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啐啄同時)의 인연
무슨 일이든 서로 호흡이 맞아야 제대로 이루어진다. 달걀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는 이치는 참으로 신비롭다. 병아리는 안에서 껍질을 쪼고, 어미 닭은 밖에서 쪼아준다. 그 순간이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껍질이 깨지고 새로운 생명이 세상으로 나온다.
이처럼 가르침과 배움도 서로의 때가 맞아야 한다. 흔히 훌륭한 스승 아래에서 좋은 제자가 나온다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중학교 시절 과학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과학 시간이 늘 기다려졌고, 고등학교에서도 화학은 가장 즐거운 과목이었다. 두 분 선생님의 영향으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고,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분 모두 내가 다닌 대학 학과의 선배이셨다.
내 제자 중에도 유독 기억에 남는 이들이 있다. 한 제자는 내가 졸업한 대학 화학과에 지원했으나 한 번 낙방하고, 재수를 거쳐 결국 입학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군에 입대할 때도 우리 집에 들러 큰절을 하고 떠났고, 제대 후에도 가장 먼저 나를 찾아와 인사를 했다.
그 제자는 만날 때마다 농담처럼 내 자리를 내놓으라고 했지만,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당시에는 사범대학을 나와도 별도의 시험을 거쳐야 했고, 공립학교 발령은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다. 나는 교직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결국 그 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중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또 다른 제자도 있다. 그는 세 곳의 대학에 합격하고도, 스스로 사범대학 화학과를 선택했다. 누구보다 성실히 공부하여 조기 졸업을 했고, 교생실습도 나에게 받겠다고 찾아왔다. 그러나 이미 내 자리를 물려받은 제자가 있었기에, 그는 선배 교사에게 실습을 맡게 되었다. 그래도 실습 기간 동안 두 제자와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은 지금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제자는 이후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서울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다 보니, 이제는 연락도 뜸해졌다. 그러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며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비가 내리는 오후, 서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해 가을, 중학교 시절 은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제자의 안부를 물어주시니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작은 선물을 보내며 곧 찾아뵙겠다고 했지만,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오늘따라 제자들이 떠오르고, 그와 함께 스승님의 모습도 겹쳐진다. 병아리와 어미 닭이 서로 때를 맞추어 껍질을 깨듯, 스승과 제자 또한 그렇게 만나는 인연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줄탁동시의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