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특히 아버지껜 최소 우리 남매간에
있어선 아빠란 말은 외래어였다.
어머니껜 어려서 엄마라 불렀지만 크가며
어머니라 불렀다.
그런데 60년대 초반(사실은 더 이전에 나옴)
라디오란 소리통이 생기더니 동네마다 집집
마다 스피커란 가로세로 20cm정도 되는
사각으로된 소리통을 걸어주고 월 얼마씩 받아
가는, 요즘 같아서는 지역 유선방송 같은게
성행했다.
그 통에서 사람 목소리와 노래소리가 들리니
뜯어 보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 소리통엔 단지 볼륨만 달렸을뿐 주파수를
맞출수도 없었고, 오직 유선방송에서 틀어 주는
대로 들을수 밖에 없었다.
저녁엔 그곳에서 나오는 연속극을 듣기위해
어머니와 누님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청취에
열중 하셨고, 어떨땐 훌쩍 훌쩍 우는 소리도
들렸다. 아마 그때 '아빠의 기적소리'라는
드라마가 인기 있었던걸로 생각된다.
그때쯤 cm송 이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
아빠란 신조어가 생겨난것 같았지만
태어나서 단 한번도 아빠라고 불러본적은
없었다. 어쩜 그렇게 불렀다간 궁둥이에
불나도록 맞았을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그 옛날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cm
송을 기억나는대로 한번 불러본다.
'아빠도 엄마도 심술쟁이 오빠도 하루의 피로엔
영진 영진 구론산 영~영~ 영진은 영진구론산
구론산은~구론산은 영진구론산'
'영진제약'의 '구론산' cm송이다.
지금 생각하면 라이벌인 동아제약 에서도
'박카스'란 드링크가 나와 있은것 같은데
cm송은 들어보지 못한것같다.
그것뿐만 아니라 '아빠도 엄마도 좋아해요
즐거운 방망이소리 말표 히히힝 말표 히히힝
세탁비누' '천광유지'의 세탁비누 선전,
'아빠 오실때 줄줄이 엄마 오실때 줄줄이
우리집은 언제나 줄줄이사탕'
'오리온제과'의 '줄줄이사탕'cm송이다.
그리하여 라디오의 전파를타고 아버지란
존경어가 아빠란 반말로 바뀌어갔고,
지금은 공용어가 됐다.
어쩌다 크가며 시근이들어 아버지라 부르는
자식도 있긴하다.
오늘 mbc뉴스에서 난데없이 '할빠,할마'란
신조어가 나왔다. 즉 할머니들이 손자를 보는
황혼육아 돌보기에 할아버지도 가세한다는
것이다. 우는 아이 달래고, 아기 안는법을
인형을 이용한 실습을 하기도 했다.
조부모 육아 비율이 3년전 50%를 넘어서 이제
아빠,엄마를 대신하는 '할빠,할마'란 말이
생겨 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주역 이었던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모들중 절반 이상이 아무른 대책
없이 노후를 맞고 있으며, 산업전선에서
줄줄이 은퇴를 하고있다.
그리고 허리 휘게 자식 키워놓고도 모자라
다시 그 자식의 아이를 키우는 '할빠,할마란
신종어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부모에게 효도를 한 마지막 세대이고, 자식
에게 효도 받지 못하는 첫세대요 효도
못 받으며 손주까지 봐야 하는 서글픈 세대,
이땅의 베이비부머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식 분가 다 시키고 살고 있는 나는 어떤
부류의 세대일까?
첫댓글 아직 기성세대 아닌가요~?
비타오백님 다녀 가심에 감사 드립니다.
기성세대의 범위가 광범위 해서요.
아무리 피곤해도 비타오백 하나면
거뜬합니다.
온몸이 아프고
손주업은 허리가 끓어질듯 아파도
바라보면 이쁜손주 얼굴에
맞벌이 자식위하여 기꺼이 할빠 할마를 해야하는 지금
정녕 출산장려에 복지정책이 제대로 되고있는건지 ㅠㅠ
예전에 바라만 보아도 좋은 당신이
바라만 보아도 이쁜 손주지요.
맞벌이를 해야만 숨통이 튀이는
현실이 다산만 강조하는 정부가
원망 스럽겠지요. 어느 기관에 맡기자니
인천 어린이집 처럼 아이에게 핵주먹을
휘둘지않나... 이제 손주 업지 마시고
허리 아파하면서 까지 손주에게
매달리지 마십시요. 아이들은 그렇게
그렇게 잘 자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맞습니다. 그 선이 예전 군용 삐삐 전화선 입니다.
온 동네에 두가닥이 지나 가면서 연결만 하면 소리가
들렸지요. 그런데 우리동넨 합선 시켜 소리 안나게
하는 심술보는 없었습니다. 네 유선비를 곡식으로
지불했군요.
2세는 자식이라 공들여 키우고
3세는 2세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그렇다고 힘들여 하면서 손주에게
체력 고갈하시진 마세요.
전쟁 중에 혹은 바로 직후에 태어나서 아직 생존해 있는, 어찌 생각하면
살 운이 있었던 그러나 나름 희귀한 세대이겠지요...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사느라고
몰랐었지만 힘들게 살아야했던 지난 날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뼈 아픈 줄도 모르고 손주들이 더 이쁜게 아닌가 합니다
혹시 전중(戰中) 세대 입니까?
40년대 후반, 50년대 초반(53년 휴전)까지 제일
어려운 시대의 産物이라 하였지요.
보리고개라는 시절이 있었고, 피죽도
못먹었다는 힘든 시기였지요.
잘 살기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있는힘
없는힘 쏟아 부어야 했었지요.
참 꿈에 나타 날까봐 겁이난 시절
이었기도 했지요. 지금은 천국에 삽니다.
그러니 손자가 예쁘게 보일수 밖에요.
아 그 유선 라디오 방송 저도 기억이 납니다.
그래봐야 불과 50년 전 얘긴데 아득하기만 하네요.......
맞습니다. 50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불과 반세기 많에 세월이 너무 바뀐게
요지경 속에 사는것 같이 느껴집니다.
풍요속에 빈곤이 있는 그런 현실속에
살고 있습니다. 최소한 태어나서
먹을것 걱정은 하지않는 살만한
세상입니다. 그 주역은 모두가
땀흘린 세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