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 직후에도 투쟁 이어간 전장연
국회로 향한 장애인들, 윤석열 탄핵 촉구
“장애인도 함께 사는 민주주의 사회 만들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 장애인권리입법 당론 채택 요구에 답변 없어
- ‘비상계엄’ 선포 직후에도 투쟁 이어간 전장연
12월 3일, 그날은 32번째 세계장애인의 날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매해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의 이동권·노동권·교육권·자립생활 및 탈시설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진행한다. 이번 해는 장애인권리법안 제·개정 및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하기 위해 국회로 향했다.
세계장애인의 날 전국결의대회 첫째 날 일정을 모두 마친 장애인들은 국회의사당역에서의 노숙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밤 10시 28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 계엄사령부는 박안수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명의의 포고령을 통해 11시부로 △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 △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 등을 금지하고 △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포고했다.
활동가들이 상황 파악을 위해 분주해졌다. 일부는 직접 국회 앞으로 이동했고 다른 이들은 역사 내에서 국회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상황을 주시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이후에도 100여 명의 전장연 활동가들은 국회 주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4일 오전 1시 1분, 국회의원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고 오전 4시 27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긴박했던 6시간이 지나고, 전장연은 기존에 예정한 일정을 변경한다. 국회에 남아 윤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투쟁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4일 오전 8시, 전장연이 여의도역에서 ‘장애인권리스티커 부착 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벽에 붙은 권리스티커를 떼어내고 있다. 사진 김소영
오전 8시, 국회의사당역에서 여의도역으로 이동한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스티커 부착 행동’을 시작했다.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은 늘 그랬듯 활동가들이 벽에 붙인 권리스티커를 무자비하게 떼어내고 그들을 폭력적으로 끌어냈다. 활동가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선전전을 진행했다.
많은 장애인 활동가들이 발언을 이어갔다. 최진기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경남지부장은 “역장은 우리를 범법자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퇴거를 명령하는 역장의 행위야말로 범법이라고 생각한다. 왜 시민들이 시민의 공간인 지하철역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가. 당연히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의 힘으로 계엄령을 해제시켰듯,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어 우리 모두의 권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해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여의도역 벽에 붙어있는 장애인권리스티커와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한 활동가의 모습. 스티커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진과 함께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 “대통령이 장애인권리 약탈하는 현실이 ‘비상사태’”
출근길 선전전을 마치고 돌아온 활동가들과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로 온 장애인들이 국회의사당역 대합실에 모였다. 오전 10시, ‘반헌법 장애인권리약탈자 윤석열 즉각 탄핵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전장연은 윤석열 대통령을 지속적으로 ‘장애인권리약탈자’라고 지칭해 왔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임기 동안 탈시설 예산은 감액하고 장애인거주시설 예산은 증액하여 편성하는 등 장애인들의 요구가 담긴 장애인권리예산을 거부했다. 정책용어에서 ‘탈시설’을 삭제하기까지 하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위배되는 행보를 보여왔다.
결의대회 사회를 맡은 민푸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윤석열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이 자유대한민국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비상사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들이 20년이 넘도록 거리에서 장애인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던 현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장애인권리 보장 실태, 그리고 장애인들이 힘들게 쟁취해 온 권리를 대통령의 이름으로 약탈해 가고 있는 이 상황이 비상사태”라며 “우리 손으로 윤석열을 탄핵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직접 글씨를 쓴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반민주주의 내란 범죄자 윤석열을 탄핵하라”, “장애인권리약탈자, 내란 범죄! 윤석열 탄핵!” 등이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 국회로 향한 장애인들 “장애인도 함께 사는 민주주의 사회 만들자”
오전 11시, 결의대회를 마친 장애인들이 국회의사당 본관으로 향했다. 국회 앞에는 오후 12시에 진행되는 ‘윤석열 대통령 사퇴 촉구 탄핵 추진 비상시국대회’ 참가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비상시국대회 개회 전,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국회 본관 계단에서 포체투지(기어가는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구호와 함께 가파른 계단을 끝까지 올랐다. 계단 꼭대기에는 활동가들이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포체투지(기어가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비상시국대회가 시작되는 오후 12시가 가까워지자 대회 참가자들이 해당 피켓을 내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비상시국대회를 주관한 더불어민주당 측도 같은 요구를 했다. ‘윤석열 탄핵’이라는 대의하에 다른 구호들이 등장해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활동가들이 계속 피켓을 들고 있자 여기저기서 비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해라. 이만하면 된 것 아니냐.”, “지금은 윤석열 탄핵을 이야기할 때다.” 한 시민은 박경석 전장연 대표에게 다가와 “사람들과 ‘공존’하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며 힐난했다. 여전히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어 민주주의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활동가들은 비상시국대회 내내 피켓을 높이 들며,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가 오기 위해선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을 굳건히
알렸다.
전장연 활동가들이 ‘윤석열 대통령 사퇴 촉구 탄핵 추진 비상시국대회’에서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로” 문구가 한 글자씩 적힌 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사진 전장연 제공
오후 1시 15분, 시국대회가 마무리되고 남아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당원들을 중심으로 간이 토크쇼가 진행됐다. 전장연은 계단 앞에 다시 모여 장애인권리예산 및 장애인권리법안 제·개정을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촉구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도중 이재명 대표가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웃으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저 옆에 박경석 씨가 뭐 할 말 많다고 계속 저한테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박경석 선생님 뭐 이런 행사 하는데 와가지고 그렇게 하면 그게 호소력이 있겠어요? 더 미움만 받지. 내가 마이크를 드릴 테니까 이 마이크로 할 이야기를 하고 그다음에 조용히 하세요. 장애인차별철폐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인데 오죽하면 이러고 계시겠습니까? 발언할 기회를 드리고 그다음에는 좀 조용한 환경에서 이어가겠습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박경석 대표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장애인권리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호소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시민 여러분, 저희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주십시오. 이 사회는 아직도 장애인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타고 안전하게 이동하면 비장애인들이 피해를 봅니까? 장애인들이 초등학교 교육을 40% 이상 받지 못하는 이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장애인들도 교육받자고 외쳤던 것이 그렇게 비장애인들에게 잘못된 겁니까? (중략) 장애인들의 권리 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해 주십시오.” 박경석 대표가 발언을 이어가자 여기저기서 “그만하라”는 야유와 발언을 멈추게 하기 위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박경석 대표는 약 7분 간의 발언을 마치고 활동가들과 함께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결국 장애인권리입법 당론 채택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의 뒤로는 민주당 의원의 발언과 지지자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던 32번째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은 장애인들의 투쟁이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