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포엠] 가슴을 향해 마음을 던지는 캐치볼 기사입력 2008-05-29 19:34
지금 이 야구소년은 미래 야구의 주인이 될 것이다.
프로야구 중흥에 때맞춰 캐치볼 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야구장 주변에서 글러브를 낀 채 공을 주고받는 아이들을 보는 건 이제 생경한 장면도 아니다. 과거에는 동네 골목이나 놀이터 혹은 논두렁마다 캐치볼 하는 야구소년들로 넘쳤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그런 야구소년들은 거대한 청소기가 훑고 간 듯 어디론가 사라졌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캐치볼'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야구의 기본이 뭔지 아나?" 그걸 알았다면 몸을 비비 꼬면서 하품이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캐치볼이야. 이건 야구의 진리야. 진리."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의 이야기다.
당시 12살 먹은 야구소년들에게 한 여름의 캐치볼은 공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난로 위에서 달군 돌덩이를 던지는 것과 같았다. 그 만큼 대기는 뜨거웠고 몸은 무거웠다. 그러나 젊은 선생님은 물러서지 않았다.
"상대방의 가슴을 향해 공을 던지고, 가슴 높이에서 받는 거야. 그게 캐치볼이야." 선생님은 한창 캐치볼 자세를 설명하다가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야구소년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캐치볼이 왜 중요한 지 아는 사람?"
돌아보면 '그깟 캐치볼은 공이나 주고받는 지루한 플레이'라고 생각했을 법한 나이였다. 그보단 이만수처럼 힘껏 배트를 휘두르거나 최동원처럼 팔이 빠져라 공을 던지는 편이 재밌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의 질문에 누구 하나 손을 들지 않았다. 잠시 뒤 야구소년들 가운데 제법 캐치볼을 잘 하는 아이가 손을 들었다. "아빠랑 놀 수 있잖아요."
"미국의 어린이가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기 싫어하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영화 <꿈의 구장>에서 캐빈 코스트너가 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자(父子)가 공을 주고받는 건 어디서든 흔한 장면이었다.
필자 역시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아버지와 캐치볼을 했다. 한쪽 손에 비닐 글러브를 끼고 아버지가 던지는 테니스공을 받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미국과 한국을 막론하고 캐치볼이야말로 바쁜 아버지와 부정(父情)이 그리운 아이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아버지들은 더 바빠졌고 아이들도 분주해졌다. 아버지는 공을 잡을 새도 없이 더 오래 일해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고 아이들은 웅변, 주산학원을 뛰어넘어 영어, 컴퓨터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여럿이 노는 건 번잡한 일로 간주됐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캐치볼이 사라진 지 오래다. 2006년 일본 공원 녹지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도쿄 23개구 가운데 52%의 공원에서 캐치볼을 전면금지했다. 이유는 있었다. 캐치볼의 안정성이었다. 경식구를 주고받던 아이들의 부상이 빈번해지자 공원 측은 아예 캐치볼을 금지시켰고 그나마 줄던 캐치볼 아이들은 갈 곳을 잃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1980년 중반 이후 일본 전국의 야구장은 2배나 증가했다. 그러니까 야구를 보고 즐길 기회는 많아졌으나 야구를 직접 하며 체험할 수 있는 장소는 줄어든 셈이었다.
캐치볼의 제한은 야구인구의 감소로 이어졌다. 야구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은 둘째 치고 야구를 모르는 아이들이 증가했다. 당연한 이유로 야구장을 찾는 아이들이 줄었고 언제부터인가 일본에서도 야구는 오래된 스포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프로야구는 캐치볼의 부활을 선언했다. 그 중심에 일본프로야구선수회가 있었다.
선수회는 2006년 오랜 준비 끝에 '캐치볼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캐치볼을 하자'는 표어와 함께 유명선수들과 코치들이 자발적으로 전국의 학교를 방문하거나 공원에서 강습회를 열며 아이들에게 캐치볼을 전파했다. 특히나 안전성이 문제로 지적됐던 경식구를 대체하기위해 전문 공 제조사와 함께 연구를 진행해 마침내 캐치볼 전용구를 개발했다.
선수회는 캐치볼 전용구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일본야구기구(NPB)와 언론에서도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캐치볼 전용구를 사용한 여성과 아이들도 공의 안정성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캐치볼은 거짓말처럼 일본 아이들의 익숙한 놀이가 됐다.
한국야구계도 야구보급에 애쓰기는 일본과 다르지 않다. 주체가 일본처럼 선수가 아니라 한국야구위원회(KBO)고 캐치볼이 아닌 티볼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티볼은 배팅 티(Tee) 위에 공을 올려놓고 배트로 치는 방식의 놀이다. KBO는 2004년부터 해마다 티볼 강습회를 열고 있다. 특히나 KBO 티볼 강습회는 초·중등 교원을 대상으로 티볼의 이론과 실기 교육을 실시하고 참가 학교에는 티볼 세트를 지원하는 등 내실 있는 진행으로 호평을 받았다.
아쉽다면 티볼이 개인적인 놀이라는 점과 이광환 전 KBO 육성위원장이 우리 히어로즈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육성위원회 예산이 3억 원이나 깎이고 티볼 강습회비도 지난해에 비해 딱 절반수준인 3천만 원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좋아. 아버지와 놀 수 있다는 특징 말고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 선생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얼마 뒤 한 야구소년이 손을 들었다. 그때 그 야구소년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과거에 살던 집 주소처럼 기억이 희미하다. 아마도 "혼자서는 못하잖아요. 둘이서 같이 해야 하니까 친구가 꼭 필요해요"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랬다면 맞는 말이었다. 캐치볼을 하기 위해선 최저 2명, 한 팀을 만들려면 적어도 9명, 경기를 벌이려면 18명이 있어야 한다. 심판까지 포함한다면 19명이다. 야구는 혼자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닌 것이다.
캐치볼을 가리켜 '야구의 기본'이라 하는 것도 그렇다. 이는 공을 주고받는 행위가 앞으로의 야구실력에 기초가 된다는 뜻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의미는 따로 있다. 캐치볼의 기본정신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상대가 잡기 쉽게 공을 던지고 그 공을 잡은 이도 똑같은 방식으로 던지는 것. 그렇듯 상대를 배려하는 게 ‘팀 플레이’고 그것이 바로 캐치볼을 ‘야구의 기본’이라 부르는 이유다.
달콤한 휴식시간이 끝난 뒤 선생님은 야구소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도 그때 그의 말이 은은한 종소리처럼 마음 한편에서 울리는 듯하다.
“캐치볼은 내 마음과 기분을 담아 상대방 친구에게 전달하는 거야. 너희들 기분이 충분히 전해지도록 정성껏 던져 봐.”
야구는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스포츠다. 공 하나로 나와 다른 이의 마음을 연결할 수 있는 꽤 멋진 스포츠이기도 하다. 나이든 아버지가 기자 아들을 기다리며 밤늦도록 야구를 보는 건 어쩌면 아들을 향해 ‘캐치볼을 하자’는 무언의 표현이 아닐까. 이제 아버지와 함께 야구를 볼 수 있는 시간도 조금씩 줄고 있다. 주말에는 오랜만에 낡고 오래된 글러브를 2개 꺼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