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으로 본 구원의 비밀
(창 12:1-4)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이 시간에 인물 강해로 “아브라함으로 본 구원의 비밀”이라는 제목입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비교적 길게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누구보다 특출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를 통해서 구원의 원리를 보이시고, 또 모든 믿는 자의 믿음의 모델이 되게 하시고, 나아가 그 줄기에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나심으로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참 구주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몇 가지의 구원의 비밀을 봅니다.
1. 선택의 비밀입니다.
수24:2-3에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신앙의 배경을 말씀한 것으로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오기 전 갈대아 우르에 살 때 그의 아버지와 그의 친척들이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행7:2-3에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했듯이, 아브라함은 경건한 가정에서 신앙의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 아닙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도 모르고 불신앙과 우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작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진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위대해서도 특별해서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부르신 그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1:4-5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했습니다. 이걸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선택, 사람 편에서 보면 전도입니다. 구원은 선택이요 전도로 이루어집니다.
2. 결단의 비밀입니다.
창11:31-32에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이 말씀에서 아브라함의 결단을 볼 수 있습니다. 갈대아를 떠나라 하실 때 떠났고, 함께 출발한 아버지 때문에 가나안에 도착하지 못하고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결단이 필요한데 쉽지 않았습니다.
행7:4에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한 것을 보면 아버지가 믿음에 상당한 거침돌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데라는 하란을 넘어서 이방세계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갈대아는 당시에 안정된 문명권이었고, 하란은 갈대아 문명의 변방으로 고향을 떠나기는 했으나 국경은 차마 넘지 못했습니다. 당시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말고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갑시다.' 데라는 '안 된다. 난 책임질 수 없다.' ‘갑시다. 안 된다. 갑시다. 안 된다.’ 이 데라의 태도 때문에 많은 지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데라의 이름의 뜻이 ‘지연하다’ ‘연기하다’입니다. 이름 하나까지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고 그의 죽음을 계기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데 창12:5에서는 이를 ‘마침내’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방해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우리가 세상 떠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세상이요, 데라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처럼 아직도 세상의 변방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육신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3. 말씀의 비밀입니다.
본문 창12:4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없었으면 아브라함도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주는 것이 말씀입니다.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100%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초기의 아브라함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창12:1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기 하나님이 명령은 약 4가지인데, 아직 본토만 떠났지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였습니다.
창12:4에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한 말씀이 암시하는 것은 그가 많은 세월을 허송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4가지 명령 중에 한 가지만 지켰기에 수학적으로 말하면 25%의 믿음이었습니다. 그 결과 갈대아의 변방에서 허송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데라가 죽은 후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50%였습습니다. 그랬기에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하니 그의 아내와 함께 웃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보호를 의심하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했다가 빼앗길 뻔한 위기를 당했습니다. 사라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인간의 방법으로 하갈을 받아들여 가정에 갈등을 증폭시킨 믿음 없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 100%의 믿음을 갖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조카 롯을 떠나 보내고,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다 바칠 때였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히11:17-19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그 아들을 통해 민족으로 이루고 메시야가 탄생하신다고 약속하신 아들이기에 죽여 번제로 드린다 해도 그 말씀하신 약속대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100%의 믿음입니다. 우리도 말씀에 대한 100%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이 없기에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늘 불안하고 걱정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처음부터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육신의 생각 십자가에 못박고 더 열심히 경외하고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 온전히 믿고 온전히 순종하는 복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