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최초의 열차 '모가(Mogul) 1호' 한국 철도사의 첫 바퀴를 굴리다.
그로부터 9년 뒤 순종황제의 연호를 딴 '융희(隆熙)호'는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남북을 종단하다.
1945년 12월 기적 소리와 함께 독립의 기쁨을 토해 낸 '조선해방자호(朝鮮解放者號)' 우리 손으로 조선의 동맥을 잇다.
"해방자호는 한국인들이 일제강점기 때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총결집해서 만든 기관차였습니다. 철도를 주체적으로 운영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새로운 조국을 건설했다고 하는 그와 같은 추억이 깃든 열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이름을 달리하며 110여 년을 달려온 우리의 철도
'조선해방자호(朝鮮解放者號)'.
◆ 1967년 서울 북가좌역을 통과하는 경의선 열차
해방됐을 무렵 우리 국토에는 이미 많은 철로가 개설돼 있었다.
경인선을 비롯해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 장항선, 전라선, 경춘선, 중앙선이 운영됐다. 사통팔달 연결된 철도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1946년 경부선에 특별 급행열차인 ‘조선해방자(朝鮮解放者)호’가 도입되면서 열차의 차별화 시대가 열렸다.
조선해방자호는 전망, 우등, 일등으로 구성된 열차로 이등칸과 삼등칸이 없었다. 일반 운임에 급행료가 붙어서 가격이 비쌌다.
열차는 주로 운송수단으로 인식됐지만, 관광 용도로도 쓰였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50년대에는 서울에서 경주와 대천으로 향하는 관광열차가 인기를 끌었다.
1955년 피서객을 겨냥해 선보인 대천행 열차는 오전 6시 40분 서울을 출발해 정오 무렵에 도착했다.
오늘날 용산에서 대천까지 무궁화호가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느린 편이었다.
이외에도 여름이면 대구와 포항을 오가는 열차, 부산에서 송정리를 왕복하는 열차 등이 운행됐다. 해운대 동쪽에 위치한 송정리역에서는 송정해수욕장이 지척이었다.
◆ 경춘선이 출발하는 기점이었던 서울 성동역
초창기에 우리나라의 철로를 누비던 열차는 증기 기관차였다. 증기기관으로 동력을 얻어 달리는 이 기차는 1927년부터 1945년까지 국내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1950년대 미군이 사용하던 수송용 디젤기관차를 인수한 뒤에는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1967년 8월 31일 증기기관차의 마지막 운행을 알리는 종운식(終運式)이 열렸다.
이날 '파시형' 증기기관차는 남원에서 서울까지 운행한 뒤 퇴역했다. 하지만 증기기관차는 독특한 모양새와 소리 때문에 이후에도 어린이날 행사 등에 이용됐다.
디젤기관차의 출현은 속도전의 시작이었다.
신속하고 쾌적한 열차들이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1969년 2월 경부선에 나타난 '초특급' 열차인 '관광호'가 신호탄이었다.
442㎞ 거리를 평균 시속 78㎞로 달리는 관광호는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다. 관광호는 경부선의 또 다른 열차인 '재건호', '비둘기호', '맹호호', '통일호'보다 1시간 이상 빨랐다.
그러나 턱없이 비싼 운임과 운행 2개월 만에 발생한 사고 때문에 탑승객이 많지는 않았다.
그때 서울에서는 여수, 목포, 강릉으로도 특급열차가 다녔는데, 서울과 강릉을 잇는 '십자성호'는 11시간이나 걸리는 '완행' 특급이었다.
◆ 경인선 열차의 1969년 모습
열차 여행객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증가했다.
비용이 저렴하고,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1972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비행기와 고속버스의 탑승료는 각각 4천200원, 1천950원이었다. 그러나 관광호는 2천690원, 특급열차는 1천570원, 완행열차는 810원이었다.
특히 완행열차는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모든 교통수단 가운데 가장 싼 찻삯을 자랑했다. 그중에서도 중앙선이나 경춘선 완행열차는 풍광이 수려한 명소를 통과해 여행자들이 애용했다.
1980년대에는 선로를 늘리는 복선화 사업이 곳곳에서 진행됐고, 여객 철도 체계도 정비됐다.
'관광호'를 개명한 '새마을호'를 필두로 우등열차는 '무궁화호', 특급열차는 '통일호', 완행열차는 '비둘기호'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수익성이 좋지 않은 완행열차에 대한 폐지와 푸대접으로 이어졌다.
1989년에는 부산과 광주를 연결하는 경전선을 비롯해 경북선과 영동선의 비둘기호 운행이 중단됐다.
1998년에는 천안-대전, 대구-마산, 포항-부산, 동대구-부산 등에서 기적을 울리던 비둘기호 열차 89개가 자취를 감췄다.
지난 10여 년간은 철도 환경이 급변한 시기였다. 증산역에서 구절리역까지 45.9㎞ 구간을 달리던 정선선 비둘기호가
2000년 11월 14일 마지막 운행을 마쳤다. 이로써 비둘기호는 역사에서 완전히 퇴장했다.
◆ 정선 증산역과 구절리역을 오가던 비둘기호 열차
반면 2004년 4월에는 12년간의 공사를 통해 완공된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돼 최고 시속 300㎞의 고속열차인 KTX가 투입됐다. KTX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40분 만에 주파했다.
비둘기호에 이어 통일호도 뒤안길로 물러났지만, 완행열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30년 전 우등열차였던 무궁화호가 완행열차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무궁화호를 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 30분이 걸리지만, 가장 먼저 매진될 만큼 인기가 높다.
또 경전선과 장항선, 영동선 등에서 운행되는 무궁화호도 열차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광주에서 전남 화순으로 향하는 경전선 무궁화호 열차
이제 완행열차는 '관광열차'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중부내륙 순환열차(O-트레인), 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 남도해양 열차(S-트레인) 등은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열차 여행 상품이다. 간이역마다 정차하지는 않지만, 예스러운 정취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