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老僧)과 산적(山賊)
옛날 어떤 노승이 산마루 바위에 앉아 선경의 맛을 즐기고 있는데,
그곳을 지나던 산적이 그 모습을 보고 트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자칭 '산 중의 왕'이라는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가진 것이 없으면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해야 하련 만
그냥 태연히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것이 꼭 자기를 무시하는 듯싶어 부리는 트집이었다.
"영감은 거기 앉아서 무얼 하는가?"
"부처를 찾고 있다네."
"뭐, 부처를?"
산적은 금부처 하나를 얻을 수 있나 싶어 잘 만하면 오늘 수입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 그 부처가 어디에 있는가?"
"그야 내 마음속에 있지."
"정말 영감 마음 속에 부처가 들어있단 말인가?"
"암, 그렇고 말고."
"그렇다면 영감 속에 있는 부처를 내 앞에 내놓아라." 하며 눈알을 부라리며 달려들었다.
부처를 내놓지 않으면 칼로 목을 쳐서라도 가져 가겠다는 심사였다.
노 스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정 부처를 보겠다면 내 보여주마."
'그러면 그렇지. 제깐 놈이 안 내놓고 배겨.' 하면서 산적은 노 스님을 노려보았다.
"그럼, 내 먼저 한 가지만 물어보겠네."
"그래 물어보아라."
"지금 그대 옆에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가?"
엉뚱한 질문이었다.
"아! 이거, 이거야 벚나무 아닌가."
"그것이 진정 벚나무란 말이냐?"
"그렇다. 이 영감탱이야!"
"그렇다면 자네 그 칼을 내게 좀 빌려 주게나.
벚나무라 했으니 그 속에 벚꽃들이 들어있는지 확인해 보겠네."
"아니, 이 땡고추가 벚나무를 자른다고 그 속에서 어찌 벚꽃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벚꽃은 봄이 와야 피어나는 것이지."
"그래 그래 자네 말이 맞네.
벚나무 가지를 잘라서 벚꽃을 찾아낼 수 없듯이
지금 내 마음속에 부처가 들어있다 하여 그대가 나를 잘라봐도 부처는 찾을 수 없을 걸세."
이에 산적은 크게 깨침을 얻고 바로 무릎을 꿇고 참회한 뒤 출가를 서원하여 수도승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이진하 교무의 설교 집인 (여시아 문 1}에 소개된 내용으로
노승의 지혜가 아주 돋보이는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어리석은 산적과 같이 자신이 품고 있는 금 부처는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소유한 금 부처를 내놓으라고 눈알을 부라리며 달려드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조용히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벚나무 속에서 당장 벚꽃을 구할 수는 없지만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때가 되어 결국 벚꽃이 피어나듯이,
우리들 마음속의 부처도 당장 찾을 수는 없지만
꾸준한 정진과 적공을 통하면 언젠가 는 그 부처를 찾아서
대 자유의 삶을 누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여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조급해하거나,
초조 불안 하여 낙망하고 좌절하지 말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이루고자 하는 꿈과 목표를 향해서 끝까지 마음을 놓지 않고 정성을 다해 노력하고
기다릴 줄 아는 여유롭고 지혜로운 님들이 되길 염원합니다.
<옮긴 글>
첫댓글 다시 읽어보는 글이지만 뜻이 오묘합니다
우리가 아는 스님은 무언가 모를 깊이가 있었는데 그래서 배울 점이 많다 여겼는데
지금의 일부 스님은 흔한 말로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나 싶지요'
슬픈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