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독도를 지킨다기 보다는 독도가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해야죠. 독도는 우리 민족을 지켜주는 좌청룡이라 할수 있는 섬입니다."
중진 화가로 예술원 회원인 이종상(70) 화백의 독도에 대한 인식과 철학은 너무나 확고하다. 그는 독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사신도의 좌청룡에 주저없이 빗댔다.
이 화백은 명문 대전고 이과계를 졸업한뒤 담임 선생과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대 미대를 택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미대를 다니면서도 건축, 천문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고 서양화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동양화 쪽에 눈을 돌렸다.
그의 눈을 먼저 끈 것은 고구려 벽화였다. "젓갈과 같은 염장문화, 구들장 문화 등 고구려의 전통은 아직까지 우리 민족 문화 곳곳에서 발견될 만큼 중요하지요."
고구려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는 공안당국의 의심을 사 남영동 공안분실에도 끌려갔다고 한다.
독도에 대한 관심은 겸재 정선의 진경 산수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했다.
"중국이 아닌 우리의 산수를 그린 겸재 정선은 진경 산수를 위해 여행을 다녔지만 정작 섬이나 해안을 그린 그림은 해금강을 빼면 없어요. 그래서 진경 산수는 겸재가 완성한게 아니고 우리가 발전시켜 나가야 할 그림이라고 생각했고 독도를 중심으로 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가 독도 그림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1977년 인사동 동산방 화랑을 통해서였다. 가수 정광태가 1982년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들고 나오기 5년전이다.
"당시에는 독도에 가는 것이 매우 까다로웠어요. 독도 그림을 그리면서 알아보니까 독도를 그린 작가는 한국에도 일본에도 없었고 결국 독창성을 추구하는 작가로서 우리가 독도를 선점하게 된 셈이었지요."
그는 단순히 독도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1977년부터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를 구성해 문화계에 독도 사랑의 정신을 확산하는 일에 힘썼다. 그가 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 운동본부는 2006년 주력 회원이라 할 수 있는 60여명으로 의병대를 발족하기도 했다.
운동본부 회원들은 독도를 방문해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퍼포먼스 등 예술활동을 펼쳐왔다.
이 화백의 경우 36차례 독도를 방문해 14번 독도 땅을 밟았다. 그는 이런 활동으로 지난달에는 해군으로부터 독도를 지키는 '광개토대왕함'의 명예 함장으로 위촉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독도는 천의 얼굴을 가진 섬입니다. 독도 때문에 친분을 쌓은 정광태 씨에게 다른 건 좋은데 '외로운 섬 하나'는 잘 못 됐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어요. 독도는 따지면 3개의 섬으로 이뤄졌어요. 볼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줍니다."
독도에 대한 앎의 폭과 깊이도 남다르다. 그래서 '독도 교주'라는 별명도 붙어있다.
최근 독도 문제를 둘러싼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
"문제가 터진 뒤 여.야 정치인들이 독도를 방문해 사진을 찍는 일이 외교적으로 과연 바람직했는지 의문입니다."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기 위해 외교전술을 펴온 일본과 비교된다는 지적이다.
자신의 독도 그림을 8월 29-31일 일본 도쿄(東京) 뉴 오타니 호텔에서 열리는 대규모 아트페어인 '아시아 톱 갤러리 호텔 아트페어' 때 전시하려던 계획이 무산된데 대해서는 "순수 예술 작품을 정치와 결부시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면서도 담담한 입장을 보였다.
"독도나 고구려 등 역사성이 저의 모든 작품에 다 녹아있는데 독도 그림을 빼고 다른 그림을 출품해달라는 요구는 응할 방법이 없고 그래서 아예 불참하기로 한 것이죠."
그러면서 이 화백은 유럽이나 다른 지역에서 독도 그림 전시를 여는 것도 생각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