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74
참선 공부를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절대로 어렵다고 생각을 마시고, 제일 쉽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다른 공부는 방편이 들어가지만 방편이 복잡해서 갑이라는 사람 방편 을이라는 사람 방편 또 다를 수가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참선 공부는 방편을 제거한 핵심만 공부하기 때문에 참선 공부는 누구나가 다 똑같은 것입니다. 똑같은 다 불심(佛心)을 여의지 않는다 말입니다. 불심을 여의지 않고 염불하면 관세음보살을 부르나 지장보살을 부르나 똑같이 그때는 염불선(念佛禪)입니다. 또 화두를 들면 그때는 화두선(話頭禪)입니다. 또는 주문을 외이면 그때는 주문선(呪文禪)입니다.
비단 불교뿐만 아니라, 설사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기독교인들도 지금은 신부나 수녀님들이나 모두가 다 참선 방에 들어와서 같이 공부도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기독교 하느님 믿는 분은 그러면 참선이 못 될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기독교를 잘못 이해해서 하느님은 저 하늘 위에 계신다 하느님과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때는 참선이 못되고, 참다운 진리가 못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세기의 훌륭한 신학자라던가 또는 바이블에 있는 예수님의 본뜻은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이나 어디나 우주의 도처에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고 또는 내 몸이나 내 마음에도 하느님은 존재하는 것이고, 이른바 범신론(汎神論)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할 때는 불교와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사실은 성자의 길은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따라서 한 말로 말씀드리면 참다운 기독교인은 참다운 불교인이고, 참다운 불교인은 참다운 기독교인입니다. 다만 그분들이 교조의 가르침을 잘못 믿고 있단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도 자기 몸과 부처님을 둘로 보고서 기도를 모시고 한다고 생각할 때는 참다운 기도도 못 되고 참선도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모시건 또는 복을 비는 그런 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우리 생명의 본질인 동시에 우주 만유의 근본, 근본 생명 자리인 그런 자리에다가 우리 마음을 두고서 한다고 생각할 때는 다 모조리 참선입니다. 그렇게 되면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기 몸도 자기 마음도 자기 사업도 불사도 순탄하게 순풍에 돛단배같이 잘 되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여러 가지로 공부를 많이 하십니다만, 저는 지금 승려가 된 지 올해로 50년입니다. 50년에, 그래 저래 불경(佛經)도 나름대로 보기도 하고, 또는 다른 종교도 섭렵도 하고 그랬습니다. 또 기독교 신학(神學)도 저 나름대로는 연구도 동서 철학도 조금쯤은 제가 윤곽을 공부했었습니다. 그렇게 섭렵해 온 뒤에 결론이 무엇인가 하면, 기독교인들이 ‘오! 주여’하고서 마음을 모으는 그것이 굉장히 마음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까. 다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느님은 저기 있고 나는 여기 있고 우리가 기도 모시면 우리한테 은총을 베푼다, 그러면 그것은 참다운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때는 불교하고 십만 팔 리로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서, 정말로 하느님은 이것은 언제 어디에나 본래 불생불멸(不生不滅)이요, 불구부정(不垢不淨)이오. 또는 어디에나 충만해 있는 우주 생명이다. 이렇게 하느님을 생각할 때는 ‘오! 주여’ 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참선 공부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우리 불교인들이 의심하는 선법(禪法)도 있고, 더러는 갖다가 묵조하는 다만 묵묵부답으로 관조하는 선법도 있고 선법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는 그럽니다.
우리 불자님들 굉장히 지금 혼란스러운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불안의 세대입니다. 앞으로는 정보화 사회, 정보화시대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좋은데 한편은 세상이나 우리 마음을 굉장히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우리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그때는 자동적으로 도덕은 퇴폐 문란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어떻게 해서 우리 마음을 모을 것인가. 어떻게 해서 우리가 안심입명(安心立命)이 될 것인가. 종교란 것은 안심입명이 돼야 합니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 평상스러운 마음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어디에도 머무름이 없는 본래 마음이 평상심 아닙니까. 달마스님 법문도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 마음이 안온하고 편안한 것은 우리가 진리의 틀에서 의단이 없이, 천지 우주를 모두를 다 하나의 생명으로 딱 통일을 시켜버려야 비로소 우리 마음이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저는 부처님 명호를 외이시면서 공부를 하시는 것을 저는 권장을 드립니다. 그러나 모든 법法이 다 성자가 낸 법이기 때문에 어느 법이나 다 훌륭합니다. 본체에서는 하나지만, 그래도 우리 초심 행자라던가, 우리 바쁜 불자님들이 또는 이와 같이 혼란의 시대, 정보의 이 혼란한 와중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명호를 외이시는 것이 가장 가장 손쉽습니다. 이른바 불교 말로 하면 이왕이수(易往易修)라, 쉬울 이[易]자, 하기 쉽고, 즉 깨닫기 쉽고 가기도 쉽단 말입니다. 이수(易修)라, 쉬울 이[易]자, 닦을 수[修]자 닦기가 쉽단 말입니다.
용수보살(龍樹菩薩)의, 용수보살은 제2의 석가란 분 아닙니까.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이행품(易行品)」에서 그와 같이 염불 공부는 이왕이수(易往易修)라, 닦기 쉽고 깨닫기 쉬워서 우리가 그 어려운 현실의 그런 고난 가운데서 정말로 참 용이득력(容易得力)이라, 득력하기가 쉽단 말입니다.
전통적인 그런 위대한 선지식 치고서 염불을 말씀을 안 하신 분이 한 분도 없습니다. 원효스님, 의상스님, 대각국사 또는 보조국사, 나옹대사, 태고대사 서산대사 또는 사명대사 그분들은 화두와 더불어서 꼭 염불 말씀을 해서 우리한테 권장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잘못 생각한 분들은 아, 염불은 근기(根器) 낮은 분이 하고 화두는 근기가 수승(最勝)한 분이 한다 이렇게 생각한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근기가 낮고 수승하고 그런 차이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마음이 상(相)을 여의지 못하고 하면 그것은 화두를 드나 뭐를 드나 그건 참선이 아닙니다. 또는 참다운 염불도 아닙니다. 참다운 염불이라는 것은 부처와 ‘나’와 원래 둘이 아니다. 불이불(不二佛)이라.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니다. 또는 불리불(不離佛)이라,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니기 때문에 부처를 여의지 않고 그렇게 염불을 해야 참다운 염불이란 말입니다. 참다운 염불은 바로 염불선(念佛禪)입니다. 따라서 화두를 의심한다 하더라도,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자성(自性)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 우주의 본래 면목 자리를 떠나버리면 그때는 참선이 못 되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런 염불은 모두가 다 부처님 명호는 똑같습니다. 하나의 자리입니다. 하나의 여인도 자기 아들이 보면 어머니고 말입니다. 남편이 본다고 생각할 때는 아내 아니겠습니까. 그와 똑같이 부처님 자리는 이것은 우주의 생명 자리이기 때문에 또 그 자리는 만(萬) 공덕(功德)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본래면목인 또는 우주의 본성인 진여불성 자리 실상 묘법 자리는 그냥 그것이 논리적인 어떤 개념이 아니라, 일체(一切) 만공덕을 갖춘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하나의 우주 생명입니다. 그래서 그런 우주의 만덕을 다 갖춘 그런 자리는 하나의 명호로 해서 다 포괄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관세음보살을 해서도 다 포괄시킬 수 없는 것이고, 또는 지장보살도 마찬가지이고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이 부처님 공덕이 하도 많으니까 그때그때 공덕 따라서 잠시간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부처님 자리는 모양이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형체를 떠나버린 상相을 떠나버린 자리이기 때문에 또는 우주에 충만한 자리이기 때문에 또는 모든 능력을 다 갖춘 자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비로운 쪽으로 관세음보살 또는 지혜로운 쪽으로 문수보살 또는 이 변산에 들어있는 부처님 기운은 이 변산의 산신이고 말입니다. 물에 들어있는 부처님 기운은 용왕입니다. 또는 지구에 들어있는 부처님 기운은 바로 지장보살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지, 절대로 뿔뿔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만 다른 것이지, 그런 보살 자리, 그런 성자의 자리, 그런 자리는 모두가 다 원융무애(圓融無碍)라, 조금도 차이가 없단 말입니다. 그렇게 아시고서 염불도 하시고 참선도 하셔야 그래야 참선 공덕도 속 빠르고, 염불 공덕도 속 빠른 것입니다. 그렇게만 한다고 생각할 때는 절대로 상기(上氣)가 안 될 것입니다. 참선할 때 보통 상기가 많이 된다고 합니다. 저 같은 사람도 별로 수승한 선근(善根)은 아닌데도 제 50년 동안에 상기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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