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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마가복음4:35-41
요즘 서이초 교사의 죽음이후 계속 교사들의 연쇄죽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전교사는 인생의 큰 풍랑앞에서 정신과치료도 받았었지만 어떤 도움도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뜻하지 않은 광풍이 불어닥쳐서 큰 환란을 겪게 되곤 합니다. 좀 잠잠해지나 싶은데 또 큰 광풍이 일어나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아무리 좋은 세상이 왔다해도 우리 인생은 한번 길게 쉬지를 못합니다. 질병 광풍, 자녀문제 광풍, 사업위기의 광풍등 무엇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한낱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이 더욱 실감이 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위기앞에서 이 광풍을 해결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지만 이 광풍은 잠잠해지질 않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분노하다가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믿는 자들도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잘 해결이 되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도저히 풀리지 않을 때는 좌절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이 싯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자들은 어떻게 이 광풍을 잘 이기게 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두려움과 좌절을 이기는 비결을 배워서 인생의 험한 풍파들을 이겨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이렇듯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평상시에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38) 35절을 보면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무리들을 떠나 예수님을 배에 모시고 노를 저어 건너편으로 갔습니다. 제자들은 오늘따라 하루 일과가 일찍 끝났으니 바다 저편 마을로 가서 저녁을 맛있게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웬일입니까? 37절을 보면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잔잔했던 갈릴리 호수가 갑자기 성난 파도를 일으켰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길이만 해도 50리이고 넓이가 30리 되는 큰 호수이다보니 갈릴리 바다라고도 하였습니다. 이 호수는 평소에는 물이 맑고 잔잔합니다. 그러나 북쪽의 헬몬산의 찬 바람과 남쪽의 사막의 열풍이 이 호수위에서 만나면 갑자기 돌풍이 일어나 잔잔하던 호수가 삽시간에 무서운 파도로 뒤덮이게 됩니다. 이때에는 흔히 배가 뒤집히고 어부들은 생명을 잃기 일쑤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는 제자들도 큰 광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엄청난 광풍을 맞닻뜨리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 광풍을 헤쳐나가고자 갖은 노력과 수고를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많은 노력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금까지 쌓아온 제자들의 믿음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죽음에 대한 큰 불안과 두려움으로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요? 반면에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그들은 이렇게 큰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기도의 능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죽게 될 지경에 처해지니 기도를 하긴 했는데 원망어린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처음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출신들 이였습니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의 능력과 기술로도 얼마든지 이런 바람쯤은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하기보다는 능력과 기술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광풍앞에서는 그들의 노력과 실력은 허사였습니다. 그들은 파도를 헤쳐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배가 파도에 부딪혀 전복되지 않게 하려고 키를 이리저리 돌렸습니다. 그러나 37절을 보면 이제 물결이 배에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고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여러 가지 문제의 광풍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이러한 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38절을 보면 이 때 예수님은 깊은 잠에 드셨습니다. 너무 피곤하셨던지 코까지 거시면서 주무셨습니다. 어쩔쭐 몰라하는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지극한 평화를 누리시면서 단잠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잠을 이런 식으로 주무셨습니다. 낮에는 온종일 뜨거운 뙤약볕아래서 사역을 하시고 밤에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다보니 이런 짬나는 시간에 단잠을 주무셨습니다. 큰 광풍이 불었으니 배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혀 바께스로 붓듯이 예수님의 얼굴에 바닷물이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평화롭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감각이 둔하셔서 주무시기만 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광풍과 성난 파도가 일어난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일어나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이 깨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간절히 도우심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런 파도와 바람까지도 잔잔하게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워낙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죽게 될 지경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38절을 보면 그 때 비로소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그들이 죽게 될 지경까지 처해졌는데도 그들이 깨우지 않았을 때는 예수님도 폭풍에 아랑곳 않으시고 잠을 주무셨습니다. 물결이 얼굴을 때려도 일어나지 않으시던 예수님은 제자들이 나아와 깨웠을 때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나아가서 깨우면, 다시 말해 기도하면 예수님은 즉각적으로 일어나십니다. 예수님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구하는 자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7“7,8) 우리가 깨우면 예수님은 언제나 일어나 바로 도와주십니다. 우리에게는 깨워드리면 언제나 일어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기도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믿음으로 기도하면 자녀들 안에 있는 있는 마귀가 나갑니다. 기도하면 우리안에 두려움과 불안이 나갑니다. 기도하면 우리안에 초조함이 떠나갑니다. 기도하면 우리안에 있는 질병들이 떠나갑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하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우리안에 생깁니다. 기도는 믿음의 시발점이 됩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으면서 시작되지만 기도가운데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말씀을 우리는 레마라고 합니다. 우리가 배우고 읽는 성경말씀 이것을 우리가 로고스의 말씀 즉 지식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이 말씀이 기도할 때 믿음으로 다가오고 살아있는 말씀, 즉 레마의 말씀이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믿고 기도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가만히 계시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으로 쉬시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지켜주시고 축복해주시겠지 하며 기도를 쉬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동행하니 다 알아서 잠잠케 해주시고 형통케 해 주실 거야 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게 되고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다보니 기도하지 않게 되고 오늘 제자들과 같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잘 자라던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죽게 될 지경에 처해지니 그제서야 예수님께 기도를 시작했지만 우리는 평소에 예방차원으로 늘 쉬지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깨어서 이 나라를 위해서, 우리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할 때까지 응답을 지체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응답이 지체될지라도 육신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영적으로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도 안되는구나” 해서는 안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왜 예수믿는데도 이런 문제가 생길까?“ ”하나님믿어도 왜 이런 문제가 자꾸 생길까?“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이민족을 사랑하셔서 만드시고자 하다보니 이런 어려움도 있구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만들어지니 고난으로 이 민족을 만드시는구나 주여! 이고난의 잔을 마셔야만 우리민족이 겸손하게 된다면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해야 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말하면 믿음은 즉시 약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을 하면 믿음이 쑥쑥 자라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명령형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듯이 우리도 담대히 병마를 향하여 꾸짖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병마는 물러가라“ ”이 귀신들은 물러가라“ ”이 두려움은 물러가라“ 실제로 각종 질병과 사업방해, 가정불화, 탈선, 외도, 성폭행 등은 마귀들이 조장하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귀신들은 실제로 존재하며 믿음이 없는 분들을 끊임없이 속이며 훼방합니다.
그러나 우리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리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잡고 입술로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고백하는 말씀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이 되고, 무에서 유를 창조시키는 기적을 만들어 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 믿음으로 명령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이 더러운 귀신아 예수이름으로 물러가라”
오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이였지만 이런 큰 시련을 만났습니다. 이와 같이 얼마든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가운데서도 예기치 않는 문제가 생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른 것은 바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고 기도하면 예수님의 돌보심을 받을 수 있다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절망하고 좌절할텐데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문제앞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는 이런 문제를 놓고 매 기도때마다 기도하십시다. 광풍이 불어닥칠 때 기도시작하지 마시고 전 성도들이 쉬지 말고 기도하시는 신앙되시기 바랍니다. 미래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의 것입니다. 미래는 기도로 달라집니다. 기도를 쉬는 것은 미래를 잃는 것입니다. 기도를 쉬는 것은 예수님의 핏값으로 받은 천국 열쇠를 내버리는 행위입니다. 무엇보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전형적인 행위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바빠서 기도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삶의 우선순위를 잘못 놓아서 그렇습니다. 기도할 수 없는 상황은 없습니다. 우리교회에는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등이 있습니다. 인생의 광풍이 없는 분들은 광풍가운데 있는 자처럼 기도하시고 광풍가운데 있는 분들은 고요할 때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교회가족들은 두려워 떨지만 마시고 늘 기도하심으로 예수님을 깨워서 문제해결을 받으시고 속히 잠잠케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그토록 두려워 한 이유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하여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40)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잠에서 깨어나신 예수님은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너희들이 이렇게 된 것도 모르고 잠만 잤구나 하셨습니까? 39절을 보면 예수님은 먼저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잠잠하라고 하셨습니다. 바다더러 고요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광풍이 그치고 바다가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할렐루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기도할 때 이런 유들이 나가고 이런 유들은 잠잠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염려의 바다가 잔잔하여 지고 불안의 파도가 고요해지는 것입니다. 광풍을 꾸짖어 잔잔케 하신 후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40절을 보면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에게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당연합니다. 집채만한 파도가 달려오고 그들은 바다 한 가운데 있습니다. 날은 저물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 하고 불안해 한 것에 대하여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엄히 책망하십니다.
그들이 믿음이 없었을 때 무서움과 불안에 빠졌습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곁에 예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우리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쉽게 믿음을 잃고 두려워할 때가 많습니다. 문제들 앞에서 크게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믿음이 어디있느냐” 믿음이 없으면 바로 옆에 예수님이 계시는데도 제자들처럼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이런 일들은 하나님을 믿을 때 얼마든지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을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믿는 자에게는 능히 못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곁에 계신데도 믿음이 없었을 때 제자들은 한없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대 신앙인들은 이성주의 철학자 볼테르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 이성적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게 되고 하나님의 행하시는 기적을 전혀 경험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이요 영원한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는 능히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큰 인생의 파도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할지라도 믿음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며 얼마든지 오늘날에도 이런 기적들을 행하십니다. 우리성도님들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런 기적들을 체험하시고 예수님께서 어떤 문제도 잠잠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인생의 험한 파도를 기도로 싸우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요하고 잔잔하라고 명령함으로 능히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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