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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백두대간(國立白頭大幹)수목원과 닭실(酉谷)마을 탐방후기 2020. 5. 19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백두산에서 태백산맥을 거쳐 소백산맥으로 연결되어멀리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 백두대간 중심지에 조성된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다. 이 수목원(樹木園)은 백두대간 산림생태계(山林生態系)와 식물다양성(植物多樣性)을 보전(保全)하고 복원(復原)한는 곳이기도 하다. 수목원이 위치한 곳은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奉化郡 春陽面 西碧里)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방문자센터
백두대간 수목원 올라가는 트램로
현직에 있을 때 선배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곳 서벽은 오지(奧地)이고 궁벽(窮僻)한 벽촌으로 6.25전후로 빨치산이 준동(蠢動)한 곳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수목원을 향하여 산골짜기를 따라 올라오니 과연 선배님들이 말한 대로 첩첩 산중이 전개되고 있다. 드디어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방문자센터에 도착했다. 방문자센터 건물의 지붕선이 북쪽 뒷산의 표고(標高)가 살아나도록 조화롭게 설계한 것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건축물의 인테리어는 수목원의 이미지가 살아나게 잘 자란 춘양목(春陽木)의 줄기와 가지의 수세(樹勢)를 형상화(形象化) 했다.
북쪽 뒷산의 표고(標高)가 살아나도록 조화롭게 설계한방문자센터 지붕선
춘양목 줄기를 형상화한 내부 인테리어 1
춘양목 줄기를 형상화한 내부 인테리어 2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자생식물(自生植物)과 우리나라 희귀(稀貴) 특산식물, 고산식물(高山植物)을 수집(蒐集) 증식(增殖)하고 보전(保全), 전시(展示), 교육(敎育)을 하기위해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는 방문자센터, 어린이정원, 고산습원, 돌담정원, 거울연못, 야생화언덕, 암석원, 자작나무원, 호랑이숲(Tiger Forest), 만병초원, 백두대간자생식물원, 백두대간야생초화원, 알파인하우스, 종자장기저장시설(seed vault)등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고산의 준봉을 감싸고 도는 안개구름이 멋스럽다
암석원 안내문
암석원
호랑이 숲(Tiger Forest)를 향하여
대원 15명은 트램(Tram:전기차)를 타고 진달래원 가는 갈림길에서 내려 호랑이 숲으로 향했다. 야생화언덕, 암석원에 도착했다. 암석원은 수목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나온 암석을 모아 조성한 것이다. 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 주변에 자라는 고산식물(高山植物)은 암석과 함께 자연스럽게 배치하여 조성한정원이다. 암석원은 지하 1.5m까지 돌을 깔아 풍혈(風穴:높은 산등성이나 산기슭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나오는 구멍이나 바위틈)을 만들어 여름철 기온을 만들었다고 한다.
단풍식물원
고산습원(高山濕原)을 지나 호랑이 숲에 도착했다. 이곳 방사장은 축구장 7개의 크기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호랑이 방사장이다. 백두대간의 상징 동물인 백두대간 호랑이의 종(種) 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호랑이 숲에서 활동하고 있는 1쌍은 서울대공원에서 분양받은 것으로 암컷(한청)은 몸무게 190kg, 수컷(우리)의 몸무게는 230kg이다.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어울리는 <한청과 우리>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호랑이가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볼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 큰 보람이다.
축구장 7개 넓이의 호랑이 숲
숫컷 호랑이 <우리>
암컷 호랑이 <한청>
고산 아래 펼쳐진 협곡마을안내문
안개비를 맞으며 방문자센터를 향해 걸어 내려오는 낭만은 너무나 잊을 수가 없 다. 먼 산기슭을 휘감고 내리는 안개, 나뭇잎과 풀잎에 굴러 떨어지는 구슬 같은 빗방울, 개울에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는 오늘이 아니고는 도저히 체험하지 못하는 경관(景觀)이다.
돋보이는 것은 <시드볼트(Global Seed Vault : 종자보관소 )>시설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시드볼트(Seed Vault)>는 기후변화(氣候變化), 자연재해(自然災害), 전쟁(戰爭), 핵폭발(核爆發)과 같은 재난(災難)으로부터 식물유전자원(植物遺傳資源)을 안전하게 보전하기위해 만들어진 세계 유일 야생식물종자(野生植物種子) 지하터널 영구저장 시설로 되어있고 한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시드볼트(Seed Vault)> 관 국립백두대간수목원<시드볼트(Seed Vault)> 에 보관된 씨앗
큰 돌덩이 만한 종자
<닭실(酉谷)마을>
<청암정(靑巖亭)과 충재박물관(冲齋博物館)>
닭실마을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금계포란(金鷄抱卵形)으로 즉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으며, 특히 재물운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을 ‘닭실’ 또는 ‘유곡(酉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닭실마을은 실학자(實學者) 청담(靑潭) 이중환(李重煥)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문지리서(人文地理書)인 택리지(擇里志)에서 삼남(三南)지방의 4대 길지(吉地)로 선택된 곳이다. 4대 길지는 풍산 류씨의 안동(安東) 하회(河回)마을 의성(義城) 김씨의 안동(安東) 내앞(川前)마을,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함께 사는 경주(慶州) 양동(良洞)마을, 안동 권씨의 봉화(奉化) 닭실(酉谷)마을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니 풍수지리설로나 실학자(實學者) 이중환(李重煥)의 인문지리학상으로 보나 닭실마을은 사람이 살기에 입지(立地)가 좋은 곳임이 틀림없다. 척촉천(躑躅泉)위에 놓인 돌다리 가운데 판석을 받치는 교각
충재(冲齋)가 닭실마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부친이 연로하고 병환에 있었음을 감안하여 삼척부사(三陟府使)를 자청, 삼척(三陟)으로 가는 길에 이곳 봉화(奉化)를 지나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닭실마을을 눈여겨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충재(冲齋)는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罷職)된 후 고향에 돌아와 금계포란(金鷄抱卵) 형국(形局)의 터 닭실에 삶의 터전을 열었다. 이때 그는 안동의 도계촌(안동시 북후면 도계동)에서 이곳으로 이거(移居)해 왔다.
냇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파 만든척촉천(躑躅泉)
권벌(權橃, 1478~1548)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冲齋) 또는 훤정(萱亭)이라 하였다. 1507년(중종 2)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판에 이르렀으나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파직(罷職)당하고 이곳에 내려와 은거(隱居)하였다고 한다. 1533년 밀양부사로 복직되어 한성부판윤(漢城部判尹:조선시대 한성의 으뜸벼슬) 등 여러 벼슬을 거쳤으나 1547년(명종 2)에 일어난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丁未士禍)에 연루되어 구례(求禮)와 삭주(朔州;평북 압록강 수풍근처) 등으로 유배, 고초를 겪다가 삭주에서 죽었다. 선조 때 신원(伸寃)되어 좌의정에 추증(追贈), 삼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척촉천(躑躅泉) 주변에 각종 수림(樹林)을 조성하여 정자의 운치(韻致)를 살렸다
청암정(靑巖亭)은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운 정자로, 냇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파고 조촐한 장대석(長大石) 돌다리를 놓았다. 자연석의 커다란 바위를 거북이로 보고 물 위에 거북이가 떠다니고 있는 형국을 연상하게 하는 것으로 거북이 위에 정자가 올라타 있는 형상이다.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운 청암정(靑巖亭)정자
거창의 건계정(建溪亭)과 같이 이 정자를 지을 때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 모습 그대로 살려 주춧돌과 기둥 길이로 조정하여 위치에 따라 정자기둥의 높이가 각각 다르다. 청암정(靑巖亭)을 처음 지을 때는 정자내부는 곰배정(丁) 형인데 곰배 머리 부분에 온돌방을 설치하고 둘레에 연못도 없었다고 한다. 온돌방에 불을 넣자 바위가 소리 내어 울어 괴이하게 생각하던 차에 한 스님에게 물어보니 이 바위는 거북이라서 방에다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이 등에다 불을 놓는 것과 같아서 거북이가 아파서 우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온돌방을 철거하고 아궁이를 막고 바닥에 마루를 깔았다고 한다. 원래는 곰배 머리 부분이 온돌방이었는데, 마루방으로 바뀌고 난후에 바위 주변을 파내어 못을 만들어서 바위거북이 마음대로 헤엄도 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거북바위 주변에 물을 끌어들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다.
척촉천(躑躅泉)위에 놓인 돌다리 가운데 판석을 받치는 교각이 있다.
양옆의 여유 공간은 양편에서 건너오다가 마주치지 안도록 배려한 공간이다. 특히 아이들은 이곳에서 맞은편에서 어른이 건너오면 먼저 이 공간을 이용하여 어른이 먼저 지나가게 하는 장유유서(長幼有序) 의 실천장의 역할도 한다
충제(冲齋)의 자연을 보는 안목과 심미감(審美感)이 묻어나 있다
충제(冲齋)는 자연을 보는 안목과 심미감(審美感)이 뛰어난 것 같다. 거북모양의 특이한 바위 위에 정자를 앉혀 쉴 공간을 만든 안목이며. 냇물을 끌어들인 것이나, 충재(冲齋)와 정자를 돌다리로 연결하여 운치를 살린 점, 척촉천(躑躅泉) 주변에 각종 수림(樹林)을 조성하여 정자의 운치(韻致)가 살아나게 했다. 충제(冲齋)에서 정자를 올려다보거나 정자마루에서 아래쪽 충제(冲齋)를 내려다보면 충제(冲齋) 권벌(權橃)의 빼어난 자연 친화적인 미적 감각이나 조경미(造景美)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충제(冲齋) 권벌(權橃)의 빼어난 자연 친화적인 조경미(造景美)
보통 정자(亭子)는 문인이나 학자들의 교류장소(交流場所)였다. 정자의 빼어남은 기본적으로 주변 풍광이나, 자리 앉음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누가 그 장소에 와서 교류(交流)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학자(儒學者)들의 교류(交流) 흔적들이 정자에 많이 나타나 남을수록 그 정자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경관이 빼어난 청암정(靑巖亭)은 자연풍광과도 조화를 이룬다
청암정(靑巖亭)은 창덕궁(昌德宮)의 비원(秘苑), 강릉(江陵)의 선교장(船橋莊), 완도(莞島)의 부용정(芙蓉亭), 경주(慶州)의 안압지(雁鴨池) 등과 함께 한국의 전통의 정원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경관이 빼어난 청암정(靑巖亭)은 자연풍광과도 잘 조화를 이룬 우리나라 정자 중에서 그 경치가 아 름답기로 유명하여 전국 건축가들이 빼어난 건축물로 꼽고 있는 정자중의 하나이다. MBC 월화 드라마 <동이(東伊)>, <워낭소리> 오픈닝, <스캔들>, <바람의 화원> 촬영장소로 각강(脚光)을 받은 곳이다.
정내(亭內)에는 ‘靑巖水石(청암수석)’이라 새긴 허목(許穆)이 쓴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전서(篆書)의 대가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충재를 흠모(欽慕)하고 정자의 아름다움을 찬미(讚美)하는 마음으로 ‘靑巖水石(청암수석)’ 이라고 쓴 편액(扁額)이 걸려있다. 이 편액은 미수의 마지막 작품이다. 또한 정내(亭內)에는 충재의 글은 물론, 미수 허목, 퇴계 이황, 번암 채재공 등 조선 중후기를 대표하는 유학자들의 글을 새긴 판액이 10여개나 걸려있다. 주변에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철쭉 등을 식재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전서(篆書)체로 쓴 靑巖水石(청암수석) 편액이 가을이 무르익으면 청암정(靑巖亭)을 다시 찾아와야겠다. 척촉천(躑躅泉) 위에 놓인 석교를 건너는 멋스러움과 연못에 그려진 반영, 청암정(靑巖亭) 마루에 서서 닭실 마을 논벌의 황금물결, 청암정 주위 산야에 전개되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다. 그리고 연못 주변에 있는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철쭉 등의 고운 단풍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 정자의 둘레에 물이 흐르는 물에 반영되는 그림을 상상해보니 다시 찾아와서 청암정(靑巖亭)의 멋스러움과 아름다운 청암정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
청암정(靑巖亭) 현판
충재(冲齋)는 청암정(靑巖亭)과 석교(石橋)를 사이를 두고 측면 1칸 정면 3칸짜리 맞배지붕의 단아(端雅)한 서실(書室)이 있다. 마루 대들보에는 집 주인의 호인 ‘충재(冲齋)’ 두 글자 현판(懸板)이 걸려있다. 이 단아한 건물은 선비정신에 맞게 검소하게 지은 것이 특징이다.
<충재박물관(冲齋博物館)> 충재박물관(冲齋博物館)
석천정사 제영시 사용하던 제기
권벌선생이 받은 교지
청암정(靑巖亭) 옆에 규모가 작은 충재박물관(冲齋博物館)이 있다.<충재일기(보물 제261호)>, <근사록(보물 제262호)> 등 귀중한 문화재 467점이 보관되어 있다. 충재일기는 중종조의 학자이며 관료인 충재 권벌이 직접 수기한 일기이다. 충재 한 인물의 유품을 전시 보관하기 위해서 사설박물관을 만들 정도이니 그분이 남긴 유품이 중요함과 가치를 짐작 할 수 있게 한다.
그 당시 사용했던 부엌 살림도구 |
첫댓글 Abnormal을 오랜만에 대하니 기분이 상
쾌합니다. ㅋㄹㄴ사태로 日常도 변했는데,
유익하고 행복한 글을 눈여겨 살피고 있었네요. 안개비로 우산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 폰촬영에 안간힘을 썼던 Abnormal님 그대를 존경합니다. fighting !!
그러고보니, 오늘이 '夫婦의 날'이네요.
'사랑해요'
명문의 답사기를 숨도 한번 안쉬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세련된 문장으로 너무나 자세하게 소개를 해놔서 정말 멋지다.
수고하셨네. 다음 가실땐 석천계곡으로 가 보시게.
명품 답사기를 보고 에브노말의 진가를 다시 느꼈네!
백두대간수목원이 과연 이름값이 담담히 하는구먼...
닭실마을 충재고택을 박약회에서 탐방한 적이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수고하셨네
덕택에 앉아서 감상 잘 하였습니다.
우리 여행단의 전문해설가인 김기현 친구의 사진이나 글을 보면 진작 이 글을 읽고 갔드라면 더 멋진 구경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마음이 늘 있게 된다. 좀 배워서 미리 예습을 하고 여행을 다녀야 겠다. 감사합니다.
청암정 지붕처마선이 좀 밋밋하지요...15년전만해도 맞배지붕선처럼 직선이어서 보는이마다 팔작지붕선이 아니다라고 말하여서 고친 것이 겨우 이 정도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