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선운사 가는 길....
자전거를 밟고 온 지금까지의 주변풍광 중에 여기가 제일이다. 지독스레 나를 괴롭힌 황사도 가라앉은 지금에, 부서지는 봄볕 아래 모두가 무릉이요 도원이다.
거기에다 질퍽한 유혹 유혹들, 온동네가 풍천장어에 복분자주 밭이다.
크크크, 주태백이 가는 길, 복분자주의 단내는 지독하다.
어이 그 달짝지근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리오...
시리릭, 운전대를 돌려, 복분자주 제조공장으로 스믈거리며 접어든다.
아줌마, 인심도 후하다. 복분자주 몇병 샀다고, 점심까지 준다. 동태국에 이름모를 봄나물들, 역시 남도는 먹거리 인심은 풍성하다.
고래고래 악을 써가며 부르는 국적불명의 잡가, 지나가는 이들이 흘끗거릴 정도로 고약한가 보다. 머쓱하다. 그래도 어쩌랴, 나 지금 기분이 왕빵인걸, 나 지금 무지 자유로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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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선운사 선운사 선운사 선운사 선운사 선운사 선운사 선운사 선운사 선운사 선운사다.
동백의 죽음더미위로 은밀히 숨어들어온다.
그들은 이방인에게 자기의 마지막을 철저히 은닉한 채 홀로 들어누워 자기의 끝을 지키고 있다. 사십여미터의 기나안 철조망, 접근을 거부한 그네들의 속살은 봄하늘 그늘에서 검붉게 썩어드리우고 있다.
잡새들은 낯선이의 침입을 부리 아프게 쪼아대고 그네, 그네들은 정작 허연하게 누워 찬란히 부서지는 봄볕만을 관조하고 있다. 한무리의 낙화로서 하루를 잇고 하루의 삶으로서 내일의 죽음을 준비하는 그들은 선운사 내밀한 독경 안에 오늘 서 있다.
오늘이 힘들었을 자네, 붉은 동백꽃이 뚜억이 끊어내린 선운사 동백나무 수풀 아래에서 선잠을 들어보게나, 그 한낮의 풋잠으로 한동안을 잊을 수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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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돌아돌아 도솔암 마애석불을 지나, 여긴 낙조대다. 아직도 누렇게 이놈의 태양은 살아번득이고, 중생을 구제해준다는 지장보살만을 지독스럽게 외며 극악거리는 그놈의 독경은 이내 잦아들어 침묵한다.
군산에서 건져내려온 쥐포꾸러미를 우적거리며 씹어도는 사이, 사람의 무리, 으아악 꽥꽥이며, 낙조대에서 낙조대를 묻는 그들의 우문에 싱긋이 웃어넘긴다.
무얼, 어디로 그리 오르려고만 푸닥이는지 여기까지 오르고서 무엇을 남겼는지도 모르는 그들은 시간에 쫒겨 또다른 봉우리로 허겁지겁 내달은다. 사람을 부르짖어도 사람이 남지않는 그들의 아우성, 침묵하는 바위들이 그들을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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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입구, 신덕장어구이집.
일만사천원의 풍천장어 한접시에 복분자주 한병, 한 상을 가득채우는 온갖 음식들, 오랜만에 입이 호강한다.
달짝지끈하게 넘어들어가는 검붉은 복분자주의 향내는 이내, 기름번지르한 장어한덩이와 마늘 고추쌈으로 틀어막히고... 고솔이며 익어내오는 공기밥 한덩이와, 조개살이 뭉텅이로 담겨내어진 구수한 된장 한사발, 어 이건 뭔가, 뽀득이면서 씹히는 장어뼈다귀 튀김, 요거 별미다. 아줌마 두접시를 더 실어날아오는데.....
해는 이제 그 끝자락의 여운만을 챙겨들고 접어드는 시간이라 잠자리 궁한 이 놈, 후딱 일어나야 할 것인데....
복분자주에 취했는지, 선운사 동백내에 취했는지 쉬이 뜨기가 싫어진다.
아! 선운사, 선운사는 나에게 불디붉은 홍조로서 잦아들고 있다. 나의 봄날은 이렇게 갈지자로 꾸역이며 흘러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