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승리
원제 : Dark Victory
1939년 미국영화
감독 : 에드먼드 굴딩
출연 : 베티 데이비스, 조지 브렌트, 제랄딘 피츠제럴드
험프리 보가트, 로널드 레이건, 헨리 트레버스
코라 위더스픈, 도로시 패터슨
'선샤인' '조이' '라스트 콘서트' '리칭의 스잔나' '사랑의 스잔나' '편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러브 스토리' '애수의 크리스마스' '필링 러브' 선물' '타임 투 리브' '막차로 온 손님들' '8월의 크리스마스' '접시꽃 당신' 뭐 또 없을까요?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뭘까요?
네 맞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들이죠. 신파, 감성 뭐 그런 영화들이 많고, 슬픈 영화들입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 아쉽게 얼마 안 남은 떠날 날을 맞이해야 하는 주인공... 아주 신파적으로 다루는 영화도 있고(편지가 대표적임), 차분하고 의연하게 가져가는 영화도 있습니다.(막차로 온 손님들, 타임 투 리브 등) 또 일부는 실화이기도 하죠.(선샤인, 조이)
이런 유형의 영화중에서 정말 가장 마음에 드는 걸작을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데 바로 30-40년대 전설의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가 등장한 '사랑의 승리' 입니다.
우리나라 고전영화팬들이 가장 눈에 익은 시대의 영화들은 50-60년대 영화들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외국영화가 대량 수입된 시기가 6.25 전쟁 이후인 50년대이고, 50-60년대 영화들이 주말 TV에서 집중방영되었기 때문입니다. 70년대는 영화가 많이 개봉되지 않았고, 30년대는 많이 개봉되긴 했지만 워낙 옛날이고, 40년대는 일제강점기 막바지, 해방, 6.25 등을 겪으면서 외화수입에서 조금 빈 공간이 생기던 시기였으니까요.
험프리 보가트가 처음부터 등장하길래 비중이
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와일드한 여성 주디스(오른쪽)과 절친 앤
베티 데이비스가 혼신의 열연을 보여준다.
그래서 30-40년대 맹활약한 배우들에 대한 인지도가 우리나라에는 많이 낮은데 상대적으로 여배우의 경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소피아 로렌,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나탈리 우드 등 50-60년대 활동한 배우들이 30-40년대 배우인 베티 데이비스, 조안 크로포드, 진 티어니, 바바라 스탠윅, 로레타 영 보다 인지도가 훨씬 높습니다. 베티 데이비스를 기억하는 분들도 아마 '이브의 모든 것'의 아줌마로 혹은 '나일 살인사건'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허쉬 허쉬 스윗 샬롯' '포켓에 가득찬 행복'의 할머니로 기억하는 분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베테 데이비스 아이'라는 팝송도 이젠 모르는 분들이 많을테고 그나마도 그 노래 덕분에 그냥 할머니 배우가 아닌 눈이 아름다운 배우였나보다 라고 어렴풋이 알게 된 분들이 있었지요.
베티 데이비스는 아카데미 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은 명배우로 후보에만 11번 올랐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을 뻔도 했고,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획득한 배우입니다. 연기와 인기 모두 최정상급 전설적 여배우였지요. 앞서 이야기한 영화들은 전성기기 지난 나이든 시기의 작품들이고 '작은 여우들' '제저벨' '레터' '인간의 굴레' '가자 항해자여' 등의 작품들이 전성기 시절 출연한 영화입니다. 오늘 소개할 '사랑의 승리'는 연기와 외모가 정점에 오른 1939년 작품입니다. 왜 베티 데이비스 아이 라는 제목의 노래가 나왔는지 짐작이 될 정도로 둥글고 큰 눈이 돋보이던 31세의 베티 데이비스의 영화입니다.
주디스 트레헌(베티 데이비스)은 부유하게 사는 젊은 처녀로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입니다. 승마, 술, 애완견, 드라이브 등 다양한 취미와 사교활동을 하고 있고 제멋대로의 성격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심한 두통에 시달립니다. 그렇지만 워낙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이 강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냈는데 어느날 프레데릭 스틸(조지 브렌트)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되면서 제법 심각한 병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프레데릭은 바쁜 병원생활을 접고 의학연구를 위해서 버몬트 라는 곳으로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주치의 말조차 무시하던 주디스는 프레데릭의 정성과 편안하게 해주는 배려에 마음을 열게 되고 그의 말대로 치료를 결심합니다. 프레데릭은 여러 저명한 의사들과 의견을 나눈끝에 주디스의 병이 신경교종이라는, 치료가 어려운희귀병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다행히 고통을 못 느끼다가 죽는 병이지요.
이것이 노래로도 유명한 바로 그
'베티 데이비스 아이'
친절하고 진지한 의사 프레데릭의 설득에
결국 진찰을 받기로 마음을 돌리는 주디스
쾌활한 환자 주디스
수술이 끝나고 고통이 사라지자 주디스는 완치한 줄 알고 다시 활발한 삶을 되찾았고, 그 와중에 프레데릭을 사랑하게 됩니다. 주디스의 파티에 초대받은 프레데릭의 심각한 표정을 인지한 주디스의 절친 앤(제랄딘 피츠제럴드)은 프레데릭에게 진실을 듣게 되지만 주디스를 위해서 비밀로 하기로 합니다. 철부지처럼 행동하는 주디스를 위해서 프데레릭은 그녀에게 헌신하기로 결심하는데....
불치병으로 투병하는 여러 영화들이 있고, 그 영화들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행복 ->. 발병 -> 치료 -> 비밀 -> 탄로 -> 혼란 -> 의연 -> 헌신 뭐 이런 과정이지요. 행복하던 젊은 주인공이 병을 알게 되고 치료를 받지만 알고 보니 불치병이고 그걸 주위에서 비밀로 하지만 어찌어찌하여 알게 되고 그래서 혼란에 빠지지만 결국 의연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주변의 헌신으로 뭐... 이런 내용인데 이 영화도 어느 정도는 그런 식으로 전개가 됩니다. 아마 이 작품이 이런 유형의 소재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제시한 작품이 될 수 있겠죠.
그런데 후반부에는 저의 예상과 제법 다른 전개가 됩니다. 저는 철부지 같은 처녀에 대해서 따뜻하고 선량한 의사가 어떻게 감동적인 헌신을 하는가에 대해서 관점을 두고 보았고, 조지 브렌트가 연기한 프레데릭이 딱 그런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반부에 좀 다른 부분으로 감동이 밀려옵니다. 베티 데이비스란 배우의 진가가 정말 톡톡히 발휘되지요. 여기서 중요한 부분을 알게 되었죠. 아픈 사람을 다룬 영화는 주인공, 즉 영화의 포인트가 아픈 사람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주변에서 헌신하고 돕는 사람들이 포인트가 되어서는 안되죠. 이 영화에서 베티 데이비스가 후반부에 보여주는 역할과 연기는 가히 신파장면을 억지로 넣지 않아도 엄청난 감동과 짠함을 밀려오게 만듭니다. 단순히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까지 생각하게 되더군요.
다시 쾌활해진 주디스
쾌활한 주디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프레데릭
주디스의 친구 앤은 프레데릭의
무거운 표정을 읽어내는데...
위에 이야기한 여러 영화들중에서 그래도 이 '사랑의 승리'에 비견될 괜찮은 작품을 저는 '선샤인'을 꼽고 싶습니다. '선샤인'은 실화라서 더욱 감동이었지요. '선샤인'이 전형적인 투병 영화라면 '사랑의 승리'는 삶의 영화이고 로맨스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삶에 대해서의 소중함과 감사, 그리고 의미를 되짚어 보게 만들고, 진실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을 깨우치게 하는데 힘든 것은 아픈 사람만이 아닌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남아있게 되는 사람'도 참 힘들다는 것, 그것에 대한 배려와 헌신이 주는 감동이 정말 큽니다.
베티 데이비스 절정기 때 만든 영화인데 정말 혼신의 열연을 보여주고 외모, 존재감, 연기 모두 절정을 이루던 시기입니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제저벨'이나 비슷한 시기 작품 '작은 여우들'보다 베티 데이비스의 진가가 더 발휘된 작품이지요. 베티 데이비스는 원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역할이 유력했지만 비비안 리 에게 빼앗겨 무산되었고, 대신 그보다 1년 일찍 만들어진 윌리암 와일러 감독의 '제저벨'을 통해서 비비안 리 보다 빨리 아카데미상을 수상합니다. 그게 이미 2번째 수상이었지요. '제저벨'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샘플 버전 같은 느낌을 주는 유사한 부분이 있던 작품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승리'에서도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당연히 올랐습니다. 이미 한참 앞서가는 배우였고, 비비안 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모처럼 스타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은 상황이었죠. 비비안 리가 훨씬 절실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선량하고 유능한 의사 프레데릭 역의 조지 브렌트, 좀 심심한 인상인데, 그래서인지 '제저벨' '나선계단' '내일은 영원히' 같은 영화에 비중있게 등장했지만 존재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스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잘 어울리더군요. 역할 자체가 너무 미남이거나 너무 튀어도 안되고 학자이자 의사라는 직업에 맞게 좀 심심해보이는 인상이지만 의롭고 선량한 역할이니 잘 어울렸죠. (50년대 였다면 많이 잘생겼지만 그레고리 펙이나 록 허드슨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주디스의 절치한 남자친구로 등장한
로널드 레이건(가운데 남자)
나중에 미국 대통령에 오른다.
험프리 보가트는 조연이지만 그래도
베티 데이비스와 키스하는 연기를 한다.
어둠을 이겨낸 사랑의 승리
이 조용히 기도하는 장면이 감동을 준다.
40년대 필름 느와르의 전설적 스타인 험프리 보가트가 다소 굴욕적인(?) 비중이 생각보다 적은 조연 역할인데 역할 자체가 조지 브렌트 들러리 조연 정도입니다. 주디스에게 고용된 말 조련사이고 주디스를 은근 흠모하는 남자, 갱스터 무비에서 에드워드 G 로빈슨, 제임스 캐그니 뒤치닥거리 급 조연으로 악역을 연기하는 시절이 있었던 험프리 보가트가 드라마 장르 조연이라니 좀 색다르게 느껴지긴 합니다. 역할이 크진 않았지만 무려 베티 데이비스와 키스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1941년 '말타의 매'로 드디어 제대로 된 주연배우가 된 것이 42세였으니 이 배우도 참 대기만성이네요. 그 외에는 미국 대통령을 8년이나 수행한 로널드 레이건이 주디스와 매우 친한 알렉 이라는 역할로 나름 비중있게 출연합니다. 당시 28세의 매우 파릇파릇한 시절이지요.
헌신과 사랑, 배려 등 여러가지 삶에 대해서 중요한 의미를 잘 부여한 걸작이고, 이런 소재의 영화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동 그 자체지요. 이 한편으로도 충분히 베티 데이비스의 진가를 알 수 있을 영화입니다. 다른 주 조연 배우들도 대체적으로 좋은 캐스팅이었습니다. 인생이 길든 짧든 누구나 한 번 뿐인 목숨으로 살아가고 주변에 좋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삶을 살앗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게 인간인것 같습니다. 영원한 삶은 누구에게나 없으니까요. 강력한 추천작입니다.
ps1 : 1939년은 정말 좋은 영화가 많았네요. '바람과 함께 사리지다'가 아카데미상을 독식하다시피했지만 다른 좋은 영화들도 유독 그 해에 쏟아졌습니다. '폭풍의 언덕' '오즈의 마법사' '노틀담의 꼽추' '브룩휠드의 종' '포효하는 20년대' '역마차'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생쥐와 인간' '게임의 규칙' '소공녀' '여인들' 등등
ps2 : 궁금해서 찾아보니 '신경교종'은 실제로 존재하는 병명이고 꽤 무서운 병 같습니다. 악성 종양의 일종이더군요.
ps3 : 주디스, 프레데릭, 앤 세 사람이 어떻게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려고 애쓰는 모습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착하고 따뜻하면 참 좋겠습니다.
ps4 : 영화 제막 'Dark Victory'는 후반부에 베티 데이비스의 대사로 등장합니다. '우린 어둠을 이겨내고 승리했다' 뭐 그런 비슷한 대사지요. 우리나라 개봉제목 '사랑의 승리'도 매우 잘 의역한 제목이라고 봅니다.
ps5 : 험프리 보가트는 비중이 작았는데 우리나라 개봉광고는 정작 남자주인공 조지 브렌트는 이름이 작고 험프리 보가트를 크게 부각시켰습니다. 개봉당시는 이미 험프리 보가트가 스타덤에 오른거죠.
[출처] 사랑의 승리(Dark Victory, 39년) 베티 데이비스의 진가를 확인|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