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망 (Le Mans)
1971년 미국영화
감독 : 리 H 카친
음악 : 미셀 르그랑
출연 : 스티브 맥퀸, 올가 안데르센, 지그프리트 라우흐
로날드 라이트 헌트
최근 개봉한 '포드V페라리'라는 영화는 프랑스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르망24 라는 카레이싱 경기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르망24에 우승을 목표로 하는 포드 회장의 지시아래 라이벌인 페라리를 누르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 레이싱 카를 만들고 결국 페라리를 누르고 1, 2, 3위를 나란히 차지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 '르망24' 경기를 배경으로 하는 카레이싱 영화가 1971년에 톱스타 스티브 맥퀸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제목 자체가 '르망'입니다. 스티브 맥퀸이 대단한 자동차 매니아라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고, 영화 '포드V페라리'에서도 포드사에서 신형 레이싱카를 만들고 구매예상 고객을 언급할때 스티브 맥퀸의 이름도 거론됩니다. 이 영화 자체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지요.
이미 스티브 맥퀸은 1971년에 '르망24'대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출연했던 것입니다. 감독과 다른 배우들 모두 유명하지 않은 인물들이었고, 스티브 맥퀸의 이름만이 독보적으로 보이는 영화입니다. 다른 여러 카레이싱 영화들이 드라마적인 내용을 띄고 있던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오로지 카레이싱 경주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스티브 맥퀸도 이 영화에서는 그다지 튀지 않는, 묵직한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1시간 46분짜리 이 영화는 무려 38분이 지날 동안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 중계멘트 외에는 어떠한 주고 받은 대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레이싱 경주의 장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처음 장면에서 차를 몰고 르망24 노선을 지나가던 마이클 들라니(스티브 맥퀸)가 1년전 사고가 났던 장소에서 회상에 잠기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1년전 그는 대회에 참가했으나 중간에 부상으로 탈락했고, 함께 참여했던 벨게티 라는 선수가 사고로 사망합니다. 1년뒤 다시 르망 대회가 열리고 들라니는 다시 포르쉐 팀으로 출전을 합니다. 그 대회에는 1년전 사망했던 벨게티의 부인인 리자(엘가 안데르센)도 와서 객석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간지가 작렬하는 멋진 분위기의 스티브 맥퀸
르망 대회를 구경하기 위해서 몰려온 손님들의
자동차가 주차장을 꽉 메운 장면
실제로 대단한 자동차 광인 스티브 맥퀸
오프닝 타이틀과 함께 르망24 대회가 열리는 장소에서의 분주한 모습이 보여집니다. 대회를 구경하기 위해서 속속 모여드는 사람들, 아예 전날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모습들, 대회장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차량과 이어 빽빽히 들어차는 주차장, 그리고 객석을 가득 메우는 관객들, 분주하게 움직이며 출전준비를 하는 팀원들....
'포드V페라리'에서도 어느 정도 소개가 되었지만 '르망'에서는 좀 더 디테일하게 그 대회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후 4시에 시작하여 다음날 오후 4시까지 24시간동안 열리는 대회, 1923년에 첫 대회가 시작되었고, 첫 대회에서는 레이스 코스를 한 바퀴 도는데 약 9분 정도 걸렸다고 하는데 자동차의 성능이 좋아지고 200km 이상 달릴수 있게 된 60년대는 3분대의 시간에 한바퀴를 완주할 수 있게 됩니다. '포드V페라리'가 2019년 영화였지만 그 작품은 포드 자동차가 페라리를 누르고 최초로 우승을 하는 1966년 대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스티브 맥퀸의 '르망'은 오히려 더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1970년에 포르쉐가 우승을 차지하고 반짝한 포드 시대는 막을 내렸고, '르망'영화에서도 이미 이야기의 줄기는 포르쉐와 페라리의 각축전입니다. 현재까지 포르쉐가 19차례 우승으로 역대 최다 우승을 차지한 브랜드입니다. 스티브 맥퀸 역시 포르쉐를 운전하지요. (결국 이 영화는 '포르쉐V페라리'인 셈이네요) '포드V페라리'에서는 선수들이 서 있는 채로 달려가서 차에 올라타고 출발하는 방식이었지만 이 영화 '르망'에서는 차 안에서 출발하는 방식으로 바뀐 상태입니다.
규정도 장내 아나운서의 언급을 통해서 영화속에서 디테일하게 소개됩니다. 비가 와도 레이스는 24시간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고, 각 자동차별로 2명의 운전자가 하나의 팀으로 참여합니다. 1명이 4시간 이상 계속 운전을 할 수 없으며 24시간동안 총 14시간 이상 운전이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2명의 참가선수는 최소한 1인당 10시간 이상 운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운전을 하다 교체가 될 경우 최소 1시간 이상 쉬어야 합니다. 이렇게 1명당 운전시간 배정이 있기 때문에 누가 언제 운전하느냐에 따른 작전도 참 중요할 것입니다. 야간운전에 강한 사람도 있을테고. 운전을 하는 도중 교체나 정비를 위해서 자신의 팀이 있는 핏에 들어와서 점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핏에는 자동차 기술자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고 이 핏에 있는 기술자들의 실력에 의해서 승부가 좌우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핏에는 여분의 타이어, 주유기 등이 있고, 레이스 도중 부품 교환이나 점검이 필요한 경우 신속히 대응합니다. 심지어 본네트나 범퍼를 교환하기까지 합니다. (핏 하나가 거의 카센터 수준, 이러니 참가하는데 따른 비용도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즉 자동차가 24시간동안 광폭의 레이스를 버텨주어야 하기 때문에 르망24는 자동차 성능을 선보이는 각축전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2/3 이상이 카레이싱 장면
스티브 맥퀸이 모는 차로 등장한 포르쉐
24시간동안 벌어지는 경기를 1시간 좀 넘게 보여주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70%는 자동차 레이스입니다. 13시간쯤, 즉 절반쯤 지났을때는 55대의 참여 차량중 벌써 절반 가량이 탈락할 정도로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장시간의 쉼없는 경주입니다. 이러한 레이싱 경주 장면이 2.35 : 1 의 넓고 시원한 화면에서 정말 시원시원하게 펼쳐지며 횡 방향 스피드의 레이싱 경주인 만큼 넓은 화면을 최대한 잘 활용한 영화입니다.
영화가 38분쯤 지났을때야 비로소 출연자들간에 주고 받는 대사가 나오는데 주인공 들라니와 벨게티의 미망인 리자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레이싱 경기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사가 명대사인데, 들라니는 레이싱 경주의 특징을 이야기하며 나름 위로를 보냅니다. '레이싱 경기란 피튀기고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위험한 경기이고 목숨을 건 레이스'라는 식의 설명을 하자, 리자는 '그렇게 목숨을 걸만한 일이라면 굉장히 중요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남보다 자동차를 빨리 운전하는게 뭐가 중요한건가요?'라고 묻습니다. 이에 대한 들라니의 대답이 인상적인데 '많은 사람들이 잘하는 것 하나 없이 살아갑니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운전하는게 가장 중요한거지요. 저에게 레이싱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스티브 맥퀸이 연기한 주인공 들라니의 모습을 통해서 레이서의 심리가 약간 보여지고 쉬는 시간에 휴식카에서의 휴식, 그리고 뷔페에서의 식사 등 교체된 여분의 시간동안의 모습도 보여지고 경쟁자인 운전자와의 존중과 라이벌 의식 등도 보여집니다.
사고로 죽은 지난해 출전 선수의 아내를 만난
들라니(스티브 맥퀸)
실감나는 자동차 사고장면
이런식으로 흘러가는 영화인만큼 마치 '르망24 취재 다큐멘타리'를 방불케하는 작품인데 애초에 스티브 맥퀸이 이런 방식의 영화를 고집했다고 합니다. 1967년 존 스터지스 감독에 의해서 '챔피언의 날(Days of the Champlion)'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가 기획되었지만 스티브 맥퀸과 이견이 있었습니다. 존 스터지스 감독은 'O.K목장의 결투'나 '건 힐의 결투'를 감독한 50-60년대 명장으로 '황야의 7인'과 '대탈주'를 통하여 무명 배우에 가깝던 스티브 맥퀸을 스타로 올리는데 크게 일조한 감독입니다. 그래서 스티브 맥퀸도 존 스터지스가 감독하길 내심 바랬지만 다큐멘타리에 가깝게 르망24 대회자체를 다루는 영화로 만들기를 원했던 스티브 맥퀸과 달리 존 스터지스 감독은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한 작품을 원했기 때문에 결국 다른 감독이 맡을 수 밖에 없었고, TV전용 연출자인 리 H 카친 이라는 인물이 연출했습니다. 리자 역으로 모드 아담스도 거론되었는데 175cm나 되는 큰 키 때문에 스티브 맥퀸의 상대역으로는 너무 커서 결국 독일 출신의 엘가 안데르센이 캐스팅되었다고 하네요.
영화는 기존 실제 르망대회의 자료로 활용되었지만 실제 장소에서 영화를 위해서 따로 촬영된 필름을 대부분 사용했고, 아주 실감나는 레이싱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스피드의 왕자'를 비롯해서 제임스 가너, 이브 몽땅의 '그랑프리' 폴 뉴만의 '영광이여 영원히' 그리고 최근의 '러시 더 라이벌'과 '포드V페라리'까지 아마도 모든 카레이싱 영화중에서 레이싱 경기 장면시간만을 따진다면 가장 많은 장면을 보여준 영화가 바로 이 '르망'입니다. 르망24의 A~Z을 거의 다큐멘타리에 가깝게 보여주었고 마치 '포드V페라리'의 보조 해설집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만큼 꽤 디테일하게 대회가 다루어지고 있지요. '포드V페라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빗길 레이스가 펼쳐지기도 합니다.(이 지역이 비가 자주 오나 봅니다)
우승자의 환호
스티브 맥퀸에게 매우 어울리는 캐릭터였던 영화
스티브 맥퀸은 굉장한 자동차광이었고, 실제로 포르쉐 자동차를 소유하였고, 마침 이 영화는 페라리, 포드에 이어서 포르쉐의 시대가 활짝 열리는 시점에 맞추어 발표된 셈입니다. 이후 포르쉐는 계속 르망24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며 결국 19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 타이틀을 보유한 자동차에 등극한 것입니다. 스티브 맥퀸은 1970년 세브링스 대회에 카레이서로 출연하여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는데 1위팀이 '영화배우에게 질 수 없다'라는 각오로 필사적인 레이스를 벌였다고 합니다. 스티브 맥퀸은 르망대회에도 출연을 희망했지만 참가가 성사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세브링스 대회는 12시간을 경기하는 대회라고 하네요.
자동차에 대해서 누구보다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스티브 맥퀸, 나름 라이벌 의식이 있던 동시대 경쟁자 폴 뉴만이 2년이나 앞서서 1969년 '영광이여 영원히'라는 영화에 등장하자, 자신은 일반 드라마 장르와는 차별이 되는, 이름 그대로 '레이싱경기'자체를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주인공인 진짜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우승자로서의 환호조차 다른 배우에게 넘길 정도로 드라마가 아닌 오로지 리얼한 레이싱 영화 자체를 원했습니다. 오락성이나 상업성은 많이 떨어지지만 르망24 레이싱 대회를 거의 날것처럼 보여주는 묵직한 영화입니다.
ps1 : '포드V페라리'는 포드 자동차가 페라리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오랜 과정을 다룬 잘 만든 '고급드라마'라면 '르망'은 르망대회 자체를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리얼한 영화지요.
ps2 : 스티브 맥퀸은 일부러 굳이 연기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타고난 배우 같습니다. 오프닝 장면에서 자동차에서 내려서 뒷모습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앞으로 옮겨지는 카메라에 맞추어 말없이 고독한 모습으로 서 있는 장면만으로 하나의 멋진 장면이 만들어질 정도니까요.
ps3 : 대사가 거의 없는 영화인만큼 미셀 르그랑의 음악이 영화 전체를 살려주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자동차의 굉음과 미셀 르그랑의 음악이 함께 결합해서 이끌어가는 영화지요. 국내 미개봉작이라서 역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미셀 르그랑의 음악을 영화음악 프로에서 듣는 것으로 먼저 인식한 '음악'으로 먼저 알려진 영화지요. 아무리 스티브 맥퀸이 대스타였지만 대사도 거의 없는 자동차 경주 장면만으로 일관되는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기는 어려웠지요.
ps4 : 이 영화는 국내 미개봉작 이지만 1971년에 발표된 오토바이 레이서들의 삶을 다룬 'On Any Sunday'라는 다큐멘타리 영화가 '영광의 라이더'라는 제목으로 스티브 맥퀸을 거창하게 앞에세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냥 다큐멘타리 필름이지요.
ps5 : 스티브 맥퀸은 이듬해 로데오 경기를 소재로 한 '주니어 보너'에 출연했는데 2년 연속 특수한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역할을 했네요. 두 영화 모두 어느 정도 수준있는 작품이었음에도 우리나라에 모두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출처] 르망(Le Mans, 1971) 자동차광 스티브 맥퀸 주연의 다큐 형식의 카레이싱영화|작성자 이규웅