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동유럽연방 구상>
[전간기]
[폴란드][중유럽연합]
폴란드어 Międzymorze [mjɛnd͡zɨˈmɔʐɛ 민지모자]는 영어로 Intermarium or Intermarum '바다사이의' 라는 뜻으로, 제1차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지도자 피우수트스키가 추진했던, 연방 계획으로, 폴란드의 보호아래 중유럽과 동유럽의 국가들이 연방을 구성하자는 제안이었다. 가입을 제안받은 국가들은 발트해3국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핀란드, 벨라루스,우크라이나,헝가리,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체코슬로바키아 였다.
이같은 연방 제안은 16세기말부터 18세기말까지 발트해에서 흑해에 걸쳐서, 존재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의 부활이었다.
연방구성을 통한 피우수트스키의 목표는 러시아 제국의 해체였고, 러시아 제국의 영토 정복야욕의 분쇄였다. 하지만, 동유럽연방은 일부 리투아니아인에게는 새로 쟁취한 독립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고, 일부 우크라이나인에게는 독립 열망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으며, 러시아가 이를 반대했고, 프랑스를 제외한 서구 열강의 반대에 직면했다.
폴란드 피우수트스키의 거대한 제안이 실패한 후 20년안에, 동유럽 연방 가입을 제안받은 국가들은 핀란드를 제외하고, 모두 소련 혹은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Józef Piłsudski의 전략적 목표는 과거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준-민주적 형태로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러시아 제국의 분열을 가속화시키기 위해서 였고, 소련의 영토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피우수트스키는 동유럽연방을 러시아,독일 제국주의에 대한 평형추로 간주했다.
피우수트스키의 계획에 대해서 사실상 거의 모두가 반대했다. 특히 자신의 영향권에 대해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았던 소련은 이 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연합국은 볼셰비즘을 단지 순간적인 위협으로만 간주했고, 제1차세계대전 이전에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중요한 동맹이었던 러시아가 약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연합국은 백군 동맹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피우수트스키가 거절한 것에 대해 분개했고, 그의 계획이 비현실적이며, 폴란드는 폴란드 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영토가 한정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1918년에 독립을 되찾은 리투아니아도 가입에 소극적이었다. 독립을 추구하던 우크라이나도 폴란드가 다시 자신을 지배하려 한다고 의심했다. 민족의식이 희박했던 벨라루스는 독립에도 피우수트스키의 연방제안에도 관심이 없었다. 뿐만아니라, 피우수트스키의 제안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일련의 폴란드와 그 주변 국가들 간의 영토분쟁 때문에 설득력을 잃었다 : 폴란드-소련 전쟁,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쟁,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영토 분쟁
피우수트스키의 제안은 폴란드 국내에서도 반대를 받았다. 민족 민주당 지도자 로만 드모프스키 Roman Dmowski 는 인종적으로 순수한 폴란드를 주장했고, 소수민족들이 폴란드화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많은 폴란드 정치인들이 다문화주의적 연방 구상을 반대했고, 단일의 폴란드 민족-국가 건설을 선호했다. 샌포드는 피우수트스키의 정책을 동유럽 슬라브 소수민족에 대한 폴란드화에 다름아니라 간주했다.
몇몇 학자들이 피우수트스키가 주장한 연방구성을 위한 민주주의적 원칙을 액면그대로 인정하기도 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이고, 특히 1926년 쿠데타로 피우수트스키가 독재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특히, 그의 정책은 거의 모든 우크라이나 역사가들이 선호하지 않고 있고, 데르하초프는 연방은 대-폴란드 건설을 위한 것이었고, 연방 내에서 비-폴란드 민족, 특히 우크라이나의 이익은 무시되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몇몇 역사가들은 피우수트스키가 "우크라이나 독립 없이, 폴란드의 독립도 없다."라고 주장한 것을 강조하면서, 그가 우크라이나의 번영 보다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부터 분리시키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장래의 폴란드 국경에 대해서, 피우수트스키는 다음과 같이 예상했다 : "우리가 서쪽에서 얻을수 있는 것은 협상에 달려있다. 협상을 통해 독일을 짜내서 영토를 얻어낼 수 있다. 반면 동쪽에서, 문은 열려있기도 하고 닫혀있기도 하다. 그 문을 여는 것과 얼마나 멀리 확장할 것인지는 힘에 달려있다." 폴란드의 동쪽이 혼란상태였기 때문에, 폴란드가 힘만 있다면 가능한 멀리 영토를 확장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면, 폴란드는 러시아 내전에 대한 서양의 개입 혹은 러시아 자체의 정복에는 관심이 없었다.
폴란드-소련 전쟁 (1919-1921) 이후,폴란드-우크라이나를 주축으로 한, 피우수트스키의 중유럽연방 구상은 실현가능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는 1935년 사망했다. 그의 사후, 그의 구상은 폴란드 외무장관 조제프 벡 Józef Beck 이 계승했다. 벡은 1930년대말에 폴란드,루마니아,헝가리가 "제3의 유럽 Third Europe "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피우수트스키의 구상처럼, 동유럽 국가들이 독일과 소련이라는 위협에 대한 강력한 균형추를 구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부 역사가들은 동유럽 국가들이 제2차세계대전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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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http://kk1234ang.egloos.com/2890134
영문 위키백과에 있는 글을 번역하신것 같습니다.
동유럽 연방은 정작 주창국인 폴란드가 리가 조약으로 소련의 우크라이나 합병을 사실상 승인해 우크라이나와 관계를 악화시키고, 리투아니아로부터 빌뉴스를 강제 탈환해 리투아니아와 철천지 원수가 되는등 동유럽 국가들과 사이가 몹시 좋치 않았기에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고 합니다.
다만 그렇더라도 어떻게든 이루어 졌으면 동유럽 국가들이 2차대전에서 그와같은 비극적인 역사를 격지는 않았을텐데 싶어 아쉽기도 하네요
그리고 동유럽 국가끼리의 연방 구상은 이후에도 계속 나왔던걸로 압니다. 심지어 2차대전 후에도 그리스,유고,불가리아(맞나?) 사이에 연방제 구성에 대한 의견이 나왔고 해당 국가들 대부분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까지 했으나 스탈린 크리...
첫댓글 저게 되려면 일단 폴란드가 소련을 발라야 합니다 (...............)
저도 폴란드빠라 =_= 매우 하앍스러운데, 안되는 건 안되는거죠 ㅜㅜ
폴란드-소련 전쟁 자체는 폴란드의 판정승이긴 합니다. 다만 폴란드가 그 이상을 해낼 여력은 없죠(..) 그리고 소련을 제대로 패잡지 않는 한 동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순순히 폴란드에게 꿇어줄 리도 없다는 거(....)
@太人輩 판정승이긴 한데 영토 가져간건 판정승 치곤 많이 가져간거죠?
@마스터치프 많이 가져갔죠. ㅋㅋㅋㅋ
정교회 국가끼리 잘뭉치더라구요. 연방제 구상이 나올수 있었던 경우는 정교회라는 게 한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폴란드는 정교회 아닌데요...
그리고 느끼는건데 동유럽의 정교회국가들의 경우 이슬람 보다는 아니지만 상당히 사회적으로 정교회의 영향력이 강력한곳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부분에 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가 하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루마니아의 경우 안할것같습니다.
당시 영국에 있던 시고르스키와 베네시가 만나서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 대해서 의논했지요. 이런식의 논의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들이 뭉치려던 이유는 누구나 알듯이 러시아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죠
러시아 빼고, 동유럽에 정교회는 불가리아/유고슬라비아 일부 지역(특히 세르비아)밖에 없습니다 (...)
+ 그리스+ 루마니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까지 있지요
우크라이나는 동방전례 카톨릭 아닙니까?
우크라이나 정교회 왈 우크라이나 인구의 75% 이상이 정교회 신자라고 하네요
물론 발표한 당사자가 당사자인 만큼 실제보다 과장됬을 가능성이 높지만 우크라이나 최대 종교가 정교회인건 맞는듯 싶습니다.
동방전례는 르비프같은 원래 폴란드였던 지역에서만 강하고 75%러시아 소속 우크라이나 정교회고 나머지가 우크라이나 자치 정교회라더군요
동유럽의 거대한 완충지대가 필요하단것은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볼때 독일과 러시아를 견제할수있는 대국이 필요하단것입니다. 즉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붕괴이후 더이상 중동부유럽에선 빈체제시절처럼 독일이나 러시아를 견제할 거대국가가 잘개 쪼개져서 독일이나 아님 러시아의 손아귀에 들어가는것은 시간문제였죠. 협상국은 차라리 민족자결운운하면서 합스부르크제국을 해체하지 말았어야했죠. 합스부르크제국이 사망한이후 남은것은 작고 약한 국가들여럿이였고. 결국 독일에게 합병되거나 위성국이 되고 나중에는 러시아에게 괴뢰국가가 되였죠. 중부유럽의 거대한국가 탄생을 스탈린입장에선 받아들일수가 없는거죠.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쟁사를 봤었는데 리투아니아가 피말리더군요. 줄을 잘못서면 무슨 고생을 하는지.. 아니 뭐, 전쟁의 국면 자체가 너무 휙휙 바뀌었으니 선택의 폭 자체도 적었을 것 같긴 하지만요;;
리투아니아 연방이 성립된이유가.. 러시아의 류릭가문대공들이 모스크바대공을중심으로 뭉쳐서 러시아란 국가가 탄생하자 더이상 버틸수가없었거든요
리투아니아는 독립하고 나서 중립으로 대충 살고 싶었는데...
폴란드가 빌니우스 뜯어감 -> 리투아니아가 뺏으려 했으나 당연히 발림 -> 폴란드가 소련과 싸움-> 소련이 밀고 내려와서 보니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웬수지간,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에 빌니우스 돌려줌 -> 폴란드가 또 와서 뜯어감 -> 폴란드-소련 전쟁 휴전하면서 리투아니아에 돌려줌 -> 폴란드인들이 리투아니아에서 반란 일으켜서 빌니우스 지역이 '중앙 리투아니아 공화국'으로 독립, 폴란드에 자발적 합병
그리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1938년까지 외교관계도 맺지 않은 사실상 적국으로 지냄.
이게 이웃이여 웬수여
덕분에 지금도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가 썩 좋은편이 아니라죠...
@太人輩 폴리투 때는 어땠나요? 그땐 나름 편-안 한 관계였나요?(오헝제국?)
@마스터치프 그때면 폴란드나 리투아니아라는 정체성보다는 어느 대귀족 편이냐는 게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시프요(..)
폴란드-리투아니아 커먼웰스라니!!! 필수드스키 무...무슨 지거리야!!!
영토는 간지가 안나군요!
독일과 좀 전쟁을해야할 영토네요
인구만 보면 독일과 붙어도 꿀리지 않는 상황이죠
물론 실제 역사의 폴란드처럼 러시아한테 뒷치기까지 당하면 역시 도리가 없겠지만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하지만 천주교 vs 정교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지라...
영토가 아름답지못하다 ㅌ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