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8-19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은 즉시 심판을 받지 않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심판을 완전히 받은 것이 하시며 사람들이 빛이신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드러날까봐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상을 심판하기 보다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통해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아들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게 하신다는 내용이다.
18절은 원어에서 그를 향해서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그리스어의 “안에” 라는 전치사와 “그 안을 향하여” 말을 구별하지 않는다. 사람의 안을 향하여라는 말은 영어에서는 “into” 라는 전치사를 사람을 향해서는 성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쓰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그리스어 구문론 책들도 관계의 목적격으로 해석해서 영어의 “in”에 해당하는 전치사와 크게 다르게 취급하지 않는다. 필자를 가르친 미국인 교수들도 영어에 꿰맞춘 인위적인 규칙이라고 했다.
마가복음 1:10절에서는 성령이 예수께로 내려온다는 말에서 쓰였는데 내려와 그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마가는 또 음식이 사람 안으로 들어간다거나 귀신이 사람 안으로 들어갈 때 이 전치사를 썼다. 마태와 누가도 예수를 향해 침을 뱉거나 욕을 할 때나 귀신이 들어간다고 할 때만 이 말을 썼다. 마태는 그를 믿는다는 말을 쓸 때는 전치사와 함께 쓰지 않고 그를 여격으로 썼다.
그러나 요한은 “안을 향하여” 라는 방향성을 담고 있는 전치사를 15번이나 썼는데 모두 다 예수를 믿는다거나 믿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쓰였다. 영어를 사용하는 어떤 주석가도 이에 대해 언급한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를 중심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이 예수를 믿는다는 표현을 쓸 때 그의 존재 안으로 향해서 들어가는 믿음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분명 요한이 예수를 신적 존재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 존재이기에 이 땅에 사는 믿는 자들은 그를 향하여 믿는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를 향하여 믿는 자들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원어는 현재형이기에 그를 향하여 믿는다면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당장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았다고 했는데 완료형이다. 이미 심판이 완전히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 믿지 않으면 끝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를 향하여 믿는 사람은 즉시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결정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서를 보면 그를 믿지 않는 자들은 끝까지 믿지 않았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이 완료된 것이다. 장차 주님 재림하실 때 영원한 멸망이 벌써 선언된 것이다.
19절은 왜 심판이 완전히 결정되었는지 설명한 내용이다. 그 심판은 이것이라고 했다. 빛이 세상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고 했다. 여기서 세상 안으로 들어왔다는 말에서 안으로 라는 전치사도 세상을 향하여 들어왔다는 동작을 설명한 것이다. 하나님과 태초부터 함께 계신 말씀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을 향하여 들어오셨는데 이미 완전히 들어오셨다고 했기에 완전히 끝난 동작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고 했다. 이는 자신들의 죄를 알기 때문이다. 이는 벌거벗은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 벌거벗은 사람이라면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에 있기를 더 좋아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를 지은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고 있는 것이나 똑같다. 그러서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한 것이다. 그래서 19절 마지막에는 “왜냐하면 자신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가 참 빛이시라는 것을 알고도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다. 자신들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죄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다 알면서도 자신들이 누리는 세상 탐욕과 부귀영화를 더 사랑했기에 예수님을 거부한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역시 그런 잘못을 범하기 쉽다. 말씀에 자신들을 비추어 보면 자신들의 죄가 밝히 드러날까 하여 말씀 많이 공부하면 머리만 커진다며 그냥 믿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순종만 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빛 되신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항상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부끄러움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