땅에 잘 묻어 두었었다.
그러나 소작농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탓에 두 모자(母子)밖에
먹는 입이 없건만 양식은 겨울도 다 지나기 전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옥수수 죽일망정 병든 어머니에게만은 어떻게든
먹을걸 장만해주고 총각은 어머니 몰래 고픈 배를 움켜지고
몇날동안 끼니를 걸렀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듬해 봄에 밭에 심을 감자를 캐내어 삶아 먹을
생각은 애시당초 꿈도 꾸지 않았다.
그리고 금년 봄에 드디어 묻어 두었던 감자를 꺼내어
가랑잎 태운 재를 밭에 먼저 뿌린 다음,
감자 한조각당 씨눈 두어개씩이 돌아가도록 잘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심었었다.
오랜 지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외아들이 말리는데도
기어코 감자 심는 날은 와서 뼈만 앙상한 몰골로
감자를 같이 심었었다.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맛있는 저 감자를 캐리라.
허기가 질대로 져 배는 꼬르륵대고 있었는데,
감자 생각이 나자 입안 가득 쓸데없는 군침이 꾸역꾸역 괸다.
<복선(複線)2-2: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 앞으로 발생할 사건에
대하여 그에 관련된 일을 미리 넌지시 비쳐 보이는 일>
그나 저나 감자 캘 때 생긋 생긋 웃으며 옆에서 같이 캐주는
아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북수북 고봉으로 담은 밥그릇 위에 감자 서너개를 얹어 된장,
고추장, 풋고추를 곁들인 저녁상을 내오는 아내가 있다면
얼마나 기운이 날까?
<전(轉)2: '승(承)'의 내용을 부연하거나 전환하는 부분>
어허 또다시 섣부른 김칫국을 마시는구나 쓴웃음 지으며
어두워오는 감자밭을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감자밭 한 귀퉁이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깜짝놀란 총각은,
"거기 웬 사람이오?"
궁금증 반 노기(怒氣) 반을 띄운 음성으로 크게 소리침과
동시에 지게를 고여놓고 찔레 덩굴을 훌쩍 뛰어 감자밭으로
성큼 들어섰다. 총각의 큰소리에 지레 겁을 먹은 칩입자는
감자밭 머리에서 머리를 숙이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처녀였다.
길게 땋은 머리에는 색바랜 분홍댕기를 들였고,
흰 무명적삼과 검정치마를 입고 짚신을 신은 처녀는
못먹어 누렇게 뜬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의외로 단정한 모습이었다.
순간, 총각은 할 말을 잊었다.
귀중한 남의 감자밭을 유린(蹂躪)하는 도둑에게
단단히 혼을 내리라 작정했던 마음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려지고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성급한 소쩍새가 울기 시작했다.
호된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하여 굶어 죽은 며느리가
소쩍새로 화해서 밥솥이 적다고 밤마다 저렇게 애간장이
다 녹아들도록 운다지? 총각은 소쩍새 울음을 듣는 순간
눈앞의 처녀가 혹시 소쩍새로 변하여 죽은 그 며느리의
딸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처녀의 가엾은 정경에 갑자기 가슴이 끝없이
시려오고 목이 매어 왔다.
"따라오시오!"
어떻게 그런 당치않은 말이 나왔을까? 그 말을 하고
쇠꼴지게를 지고 성큼성큼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배고픈 사람에게 그냥 저녁이라도 한끼 따뜻하게
차려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 뿐이었다.
따라올 듯 말 듯 망설이던 처녀는 결국
총각의 집까지 따라오게 되었다.
의외의 상황에 놀라는 한편으로 어떤 좋은
기대감에 부풀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주인 노파에게
가엾은 처녀는 저녁 밥을 맛있게 얻어 먹고
그 노파와 잠까지 같이 잤다.
처녀는 재너머 숯골 마을 홀애비 숯구이의 딸이었다.
어미를 일찍 여의었는데, 지난해 어느날 숯 팔러 간다고
집을 나선 술꾼에 노름꾼인 아비마저 감감 무소식이 되자,
먹을 양식이 떨어져 며칠을 굶다가 그런 짓을 하게 되었노라고 했다.
노파가 며칠을 얼르고 달래어 기어이 그녀의 아들과 처녀의
조촐한 혼례식이 외딴 산마을에 난데없이 올려지게 되었다.
누가 중매를 섰을꼬하며 궁금해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모자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감자밭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는 말은
아예 입 밖에 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결(結): 글 전체(全體)를 맺어가고 있음>
혼례가 있은지 얼마쯤 지나 땅위의 감자꽃이 지고
줄기도 이지러진 다음, 땅속의 감자는 굵게 영글었다.
그리고 그 씨알 굵고 먹음직한 감자를 캐는 날,
<복선(複線)2-1 및 2-2의 동시 완결-발생할 사건에 대하여 그에 관련된
일을 글 초반에 미리 넌지시 비쳐 보인 일을 마무리 함>
이젠 어른이 된 총각 옆에 어여쁜 아내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같이 감자를 캐고 있었다. 저절로 기운이 났다.
그렇게 덥고 꿈같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 논에서
가을걷이를 할 때였다. 여름에 둘이서 캔 감자를 삶아서
머리에 이고 막걸리 주전자를 달랑대며 논둑길을 걸어오는
아내는, 더 없이 사랑스러웠다.
<복선(複線)1의 완결-발생할 사건에 대하여 그에 관련된
일을 글 초반에 미리 넌지시 비쳐 보인 일을 마무리 함과 동시에>
그리고, 논 맬 때 혀를 낼름 내밀며 놀리던 아랫마을 왈패 녀석도
아름다운 두 신혼부부의 옆을 지나가면서 이번에는 감히 놀리지
못하고 만만한 소잔등만 하릴없이 이랴이랴 두드려 대고 있었다.
<결(結): 글 전체(全體)를 맺음>
- 소쩍새 처녀와 감자밭은 한편의 꿈만같은
서경적인 아름다운 장편소설(掌篇小說)이다.
짧은 이 작품 속에 소설문학의 멋들어진 정석(定石)과
같은 기승전결(起承轉結)과 복선(複線)마저도 거의 완벽에
이르도록 구사하고 있다. 한마디로 작품을 성숙시키는
솜씨가 대단하다. 어쩌면 천질적(天質的)인 작가가 아닌가
싶도록 이분의 글은 수필에서건 이야기글에서건 빼어나 있다.
「소쩍새 처녀와 감자밭」을 읽으면서 우리는 저 이효석님의
「메밀꽃 필 무렵」과 동격(同格)의 서경적 서정(敍景的 抒情)의
눈물겨운 아름다움을 복고적으로 흠씬 안아도 보게 된다.
- 【정공채 - 시인;현대문학시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