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다음 주 일요일, 큰애와 그의 연인을 만나러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작년에 한 번 입고 벗어둔
가을양복을 꺼내 바지를 입으려니 허리가 솔다. 깜짝 놀라 저울에 올라서자 바늘이 80을 살짝 넘어선
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여름내 더위 핑계, 독서 핑계로 문밖출입마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튿날
부터 아침라면을 생략하고 수명산이나 우장산을 한 바퀴씩 돌아왔다. 수명산은 한 시간, 우장산은 한
시간 반가량 걸린다. 한 달을 그렇게 하고 나니 허릿살이 줄어든 듯싶어 저울에 올라서니 그새 체중
이 75㎏까지 내려갔다. 안심이 되어 다시 아침라면을 시작하고 대신 매일 한 시간 이상 걷기는 계속
하기로 했다.
지난 일요일에는 아침 10시 반에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오전 출타는 올 들어 그게 처음이다. 게으름
대회가 열린다면 챔피언은 따놓은 당상이다. 겨우 이틀에 한 번 내 방과 거실을 닦는 일도 쫓겨나기
싫어 억지로 하면서 이따금 거르기도 한다. 그처럼 게으르기만 한 내가 지난 일요일에는 무슨 귀신이
씌었는지 방화동에 있는 강서둘레길을 걷기로 작정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지하철 5호선 객차에
서 주변지역 안내도를 보다가 한 번 걸어봤으면 생각한 게 벌써 몇 년째, 역시 게으름 탓에 여태껏 미
뤄오다 각중에 생각이 났던 것이다.
발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길을 나서니 바람이 상쾌하여 뙤약볕을 얼마간 상쇄해준다. 집에서
발산역까지는 걸어서 20분 걸린다. 지하철 객실에는 방화역에서 15분을 가야 강서둘레길이 나온다고
안내되어 있다. 오가는 데만 70분이 소요되는 셈이다. 그러나 내 셈법은 다르다. 나는 길을 나서면 다
리보다 눈이 더 분주해진다. 시간약속이 없을 때면 오가는 사람도, 점빵 간판도, 가로수와 작은 화초
도 마카 다 살펴야 한다. 궁금해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다. 나뭇잎과 풀섶에 내려앉기 시
작하는 단풍을 구경하는 데만도 족히 10분은 걸린다.
난전에 펼쳐놓은 물건들도 신기한 게 얼마나 많은가. 흔한 까치‧비둘기‧참새를 만나도 한참씩 쳐다본
다. 길에서 모이를 주어먹는 비둘기를 천천히 쫓아가보라.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울매나 귀여운지!
간혹 이름 모르는 희귀한 새를 만나면 녀석이 날아갈 때까지 멈춰 서서 쳐다본다. 아쉽게도 이런 새
들은 사람과 환경이 낯설어서 그런지 이내 자리를 뜬다. 길가에 나 있는 잡초도 어릴 때 본 적이 있는
녀석들은 한참씩 지켜서서 반가이 바라본다. 이 모든 걸 그냥 지나칠 바엔 차라리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일이지 길은 왜 나서는가 말이다.
강서둘레길일 듯싶은 장소에 도착하니 널따란 운동장에 남녀 학생 수십 명이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
며 왁자지껄 뛰어논다. 또 한참을 지켜서서 구경하다가 운동장을 크게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을 걷는
다. 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해 한참을 가니 빽빽한 잣나무 사이 공터에 기다란 나무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신선한 가을공기를 마음껏 들이쉰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렸지만 제까짓 게
이 산속까지야 날아왔을라고. 진한 송진 냄새가 잠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한다. 이 좋은 송진 냄
새를 왜 피톤치드라는 외국말로 오염시킬까!
등어리 땀이 서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자 다시 둘레길로 나와 걷기 시작한다. 우레탄을 깔아놓아 환경
에는 해가 될지 모르지만 폭신폭신한 게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중간중간에 진짜배기 강서둘레길이
가파른 비탈을 오르고 있다. 무릎관절의 윤허가 떨어지지 않아 힐끗 거들떠보기만 하고는 내처 운동
장 둘레길을 걷는다. 역시 중간중간에 나무도 보고, 오가는 사람도 쳐다보고, 운동장에 뛰어노는 아
이들도 보면서 한 바퀴를 도는 데 또 한 시간이 걸린다. 이 평탄한 길을 걷는데도 대부분 등산복을 요
란하게 갖춰 입었다. 못 말리는 취향이다.
둘레길 왼쪽 입구에 이르니 대형 화분 열한 개가 설치되어 있고 안에는 초면인 꽃들이 만발해 있다.
꽃잎이 다섯 개인 직경 1㎝가량의 앙증맞은 꽃이 한 송이에 10~30개씩 달려 있고, 한 화분에 그런 꽃
이 30~40송이씩 피어 있다. 모양은 똑같은데 색상은 자주‧분홍‧흰색‧노랑 등 제각각이다. 화분을 하
나씩 찬찬히 뜯어보며 한복판에 있는 화분에 도달하자, 세상에나, 거기 반가운 친구가 부지런히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꿀을 빨고 있다. 몇 년 전 만촌농원에서 봤던 녀석과 같은 크기의 벌새
다. 조금 있으니 색상은 조금 얕고 크기는 5㎜ 정도 작은 벌새 한 마리가 또 날아와 열심히 꿀을 빨기
시작한다. 아마도 암놈인 모양이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묻어 만촌농원 뒷산의 오죽 숲이 서걱이는 소
리도 들려온다.
마침 바로 옆 화분에서 꽃을 찍고 있는 젊은 아낙이 보인다.
“저, 사진작가님. 이리 좀 와보세요.”
“저요? 저 사진작가 아닌데요.”
“사진작가가 따로 있나요? 아주머니처럼 멋진 폼으로 사진을 찍으면 사진작가지.”
“아이, 선생님도 참.”
김춘수 시인이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한
것처럼, 여인은 내가 사진작가라고 부르는 순간 사진작가가 된다. 그리고 내 호칭도 아저씨나 할아버
지 대신 선생님이 된다. 다음 순서는 영업기밀이라 생략한다.
날면서 꿀을 빨아먹는 모습이 벌새와 흡사하여 벌새로 오해를 받고 있는 박각시나방
“다름이 아니라 여기 좀 보세요. 저게 벌새에요. 벌새 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저거 그냥 벌 아니에요?”
“벌은 꽃에 앉아서 꿀을 빨지만, 저거 보세요, 계속 날면서 꿀을 빨잖아요. 저건 벌새에요.”
“어머나 세상에! 선생님 덕분에 벌새를 다 보네요.”
“벌새는 全세계에 300종이 넘는데 저게 가장 작은 종류에요. 잠시도 쉬지 않고 날개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자기 체중의 두 배 정도 꿀을 빨아먹어야 한답니다.”
“선생님은 벌새에 대해 어찌 그리 많이 아세요?”
“사람보다는 다른 생명체에 관심이 더 많다 보니 자연 이것저것 공부를 하게 되었지요.”
여자는 열심히 벌새를 핸드폰에 담는다. 그러다가 자전거가 휙 지나가는 바람에 벌새가 날아가 버렸
다. 여자는 아쉬움의 탄성을 내지르더니 짐을 놓아둔 의자로 가 내게 옆자리를 권한다. 그제야 처음
으로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치명적인 팜므파탈이다. 70년대의 김
지미가 은막을 찢고 나와 세월을 거슬러 달려온 듯하다. 차마 앉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여자는 집
에서 만들어 온 거라며 백에서 동글동글한 도넛을 하나 꺼내 내게 권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얼씨구
나 하고 곁에 앉아 수작을 걸어서 역사를 만들었겠지만, 주머니가 마르니 열정도 따라 식어 어푼 자
리를 뜰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발길을 돌리며 사양의 인사를 건넨다.
“감사합니다만 저는 군것질을 안 한답니다. 이거 빼고는.”
나는 현란한 동작으로 손목을 꺾으며 술잔 비우는 시늉을 한다. 여자가 하얗게 웃는다. 다시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여자를 두고 돌아오는 발길이 인생이 다 끝난 듯 내내 무겁다.
귀가한 뒤 생각 난 김에 자세히 공부하기 위해 벌새 정보를 뒤지다 보니, 아뿔싸, 그건 벌새가 아니라
‘박각시나방’이란다. 꿀을 빨아먹는 모습이 벌새와 흡사하여 착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벌새는 남북아
메리카에만 서식하고 우리나라에는 없단다. 인터넷에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박각시나방’이 꿀을 빨
아먹는 사진도 여러 장 곁들여 있다. 잘못된 정보로 없는 유식을 떨었다는 생각에 새삼 낯이 화끈거
린다. 전화번호라도 따뒀더라면 이실직고하고 사과라도 하련만, 그 팜므파탈이 뒤늦게 벌새가 아니
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주책맞은 늙은이라고 얼마나 욕을 해댈까. 욕먹어 싼 짓을 했지만. 희덕아, 만
식아. 그거 벌새가 아이고 ‘박각시나방’이래여. 이제부터는 ‘박각시나방’이라고 갈구이조.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12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는 조경 단풍도 이렇게 멋 을 가득 담은 색감으로 황홀 할 지경 입니다. 야탑역 까지 걸으며 여수천 의 풍경 역시도 좋으련만 걷기를 못한지 벌써 두주가 지났습니다. 이제는 쉬며 가는 행보 역시도 통증이 심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쪽이라 이렇게 가까이 하지 못하는 단풍 입니다. 못다한 정감은 다음 가을로 미루며 배가 되는 풍광을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