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금불초
대동문화0903 한송주의 산사에서 띄우는 엽서
해우소에서 무상법문을 듣습니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물으니,
“마른 똥막대기다.” 하고 내지른 이는 중국스님 운문선사입니다.
‘마른 똥막대기(乾屎橛)’도 선가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화두(話頭)지요.
오늘은 냄새나는 넋두리를 좀 풀어볼까 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향기가 날 수도 있으니 기대하세요.
절간에서는 변소를 흔히 해우소(解憂所)라고 합니다. 세간에서 화장실(化粧室)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별 뜻이 있겠어요? 그저 냄새 덜 나게 멋을 좀 부려본 거지.
똥간 뒷간 측간이 좀 뭐하면 변소 정도면 됐지, 뭐 하러 그래쌓는지 저로서는 모를 일이데요. 운문선사도 거룩한 부처님을 똥막대기라고 부르는 판에 말입니다. 그렇대도 기왕에 초를 친 바에야 화장을 하는 곳보다는 근심을 푸는 곳이라 한 쪽이 운치는 더 하지요?
해우소라는 말은 근세의 고승인 경봉(鏡峰)스님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전에는 절집 뒷간의 공식 명칭이 정랑(淨廊)이나 청측(圊廁) 정도였지요. 1950년대 통도사 조실을 지내던 경봉스님이 어느 날 글자가 적힌 팻말 두 개를 시자에게 주면서 뒷간에 갖다가 걸라고 했답니다. 대변소에 걸 것에는 ‘解憂所’라고 쓰여 있었고 소변소에 걸 것에는 ‘休急所’라고 되어 있었대요. 경봉스님은 의아해 하는 대중들을 위해 이걸 주제로 날을 잡아 법문을 했는데 그 골격인 즉,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급한 것이 무엇이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는 일이야. 그런데도 중생들은 다른 쓸 데 없는 일로 바빠하고 걱정 아닌 걱정을 쌓아 둬. 휴급소에 가서 급한 마음 쉬어가고 해우소에서 근심 걱정 버리면 그게 바로 도 닦는 거야.”
실제로 해우소에서 도 닦는 분들이 있나 봐요. 절간이건 세간이건 남자건 여자건 뒷간에서 편안하게 근심을 아래로 풀어내리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건 사실입니다. 말 그대로 ‘방하착(放下着)’이 되니, 도가 트일만도 하지요.
몸속이 개운히 비워지면 상쾌한 마음으로 주위의 사물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바로 이때 공부가 제대로 익지요. 해우소에서 영감을 얻고 대박을 터트린 이가 아마 많을 겁니다. 해우소 정진론을 설파하신 경봉스님은 역시 큰스님이십니다.
그런데 해우소라고 해서 다 같은 건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야 합니다. 빠르고 시끄러운 수세식보다는 느리고 조용한 푸세식이 더 나을 것은 당연하지요. 그것도 토종에 가까운 절간 해우소가 제일 공부발이 잘 받을 겁니다.
요즘에는 사찰도 현대식으로 많이 개량을 한 탓에 순재래식 화장실을 구경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 해우소 연구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래식 해우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찰은 70여 곳이 되고 그 가운데 문화재급의 토종 해우소는 30개 가량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큰 절집은 대개 현대식과 재래식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명물 해우소를 꼽으라면 단연 송광사와 선암사의 해우소입니다.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한국 불교의 양대 문중을 이끌고 있는 두 절집이 해우소 갖고도 쌍벽을 이루고 있는 셈이지요.
선암사 해우소는 아예 문화재자료 214호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건축학적으로 이름이 높지만, 풍치있고 드넓어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로는 송광사 것이 한 수 위라고 평가받습니다.
선암사 해우소는 지은 지 100년 쯤 된 우미한 건축물인데 요절한 천재 건축가 김수근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뒷간”이라고 찬탄해서 더욱 유명해졌지요. 선암사 해우소의 명성에는 정호승 시인도 한 몫 했습니다. 그는 이 뒷간으로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았어요.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하는 노래로요.
송광사 해우소도 선암사 못지않은 건축미와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넓은 공간과 쾌적한 조경을 갖추었어요. 자, 영험한 해우소로 마음공부를 하러 가볼까요.
일주문 지나 대웅전을 향해 가다보면 정면을 살짝 비켜선 아랫덤, 양지바른 명당에 연못과 돌다리를 낀 丁자형 건물이 보입니다. 뒤편으로는 조계산에서 흘러내린 옥계수가 송림 사이 바윗돌에 부서져 비폭을 이루고 있구요. 이 아름다운 집이 무슨 전각일까, 처음 보는 누구나 궁금하게 여기지요. 바로 해우소입니다.
건물 한 가운데로 난 돌다리를 건너갑니다. 양편에는 못이 펼쳐져 있고 거기에는 수련이며 수초들이 싱그럽게 흐드러졌네요. 이 수생식물들은 해우소의 침전물을 맑혀주는 역할을 한답니다. 초록빛 수련의 자태를 감상하며 다리를 건너면 나무판 바닥의 회랑이 한참 이어지는데 걸을 때마다 퉁퉁 소리가 울려 드나드는 기척을 알 수 있겠군요.
중간에 남자 휴급소를 두고 좌우로 남녀 해우소가 열 두 칸씩 늘어져 있습니다. 천정이며 바닥이며 벽이며, 문짝 여닫이쇠까지 모두 목조라는 걸 다시 확인합니다.
이제 빈 방을 골라 들어갑니다. 들어서자마자, 초행인 신세대들은 깜짝 놀랍니다. 방바닥이 얇은 나무판이어서 위태위태한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아스라한 낭떠러지여서 그만 기겁을 합니다. 어린 백셩은 근심 풀기는커녕 오금이 저려 문을 박차고 퇴각하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밖으로 난 쪽은 벽이 아니라 나무토막을 세로로 성글게 박아놓은 살창이어서 바깥 경치가 환히 보이고 바람이 솔솔 들어옵니다. 어른들도 처음에는 섬찟해지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겁먹지 마세요. 그 목살창은 비스듬히 얽혀있어서 밝은 밖에서 어두운 안을 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물론 여자용 해우소에는 살창이 아니라 흙벽으로 잘 마감되어 있지요.
겸허하게 쭈그린 자세로 비우는 수업을 시작합니다. 일단 근심 덩이를 방하(放下)하니 한식경 있다가 텅! 장쾌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똥-덩-어-리 하고 아다지오 박자네요. 뒤이어 구린내 아닌 꼬순내가 모락모락 올라오는군요. 궁금해 내려다보니 저 아래가 똥통이 아니라 순전히 풀이 가득한 퇴비 곳간이네요. 위층에서 풀어놓은 근심덩어리를 곱고 구수한 거름으로 삭이기 위해 아래층에는 언제나 한 길이 넘는 풀을 쟁여놓고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구데기나 파리 모기도 끓지 않고 더러운 물도 괴지 않고 구린 냄새도 나지 않는답니다. 이 해우소에서 나온 거름은 송광사 뒤편에 있는 채마밭으로 들어가 삽상하고 맛깔스런 먹거리를 길러낸답니다.
벌써 똥이 밥이 되고 밥이 똥이 되는 연기법(緣起法)의 도리를 온몸으로 체득했네요.
그러면 이제 교재를 통해 이론을 익힐 차례입니다.
산중이건 저자이건 해우소의 교재는 언제나 당신의 앞에 있는 벽입니다. 거기에는 어김없이 자재롭게 휘갈겨 쓴 경구가 있지요. 그 내용의 귀천을 불문하고 해우소의 낙서는 우리에게 늘 진솔한 공감을 일으킵니다. 공인된 자리, 밝은 천지, 아상(我相)들이 난무하는 경계에서는 만날 수 없는 최상승법문이지요.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송광사 해우소의 벽에는 대개 선게나 경문 진언 등이 적혀있어 경건밋밋한 분위기이지만 한 둘씩 미묘한 낙서가 나타나 가슴을 울립니다. 꾸미지 않고 털어놓은 그 낙서는 일견 유치한 나름으로 수행 과정의 회의와 고민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어떤 선게보다 인간적인 감동을 주지요.
5년전 송광사 해우소에 입소했을 때 보았던 어느 행자의 법문이 지금도 눈 앞에 어른거린다. ‘도 터서 뭐하나. 아, 엄마가 보고 싶다.’
월간「송광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