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산 건강 트레킹 후기
►트레킹 일자 :
2026. 10. 10. (토)
►출발 일시 장소 :
2026. 10. 10. (토) 10:00
(5호선)개화산역 2번 출구앞
►참가자
이상원님. 이희춘님. 최폴리
등 3명
►트레킹 코스
개화산역→ 개화산 둘레 데크길→
전망대→호국공원→신선바위→
아라뱃길 전망대→개화산 봉수대→
북쪽 전망대→개화산 생태습지→
개화산 물순환 생태복원 기념비→
강서둘레길→큰고개→치현정→
치현산→작은고개→꿩고개 공원→
방화근린공원
▻10:00 개화산역 출발
▻13:50 방화근린공원 도착
►14:10 방화역 쭈꾸미 볶음
뒷풀이(이상원님 팡팡~~)
►날씨 :
전형적인 맑은 가을 날씨
(낮 최고기온 26도)
►만보기
12,000보 이상
►스케치
이날은 서울양천경우회 산악회
제24차 산행(올림픽 공원)예정
이였으나 신청자 저조로 취소하고
근교 개화산 번개 산행으로
급 변경했다
이날 10:00 개화산역 2번
출구에서 이상원님. 이희춘님
3명이 만나 개화산으로
출발했다
개화산 둘레길을 걸을 때
높고 높은 파란 하늘
화창한 가을 날씨 솔잎 내음
풀내음이 향긋하다~~~
그래 맞다~~~
향긋한 숲속을 걷는 자체가
삶의 환희요.
살아있는 즐거움이다~~~~
여기에 튼튼한 두 다리...
건강한 모습 이 어찌 행복하다
하지 않으리~~~~
개화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김포국제공항~~~~
계류장 비행기와 이. 착륙하는
비행기들.. 푸른 가을하늘
드넓은 창공이 상큼하다~~~
호국공원에 들러 이 나라를
지켜주신 호국영령님께 감사의
묵념을 올리고 개화산 봉수대.
북쪽 전망대. 생태습지를 지나
개화산 물순환 생태복원
기념비에 도착 쉬고 있을 때
마침 개화산 건강 트레킹하던
서울양천경우회 대선배님
10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인증샷도 찍었다
이어 강서둘레길을 지나
치현정에 도착 강 건너 북한산
백운대를 바라보는 감회가
새롭고 뭉쿨하다~~~
지난날 수십 번 오른 백운대~~~
백운대 오르면서 굵은 땀방울
훔치던 최폴리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고 백운대 정상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어여오라~~~
손짓하는 것 같다
건강 트레킹 하면서
좋은 사람들끼리 오손 도손...
즐거운 얘기 나누며 숲을 걷는
재미가 정말 솔솔하다~~~
13:50경 방화근린공원에 도착
이희춘님이 12월 18~22일 확정된
필리핀 세부여행 참가 가능성을
타진하여 즉석에서 여행사 측에
확정된 기존 20명에서 1명 추가
신청했다
방화역 부근 쭈꾸미 볶음으로
뒷풀이 하면서 들이키는 시원한
막걸리 짜릿한 맛...
살아 있는 자 건강한 이 순간을
축복하는 神 의 선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senior
행복은 언제나 당신을 위해
존재한다~~~~
깊이 새기는 오늘 감사함으로
다가온 하루였습니다~~~
►서울양천재향경찰회 산악회
다음 산행은
▻제24차 산행 10월25일(일)
과천대공원 둘레길
▻제25차 산행 11월7일(토)
남산 단풍산행(장충단 공원-
북쪽순환로)
▻제26차(또는 번개)산행은
11월14일(토) 금호산-매봉산-
남산 단풍산행
예정입니다~~~
2026. 10. 10. (토) 저녁
서울양천재향경찰회 산악회
회장 최폴리.......
▼개화산 호국공원
개화산 호국공원은 6.25 남침 초기
개성에서 김포. 개화산 지역까지
후퇴하면서 수차례 방어선을
구축하고 이를 사수하다
산화하신 육군 제1보병사단의
전사자 1,100여명과 김포지구
전투사령부 예하 부대 무명 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94년 충혼위령비를 건립하여
조성하였으며, 2017년 12월
호국정신을 널리 선양하고자
명각비를 비롯하여 추모의 벽,
기념조형물을 제작하여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추모의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2017. 12.
[개화산전투전사자 추모사업회.
서울지방보훈청.
육군 제1보병사단 전진부대.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산지구전투위령비
한국전쟁 때 인민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전사한 무명용사
1,100명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호국충혼위령비이다.
서울 강서구 개화동 개화산자락은
1950년 6월 26일~30일,
김포비행장 사수를 위한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전투 결과
육군 전진부대 11·12·15연대의
대장, 준장 등 37명의 생존자를
제외한 무명용사 전원이 사망하였다.
위령비는 1994년 3월에 건립됐으며,
개화공원 미타사(彌陀寺)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미타사는 해마다 6월이면
호국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김포반도 전투
1950년, 6.25 전쟁 개전 직후
개성을 점령한 조선인민군
제6사단은 곧 한강을 건너
김포반도로 진입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남하했는데 그들은 한강
하구의 김포를 장악해 국군의
한강 방어선을 무력화시키고
영등포.인천.수원까지 곧바로
나아가려고 했다.
당시 김포에는 개성에 있다
한강을 건너 퇴각한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 일부 병력과 김포
비행장에 주둔하던 육군정보학교와
보병학교 병력만이 있었으며
육군본부는
기갑연대 제1장갑수색대대의 병력을
김포로 증파하는 한편 6월 26일,
김포의 부대들을 통합하여 3개 대대
규모 병력으로 김포지구전투사령부를
창설했다.
사령관은 남산학교장이었던
보병대령 계인주였다. 그 휘하에는
남산학교 기간병력과 제12연대
2대대, 제8연대 3대대가 있었고
또 조선인민군 육군이었으나 탈북한
인물들로 구성된 호국대대가 있었다.
제1장갑수색대대 제1중대와
제3도보수색대대가 속한
독립기갑연대는 기갑대령 유흥수가
연대장으로 이끌었고 부천의
제1공병단과 대구의 제22연대
2대대가 투입되었다.
북한은
26일부터 김포반도 북단 월곶면과
하성면 지역으로 한강을 건너
진출하려 했고 국군은 문수산 등
하안 고지에 참호와 진지를 만들어
이를 막으려 했다.
그날 새벽, 조선인민군 일부 부대가
강을 건너 김포반도에 상륙한 것을
시작으로 오후가 되어서는
강녕포 등을 통해 본격적인 도하가
이루어졌다.
국군은 포격으로 저항했지만
전력의 열세로 인해 27일 오전까지
조선인민군 제6사단 대부분이 도하에
성공하고 국군은 통진으로 물러나
운유산과 천마산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김포읍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북한에게 패배해 김포읍과
양곡 방면으로 퇴각했고 김포지구
전투사령관 계인주는 부하들을
버리고 탈영했다.
계인주는 28일, 야간열차를 타고
가족과 함께 대구로 도주했고
김포지구 전투사령부 참모장 최복수
중령이 지휘를 하게 되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증파가 이루어지지만 28일, 북한의
전차중대가 도하에 성공해 방어선을
뚫고 김포읍과 김포비행장을
점령했으며 시흥지구 전투사령관
김홍일 소장은 변변한 저항 없이
김포비행장을 포기해 버린 최복수를
해임하고 3사단 참모장인 중령
우병옥에게 지휘하게 했다.
국군은 장릉산, 계양산, 개화산에
진지를 쌓고 저항하며 29일에는
김홍일의 명에 따라 김포비행장
탈환을 시도하지만 패했다.
이때 자진해 나선 최복수와
기갑연대 3대대장 강문헌 대위,
돌격을 이끈 김일록 중위가
순국했으며 우병옥은 권총으로
자결했다.
이로인해 김포지구전투사령부는
통합지휘능력을 잃었고 김홍일은
29일 아침, 김포나루로 도하해
철수한 18연대장 임충식 중령에게
지휘권을 넘겼으며 잔여 병력은
30일에도 김포비행장을 탈환하려
나서지만 또 다시 실패했다.
그날 김홍일은 오류동.소사 방향에서
위협을 느끼고 제5사단 제15연대장
최영희 대령을 김포지구사령관으로
임명해 철수 중인 5사단 병력을
수습하고 경인가도를 고수하게 했다.
최영희는 7월 1일, 미국 공군의
참전으로 제공권을 확보했으며
공격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박격포와 장갑차를 동원해 전날 잃은
138고지와 107고지를 공격해
탈환했다.
다음 날에 126고지에 대한 공격이
실시되었지만 성과가 없었다.
한강 방어선이 무너져 경인가도를
고수할 이유가 없게 되자 김포지구
전투사령부는 7월 3일 오전 10시까지
북한을 막는 임무를 완수하고
영등포에서 퇴로가 끊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철수했다.
철수한 국군 장병들은 수원과
안양으로 향했고 부대가 재편되어
안양 방어선 전투에 투입되었다.
김포지구전투사령부의 저항 덕분에
병력과 장비가 모두 열악함에도
제6사단의 진격을 상당히 지연시켰고
신속히 인천과 수원으로 진출해
국군의 배후를 노리려던 북한의 계
획을 저지할 수 있었다.
또 서부전선을 지키던 국군이
안전하게 한강을 건너 철수해 한강
방어전을 벌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령관 계인주의 도주와 사령관 대리
우병옥의 자결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장병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여
유기적인 방어 체계를 구축했기에
당시 국군의 애국심을 알 수 있는
전투였다.
[출처] [역사] 1950년 김포반도 전투
카페 게시글
국내여행(등산)사진
개화산 건강 트레킹(2026.10.10.토)
최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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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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